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06화
37장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12)
아침밥을 다 먹고, 연병장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각 중대별로 6명만 나왔다. 나머지는 마무리 짓지 못한 부대 주변 청소를 맡았다.
1소대원들이 각자 맡은 청소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밖이 춥기 때문에 귀마개며 장갑은 필수로 챙겼다. 게다가 전투복 안에 내복은 진짜, 진짜 필수였다.
그러나 군대 추위를 얕잡아 보는 사람도 꼭 한 명씩 있었다. 1소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야, 다들 준비했냐?”
“네.”
“그럼 나가자!”
“알겠습니다.”
그런데 김우진 상병이 손주영 일병을 봤다. 손주영 일병은 귀마개며 장갑도 없었다. 오직 야상만 걸친 상태였다.
“야, 손주영.”
“일병 손주영.”
“너 옷이 얇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이런 상태면 너 얼어 뒤진다.”
“아닙니다. 전 몸에 열이 많아서 괜찮습니다. 지금도 저 덥습니다.”
“이 자식 봐라. 내 말 무시하네.”
“아닙니다. 진짜, 저 괜찮습니다.”
“인마, 너 이러다가 진짜 얼어 죽는다니까.”
김우진 상병의 재차 만류에도 손주영 일병은 요지부동이었다.
“괜찮습니다. 저 추위를 잘 안 탑니다.”
“이 자식! 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장갑이든 귀마개든 해.”
“아, 저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아?”
“네.”
김우진 상병이 슬쩍 전투복 하의를 만졌다.
“기, 김 상병님.”
손주영 일병이 화들짝 놀랐다. 김우진 상병이 인상을 썼다.
“너, 내복도 안 입었냐?”
“원래 입지 않습니다. 사회에 있을 때도 안 입었는데…….”
“쯧쯧, 너 설마 폼이 안 나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아, 아닙니다.”
“새끼, 당황하는 거 보니 맞네.”
“…….”
“뭐, 내복을 입고 안 입고는 자유인데……. 나중에 얼어 죽고 후회하지 말고. 고참 말 들어라.”
김우진 상병이 장갑과 귀마개를 하며 나갔다. 손주영 일병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괜찮습니다. 전 주위를 전혀 타지 않습니다.”
김우진 상병이 나가려다가 뒤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과연?”
그리고 잠시 후, 손주영 이병은 연병장에서 추위에 덜덜 떨었다. 김우진 상병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주영아, 괜찮냐?”
“일병 손주영. 괜찮습니다.”
“괜찮긴, 딱 봐도 덜덜 떨고 있구만.”
“아, 아닙니다.”
“아니긴, 몸은 거짓말을 못 해요. 봐봐, 지금 네 몸이 어떤지.”
손주영 일병도 말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런지 대충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아, 아무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닥치고 인마! 한참 일해야 할 일병이 이렇게 몸을 떨고 있으니 안타까워서 그런다. 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뭐고, 고참이 괜히 고참이겠냐! 그렇게 호기롭게 나서봤자 손해 보는 것은 너야.”
“아, 알겠습니다.”
“자, 이거라도 착용해.”
김우진 상병은 자신의 손에 있던 장갑을 벗어서 건넸다. 손주영 일병이 바로 거절했다.
“괘, 괜찮습니다.”
“받아, 인마!”
손주영 일병이 장갑을 받아서 주섬주섬 착용했다.
“그리고 내무실에 들어가면 내복 입고, 방한류 확실하게 착용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상병님.”
손주영 일병이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우이씨, 아무튼 눈 오고 나면 엄청 춥단 말이야.”
김우진 상병은 괜히 부끄러운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싸리비를 들고 다른 쪽 눈 치우러 갔다.
“야! 노현래!”
“이병 노현래.”
“너 새끼, 제대로 안 하지!”
“너, 넉가래가 잘 안 나갑니다.”
“이런 무식한 새끼! 인마, 넉가래를 그렇게 무식하게 힘으로 밀면 안 되지. 이것도 요령이 있단 말이야. 잘 봐!”
김우진 상병은 괜히 민망했는지 노현래 이병에게 가서 한소리를 했다. 그러고 보면 김우진 상병도 참 따뜻한 고참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오상진이 밖으로 나왔다. 1소대 눈 치우는 곳에 나왔다.
“잘하고 있냐?”
“충성.”
“그래.”
오상진은 김우진 상병이 눈 치우는 곳에 나왔다.
“안 그래도 밤에 눈 내리는 거 보고 너희가 고생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래도 이번 년 겨울눈은 조금 늦게 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그런지 눈이 한꺼번에 오는 것 같다.”
“네?”
“일기예보를 보니까. 3일 동안 눈 내릴 것 같다고 그러던데.”
“사, 삼 일 동안 말입니까?”
김우진 상병이 놀란 눈이 되었다.
“그러게 말이다. 어떡하면 좋냐?”
“하아……. 뭘 어떡합니까, 열심히 눈 치워야죠.”
“안타까워서 그런다. 안타까워서…….”
“매년 하는 일 아닙니까. 그보다 지금은 햇볕이 뜨는 것 같습니다.”
김우진 상병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잔뜩 구름이 떠다니지만 중간중간 햇살이 내려왔다.
“그래도 구름은 많네. 그보다 걱정이네.”
“뭐가 말입니까?”
“저렇게 잠깐 햇볕이 내려오는 게 말이야.”
“뭐 문제 있습니까?”
“도로변이 문제지. 눈이 녹아다가 바로 얼어버리면 살얼음판이 되잖아. 그게 더 미끄러운 법이야.”
“에이, 누가 뛰어다닐 것도 아니고 말이죠. 또 눈 내리면 괜찮지 않습니까.”
“글쎄다…….”
오상진은 걱정되는 눈빛으로 바닥을 바라봤다. 연병장은 흙으로 되어 있어 괜찮았다. 문제는 도로와 부대 주변이었다.
“뭐, 괜찮겠지.”
그때 박중근 하사가 나왔다.
“어? 소대장님 나오셨습니까?”
“네.”
“들어가십시오. 제가 있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눈치 보입니다. 그냥 제가 있을 테니 들어가십시오.”
“괜찮은데…….”
“애들도 소대장님께서 있는 것보다 제가 있는 게 편할 겁니다.”
박중근 하사가 말했지만 소대원들은 솔직히 오상진이 더 편했다. 오상진이 살짝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박 하사. 고생 좀 해주십시오.”
“네. 소대장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중대 행정반으로 들어가니 소대장들이 다 출근을 한 상태였다.
“다들 일찍 나왔습니다.”
“눈이 왔지 않습니까.”
“저는 출근하다가 넘어질 뻔했습니다.”
“아, 안 다쳤습니까?”
3소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자신의 엉덩이를 만졌다.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보다 각 소대별로 청소는 하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네. 저도 조금 전 확인 마쳤습니다.”
그때 4소대장이 콧김을 ‘씩씩’ 뿜어대며 들어왔다.
“와, 젠장! 이 새끼가 말이야. 소대장을 우습게 알고 말이지.”
오상진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4소대장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4소대장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뭔가 잔뜩 화가 난 것은 분명했다.
“아, 그 새끼 진짜…… 생각할수록 열 받네.”
“말씀해 보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오상진의 거듭되는 물음에 4소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관우인지 장비인지 그 새끼 말입니다.”
“아, 이관우 병장 말입니까?”
“네. 그 자식!”
“이 병장이 뭐라고 했기에 그럽니까?”
“아니, 별말도 안 했습니다. 그냥 제가 청소 상태 확인 좀 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눈이 쓸리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야, 여기 눈 제대로 쓴 거 맞아? 여기 왜 이래?’ 이 한마디 했다고 이관우 그 새끼가 인상을 팍 쓰면서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지금 눈 오지 않습니까. 그냥 들어가십시오. 상관 말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완전 환장합니다. 그래도 내가 소대장인데……. 그 자식 그래도 내가 나이대접 좀 해주고 그랬는데. 병장 달더니 이젠 날 완전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이관우 병장은 26살에 군에 들어왔다. 이래저래 박사 학위 딴다고 군 연기를 했지만 학위는 따지 못하고 군에 늦게 들어온 케이스였다.
4소대장은 잔뜩 억울했는지 계속해서 말을 늘어놓았다.
“아니, 내가 군대 늦게 오라고 했습니까? 지가 늦게 와서는 괜히 나에게 짜증입니다.”
“이 병장이 그랬단 말입니까? 그럴 녀석이 아닌데…….”
3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3소대와 4소대 내무실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3소대장도 이관우 병장을 알고 있었다.
“그럴 녀석이 아니라니……. 3소대장 진짜 잘못 보신 겁니다. 그 자식 사사건건 내 말도 듣지도 않고……. 아휴, 진짜 미치겠습니다.”
4소대장이 잔뜩 억울해하자, 오상진이 입을 뗐다.
“자자, 그만 진정하십시오. 요즘 병장들 소대장 얘기하는 거 잘 듣는 애들도 있지만, 한 번쯤은 반항도 하고 그러지 않습니까.”
“반항이면 좋겠지만…… 이러다가 소대장 권위가 떨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그렇게 못하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진정하십시오.”
오상진이 당당하게 말하자 4소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우리의 1소대장님이 나서 주신다면야…….”
“그러니 진정하십시오.”
3소대장도 열심히 달랬다. 오상진은 4소대장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고개를 돌려 이미선 2소대장을 봤다.
“2소대장.”
“네.”
“2소대장 내무실은 어떻습니까?”
“네?”
“별일 없습니까?”
“어떤 별일 말입니까?”
“아니, 요새 어떤가 해서 말이죠.”
“아…… 괜찮습니다. 강인한 병장도 잘 하고 있습니다.”
“인한이 병장 달았습니까?”
“네. 며칠 전에 달았습니다.”
“이야. 이제 제대로 분대장 노릇 하겠습니다.”
“네. 분대장 노릇 확실하게 합니다.”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대기 상병은 어떻습니까? 잘 지냅니까?”
“네, 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의 표정이 약간 어색하게 변하며 말했다.
“박 상병 언제 병장 달죠? 이제 달 때 되지 않았습니까?”
“아, 1월 달에 달아줄 예정입니다.”
“아이고, 많이 오래되었습니다.”
“그렇죠.”
“어쨌든 2소대는 문제없다는 거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중으로 제설 도구 작업에 관해서 얘기할 테니까, 현재 창고에 있는 제설 도구 수량 파악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소대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한편, 2소대 박대기 상병은 건물 뒤편에서 눈을 쓸고 있었다.
“하아, 시발! 내가 지금 이런 눈을 쓸고 있을 군번이야? 왕고인데 이런 눈이나 쓸고 있다니. 내가 뭔 지랄인지 모르겠다.”
박대기 상병이 투덜거렸다.
“하아, 시발. 존나 짜증 나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강인한 병장이 다가왔다.
“박 상병, 지금 뭐 합니까?”
“보면 몰라? 청소하잖아.”
“후우, 지금 이게 빗질이라고 하는 겁니까?”
“그래, 난 이게 빗질이다. 이제 네가 병장 달았다고 나에게 뭐라 하는 거냐?”
“네! 뭐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전 병장이고, 박 상병은 아직 상병입니다. 군대는 계급인 거 모릅니까?”
순간 박대기 상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 그러십니까? 제가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박대기 상병이 비꼬았다. 강인한 병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청소하기 싫으면 그냥 다른 곳에 짱 박히십시오. 괜히 소대원들 사기 떨어뜨리지 말고 말입니다.”
“내가 사기를 떨어뜨려? 이런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