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83화
36장 일이 술술 풀리네(3)
“훈아, 어떻게 하면 되겠냐?”
“네. 저쪽으로 가서 두 분이 나란히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하나 찍고, 오 중위님 위주로 하나 찍으면 될 것 같습니다.”
“알았다. 가시죠.”
오상진과 장석태 정훈장교가 움직여 자세를 잡았다. 사진병사가 이리저리 자세를 알려 준 후 말했다.
“그럼 사진 찍겠습니다.”
찰칵!
“한 장 더 찍겠습니다.”
찰칵!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진 촬영이 끝이 났다. 장석태 정훈장교가 물었다.
“어떻게, 사진 잘 나왔냐?”
사진사 병사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확인을 했다.
“네, 잘 나왔습니다.”
“그래! 그럼 너 먼저 복귀해라. 너 딴 데로 새지 마라.”
“알겠습니다.”
장석태 정훈장교가 환한 얼굴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사진도 찍고 했으니, 이제 우리 술 한잔하러 갈까요?”
그렇게 오상진은 얼떨결에 자리를 옮겼다.
4.
장석태 정훈장교가 오상진을 데리고 간 곳은 돼지껍데기 집이었다.
“여기 제가 잘 아는 곳입니다. 들어오세요.”
“아, 네에.”
오상진이 안으로 들어갔다. 장석태 정훈장교는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하세요. 앉아요.”
“네.”
오상진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돼지껍데기 좋아해요?”
“네, 잘 먹습니다.”
“그래요? 의외네, 돼지껍데기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는데.”
장석태 정훈장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부엌에 있는 이모를 향해 소리쳤다.
“이모 여기 돼지껍데기 2인분요. 소주도 주시고요.”
“알았어. 기다려.”
오상진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가게 내부를 바라봤다. 옛날집 분위기가 많이 났다. 벽 한쪽에 걸린 메뉴판에는 돼지껍데기가 턱하니 올라가 있었다.
‘훗, 돼지껍데기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네.’
오상진은 과거로 회귀 전 로또사건으로 저 멀리 강원도로 발령을 받았다. 물론 거의 쫓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의 자포자기 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중대장이 오상진에게 사줬던 것이 돼지껍데기였다.
‘훗, 그때까지만 해도 돼지껍데기는 먹도 안 했는데…….’
오상진은 돼지껍데기를 잘 먹었던 이유가 중대장을 엄청 따라 다니면서 얻어먹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서 중대장이랑 술친구도 하게 되었고, 둘 다 으샤으샤 하게 되었다.
‘흐흠, 갑자기 박찬규 중대장님이 떠오르네. 그분은 잘 지내고 계시겠지?’
오상진이 잠시 옛 추억에 잠겨 있을 때 이모가 돼지껍데기를 가지고 나왔다.
“껍데기 나왔어요.”
“감사합니다, 이모.”
장석태 정훈장교가 환하게 웃으며 돼지껍데기를 받았다. 그러곤 일류 요리사라도 되는 것처럼 심각한 얼굴로 설명을 했다.
“돼지껍데기는 못 먹는 사람 촌스럽게 바짝 구워서 먹는 거지. 그럼 질겨서 별로 맛이 없어요. 게다가 잘 못 구우면 돼지껍데기가 오징어처럼 휘어요. 그래서 잘 구워야 되요.”
여긴 간장양념에 살짝 간이 베어서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먹기 좋게 잘라서 또다시 노릇노릇하게 구워주면 됩니다. 잘못 구우면 껍질 부분이 있죠, 이 부분이 타요. 그럼 맛없어요. 가장 중요한 거 잘 익은 돼지껍데기를 여기 콩가루에 찍어서 먹으면 엄청 고소합니다.”
장석태 정훈장교는 마치 미식가처럼 입을 조잘거리며 돼지껍데기를 구웠다.
“자, 다 구워졌습니다. 한 번 먹어보세요.”
장석태 정훈장교가 노릇하게 구워진 돼지껍데기 하나를 접시에 담아 주었다. 그리고 오상진을 바라보며 눈짓을 했다.
“겁내지 말고 드셔 보시라나 까요.”
“네, 잘 먹겠습니다.”
오상진도 과거에 돼지껍데기를 잘 먹고 다녔다. 그래서 호기롭게 덤볐다. 콩가루 따위 방해만 된다고 생각해 아무 양념 없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
“욱!”
순간 돼지 특유의 역한 냄새가 확 올라와 인상을 썼다.
‘내가 왜 이러지?’
오상진은 순간 당황했다. 돼지껍데기는 잘 먹었다. 과거에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역한 냄새에 몸이 자동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이, 이게 아닌데…….’
앞에 있던 장석태 정훈장교가 피식 웃었다.
“에이, 잘 먹는 줄 알았더니……. 잘 못 먹네. 하긴, 처음인 사람은 조금 힘들 수도 있죠.”
장석태 정훈장교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오상진은 이해가 안 되었다.
‘왜?’
그러나 오상진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의 오상진은 돼지껍데기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게다가 씹는 식감도 너무 이상했다. 그래도 억지로 꿀꺽 삼켰다.
“후후후,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요. 제가 다른 고기 시켜 드릴게요.”
“아닙니다. 먹을 수 있습니다.”
“무리하지 마요. 내가 무슨 오 중위, 선임도 아니고 말입니다. 나한테까지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
“원래는 먹을 수 있는데, 오늘은 좀……. 이 집 껍데기가 맛이 없나?”
“어? 여기 껍데기 정말 유명한데요.”
“그, 그렇습니까?”
그러자 장석태 정훈장교가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오상진의 시선이 가리킨 방향을 봤다. 그곳에 여러 가지 맛집 포스터가 걸려 있었고, 연예인 사인도 많이 걸려 있었다.
“어? 그러네요.”
“그럼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맛없는 곳에 데려왔겠습니까.”
장석태 정훈장교가 실실 웃었다. 오상진은 순간 민망함이 밀려왔다. 장석태 정훈장교가 고개를 돌려 이모를 불렀다.
“이모! 삼겹살 있을까요?”
“삼겹살? 오늘은 없는데……. 어쩌지.”
“그럼 뭐가 맛있어요?”
“갈매기살 있는데, 그걸로 줄까?”
“오오, 갈매기살이 있어요? 그걸로 주세요.”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
이모는 대답을 한 후 부엌으로 들어갔다. 장석태 정훈장교가 조용히 말했다.
“여긴 삼겹살보다 갈매기살이 더 맛있어요. 살짝 간장양념을 베이스로 해서 마늘로 마무리를 했거든요. 맛이 끝내줘요.”
장석태 정훈장교가 눈웃음까지 지으며 갈매기살의 맛있는 것을 설명했다.
‘가만 이런 느낌 어디서 느꼈는데…….’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장석태 정훈장교가 말하는 모습과 행동, 꼭 누군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찬찬히 곱씹어 보는데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다.
‘아, 맞다. 김도진 중위! 우리 1중대 행보관이잖아.’
능구렁이 같은 말투와 뭔가 다 아는 듯한 눈빛까지 김도진 1중대 행보관과 느낌이 비슷했다.
‘하아, 이런 사람이라면 상대하기가 좀 힘든데……. 그래도 나에게 나쁜 의도는 없으니까.’
오상진이 피식 하고 웃으며 술을 기울였다. 그때 장석태 정훈장교가 오상진의 팔을 잡았다.
“어허, 술은 혼자 먹으면 안 되는 거죠.”
그러면서 자신의 술잔을 들어 오상진의 술잔과 부딪쳤다.
“술은 부딪쳐야 제맛 아니겠어요.”
“아, 그렇죠.”
오상진은 살짝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장석태 정훈장교가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참, 오 중위 중대장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저희 중대장님요?”
“네.”
“김철환 대위님이십니다.”
“아, 김철환 대위님. 왠지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육사 몇 기입니까?”
“아마, 48기일 겁니다.”
“아이고, 한참 선배시네. 그럼 나하고 만날 일은 없었겠다.”
그러면서 슬쩍 오상진을 살피며 물었다.
“어때요, 중대장님은?”
“저희 중대장님 말씀입니까?”
“네.”
“어떻다고 한다면 좋은 분이시죠.”
“그래요?”
“잘해줍니까?”
“네. 잘해줍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것은 물어보십니까?”
“아니, 여기 유명한 오 중위가 누구 밑에 있는지 궁금해서요. 막말로 좀 깐깐한 중대장을 만났다면 이렇듯 오 중위가 활개를 치고 다닐 수도 없지 않아요. 안 그렇습니까?”
장석태 정훈장교가 웃으며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죠. 저희 중대장님께서 많이 양보해 주시는 것도 있죠.”
“그렇죠! 내 말이 맞다니까.”
장석태 정훈장교는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씨익 웃었다. 그러다가 번뜩 생각 난 것이 있는지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우리 취재해야죠. 그걸 깜빡했네. 내 정신 좀 봐.”
그러면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술 많이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만 인터뷰하고 본격적으로 한잔하면서 얘기 나누자고요.”
테이블에 올려놓은 것은 녹음기였다.
“자, 그럼 그 사건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그 사이 이모가 갈매기살을 가지고 나오고 불판 위에 올려 주었다. 고기가 익어가는 동안 오상진이 간단하게 얘기를 해줬다.
그런데 오상진이 열심히 얘기를 하고 있는 사이 장석태 정훈장교가 열심히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내가 구워줄게.”
“에이, 괜찮아요. 이모. 바쁘신 거 아는데……. 걱정 말고 일 보세요. 여기 고기는 제가 구울게요.”
“그럴래?”
“네!”
오상진은 그런 장석태 정훈장교를 보며 사람이 참 싹싹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서 장석태 정훈장교는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그런 장석태 정훈장교의 행동에 신경이 쓰였다.
“저기 선배님 제가 고기 굽겠습니다. 주십시오.”
“에이, 됐어요. 제가 구워요. 오 중위님 내가 묻는 말에 답변만 잘해주면 됩니다.”
“……네에.”
오상진이 다시 얘기를 했다. 그러는 와중에 장석태 정훈장교가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접시에 놓았다.
“이거, 이거 먹고 해요. 잘 구워졌네.”
“아, 먹어도 됩니까?”
“에이, 먹어요. 우리 편하게 해요. 편하게!”
오상진은 생전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과거에서도, 현재에서도 말이다.
“우리말입니다. 부대도 아니고, 사석에서 만났는데, 편하게 해요. 아니지, 그냥 형처럼 생각해요. 우리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 안 그래요?”
“네에.”
오상진이 웃으며 고기를 먹었다. 그런 와중에 질문에 답을 꼬박꼬박했다.
“어디 보자, 기본적인 얘기는 들었고. 뭐 나머지는 기사 나온 것도 있으니까. 그걸 참고해서 하면 되고. 그보다 새 차 받으니까, 기분이 어때요?”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요? 다른 사람 눈치 보여서요?”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에이, 그런 걸로 배 아파하면 그 사람들이 옹졸한 거죠. 게다가 선배들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슬쩍 보았다. 확실히 육사 출신 중에는 기수를 많이 따졌다. 한 기수 아래라고 철저히 존댓말 하라고 하고 막 대하는데 앞에 있는 장석태 정훈장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후후, 만약 한두 기수 선배였다면 진짜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이네.’
오상진이 속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때 장석태 정훈장교가 녹음기를 끄고 확인을 했다.
“자, 우리 인터뷰도 할 만큼 했으니까. 이쯤하고! 녹음이 잘 되었는지 확인해 볼까요?”
장석태 정훈장교가 플레이를 눌렀다. 녹음이 잘 된 것을 확인한 후 가방에 넣었다.
“녹음도 잘 되었고, 이제 우리 본격적으로 한잔해 볼까요?”
장석태 정훈장교가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오상진도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막 잔을 부딪치려고 할 때 장석태 정훈장교가 말했다.
“앞으로의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네, 위하여!”
“위하여!”
두 사람이 잔을 부딪쳤다. 오상진이 단숨에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이렇듯 호탕하고 맘에 드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여전히 기분이 좋았다.
‘오늘 아무래도 술이 많이 들어갈 분위기네.’
오상진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