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08화
37장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13)
그들이 일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을 때 저 멀리서 사단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헉! 사단장님 오신다.”
“네?”
곽부용 작전과장이 깜짝 놀라며 확인했다. 진짜로 사단장이 보좌관들을 대동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지, 진짜로 오십니다.”
“작전과장, 나 어때? 괜찮지?”
곽부용 작전과장이 빠르게 스캔했다.
“네, 괜찮습니다.”
“좋아. 그럼 사단장님을 맞이하러 가자고.”
“네.”
한종태 대대장은 재빨리 계단을 내려가 사단장을 향해 뛰어갔다.
“대대장님 조심하십시오. 미끄럽…….”
곽부용 작전과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종태 대대장은 그만 빙판길에 미끄러져 뒤로 꽈당 넘어졌다.
“어이쿠야! 허리…… 내 허리…….”
한종태는 엉덩이와 허리에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 상태로 허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뛰어와 한종태 대대장을 부축했다.
“대대장님, 괜찮으십니까? 대대장님…….”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어디가 안 좋습니까?”
“나, 허리, 허리…….”
“허리 말입니까?”
곽부용 작전과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종태 대대장의 허리를 봤지만 지금은 딱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겉으로는 괜찮은데 아무래도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알았어. 나 일으켜 세워봐.”
“네.”
곽부용 작전과장이 조심스럽게 한종태 대대장을 부축했다.
“아야야야, 천천히…… 천천히 해!”
“네, 알겠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잔뜩 엄살을 부리는 한종태 대대장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많이 안 좋습니까?”
“윽, 아무래도 허리 나간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곽부용 작전과장이 대답했다. 한종태 대대장이 바닥을 발로 툭툭 찼다.
“여기 바닥 왜 이래?”
“눈이 와서…….”
“누가 그걸 몰라?”
곽부용 작전과장이 고개를 들었다. 사단장이 걸음을 멈춘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대장님, 사단장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뭐?”
한종태 대대장이 고개를 들자 진짜 사단장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씨……. 나 부축해 봐. 좀 걸어봐야겠다.”
“네.”
곽부용 작전과장이 부축을 하며 한종태 대대장이 걸어보았다. 통증은 있지만 걷는 데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제 사단장에게 가면 되었다. 그런데 사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그냥 가버렸다.
“대대장님 사단장님 가십니다.”
“뭐? 가셔? 아, 안 되는데. 경례해야 하는데…….”
한종태 대대장이 절뚝절뚝 거리며 빠르게 걸어갔다. 하지만 사단장은 저 멀리 멀어지고 있었다.
“하아, 젠장! 이게 뭐야.”
한종태 대대장이 인상을 썼다. 그러다가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이 넘어진 곳을 쳐다봤다.
“여기 누가 청소했어? 제설 작업을 이따위로 하면 어쩌자는 거야!”
“죄송합니다.”
“여기 청소한 새끼들, 당장 데려와!”
“알겠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은 씩씩거리며 다시 자신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곽부용 작전과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괜히 애먼 사람 잡겠네.”
그리고 대대장실로 몇몇 사람들이 불려갔다. 그 후로 건물 주위를 다시 청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 명령은 자연스럽게 오상진에게 내려왔다.
“네? 저희가 말입니까?”
오상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거긴 저희 구역이 아니지 않습니까! 3중대 구역일 텐데…….”
“3중대 구역 맞아. 그런데 오늘 거기서 대대장님께서 미끄러져서 넘어졌잖아. 그 일로 3중대장 또 깨졌어.”
“그건 그거고, 왜 저희 소대입니까?”
“1소대장, 너희 소대가 아니라. 너에게 말하는 거야.”
“네?”
오상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입을 뗐다.
“작전과장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셨다. 혹시라도 청소했을 때 조금 미비하더라도 ‘너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더라.”
“네에? 그게 무슨…….”
“야, 중대장도 그게 맞는 것 같다. 나중에 대대장님이 뭔 시비를 걸어도 봐주실 거 아냐.”
김철환 1중대장이 생각하는 전개는 이랬다.
“야, 여기 청소 누가 했어!”
“1소대가 했습니다.”
“뭐? 1소대면 오 중위?”
“네.”
“아, 제기랄 오 중위라면…….”
이런 식으로 넘어갈 것 같았다. 한마디로 곽부용 작전과장이 머리를 쓴 것이었다.
솔직히 눈 오는데 더 청소를 한다 해도 티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눈 때문에 빙판길이 되어버린 것을 누굴 탓하겠는가.
“하아,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하겠습니다.”
오상진이 힘없이 중대장실을 나와 1소대 내무실로 걸어갔다.
1소대원들은 오전 내내 눈과 씨름하며 겨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제설 장비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네에? 아니 거길 왜 저희가 청소합니까?”
김일도 병장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쩌겠냐. 하라고 하는데.”
“그래도 소대장님. 저희 방금 청소 끝내고 들어왔습니다.”
“알아, 아는데. 대대장님 특별지시다.”
“많고 많은 소대장 중에 왜 하필 저희입니까? 그리고 그곳은 엄연히 3중대 담당인데 말입니다. 3중대 보고 하라고 하십시오.”
“소대장도 그렇게 말했어. 그런데 대대장님께서 직접 명령을 내렸는데 어떻게 해.”
오상진도 살짝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래도 소대원들에게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이었다.
“분대장. 미안하다.”
“아닙니다.”
“이번 한 번만 깔끔하게 청소해 놓자. 사실 그곳에서 대대장님 뒤로 넘어지셨단다.”
“아, 진짜…….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지쳐 있는 애들을 봤다.
“들었지? 장비 챙겨서 집합해라.”
“네.”
1소대원들이 힘없이 대답하고는 내무실을 나갔다.
대대장이 넘어졌다는 그 자리에 가서 싸리비로 열심히 쓸었다. 빙판길이라면 작은 빙판이라도 콕콕 두드려 깬 후 쓸었다.
“거기 대대장님 내려오시는 곳이니까. 꼼꼼히 쓸어라!”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의 지시에 이해진 상병이 가서 청소했다. 오상진도 사무실에 있지 않고 청소를 거들었다. 그 모습을 2층 창가에서 지켜보던 한종태 대대장이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야, 거기 청소 똑바로 해! 빙판길을 없애란 말이야.”
오상진이 그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충성. 예, 알겠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오상진을 발견하고는 움찔했다.
“뭐야, 오 중위가 청소하는 거야?”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젠장…… 알았어. 깨끗이 청소해.”
“넵!”
한종태 대대장이 창문을 닫았다. 역시나 오상진에게는 큰소리를 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상진은 사단장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다. 한종태 대대장은 대대장실 커튼까지 쳐 버렸다. 아예 밖을 보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 창문을 보며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자자, 적당히 30분만 청소하고 들어가시죠.”
오상진이 박중근 하사에게 말했다.
“네, 소대장님.”
그렇게 30분 동안 청소를 마무리하고 내무실로 들어왔다. 오상진이 나타나 말했다.
“고생했다.”
“아이고, 너무 힘듭니다.”
“그래,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소대장이 쏜다.”
“그냥 따끈한 국물이 먹고 싶습니다.”
“하긴 오늘 좀 추웠지?”
“네. 밖에서 몇 시간을 달달 떨었더니……. 몸이 으슬으슬합니다. 이러다가 감기 걸리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따끈한 국물? 그럼 라면이라도 먹을래?”
“라면 좋지 말입니다.”
“라면 찬성입니다.”
“오오, 라면…….”
다들 라면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알았다. 소대장이 준비해 볼게. 기다려 봐.”
오상진이 내무실을 나갔다. 곧바로 1중대 행보관인 김도진 중사에게 갔다.
“행보관님.”
“어이쿠야, 우리 유명하신 1소대장님 오셨습니까.”
“에이, 유명하지도 않습니다.”
“아닙니다. 엄청 유명하십니다.”
“왜 그러십니까.”
“하하핫,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혹시 사발면 남는 것 있습니까?”
“사발면 말입니까? 없을 텐데…….”
김도진 중사가 슬쩍 오상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오상진은 살짝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아,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죠. 수고하십시오.”
오상진이 몸을 돌려 가려는데 김도진 중사가 불렀다.
“에헤이, 우리 1소대장님 성격도 급하셔라. 제 말을 끝까지 들어보십시오.”
“네?”
“현재 재고 판에는 없지만 제가 남는 것을 하나씩 모아둔 것이 있습니다.”
순간 오상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죄송하지만 그것 좀 반출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다른 소대장님은 모르겠지만 특별히 1소대장님이니까, 드리는 겁니다.”
“하하핫, 감사합니다.”
김도진 중사는 웃으며 창고에 박아 뒀던 사발면을 꺼내 주었다.
“이거 다른 소대는 비밀입니다.”
“당연하죠. 한두 번 장사합니까.”
“후후후.”
김도진 중사가 웃었다. 오상진이 사발면을 받고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잘 먹겠습니다.”
“아, 1소대장님.”
“네?”
“대대 행보관 민용기 상사 말입니다. 요새 1소대장님 때문에 살판났다고 하던데…….”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지난번에 쌀 말입니다. 쌀!”
“쌀? 아, 예예! 그 쌀을 왜?”
“이나, 민 상사 그 사람 그 쌀을 팔아먹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오상진은 얘기를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아, 그냥 혼자만 알고 계십시오. 말하지 말고. 그냥 하도 추잡해서 1소대장님께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쩌다가 내가 저런……. 쯧쯧쯧.”
“알겠습니다.”
“그리고 소대장님. 이거 어디 가서 말하지 마십시오. 창피해 죽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1소대장님 순진한 척하신다. 군대에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몰래 해 먹는 거죠.”
“아, 그렇구나.”
“아무튼 라면 맛있게 먹으십시오. 다음에 또 필요한 거 있으시면 오시고.”
“네. 감사합니다. 행보관님.”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 후 사발면이 든 박스를 들고 1소대 내무실로 내려갔다.
그렇게 오상진 덕분에 내무실에선 사발면 파티가 벌어졌다.
후우, 후우, 후우. 후루루룩!
“와, 진짜 맛있습니다.”
“역시 라면은 진리입니다.”
“크크크, 몸이 추웠는데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까. 그냥 풀어져 버립니다.”
“그래, 맛있게 먹어라.”
그런데 김일도 병장이 힐끔 창가로 시선이 갔다.
“오늘 저녁에 또 눈 내린다고 하던데…….”
“하아…….”
“미쳐!”
“이놈의 눈! 작작 좀 오지.”
소대원들의 한탄 소리가 들려왔다. 오상진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창가를 바라봤다.
“그래, 이번 주 내내 눈이 내리면 안 되는데…….”
오상진이 잔뜩 걱정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이 내리는 족족 계속 눈을 치워야 했다. 눈이 쌓이면 안 되었다.
“애들도 주말에는 쉬어야 하는데…….”
오상진의 걱정과 달리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계속해서 눈이 내렸다. 그런데 금요일 오전 거짓말처럼 눈이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