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90화
36장 일이 술술 풀리네(10)
“으음…….”
“그런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허, 거참! 안 온다니까.”
운전병이 한마디 하고는 뒤로 벌러덩 누웠다. 그 모습을 김일도 병장과 김우진 상병이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깐 누워 있던 운전병이 상체를 일으켰다.
“아, 이참에 제가 재미난 얘기 하나 해줍니까?”
“…….”
운전병의 말에 소대원들의 시선이 갔다. 운전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건 얼마 전에 갔다 온 우리 고참 얘기입니다. 우리 고참이 어디더라……. 아, 아무튼 오대기 파견 나간 곳인데 말입니다. 거긴 다른 거 모르겠고, 멧돼지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답니다.”
“멧돼지요?”
“네. 부대 뒤에 산이 있는데 겨울이다 보니 먹이 찾으러 내려오는 멧돼지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긴 멧돼지가 내려올 때마다 오대기를 걸었지 뭡니까. 새벽이고, 낮이고 간에 내려오면 겁니다. 그때 고참이 하는 말이 오대기를 하는 것인지. 멧돼지를 잡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에이,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진짜입니다.”
막 그렇게 떠들고 있는데 김우진 상병이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아저씨, 재미있습니까?”
“네?”
운전병이 당황했다.
“아니, 지금 상황이 재미있냔 말입니다.”
“무, 무슨 그런 말을 합니까.”
“지금 저희는 첫 훈련도 실패하고, 긴장되어 죽겠는데. 운전병 아저씨는 뭐가 그리도 재미나는지 웃고 떠들고 있습니다.”
“아니, 무슨 말도 못 합니까?”
운전병이 투덜거렸다. 그 얘기를 듣던 소대원들이 김우진 상병 눈치를 보며 슬쩍 자신의 자리로 갔다. 운전병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굳이 그렇게 딱딱할 필요 있어요? 오대기 한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입에 거미줄 칩니다.”
가만히 듣던 김일도 병장이 버럭 했다.
“아저씨! 아무리 그래도 남의 부대 왔으면 분위기 파악은 좀 합시다.”
운전병은 표정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그냥 도움 되라고 한 말인데……. 와, 여기는 좀 그러네.”
운전병이 한마디 툭 던지고 나가버렸다. 김우진 상병이 발끈하며 일어났다.
“저 자식이…….”
“됐어! 참아, 괜히 안 좋은 꼴 보인다.”
김일도 병장의 한 마디에 김우진 상병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후임병들을 향해 한마디 했다.
“야, 새끼들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우리 훈련 중이잖아. 그런데 아저씨랑 노가리를 까냐! 정신 좀 차리자!”
“네, 알겠습니다.”
김우진 상병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김일도 병장이 일어났다.
“자자, 다들 휴식들 취해. 또 언제 비상 걸릴지 모르니까. 그리고 당분간은 긴장 좀 하자. 몸에 익을 때까지 말이다. 우리 장난으러 오대기 하는 거 아니잖아.”
“네.”
“그래.”
그 뒤로 점심때까지 쭉 침묵을 유지했다. 운전병도 자신의 차량에 가 있는지 내무실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뒤로 다행히 비상은 걸리지 않았다.
김일도 병장이 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자, 밥 먹으러 가자.”
“네.”
다들 관물대에서 수저를 챙기고는 식당으로 향했다. 다른 중대원들이 식당에 나타난 1소대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어? 쟤들 뭡니까?”
“1중대 1소대네.”
“아니, 왜 단독군장 차림으로 밥 먹으러 옵니까? 불편하게.”
“아니면 단체로 기합받나?”
“무식한 자식들! 1중대 1소대 소식 못 들었냐? 오대기잖아, 오대기!”
“오대기? 그게 뭡니까?”
어떤 후임병 하나가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그러자 바로 옆 선임병이 바로 말했다.
“자식, 잘 들어 인마! 오대기는 즉 5분대기조라는 뜻이야. 상황이 발생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출동한다는 거지. 초동조치를 하는 것이 바로 오대기라는 말씀이지.”
“우와……. 멋지십니다.”
“하하하, 내가 좀 잘 알지.”
그리도 다른 중대들도 1중대 1소대를 보며 중얼거렸다.
“오대기 하나 봐.”
“크윽, 나도 몇 달 전에 오대기 했는데. 그때 죽는 줄 알았지.”
“이번에는 1중대에서 하나 봅니다.”
“그러게. 쟤들 일주일 동안 고생깨나 하겠네.”
“그래도 다른 근무는 다 빠지지 않습니까. 원래 불침번은 서는데 이번에는 빼라고 했다네.”
“와, 대박! 불침번도 안 섭니까?”
“오대기라…….”
“그래도 불쌍하지. 밥도 단독군장 차림으로 먹어! 저러다가 비상 걸리면 밥도 못 먹고 출동이야. 게다가 잠 잘 때도 전투화 못 벗어, 샤워도 제대로 못 해! 그나마 세수는 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이야,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지. 물론 단점이 좀 많아 보이지만.”
“아…….”
한편, 중대원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1소대원들이 밥을 먹었다. 김우진 상병의 인상을 썼다.
“아놔, 진짜 쪽팔리게…….”
“저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 같습니다.”
“아놔, 왜 쳐다보고 지랄들이지.”
김우진 상병이 한마디 하려고 일어나려 했다. 김일도 병장이 낮게 말했다.
“야, 시끄러워! 그냥 모른 척하고 밥 먹어.”
“그래도 저 녀석들이…….”
“무시하라니까.”
김일도 병장은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김우진 상병이 국을 수저로 떴다. 무 몇 개, 된장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일명 똥국이었다.
“아. 밥맛없네. 오늘따라 똥국이 뭡니까.”
김우진 상병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때 운전병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에이, 여기 밥 진짜 별로네. PX나 가야겠다.”
운전병이 밥을 먹다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세척장으로 향했다. 짬통에 거의 다 버리고, 대충 식판을 씻은 후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1소대원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쳇, 저 자식 뭐야.”
김우진 상병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한마디 툭 던졌다. 김일도 병장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운전병의 행동이 1소대원들에게는 나쁜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딱히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운전병은 다른 부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친 1소대원들이 내무실로 왔다. 김일도 병장이 바로 말했다.
“얘들아, 지금 화장실 갈 사람 미리미리 갔다 와라, 나중에 비상 걸려서 용쓰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의 말에 몇 명이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조영일 일병이 조심스럽게 화장지를 챙겼다. 그 모습을 본 김우진 상병이 물었다.
“영일아, 너 신호 왔냐?”
“아뇨, 혹시나 싶어서 가 보는 겁니다.”
“그런데 너 아직 변비 안 나았냐?”
조영일 일병이 어색하게 웃었다.
“네.”
“자식, 고생이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너 신호 왔을 때 비상 걸리면 어떻게 되냐?”
“그때는 X되는 거지 말입니다.”
조영일 일병이 웃으며 화장실로 갔다. 그런 모습을 김우진 상병이 안타깝게 바라봤다.
“쯧쯧쯧, 저 나이에 무슨 변비가 뭐냐. 변비가!”
“야, 그만해. 영일이 저 자식도 나름 고민이긴 하더라.”
김일도 병장이 입을 열었다. 김우진 상병이 슬쩍 말했다.
“안타까워서 그럽니다. 안타까워서. 아무리 그래도 큰 걸 제대로 못 누는 게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또 얼마나 시원하지 않겠습니까.”
“알지. 아는데……. 밥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바로 그런 거 얘기부터 하냐. 더럽게!”
“아, 그거야. 영일이가…….”
“시끄럽고, 어서 낮잠이나 자.”
“네.”
김일도 병장의 핀잔에 김우진 상병이 입을 삐죽거렸다. 한편, 조영일 일병은 화장실에 들어와 만날 자신이 가는 사로로 가서 앉았다. 일단 호흡을 차분하게 가져가고, 볼일을 볼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눈을 감은 채 아랫배에 힘을 줬다. 그 순간 며칠 만에 신호가 왔다.
“웁! 왔다!”
조영일 일병은 기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허탈하게도 나오지 않았다.
“하아……. 웁!”
다시 힘을 줬지만 배만 잔뜩 아플 뿐 원하는 것은 안 나왔다.
“시발……. 분명 신호가 왔는데. 다시 한번 더 힘을 줘 보자. 윽, 으으으윽.”
조영일 일병은 얼굴을 잔뜩 붉히며 이마에 핏발이 섰다. 그 순간 ‘뿌우우웅!’ 방귀 소리와 함께 한 덩어리가 뽕 하고 떨어졌다.
“아하…….”
조영일 일병이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신호가 또 왔다.
“또 왔다! 오늘 갑자기 왜 이러냐.”
조영일 일병에게는 이런 기회가 흔치 않았다. 또다시 이마에 핏발이 서며 힘을 줬다.
“웁! 으으으윽…….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때 사이렌이 울렸다.
에에에엥!
-오대기 비상! 오대기 비상!
“아, 시발!”
조영일 일병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그 순간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이해진 상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조영일!”
“일병 조영일!”
“빨리 끊고 튀어나와!”
“지, 지금 갑니다.”
조영일 일병은 끝내 두 번째는 성공하지 못하고 후다닥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내무실로 가며 찝찝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 찝찝해 죽겠네.”
조영일 일병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병장을 향해 뛰어갔다. 오상진이 차량에 탑승해 상황 전파를 했다.
“위병소에 거수자 2명 출현!”
트럭이 빠르게 출동을 했다. 최대 시속 80㎞였다. 사단 내에서는 30㎞였지만 오대기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최대 속력을 내며 위병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역시나 5분을 초과했다.
“야, 이번에는 5분 초과잖아! 너희들 진짜 정신 안 차릴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오상진이 말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무슨 5분대기조야!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네, 알겠습니다.”
“상황종료!”
두 번째 훈련마저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알았다. 시간이 단축되었음을 말이다.
‘후후후, 5분을 넘겼지만 그래도 첫 훈련 때보다는 시간을 단축했어. 아마 내일쯤이면 본 궤도에 오르겠네.’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으며 부대로 복귀를 했다. 오상진이 소대원들을 향해 박수를 치며 격려해 주었다.
짝짝짝!
“자자, 또 시무룩하다. 잘했어. 잘한 거야. 조금만 더 빨리 움직이며 5분안에 충분히 들어온다.”
“네, 알겠습니다.”
“자, 부대 복귀하자! 차량에 탑승해.”
“네.”
오상진이 조수석에 올라탔다. 운전병인 김익준 상병이 말했다.
“소대장님 두 번째 훈련치고는 진짜 빠른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내일은 더 빨리 도착하도록 하겠습니다.”
운전병의 말에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알았다. 너도 고생했다. 너무 과속하지는 말고.”
“네.”
복귀할 때는 사단 내 규정 속도를 준수했다. 내무실에 복귀한 김일도 병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운전병이 잠깐 밖에 나간 사이 김우진 상병을 향해 말했다.
“우진아.”
“상병 김우진.”
“저 운전병 녀석, 너무 나대는 것 같지 않냐?”
“그러게 말입니다. 지가 오대기를 해봤다고 너무 설치는데 말입니다.”
“아까 소대장님 표정 봤지?”
“네. 봤습니다. 운전병을 쳐다보는 눈빛이 좀 달랐습니다. 영, 맘에 안 드는 눈치였습니다.”
“나도 그렇게 느꼈다.”
“저 자식은 수송부대에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몰라. 나름 짬밥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이해진 상병이 불쑥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