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95화
37장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1)
1.
마지막 오대기 비상이 걸리기 6시간 전.
국방위원회 국회의원 임성범 의원이 수도방위사령부에 찾아왔다. 비서실장 김선우 대령이 임성범 의원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임 의원님.”
“윤 중장님은 계십니까?”
“네. 지금 임 의원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요. 안내해 주세요.”
“따라 오시죠.”
곧바로 커다란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사령관님 임 의원님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해.”
“네.”
김선우 대령이 임성범 의원에게 말했다.
“들어가시죠.”
임성범 의원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 후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있던 윤필용 중장이 일어났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임 의원.”
“반갑습니다. 윤 중장님.”
“일단 이리로 앉으시죠.”
“네.”
임성범 의원이 앉았다. 상석에는 당연히 윤필용 중장이 자리했다.
“지난번에 우리 한번 만났죠?”
“네. 그때보다 신수가 훤하십니다.”
“좋아지긴요. 그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윤필용 중장이 바로 질문을 했다. 그러자 임성범 의원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여긴 차 한 잔도 안 주십니까?”
그러자 임성범 의원과 함께 온 보좌관이 말했다.
“의원님, 사령부에 와서 차는 좀…….”
“아, 차는 좀 그런가?”
그러자 곧바로 윤필용 중장이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미처 못 챙겼습니다. 비서실장.”
곧바로 김선우 대령에 대답했다.
“네.”
“차 좀 부탁하네.”
“네, 알겠습니다.”
김선우 대령이 나가고 잠시 후 김선우 대령과 함께 다른 비서관이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임성범 의원 앞에 찻잔을 내려놓자, 임성범 의원은 곧바로 한 모금 마셨다.
후르륵.
“으음, 사령부에서 먹는 커피가 맛있다고 들었는데. 뭐, 별거 없습니다.”
임성범 의원의 말에 윤필용 중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윤필용 중장도 노련한 사람이었다. 괜히 별 세 개를 단 사람이 아니었다.
“하하하, 뭐 밖에 있는 커피보다는 당연히 못하죠.”
하지만 임성범 의원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임성범 의원은 현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이었다. 게다가 야당의원으로 인기가 제법 있는 사람이었다. 2선까지 당선되었고, 3선도 무난하다는 말이 나왔다.
무엇보다 임성범 의원은 국방위원회에 지금까지 계속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사령관인 윤필용 중장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윤필용 중장이 찻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겸사겸사 들렀습니다.”
“후훗, 수도방위사령부에 겸사겸사 들르는 국회의원을 잘 없죠.”
윤필용 중장도 뼈 있는 말을 꺼냈다. 임성범 의원이 움찔하며 웃었다.
“하하핫! 역시 윤 중장님이십니다. 맞습니다, 그냥 오지 않았죠. 혹시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번에 국방위원회 회의 때 올릴 안건 말입니다.”
임성범 의원이 올린 안건은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방부 감사관실의 2004년 하절기 공직기강 결과 보고서’의 5분 전투대기조 즉각 출동 태세 점검 건이었다.
“아, 대충 보고는 들었습니다.”
“대충 보고받아서 될 문제가 아닐 텐데…….”
임성범 의원이 말했다. 윤필용 중장이 또 움찔했다.
“그럼 의원님께서 한번 얘기해 주시죠.”
“으음, 좋습니다. 얘기해 드리죠. 지난번 국감 때 국 기강이 많이 허술해졌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어떻게 개선이 잘 되고 있습니까?”
순간 김선우 대령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진짜 나이도 어린 것이 의원이라고 말끝마다…….’
실제로 임성범 의원은 현역병 출신에 현재 나이도 30대 후반이었다. 윤필용 중장이 50대 후반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나이 차이였다. 물론 김선우 대령 역시도 40대 중반이었다.
‘아직 40대도 아닌 것이 어디서…….’
김선우 대령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다. 반면 윤필용 중장은 속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임성범 의원이 피식 웃으며 김선우 대령을 봤다.
“그런데 우리 비서실장님은 제 얼굴을 계속 뚫어지라 쳐다보고 계신데, 제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아, 그렇습니까? 사실 비서실장님 눈빛, 저 오해할 뻔했습니다.”
“네?”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기보다 나이도 엄청 많고, 사령부인 이곳에 군 기강시찰 나왔다고 아니꼬워하시는 건 아니죠?”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딱 보니 지금 당황했는데…….”
그러면서 윤필용 중장을 바라봤다.
“윤 중장님. 혹시 이거 윤 중장님 뜻입니까?”
“아닙니다.”
윤필용 중장이 바로 김선우 대령을 봤다.
“이 사람, 어서 사과하게.”
“네?”
“방금 의원님께 실수하지 않았나. 어서 사과하게.”
윤필용 중장의 말에 김선우 대령이 바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제가 잠깐 좀 흥분했습니다.”
임성범 의원이 소파 뒤쪽으로 몸을 눕히며 다리를 꼬았다.
“하하하, 그럴 수 있습니다. 나 같아도 내 나와바리에서 그렇게 설치며 기분 나쁘죠. 그런데 저를 다른 의원들과 똑같이 보시면 안 됩니다. 아시죠, 저 육군 만기 전역했습니다. 참고로 저 허리 디스크 수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 꿋꿋이 국방의 의무 다했습니다. 저 군 제대하고 나서 바로 허리 터졌지 않습니까. 아직도 허리에 수술 자국있습니다. 보여드려요?”
“아, 아닙니다. 됐습니다.”
“아무튼 제가 그런 군대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내가 우리 장병들이 어떻게 군 생활을 하는지. 또 제대로 된 훈련은 하고 있는지 보겠다는데 그게 잘못된 것입니까?”
임성범 의원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나 임성범 의원이 말하는 것에는 허풍이 있었다. 사실 그는 허리디스크가 터져 수술을 받은 게 아니고, 단순히 시술을 받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집이 잘살아서 꿀보직에 있었다.
그런데 임성범 의원은 자기가 빡센 군 생활을 했다며 매번 저런 식으로 말하고 다닌 것이다. 한마디로 꼴불견인 의원이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윤필용 중장이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진짜 용건이 뭡니까.”
“아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시찰 나왔습니다.”
“그럼, 시찰하시겠습니까?”
“아뇨, 그것보다 요즘 재미있는 일 하시던데요.”
“무슨 일인지…….”
“에이, 5분대기조 지금 운영 중이라면서요.”
윤필용 중장이 놀란 눈으로 김선우 대령을 봤다. 하지만 김선우 대령은 자기는 말한 적이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임성범 의원이 웃으며 말했다.
“윤 중장님. 헛다리 짚으셨습니다. 제가 도처에 깔아놓은 눈이 많습니다. 설마 그거 하나 모르겠습니까, 저 국방위원회 의원입니다.”
“어험, 그래서 뭘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뭐, 뭘 어떻게 하시나 저도 한번 지켜보려고 왔습니다. 그래도 되죠?”
임성범 의원이 당당하게 물었다.
“…….”
“그러지 않아도 국방위원회에서는 5분대기조의 의미에 대해서 자꾸 말들이 많습니다. 이거 괜히 쓸데없이 장병들만 괴롭히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윤필용 중장이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는 듯 반문했다. 임성범 의원이 피식 웃었다.
“우리 중장님은 처음 들어보는 말처럼 보입니다.”
“네. 처음 듣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네.”
임성범 의원이 보좌관을 쳐다봤다. 보좌관이 곧바로 자료 하나를 꺼냈다.
“이건 제가 이번에 어느 중대 하나를 확인한 결과입니다.”
윤필용 중장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임성범 의원이 자료를 넘기며 말했다.
“5분대기조의 의의는 각 군의 독립 중대급 이상 부대는 유사시를 대비해 5분대기조를 편성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합동참모본부 예규에 따르면 이들은 규정된 탄약 및 휴대품목을 항시 휴대해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이는 즉각적인 출동 및 사격과 작전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것 역시 맞습니다.”
“또한 비상벨이 작동한 후 상황실 및 행정반에서 5분대기조로 상황을 전파하고, 출동까지 5분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맞습니까?”
“네.”
임성범 의원이 5분대기조에 관한 내용을 물으면 윤필용 중장이 답을 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상하죠. 제가 확인을 해보니 영 엉망이던데요. 비상벨이 울리고 5분대기조가 규정된 출동시간을 넘기는 것이 허다하고. 무엇보다 소대장들의 지도판독 능력도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게다가 피아 식별띠 착용 기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기관총의 탄약 클립 연결 방법을 숙지하지 못해 탄약을 장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래서 말이 좋아 5분대기조지 이게 제대로 운영된다고 보십니까? 아니, 5분대기조가 필요하기는 합니까?”
임성범 의원의 직설적인 말에 윤필용 중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얼굴을 확인한 김선우 대령이 바로 답했다.
“물론 5분대기조는 필요로 합니다. 긴급 상황 발생 시 초동조치는 필수입니다.”
임성범 의원이 손을 내저었다.
“아, 그런 뻔한 얘기 말고, 진짜로 5분대기조가 쓸모 있다는 말씀입니까?”
“네!”
김선우 대령 역시 당당하게 말했다. 그때 임성범 의원이 마치 잘되었다는 얼굴로 입을 뗐다.
“아, 그래요? 그렇게 자신만만하시다면 어디 한번 봅시다. 5분대기조가 얼마나 대단한지 말입니다.”
임성범 의원이 윤필용 중장을 봤다.
“윤 중장님 그렇게 해도 되죠?”
윤필용 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시죠.”
임성범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당장 가능하십니까? 시찰 온 김에 5분대기조의 훈련 상황을 확인해 보는 것으로 하죠.”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출발하실 때 연락 주십시오. 저 빼놓고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죠.”
“그럼 저 잠깐 쉴 만한 방이 있습니까?”
김선우 대령이 바로 옆에 있던 대위 한 명을 봤다.
“박 대위!”
“네.”
비서관 한 명이 임성범 의원을 보며 바로 말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박 대위 비서관이 임성범 의원을 데리고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윤필용 중장이 앉아 있던 팔걸이를 ‘쾅’ 하고 내리쳤다.
“저런 건방진 녀석을 봤나. 어린놈의 자식이 의원이라고…….”
옆에 있던 김선우 대령이 곧바로 말했다.
“참으십시오, 사령관님. 아직 멀리 안 나갔습니다. 소리가 들릴 수도 있습니다.”
“어후……. 내가 진짜 별 세 개나 달고 이 나이에 저놈에게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해!”
“진정하십시오. 안 그래도 지난번에 국감에서 국방부장관이 하도 털려서 아마도 심기가 불편할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또 빌미를 제공하면 안 됩니다.”
“그건 그렇고 믿을 만한 곳 없나?”
“52사단에서 운용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네가 언질을 줬나?”
“아닙니다. 언질은 주지 않았습니다.”
“52사단이면 누구지?”
“백 소장입니다.”
“오, 백 소장! 그 친구라면 믿을 만하지.”
“좋아, 거기로 가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에도 사령관님께서 직접 비상을 거실 생각입니까?”
“그래야지. 저 자식에게 임팩트가 확실한 것으로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겠죠. 제대로 보여주려면 말입니다. 그럼 상황은 어떤 식으로 준비합니까?”
“그걸 내가 준비해야 하나?”
“아닙니다.”
김선우 대령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