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92화
36장 일이 술술 풀리네(12)
“맛있게 드십시오.”
배식병이 배식을 하며 말했다. 그런데 가지 조림을 바라보는 김일도 병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 시발……. 방금 상상했다.”
김일도 병장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자리에 와서는 쉽사리 숟가락을 뜨지 못했다. 옆에 앉은 이해진 상병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가지 조림 말이야…….”
잠시 뜸을 들던 김일도 병장이 입을 뗐다.
“무좀 걸린 발바닥 같지 않냐?”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와, 나만 그러냐? 진짜 도저히 못 먹겠다.”
그러면서 가지 조림을 들어 한태수 일병에게 줬다.
“야, 이거 네가 다 먹어!”
“왜? 그러십니까?”
“몰라 인마! 아무튼……. 아니다, 밥이나 먹어라.”
김일도 병장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간신히 밥 한 숟갈을 떴다. 그러다가 수저를 도로 내려놓았다.
“와, 도저히 못 먹겠다. 한 번 상상하니까. 진짜……. 나 PX 가서 사발면이라도 먹어야겠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세척장으로 향했다. 그 뒤를 보며 김우진 상병이 소리쳤다.
“김 병장님. 사발면 물 붓고 막 먹으려고 할 때 비상 걸릴지도 모릅니다.”
“야, 새끼야, 뒤진다!”
김일도 병장이 주먹을 들어 보였다. 한 마디 만 더 하면 한 대 때릴 기세였다.
“그러니까, 긴장하면서 드십시오.”
“시끄러워!”
그 길로 김일도 병장은 PX로 뛰어 올라갔다.
“아 씨! 우진이 녀석 말 때문에 괜히 서둘러지네.”
한편, 한태수 일병은 아주 맛있게 밥을 먹었다.
그날 저녁 오상진이 행정반으로 갔다. 때마침 이미선 2소대장과 마주쳤다.
“1소대장님.”
“네, 2소대장.”
두 사람은 살짝 눈빛을 주고받고는 옆으로 비켜주었다. 그러다가 이미선 2소대장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흡, 흐흡. 흡!”
그리고 살짝 이마에 주름이 생기더니 곧장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 뒤에 있던 4소대장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왜 창문을 엽니까? 추워죽겠는데…….”
“사무실로 한 번씩 환기가 필요합니다. 추워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아니, 갑자기 왜 지금 하냔 말입니다. 저는 창가 바로 뒤입니다.”
4소대장이 한소리 하거나 말거나, 이미선 2소대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상진이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씨, 쪽팔리게. 나한테서 냄새가 많이 나나?’
오상진은 엎드린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킁킁’ 맡았다. 그런데 생각만큼 냄새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은데…….’
오상진이야 냄새에 적응되었기에 별로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 있기는…….’
오상진이 생각을 마치고 뭔가를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다시 훈련 때문에 나가보겠습니다.”
오상진이 부랴부랴 나가고, 눈치 있는 4소대장이 한마디 했다.
“아이고, 불쌍한 우리 1소대장님. 3일 내내 씻지도 못하고 얼마나 고생입니까. 그런데 장교도 씻으면 안 됩니까?”
4소대장이 불현듯 생각이 나서 소리쳤다. 3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1소대장님이야, 이런 훈련에서는 완전히 FM 아닙니까.”
“하긴…….”
4소대장도 동의를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환기를 마친 이미선 2소대장이 슬쩍 창문을 닫고 자신의 볼일을 보러 행정반을 나갔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4소대장이 3소대장 곁으로 갔다.
“저기 있지 않습니까. 2소대장. 원래 1소대장님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4소대장의 물음에 3소대장이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더러운 것은 못 참나 봅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청결한 것 같지는 않던데…….”
4소대장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한편, 오상진은 민망한 얼굴로 행정반에서 나왔다.
“진짜 냄새가 심한가?”
오상진이 자신의 몸을 킁킁거리며 다시 냄새를 맡았다. 그렇지만 그리 심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2소대장이 좀 민감한 편인가? 그렇지만 나도 씻고 싶다. 너무도, 간절히 원하고 있어.”
오상진이 진심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1소대로 향했다. 아마 1소대도 자신과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나 왔다.”
“충성! 1소대 휴식 중!”
“쉬어.”
“쉬어.”
오상진이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얘들아!”
“네?”
“이리 모여 봐라. 소대장이 할 말이 있다.”
18.
그날 저녁, 오상진이 1소대원들을 불러놓고 간단하게 얘기를 나눴다.
“3일 차 일정도 거의 끝나간다.”
“아직 끝나지 않았지 말입니다. 새벽에 또 비상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건, 뭐……. 그보다 불편한 상황 있는 사람? 소대장에게 말해봐.”
오상진이 그들을 훑으며 물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없냐?”
오상진이 재차 물었다. 그러자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때 오상진의 시선이 어느 병사의 허벅지로 향했다. 그곳을 벅벅 긁고 있는 최우석 상병이었다.
“우석아.”
“상병 최우석.”
“긁지 마라. 나도 긁고 싶어지잖아.”
“죄송합니다.”
“네가 긁으면 나도 긁고 싶어지잖아. 우리 이제 며칠 남았지?”
김우진 상병이 바로 말했다.
“이틀 하고 반 남았습니다.”
“그래? 시간 금방 간다. 우리 조금만 버티자!”
“그래도 지금은 너무 힘듭니다. 저 3일 동안 제대로 못 씻었더니 찝찝해 죽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대장도 이해한다. 지금 당장에라도 샤워를 시켜주고 싶은데……. 무리다, 무리! 알잖아. 샤워 중에 비상 걸리면 어떻게 될지 말이야.”
“샤워 중에 바로 튀어나올 자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하지만 소대원들은 ‘설마 샤워 중에 오대기 출동 비상이 걸릴까!’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상진은 그것이 아니었다. 설마보다는 아예 원천봉쇄를 해야 했다.
그러나 오상진 역시도 갈등이 되었다. 매일 샤워를 하는 오상진도 3일째 제대로 씻지 못했다. 세수는 세면장에서 하지만 몸은 그러지 못했다.
“아, 나도 찝찝하다!”
“그렇죠? 소대장님도 샤워가 절실하죠.”
“그래도…….”
오상진은 망설여졌다.
‘아, 진짜 샤워를 해? 다 같이 10분이면 끝나는데?’
오상진이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다 했다. 상상 속 그는 이미 샤워장에 입실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부정이었다.
“우리 조금만 참자! 이제 수요일이야. 이틀만 버티면 돼!”
“네, 알겠습니다.”
1소대원은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바로 무너지자 이내 시무룩해졌다. 어깨도 축 늘어졌다. 그러나 허벅지와 팔, 등 부분의 간지러움은 계속되었다.
‘아, 저걸 쳐다보니 나도 간지러워지네.’
오상진은 서둘러 내무실을 나갔다. 이대로 행정반으로 갈 수도 없었다.
“아직 퇴근 안 했겠지?”
오상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행정반이 아닌 중대장실로 발길을 돌렸다.
오상진이 나간 내무실에서는 김우진 상병이 곧바로 노현래 이병에게 등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현래야, 등 좀 긁어주라.”
“등 말입니까?”
“그래.”
노현래 이병이 손톱의 날을 세워 어디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입니까?”
“아니, 좀 더 왼쪽!”
“여기입니까?”
“아니! 너무 갔잖아. 조금만 오른쪽.”
노현래 이병은 집중하며 등 부위의 간지러움을 체크했다.
“여기입니까!”
“그, 그래! 바로 거기! 긁어!”
노현래 이병이 힘차게 박박 긁었다. 김우진 상병은 너무도 시원한지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뒤로 김우진 상병의 영향 때문인지 몇몇이 누군가에게 등을 맡겼다.
“여기입니까?”
“조금 아래…….”
내무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갔다. 그 모습은 마치 원숭이들이 서로 털 고르기를 해주는 모습과 흡사했다.
19.
목요일 오전은 너무 조용했다.
아침에 딱 한 번 오대기 비상이 걸리고 난 후 늦은 오후까지 이렇다 할 일도, 비상도 없었다. 너무 조용해 오대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다들 총을 자신의 품 안에 품은 채 침상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언제라도 비상이 걸리면 출동할 태세를 갖춘 상태였다.
그러다가 구진모 일병이 옆에 앉은 김우진 상병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 상병님, 너무 조용하지 않습니까?”
“그게 왜?”
“그냥 너무 조용해서 살짝 불안합니다.”
김우진 상병과 구진모 일병이 대화를 나눴다. 오대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부쩍 얘기를 많이 나누며 친해진 것 같았다.
“불안할 것이 뭐가 있어. 평소와 똑같이 하면 되는 거지.”
“김 상병님은 그게 됩니까?”
“후훗, 당연하지. 항상 긴장감 있게,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즉각적인 반응을…… 윽!”
순간 김우진 상병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구진모 일병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그 말을 남기고 김우진 상병은 관물대에서 휴지를 챙겨 후다닥 내무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초시계를 재기 시작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김우진 상병이 당당하게 내무실로 뛰어들어왔다.
“야, 몇 초 되었냐?”
구진모 일병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 김 상병님 벌써 끝냈습니까?”
“이 정도는 기본이지. 그래서 얼마 걸렸어?”
“1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야, 똑바로 말해봐.”
“초는 안 쟀는데 말입니다.”
“안 쟀어? 에이씨, 누가 초 잰 사람 없어?”
그때 노현래 이병이 손을 들었다.
“이병 노현래! 제가 쟀습니다.”
“오오, 현래! 몇 초야?”
“59초입니다.”
그러자 김우진 상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싸! 1분대 기록 깼다.”
구진모 일병을 비롯해 다른 소대원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오오, 59초…….”
“드디어 1분대 벽을 깨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하하핫! 1분 안에 끝냈지. 내가 말이야, 가면서도 숫자를 셌어. 화장실에 가면서 10초, 엉덩이가 까는 데 10초, 바로 볼일 보는 데 20초, 다시 뒤처리(?)하고 바지 입는 데 10초, 다시 내무실 복귀하는 데 10초. 이런 식으로 말이야.”
“대단하십니다.”
“봤지? 원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야! 군인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김우진 상병은 마치 자신이 엄청 대단한 일을 했다는 듯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 그런데 노현래 이병의 표정이 좀 이상했다. 뭔가 자신감에 가득한 얼굴이었다.
“야, 노현래. 너 표정이 왜 그래?”
“이병 노현래. 이런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뭐?”
노현래 이병이 고개를 돌려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전 51초에 끊었지 말입니다.”
“뭐? 확실해? 증거는?”
“이병 손주영! 제, 제가 증인입니다.”
손주영 이병이 손을 들었다. 김우진 상병이 눈을 크게 떴다.
“진짜 확실해?”
“네.”
“에이 씨! 좋아 내가 다음에는 50초 끊는다.”
김우진 상병은 졌다는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 옆에 있던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야, 더러운 자식들아! 하다 하다 이제는 똥 싸는 걸로 초를 재냐?”
“이건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김우진 상병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김일도 병장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