인생 리셋 오 소위! 409화
38장 메리 크리스마스(1)
1.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한소희가 오상진에게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 크리스마스 때 같이 보낼 수 있는 거죠?
-네, 그럼요.
그다음 날에 똑같은 메시지가 날아왔다. 오상진은 당연히 똑같은 답을 보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귀찮을 만도 하건만 오상진은 오히려 이렇게 매일 카운트하듯 보내는 메시지가 귀엽기만 했다.
사실 한소희가 이렇듯 매일 메시지를 보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상진은 군인이었다. 언제 어떻게 돌발변수가 일어날지 몰랐다. 그래서 한소희는 매일매일 확인이 필요했다.
사실 한소희에게 있어서 이번 크리스마스는 남자친구와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였다. 한껏 부풀어오른 기대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건 오상진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친구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오죽하면 믿지도 않는 하느님에게 기도까지 올렸다.
오상진 역시 부푼 기대감을 안고, 한소희에게 작은 서프라이즈 선물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날 하루 휴가를 써서 오롯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었다. 오늘 김철환 1중대장을 만났다.
“저기, 중대장님.”
“왜?”
“24일 날 휴가 써도 됩니까?”
“뭐? 24일에? 야, 오상진. 너, 너무한 거 아니냐. 아무리 여자 친구가 있어도 그렇지. 24일에 휴가를 써, 25일 토요일이잖아. 오후에 외출로 써서 나가면 되잖아.”
“그렇긴 한데 말입니다…….”
오상진이 살짝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그 얼굴을 본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효, 네 심정은 이해가 되긴 한다. 여자 친구랑 사귀고 첫 크리스마스지?”
“네.”
“하긴…… 나도 너희 형수 만날 때 첫 크리스마스가 몇 년 전이었더라.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우리 그때 첫 크리스마스 좋았지. 설렜고, 가슴 따뜻했고, 무엇보다 함께여서 좋았어.”
김철환 1중대장은 이야기를 하다 말고 옛 추억에 잠겼다. 오상진은 그냥 가만히 지켜만 봤다. 그러다가 혼자만의 회상이 끝났는지 김철환 1중대장이 움찔하며 물었다.
“아, 그래서 아까 뭐라고 했지?”
“24일 날 휴가 좀 쓰겠다고 했습니다.”
“휴가……. 그래, 가라. 다른 놈은 안 된다고 하겠지만 너는 보내준다.”
오상진의 표정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중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자식이, 말로만?”
“설마 말로만이겠습니까.”
“후후후, 알았다. 그만 나가봐.”
“네. 충성!”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중대장실을 나갔다. 잠시 후 3소대장이 중대장실을 찾아왔다.
똑똑똑!
“충성.”
“오, 3소대장이 무슨 일이야.”
“저기…… 24일 날 휴가를 좀 썼으면 합니다.”
“하아……. 너도? 안 돼!”
“네?”
“이미 늦었다. 1소대장이 먼저 휴가를 신청했어.”
“1소대장…… 말입니까?”
“그래! 정 안되면 오후에 외출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알겠습니다.”
3소대장이 시무룩한 얼굴로 중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아, 젠장……. 여친에게 한소리 듣겠네.”
3소대장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걸어갔다. 한편, 오상진은 이 기쁨 상황을 빨리 전달하기 위해 휴게실로 가서 전화를 했다.
-정말요? 금요일 날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럼요. 방금 중대장님께 허락받았어요.”
-나는 진짜 금요일 날 오후 늦게 볼까 봐 많이 걱정했는데……. 정말 잘되었어요.
“네. 저도 우리의 첫 크리스마스인데 최대한 함께 있고 싶었어요.”
-알겠어요. 그럼 그날 봐요.
“네, 소희 씨. 그날 봐요.”
오상진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1소대 내무실로 향했다. 1소대 내무실에서는 창고에서 꺼낸 크리스마스트리를 작업하고 있었다.
“얘들아, 뭐 하냐?”
“충성. 휴식 중.”
“쉬어.”
“쉬어.”
김일도 병장이 오상진에게 갔다.
“지금 창고에서 트리를 가지고 나와 설치 중입니다.”
“그래?”
오상진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확인했다.
“어? 이 나무 어디서 났냐?”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진짜냐?”
“에이, 아닙니다. 가짜입니다. 전역한 고참들 말로는 누가 사놓고 창고에 짱박아 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 꺼내 놓는다고 합니다.”
“그래? 괜찮네. 그래도 몇 가지 소품들은 추가해야겠다.”
“네.”
“알았어. 필요한 소품은 소대장이 사다 줄게. 잘 설치해 봐. 그리고 트리에 그 뭐냐. 반짝이는 거 있잖아.”
“아, 꼬마전구 말입니까?”
“그래. 그거! 그것도 있으면 괜찮겠네.”
“네. 작년에 샀었는데, 망가졌나 봅니다.”
“알았어. 그것도 사다 줄게.”
“감사합니다.”
“그보다 별일 없지?”
“네.”
“그럼 다행이고…….”
그때 중대 행정병이 잔뜩 소포와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다들 물품 확인하십시오.”
“오오? 이게 다 우리 소대로 온 거야?”
“네.”
1소대원들이 후다닥 달려갔다. 제일 먼저 김우진 상병이 소포 하나하나를 확인했다.
“오오, 해진아. 너에게 소포 왔다.”
“네.”
이해진 상병이 소포를 받았다. 그리고 여자 친구가 있는 사람에게만 편지 또는 소포가 날아왔다. 대부분 과자와 라면으로 된 소포였다.
“우와! 대박이네.”
“무슨 과자가……. 초코파이도 있어?”
“여기 짜파게티도 있습니다.”
그렇게 소포를 뜯어서 자랑하고 있는데 김우진 상병이 마지막 소포를 확인했다.
“어? 최강철? 강철아.”
“이병 최강철.”
화장실에 다녀와 관물대를 정리하던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돌렸다.
“너에게도 소포가 왔네. 최지현이 누구냐?”
최강철 이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최지현이라고 했습니까?”
“그래! 확인해 봐. 네 동생이야?”
최강철 이병이 후다닥 뛰어갔다. 소포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 쓰윽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 뭐야? 그 웃음의 의미가 뭐야?”
“아, 아닙니다. 그냥 소포 받아서 좋아서 말입니다.”
“그래 좋겠지. 그런데 방금 그 미소는 조금 다른데? 솔직히 말해봐. 동생 아니지?”
“네. 여자 친구입니다.”
“진짜야? 그럼 그때 면회 왔다던 그 친구?”
“그렇습니다.”
“이제 확실히 사귀는 거야?”
“아, 아직 그런 말은 안 했습니다.”
“그럼 뭐야? 넌 여자 친구라며…….”
“그냥 뭐…….”
최강철 이병이 섣불리 답을 내지 못했다. 그도 진짜 사귀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썸인지 잘 몰랐다. 썸이라고 하기에는 서로가 맘에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다만 딱 정하지는 않았다.
‘진짜 뭐지? 썸인가? 아니면 사귀는 건가?’
최강철 이병이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담에 만나면 확실하게 입장을 정리해야겠어.’
최강철 이병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우진 상병에 의해 소포가 해체되고 있었다.
“기, 김 상병님…….”
“뭔 인마. 딱 봐도 과자나 라면 종류일 텐데…….”
“그래도 제가 먼저 뜯어야 하지 않습니까.”
“넌 이것보다 이것부터 먼저 봐야 하지 않겠냐?”
김우진 상병이 편지를 건넸다. 최강철 이병이 바로 낚아채 확인했다. 역시나 최지현에게서 온 편지였다. 최강철 이병의 표정이 절로 환해졌다.
“자식 좋아 죽네!”
김우진 상병은 잔뜩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냉큼 소포 안을 확인했다. 역시나 과자와 초콜릿, 라면이 잔뜩 들어 있었다.
“에효. 누구는 좋겠다.”
김우진 상병은 소포를 확인한 후 자신의 자리로 가서 털썩 앉았다. 그 옆으로 구진모 상병이 앉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부러우면 진다고 했지만…….”
구진모 상병은 차마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말을 해버리면 지는 것 같았다.
‘아직 말 안 했어. 그러니 조금 부러워해도 지는 것은 아니야.’
혼자 자기 뜻대로 생각해 버렸다. 김일도 병장이 입을 열었다.
“참! 이번 크리스마스 때 종교 갈 친구 있냐?”
“네. 그렇습니다.”
“손들어봐!”
1소대 전원 다 손을 들었다. 김일도 병장이 인원을 파악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이번 주 크리스마스가 토요일인 건 알지? 종교행사도 토요일 날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교회 가는 사람들은 토요일 날 가고, 다른 종교자들은 일요일 날 움직이면 된다. 이해했지?”
“네. 알겠습니다.”
그러다가 이은호 이병이 슬쩍 말했다.
“토요일 날 교회 가면 당연히 맛있는 거 많이 주겠죠?”
그러자 옆에 있던 최강철 이병이 웃으며 말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무조건 교회에 가야 해.”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아마도 여기 있는 인원 다 갈걸. 아, 김 병장님은 무교라서 안 가실 거야.”
“아…….”
이은호 이병이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강철 이병이 잠시 주위를 확인하더니 입을 뗐다.
“참고로 한태수 일병은 불교다.”
“네?”
“아까 손들었는데 말입니다.”
“크크크, 그렇지. 그래도 군대라는 것이 맛있는 것을 주는 곳으로 치우치게 되어 있어.”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어디 있긴 여기 있지.”
최강철 이병이 히죽 웃었다. 하지만 이은호 이병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최강철 이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최강철 이병은 화장실로 가는 척하다가 1층으로 내려가 공중전화 박스로 향했다. 일단 5개의 전화 박스에 사람이 다 들어차 있었다. 그중 줄이 짧은 곳에 가서 섰다.
“으음, 그래도 소포도 보내줬는데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겠지.”
최강철 이병은 최지현의 휴대폰 번호를 떠올렸다. 그로부터 약 10분 후 최강철 이병 차례가 되었다. 가볍게 호흡을 한 후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우, 뚜우, 뚜우.
-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지현 씨 휴대폰입니까?”
-네, 제가 최지현인데……. 아, 강철 씨!
최지현도 곧바로 최강철 이병의 목소리를 눈치챘다. 최강철 이병은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네, 맞습니다.”
-어쩐 일이에요? 군대에서 전화도 할 수 있어요?
“그럼요. 잘 지냈어요?”
-네, 잘 지냈어요. 강철 씨는요?
“저야 똑같습니다. 아, 방금 소포 받았어요. 그렇게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아, 아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고……. 제가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거든요.
“블로그요?”
-네, 곰신…… 이라는 곳인데요. 남자친구 군대 보내고 기다리는 모임이라고 해서…….
최지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강철 이병이 움찔했다. 그러면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 곰신! 아주 좋은 곳이네요.”
-네, 아무튼 그곳에서 정보를 얻고 해서 보내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저희 고참들이 참 좋아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다행이에요.
“그보다 지금 뭐 하고 있어요?”
-지금요? 저녁 먹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강철 씨는요?
“저는 저녁 일과 중인데 소포도 받았고, 지현 씨 생각이 나서요.”
-아, 그렇구나.
“그보다 크리스마스 때는 뭐해요?”
-크리스마스 때 별 약속 없는데요.
“없으시구나.”
-왜요? 제가 강철 씨 몰래 다른 남자 만나서 놀까 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