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70화
35장 일단 달려!(2)
오상진은 휴가 소식을 듣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휴가라…….”
오상진이 낮게 중얼거렸다. 휴대폰을 챙긴 오상진이 밖으로 나갔다.
“충성.”
“어어, 그래.”
오상진은 지나가는 중대원들의 경례를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곧바로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상진 씨.
한소희는 오상진의 전화에 매우 기뻐했다.
“지금 통화 가능해요?”
-그럼요. 무슨 일이세요?
“사실 제가 휴가를 받았거든요. 그것도 이번 주예요.”
-어멋! 어쩜 이런 우연이…….
“네?”
-사실 저도 이번 주에 시험 끝나면 한가하거든요. 이제 시간 많아요.
“벌써 끝났어요?”
-그럼요 11월 말인데요. 그보다 갑자기 왜 휴가예요?
“노래 부른 것 때문에요.”
-이야, 노래 불렀다고 포상휴가까지……. 군인은 포상휴가를 원래 그렇게 받아요?
한소희는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오상진도 공감했다.
“그러게요. 이번 주에 약속 없죠?”
-있어도 그 약속은 취소해야죠.
“나 때문에 그러지 마세요. 괜히 욕먹겠어요.”
-지금 상황에서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험과 상진 씨예요. 그런데 시험은 끝났고, 이제 상진 씨를 봐야겠죠?
오상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아, 또 그런 겁니까?”
-그럼요. 몇 박 며칠이에요?“
“2박 3일입니다.”
-그럼 제가 수요일로 시험이 끝나니까. 그때 보면 되겠다.
한소희가 해맑게 대답했다.
오상진은 살짝 난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희 씨, 죄송해요. 휴가를 받았지만 평일에는 쓰기가 곤란해요. 주말 끼고, 금요일부터 가능해요. 아니면 토, 일, 월요일도 되고요.”
-어? 주말은 원래 쉬잖아요.
“제가 장교다 보니까, 평일에 빼기가 좀 그렇습니다.”
-와, 그런 것이 어디 있어요. 치사하네…….
“그렇죠. 좀 치사해요. 으음, 여기도 밖의 사회랑 거의 비슷해요, 상사 눈치도 봐야 하고 이것저것 좀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럼 휴가니까, 다른 곳도 갈 수 있죠?
“그럼요.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네, 부산요!
“부산? 좋아요. 부산에 가요.”
-아싸!
수화기 너머 한소희가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기분이 좋았다.
“그럼 지금 시험 기간이면 공부는 어디서 해요?”
-당연히 제 아지트에서 하죠.
“아, 그래요? 거기 맘에 들어요?”
-완전요! 진짜 내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맘이 너무 편해요. 진짜 우리 남친 짱인 것 같아요.
“소희 씨가 기분 좋다니 다행이네요. 알았어요. 저 들어가 봐야 해요. 그럼 금요일 날 봐요.”
-네, 상진 씨, 수고해요.
오상진이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행정반에 복귀해 달력을 들었다. 금요일 날 체크를 하는데 수요일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다.
“수요일, 뭐지?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는 것은 소희 씨랑 관계된 날인데……. 약속인가?”
그런데 한소희랑 약속한 기억이 없었다. 오상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달력을 바라봤다.
“뭐지?”
오상진은 약 5분간 생각을 한 끝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을 때를 떠올렸다.
“맞다! 200일!”
오상진은 너무 바쁜 나머지 100일을 챙기지 못했다. 그 미안한 마음에 200일 때는 꼭 챙겨주자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때 검색사이트를 통해 날짜를 계산했다. 그날이 바로 수요일이었던 것이다.
“아, 이날 200일이라고 적어만 놨어도 빨리 기억했을 텐데. 멍청하게…….”
오상진은 그나마 기억을 떠올렸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럼 휴가 가기 전 수요일은 잠깐 외출을 해야겠네.”
오상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린 후 슬쩍 고개를 들었다. 다른 소대장들은 자기 할 일 때문에 바쁜 눈치였다.
“가만 어디 보자……. 200일 때 여친에게 할 선물.”
오상진은 휴대폰을 통해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선물과 저녁을 먹을 장소를 골랐다.
“좋았어. 수요일 날 서프라이즈를 해줘야지.”
오상진은 한소희에게 해줄 서프라이즈 이벤트에 잔뜩 기대되었다.
4
시간은 흘러 수요일이 되었다.
한소희는 오늘도 어김없이 오상진이 마련해 준 아지트로 이동했다.
아지트로 가기 전 한소희는 항상 들르는 곳이 있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한소희가 환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그 소리에 주방에 있던 신순애가 얼굴을 내밀었다.
“어어, 왔니?”
“네. 오늘도 손님 많았어요?”
그때 주방에서 최말숙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단체 손님 받고 이제 좀 쉬고 있었다. 여긴 손님이 미어터져!”
“그래요. 이모님?”
한소희는 최말숙하고도 친하게 지냈다.
아지트가 한울 건물 5층에 있다 보니 거의 매일 이곳에 들렀다. 물론 가끔은 그냥 바로 5층으로 올라갈 때도 있지만.
“오늘도 설렁탕 줄까?”
최말숙이 물었다. 한소희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네.”
“알았어. 고기 듬뿍 넣어서 줄게.”
“고마워요, 이모.”
“고맙긴, 네 예비 시어머니가 고기 많이 넣어 주지 않으면 어찌나 눈치를 주는지.”
“호호호, 정말요?”
“그럼!”
최말숙이 주방으로 다시 들어가고 신순애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왔다. 그리고 한소희 앞에 가서 앉았다.
“시험 기간이라면서.”
“네.”
“그런데 매일 이렇게 찾아와도 돼? 공부해야지.”
신순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요. 오늘 시험 끝났어요.”
“그럼 집으로 바로 가서 쉬지!”
“아니에요. 여기 오는 것이 오히려 힐링이 돼요. 이렇게 어머니도 보고 얼마나 좋아요.”
“으그, 말이나 못 하면. 그런데 상진이랑은 연락했어?”
“오늘은 못했네요. 뭐가 그리 바쁜지 전화도 안 받아요, 어머니.”
한소희가 볼멘소리를 했다.
신순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 들어갔나 보다. 상진이 훈련 들어가면 가끔 연락이 안 되고 그러더라고.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
신순애는 아들인 오상진에 대한 변명을 했다. 그러자 한소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머니는 아들이라고 상진 씨 편만 들고.”
“얘는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
“어머니는 제가 싫으세요?”
“무슨 소리야.”
신순애가 당황했다.
그때 최말숙이 국밥 한 그릇을 가지고 나왔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거나 먹어! 요즘 네 예비 시어머니가 얼마나 널 생각하는지 모르지.”
“진짜요?”
한소희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맨날 우리 소희가, 소희가. 막 그래.”
“어머니!”
한소희가 놀라며 신순애를 바라봤다. 신순애는 민망한지 얼른 말했다.
“됐어. 식기 전에 어서 먹어.”
신순애가 반찬을 한소희 앞으로 밀었다.
한소희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그러면서 국밥 한 숟갈을 떴다. 입으로 가져가 맛을 음미하며 눈에 웃음이 지어졌다.
“역시 어머니 국밥은 매일 먹어도 안 질려요.”
“매일 먹으면 질리지.”
“절대 안 그래요.”
한소희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신순애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국밥에 여기 백김치를 올려서 먹어봐. 더 감칠맛이 날 거야.”
신순애가 백김치 하나를 집어서 국밥 위에 올려주었다.
한소희는 냉큼 국밥 한 숟갈을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와! 역시…….”
한소희가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그 모습에 신순애가 피식 웃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끼 부리지 않고, 소탈한 모습까지 보이니 신순애는 한소희가 점점 예뻐 보였다.
“밥은 제대로 먹는 거야? 이렇게 바짝 말라서야.”
“그럼요. 저 엄청 먹어요.”
“그런데 왜 살은 안 찌니.”
“어머니, 저도 그게 걱정이에요.”
한소희가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음료수를 가지고 오던 최말숙이 한마디 툭 던졌다.
“시끄러워! 난 물만 먹어도 살찌는데…….”
“헤헤헤, 이모님…….”
한소희가 배시시 웃었다. 최말숙도 웃으며 음료수를 따라 주었다.
“이것도 먹어.”
“감사합니다.”
한소희가 씩씩하게 말했다. 신순애와 최말숙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5
한소희는 배부르게 먹고 5층으로 올라왔다. 자신의 아지트에 들어가 거실에 털썩 앉았다.
“아, 밥도 먹고 배도 부른데 이제 뭐 하지?”
한소희는 그동안 여기서 공부를 하면서 지냈다. 물론 잠은 집에 가서 자야 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이었다.
물론 시험 기간이라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거의 자정이 지나서 집에 들어갔지만.
“시험공부 하느라 잠도 못 잤는데 잠 좀 잘까?”
한소희가 소파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그때 벨이 울렸다.
띵동!
침대로 향하던 한소희가 고개를 돌렸다.
“응? 이 시간에 누구지?”
한소희가 문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기 전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세요?”
“…….”
하지만 밖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순간 한소희는 살짝 무서워졌다.
“누구세요!”
좀 강하게 불렀다. 그러자 문밖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예요.”
“응? 상진 씨?”
한소희는 깜짝 놀라며 문을 열었다. 그 앞에 오상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한소희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뭐예요. 얘기도 없이…….”
“아, 오늘 소희 씨 시험 끝나는 날이라 잠깐 나왔어요.”
“정말요!”
“네.”
그러다가 뒤에 감춰뒀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짜잔!”
꽃다발을 받은 한소희가 눈을 크게 떴다.
“어? 갑자기 왜 꽃다발이에요?”
“우리 오늘 200일인 거 몰랐어요?”
“아, 그랬어요?”
한소희는 100일을 챙기지 못해서 약간 서운했었다. 그래서 그때 생각을 했다. 100일, 200일 챙기지 말고, 1주년, 2주년 이런 걸 챙기자고 말이다.
이 모든 것을 오상진에게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200일을 챙겨주자 너무 고마웠다.
“상진 씨, 이 꽃 너무 예뻐요.”
한소희가 꽃향기를 맡으며 말했다.
오상진도 환하게 웃는 한소희를 보며 자신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한소희가 살짝 눈을 흘기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뭐예요, 이런 것을 전혀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지난번에는 내가 정말 바빠서 못 챙겨줬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달력에 체크를 해뒀죠. 문제는 제가 또 어제 알았다는 겁니다.”
“그래요? 그럼 우리 약속 잡기 전이었네요.”
“네, 약속 안 잡았으면 놓칠 뻔했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한소희가 오상진의 양손을 확인하며 물었다.
“꽃다발이 다예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우리 소희 씨. 꽃다발을 제대로 확인 안 했네.”
“네?”
순간 한소희가 눈치를 채고 재빨리 꽃다발을 확인했다.
꽃다발 가장자리에 얇고 긴 상자가 끼워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소희가 배시시 웃었다.
“진짜 있네.”
꽃다발을 한곳에 두고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예쁘게 세공된 목걸이 하나가 나왔다.
“어, 목걸이네.”
“소희 씨 생각나서 하나 장만했어요.”
“어머, 다이아네. 이거 진짜죠?”
“그럼요.”
오상진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목걸이를 들어 한소희의 목에 채워주었다.
한소희가 자신의 머리를 잡고 새하얀 목덜미를 드러냈다.
“그동안 저에게 너무 잘해줬는데 제가 너무 신경을 못 썼어요. 그래서 이번에 신경을 좀 썼어요.”
“안 그래도 상진 씨 맘 다 아는데…….”
오상진이 목걸이를 다 채우자, 한소희가 몸을 돌려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