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404화
37장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10)
“누가 내 여자 친구인데?”
“응?”
강하나가 당황했다.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며 입을 뗐다.
“오, 오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연히 내가 오빠 여자 친구이지.”
하지만 최강철 이병은 다 알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조사받을 때 봤던 그 남자를 떠올렸다.
“그럼 경찰서에서 봤던 그 남자는 누군데?”
“어? 그, 그건…….”
“그 사람도 남자 친구고, 나도 남자 친구면, 넌 참 남자 친구가 많구나.”
최강철 이병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야, 오빠. 오해하지 마. 그건…….”
강하나가 변명을 하려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하나야. 나 담당 형사님하고 통화했어.”
“어?”
“네가 그놈 말 듣고 나 일부러 클럽에 데려간 거 알고 있어.”
“오빠, 그게 말이야.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다 해명할게. 오빠 충분히 오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내 해명부터 들어줘.”
“오해? 내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미친…….”
최강철 이병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하나야, 구질구질하게 이러지 말자. 그래도 한때는 여자 친구였으니까 오빠가 지금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 있는 거야. 오빠, 너 더 이상 원망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쯤에서 그만하자.”
최강철 이병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강하나가 거의 울먹이며 최강철 이병에게 매달렸다.
“오빠, 오빠? 내 말 좀 들어봐. 이거 진짜 오해하는 거야.
“자꾸 오해라고 하는데……. 이미 다 들통났어. 그걸 오해라고 해?”
그러자 강하나가 발끈했다.
“오빠, 진짜 이럴 거야? 내가 오빠에게 얼마나 잘했는데. 그런데 나에게 어떻게 이래?”
“하나야, 조용히 해. 여기 우리만 있는 거 아냐.”
“뭐, 어때! 오빠가 날 버린다는데. 지금 다른 사람이 내 눈에 보일 것 같아!”
강하나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자 면회실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최강철 이병과 강하나를 쳐다봤다. 최강철 이병은 너무 당혹스러웠다.
한편, 큰 소리가 나자 다른 면회 온 사람들이 최강철 이병과 강하나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뭐야? 저 사람들?”
“딱 분위기 보면 몰라? 남자가 여자 버리고, 여자는 현재 매달리는 상황이잖아.”
“와. 이병인 것 같은데 저런 미인을……. 깡다구 세네.”
“미인? 오빠, 저 여자가 나보다 예뻐?”
“응, 으응? 아, 아니야. 우리 자기가 훨씬 예쁘지.”
“그래? 처음에 ‘응’이라고 한 것 같은데…….”
“잘못 들었겠지.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렇지? 그보다 나 기다리는데 오빠도 군화 거꾸로 신을 거야?”
“말도 안 돼! 내가 그럴 짬밥이라도 되나.”
“그렇지? 만약 그랬다간 죽는다.”
“네네. 그럼요. 우리 자기밖에 없어요.”
최강철 이병은 주위의 눈들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강하나, 넌 그렇게 하면 나랑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랬니?”
“아니야, 오빠. 미안해. 진짜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 줘.”
강하나는 끝까지 최강철 이병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최강철 이병은 강하나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미안하다. 이미 난 너랑 끝났다고 생각한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마.”
최강철 이병이 매정하게 돌아섰다. 그 뒤로 강하나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오빠! 오빠! 한 번만 용서해 줘. 한 번만……. 오빠가 나 버리면 나 진짜 죽어버릴 거야.”
최강철 이병이 순간 움찔했다. 그 모습에 강하나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 오빠. 오빠도 내가 죽는 건 원하지 않지?”
최강철 이병이 몸을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강하나를 바라봤다.
“넌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아까운 목숨을 버릴 인물이 못돼. 내가 널 몰라? 그런 협박은 통하는 사람에게나 해.”
“아니야, 나 진짜 죽어버릴 거야!”
“그러든지.”
최강철 이병은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때는 냉정하게 돌아서야 했다.
“오빠, 날 버리지 마. 오빠! 오빠!”
면회실을 나온 최강철 이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대로 향했다. 면회실을 빠져나온 강하나가 최강철 이병을 쫓으려 했다.
“오빠, 가지 마. 오빠!”
강하나의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급기야 최강철 이병을 쫓기 위해 부대 안까지 들어가려고 했다.
“안 됩니다. 멈추십시오.”
위병근무자가 바로 강하나를 제지했다.
“우리 오빠 만나야 해요. 들여보내 주세요.”
“안 됩니다. 여기는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돌아가십시오.”
“안 돼요. 안 된다고요.”
8.
그 시각 오상진은 외출을 위해 위병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 울음소리와 위병근무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오상진이 위병근무자에게 갔다. 그사이 위병소장도 나와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그게 말입니다. 이 아가씨가 떼를 써서.”
“그래도 여기서 이렇게 소란이 나게 만들면 어떻게 해.”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 말입니다. 이 아가씨 정말 막무가내입니다.”
“그래?”
오상진이 털썩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 강하나를 봤다.
“저기 아가씨…….”
강하나가 눈이 퉁퉁 부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둘이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를 알아봤다.
“어? 당신은…….”
“……저 알죠?”
“저랑 밖에서 잠깐 얘기 좀 나누시죠.”
강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상진을 따라나섰다. 부대 근처 커피숍으로 이동한 오상진이 물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당신이 왜 여기에 있죠?”
강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자기 얘기를 꺼냈다.
“사실 강철 오빠를 만나러 왔어요. 그 사건 이후로 경찰 조사도 많이 받고, 일하던 곳도 잘리고, 그동안 친했던 사람들도 다 연 끊기고…….”
강하나는 마치 자신의 피해자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대충 얘기를 들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강하나가 워낙에 질 나쁜 사람들이랑 어울렸다는 것을 말이다. 하물며 대부분 마약 쪽으로 연루가 되어서 그 바닥에 소문이 쫙 퍼진 것이다.
“그래서 강철이는 왜 찾아왔습니까?”
“내가 믿고 기댈 사람이 없어요. 솔직히 강철 오빠 군대 제대하면 결혼할 생각이었는데……. 군대 기다리는 동안, 흐흑, 외롭기도 하고, 그래서…….”
강하나는 울먹이며 횡설수설했다.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강철이 제대하려면 한참 남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떼를 쓰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내 인생은 어떻게 하냐고요.”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대로 얘기해 봤자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오상진은 강하나를 바라보며 참 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처음부터 끼어들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다고 둘이 알아서 하라고 하기에는 최강철 이병이 많이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오상진은 소대장으로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을 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연락처라도 주시겠습니까? 제가 강철이를 설득하든 뭘 하든지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말요?”
오상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나가 바로 연락처를 줬다. 그리고 강하나를 돌려보냈다.
“하아…….”
오상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고민이 되었다.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바로 최강희였다.
“어? 무슨 타이밍이…….”
오상진은 헛웃음이 났다. 어떻게 동생에게 일이 생길 것을 알고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전화를 주는지 말이다.
“네, 오상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최강희예요.
“네. 반갑습니다.”
-네, 반가워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저야 똑같죠. 강철 누님분께서는 잘 지내셨습니까?”
-네, 덕분에요. 그보다 우리 강철이는 어때요? 별일 없죠?
“네. 별일은 없습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아, 실은 말이죠.”
-네?
오상진은 오늘 찾아온 강하나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다.
-아, 그러니까 강철이가 만났던 여자가 군대까지 찾아와서 난리를 피웠다는 거죠?
“난리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강철이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거잖아요.
“네, 뭐……. 아무튼 이 여자가 계속해서 찾아오면 강철이가 아무래도 많이 지칠 것 같습니다. 소문도 안 좋게 나고 말이죠. 군 생활하는 데 쉽지가 않습니다. 뭐, 저희 소대에서 강철이를 따돌리지는 않겠지만 다른 중대원들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군 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 신경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혹시 그 여자 연락처 아세요?
“알고 있습니다.”
-좀 주시겠어요.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잘 처리…… 아니, 달래볼게요.
“누님께서요?”
-네. 강철이가 만났던 여자라는데. 제가 만나보고, 다독여서 강철이 힘들지 않게 잘 설득해 볼게요.
오상진은 최강희의 말을 듣고 혹시 잘하는 짓인지 몰랐다. 그렇다고 오상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그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연락처는 받았지만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뭐, 최강희 씨가 적임자겠지? 같은 여자이고…….’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맡겨 주세요.
오상진이 문자로 연락처를 보내주었다.
9.
월요일 아침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의 부름을 받았다.
“충성, 부르셨습니까?”
“너, 나랑 사단에 좀 가야겠다.”
“지금 말입니까?”
“그래! 사단장님 호출!”
“아,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무슨 일인가 했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무슨 일인지 말을 해주지 않았다.
사단장실로 온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 오상진은 주위를 확인하며 조용히 물었다.
“중대장님. 대대장님은…….”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팔뚝으로 툭 쳤다.
“야, 인마! 조용히 해. 쉿!”
“예?”
“주변 상황 보면 몰라?”
그러자 김학래 중령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대장은 따로 조치가 있을 거야. 걱정 말게.”
“네, 알겠습니다.”
“그래, 들어가세. 사단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네.”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이 사단장실로 들어갔다. 사단장이 반갑게 둘을 맞이했다.
“어, 왔나.”
“충성!”
“그래, 그래. 잘 왔네. 오 중위.”
“중위 오상진.”
“지난번에 내 체면을 세워줘서 너무 고맙네.”
“아닙니다.”
“후후후, 자네들 덕분에 내가 어깨를 펼 수가 있었어. 껄껄껄!”
백 소장이 껄껄 웃었다.
사실 5분대기조 그 사건 이후로 국방위원회가 소집되었다. 그때 신학용 의원이 5분대기조에 대한 보고서를 올렸다.
그 보고서의 내용은 자신이 직접 실태조사를 나가 보니 모든 군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었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5분대기조 수행을 열심히 하는 부대가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체험을 해보니 5분대기조의 필요성을 절실히 실감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처음에 말했던 5분대기조의 무의미한 필요성을 뒤집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처음 나왔던 안건이 쏙 들어가 버렸다.
무엇보다 수도방위사령부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따로 참모총장으로부터 격려의 전화도 받았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