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99화
37장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5)
-상진 씨, 우리 작은 오빠가 상진 씨 보고 싶대요.
한소희에게서 왔던 문자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지금까지 한소희의 큰 오빠인 한대만과는 자주 만났었지만, 작은 오빠인 한중만과는 처음 대면하는 것이었다.
대화는커녕 이야기도 잘 들어보지 못했던 한소희의 작은 오빠였는데, 먼저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오상진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둘째 형님이 날 보고 싶어 하다니…….”
오상진은 잔뜩 긴장된 얼굴로 옷을 차려입고 부대를 나섰다. 그리고 제일 먼저 들른 곳은 부대 근처 미용실이었다.
“이모, 머리 좀 봐줘요.”
“어멋! 오 중위 왔어?”
“네. 전과 똑같이 해주세요. 뭐, 뻔한 스포츠머리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내 솜씨 알잖아. 똑같은 스포츠머리라고 해도 퀄리티가 다르지. 조금만 기다려, 바로 해줄게.”
“네.”
미용실 사장님은 콧노래를 부르며 먼저 온 손님의 머리를 봐주고 나서 오상진에게 갔다.
“역시 오 중위는 인물도 좋아.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확 꼬셔버리는 건데!”
“후후후, 이모. 저 지금 여친 만나러 가는데요.”
“그러니까, 아쉬워서 그러지. 좀만 기다려. 금방 해줄게.”
“네네.”
미용실 사장이 눈을 반짝이더니 빚과 가위를 들었다.
“그럼 시작한다.”
그 후로 미용실 사장님의 가위질이 시작되었다. 착착 소리를 내며 오상진의 머리를 깔끔하게 손질을 해줬다. 20분 만에 머리 손질이 끝난 오상진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췄다.
“역시 이모의 솜씨는 짱이네요.”
“그렇지? 나도 오 중위의 머리를 만져서 너무 좋아!”
“만 원이죠?”
“에이, 왜 그래. 나 서운하려고 그래. 만오천 원!”
“아하. 만오천 원……, 난 또 이모가 예뻐라 해주시니까. D.C 좀 해 주는 줄 알았죠.”
“어머머머머!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우리 공과 사는 구분하자.”
“하하, 네, 알았어요. 여기요.”
“그래, 다음에 또 들러, 오 중위!”
“네, 이모.”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미용실을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모가 수완이 좋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차를 몰고 한소희를 데리러 갔다. 한소희가 예쁘장한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소희 씨!”
한소희가 환한 얼굴로 조수석에 탔다.
“많이 기다렸어요?”
“으으응, 저도 방금 왔어요.”
“그래요.”
오상진이 한소희를 빤히 쳐다봤다. 한소희가 눈을 깜빡였다.
“왜요? 화장 잘못되었어요?”
“아뇨. 너무 예뻐서 한참을 보게 되네요.”
“어멋! 뭐예요. 부끄럽게…….”
한소희가 얼굴을 붉혔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핸들을 잡았다.
“역시 전 소희 씨 얼굴을 봐야 힘이 난다니까요.”
오상진이 그 말과 함께 차를 몰았다. 한소희도 듣기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봤다.
“어? 상진 씨도 목욕탕 다녀왔어요?”
“아, 아니요. 머리만 손질했어요.”
“그래요. 오늘따라 멋있어 보여서요.”
“아니, 작은 오빠 소개시켜 주신다고 해서 신경 좀 썼습니다.”
“에이! 안 그래도 되는데. 우리 작은 오빠 그리 깐깐한 사람 아니에요.”
“그래도 잘 보여야죠.”
한소희가 씨익 웃었다. 오상진이 바로 물었다.
“장소 알아요?”
“아, 맞다. 제가 내비 찍을게요.”
한소희가 약속 장소를 찍었다. 오상진이 힐끔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30분이면 도착하겠네요.”
“네!”
오상진이 예상했던 대로 약속 장소에 30분 만에 도착했다.
“여기에요?”
“네!”
오상진이 한소희가 안으로 들어갔다. 한소희가 종업원에게 말했다.
“저, 예약했는데요.”
“아, 이쪽으로 오세요.”
종업원의 안내를 받고, 창가 쪽으로 가서 앉았다.
“손님 마저 오면 주문할게요.”
“네.”
종업원이 가고, 한소희는 오상진과 나란히 앉은 상태에서 중얼거렸다.
“작은 오빠는 언제 오려나.”
“곧 오시겠죠.”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한소희가 시계를 확인하다가 문 입구 쪽을 바라봤다.
“좀 늦는 모양이네요.”
“괜찮아요. 그보다 작은 오빠분은 무슨 일을 하세요?”
“어? 제가 얘기 안 했어요?”
“네.”
“아, 우리 작은 오빠 영화 관련 일 하세요.”
“영화 관련 일이라면…….”
“제작해요. 영화 제작!”
“오오, 제작요. 대단한 분이시네요.”
“대단하긴요. 좋은 대학 나와서 한다는 것이 영화 제작이네요. 뭐, 작은 오빠 꿈이니까. 간섭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래도 멋지지 않아요? 그런데 좋은 대학이라면 어디를…….”
“한의대 나왔어요. 큰 오빠랑 같이요.”
“오오오, 게다가 머리까지 좋으시네요.”
“그 좋은 머리로 영화 제작을 해서 문제죠.”
“그래도 한의대는 다녔다는 거네요.”
“그게……. 얘기하자면 좀 길어요. 문제는 우리 아빠가 크게 반대를 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서 쫓겨나 혼자 생활하고 있어요.”
“아, 그래요. 그래도 꿈을 찾아 나갔네요.”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저도 지지는 해요.”
한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의대 나왔는데 왜?”
“한의대는 아빠 성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간 거고요. 원래는 영화 제작에 관심이 많았대요. 그래서 아빠 병원에서 한 몇 년 일해서 그걸 밑천 삼아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죠. 뭐, 결과는…….”
한소희는 애써 미소로 답을 주었다. 오상진은 그 미소를 보자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아, 네에…….”
“아무튼 지금은 집에 못 들어오고, 가끔 명절 때만 얼굴을 봐요.”
“그러시구나. 정말 작은 오빠분 대단하시네요.”
“대단하죠! 이게 또 작은 오빠의 고집일 수가 있는데요. 뭔가 자기가 하고 싶으면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한의대는 왜…….”
오상진의 물음에 한소희가 살짝 망설였다.
“그게요. 이런 말 하는 게 좀 웃긴데요. 아빠 돈을 뜯어내고 싶어서……. 물론 그 돈으로 다시 유학을 가서 영화 관련 일을 공부했죠.”
“아, 하하, 하하하…….”
오상진은 그저 웃음만 흘렸다. 한소희는 배시시 웃었다.
“원래 우리 작은 오빠가 한 고집해요.”
한소희도 뭔가 살짝 민망해했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타났다. 한소희의 표정이 환해졌다.
“어? 작은 오빠 왔어요. 오빠!”
한소희가 손을 흔들었다. 한중만 역시도 한소희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어, 그래.”
한중만이 다가왔다. 오상진이 본 한중만의 첫인상은 포근함이었다. 약간 배도 나왔고, 얼굴에 수염도 기르고, 인상이 푸근해 보였다. 살집도 다소 있는 편이었다.
“소희야, 오래 기다렸니?”
“아니야. 우리도 금방 왔어. 오빠 여기가 내 남자 친구.”
한중만이 환하게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한중만이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상진입니다.”
“그래요. 소희에게서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요. 그래서 참 많이 궁금했었습니다.”
“아, 네에…….”
한소희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한중만이 오상진 맞은편에 앉아 바라보았다. 오상진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자, 얘기는 식사를 하면서 할까요? 아직 주문 안 했지?”
“응! 작은 오빠 오면 주문하려고 기다렸지.”
“그러니? 어디 보자…….”
한중만이 메뉴판을 펼쳤다. 맨 앞장에 보리굴비 정식이 있었다.
“보리굴비 정식 먹을래요?”
“전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그래요. 여기 보리굴비 정식으로 세 개 주세요.”
한중만이 주문을 하고 오상진을 다시 바라봤다.
“소희에게서 진짜 얘기 많이 들었어요. 사실 우리 소희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처음이었어요. 예전에는 자기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가 많다고 얼마나 귀찮다고…….”
“오빠!”
한소희가 눈을 살벌하게 떴다. 한중만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냥 농담으로……. 하하하.”
“네.”
“아무튼 멀쩡하게 생겼네요.”
“예?”
오상진은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한중만이 웃으며 입을 뗐다.
“사실 좀 이상해서 그러는데 우리 소희가 왜 좋아요?”
“오빠!”
한소희가 또 한 번 날카롭게 쳐다봤다. 한중만이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냥 농담으로 물어본 거야. 이런 거 물어볼 수 있잖아.”
“있지, 있는데……. 그래도 좋은 말 해주면 안 되냐!”
“그래, 그래!”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슬쩍 한소희를 바라봤다. 대화하는 것만 보면 누가 봐도 남매 사이가 맞았다. 그런데 한소희가 큰 형님인 한대만을 대하는 태도와 한중만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이지만 다른 거 같았다. 뭔가 한중만과 좀 더 많이 친해 보였다.
‘전에 작은 오빠랑 좀 더 친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차이 좀 나는데.’
오상진은 갑자기 한대만이 불쌍하다고 느꼈다.
‘뭐 나이 차이려나?’
오상진은 약간 다르게 대하는 것이 나이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야. 둘이…… 뭔가는 했어요?”
한중만이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상진은 마시던 물을 뿜을 뻔했다.
“네? 뭐, 뭔가를 했다니요?”
오상진이 놀란 상태로 있고, 한소희는 진짜 못 말린다며 한마디 했다.
“내가 미쳐! 처음 보는 동생 남친한테 물어본다는 것이 고작 그거야?”
“알았어. 그냥 물어본 거야.”
“오빠! 제발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오상진은 이번에도 확실하게 느꼈다.
‘달라! 정말 달라! 큰 형님하고 작은 형님이 하는 짓은 똑같은데 소희 씨, 리액션이 완전 달라!’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하며 한소희를 바라봤다. 그런 오상진의 모습에 한중만이 말했다.
“어? 그 표정! 나 그 표정 뭔지 알겠어요.”
“네?”
“나랑 형이랑 똑같다고 생각한 거죠?”
“아, 그게 아니라…….”
오상진은 살짝 민망해했다. 한중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형제다 보니 성향이 비슷해요.”
“아, 그런가요?”
오상진이 말을 하면서 한소희를 바라봤다. 그것을 보면서 한중만이 바로 입을 열었다.
“아, 그 표정도 뭔지 알겠어요. 소희가 형에게 엄청 딱딱하게 대하죠?”
“네.”
“형이랑 소희랑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요. 10살 차이 나나?”
한중만의 물음에 한소희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큰 오빠는 솔직히 부담돼! 나랑 나이 차이도 많이 나면서 장난을 또 오지게 쳐요.”
한소희가 한마디 했다. 한중만이 피식 웃었다.
“아, 참고로 저랑 소희 나이 차는 고작 7살밖에 차이 안 납니다.”
“아, 네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한소희가 뭔가 번뜩 생각이 나서 물었다.
“참! 작은 오빠. 영화는? 저번에 제작 들어간다면서…….”
“그게 언제적인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성공했어?”
“…… 노코멘트 하겠어.”
“노코멘트? 망했네, 망했어!”
“안 망했거든!”
“망했잖아. 난 오빠 표정만 봐도 알아요. 도대체 이번이 몇 번째야!”
“……세 번?”
“뭐? 세 번? 처음에 아빠가 모아둔 돈으로 시작해서 쫄딱 망하고, 두 번째는 큰 오빠에게 지원받아서 해서 또 망해. 이번에는 내 돈까지 가져갔잖아! 그런데 망하면 어떻게 해!”
“안 망해! 아직 제작도 안 했다니까.”
“망했잖아. 방금 노코멘트 했잖아. 이씨……! 이제부터 나 지원 안 해! 오빠가 알아서 해.”
“야…… 네 남친도 있는데…….”
한중만이 살짝 부끄러워하며 입을 뗐다. 하지만 한소희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남친이 뭐? 우리 작은 오빠의 진면목을 봐야지!”
“……하하하.”
한중만이 크게 웃었다. 한소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