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69화
35장 일단 달려!(1)
1.
한소희의 집.
공부를 하던 한소희가 기지개를 켰다.
“으으으으……. 지금 몇 시나 되었지?”
한소희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랐다.
“어머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어!”
한소희는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다행히도 거실과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맞다. 아주머니는 집에 일이 있어서 갔다고 했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임이 간다고 했고.”
한소희는 집에 혼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 거실에서 TV를 봐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겠네.”
한소희는 잔뜩 기분 좋은 얼굴로 거실로 갔다. TV 리모컨을 잡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어디 보자. 국방TV 채널이 몇 번이었더라.”
한소희가 채널을 빠르게 돌렸다. 한참을 돌렸지만 국방TV 채널을 찾지 못했다.
“설마 우리 케이블은 국방TV 채널이 없는 거 아냐?”
순간 한소희는 불안감이 들었다. 한참 채널을 넘기다 100번대로까지 넘어갔다.
리모컨을 잡은 한소희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채널이 막 바뀌는 와중 뭔가 군복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앗! 잠깐…….”
한소희가 리모컨을 누르던 손길을 멈추고 뒤로 가는 것을 다시 눌렀다. 이번에는 천천히 화면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국방TV 채널을 찾았다.
“어? 찾았다.”
한소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국방TV 위문열차를 시청했다. 처음에 무료하게 보던 한소희가 가연이 무대에 오르자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가연이랑 듀엣곡이라고 했지.”
이미 오상진에게 얘기를 들은 한소희는 자세를 잡으며 더욱 집중해서 TV를 시청했다. 가연의 노래가 끝났을 때 한소희가 혼잣말을 했다.
“이제 우리 상진 씨가 나오려나?”
한소희가 잔뜩 기대를 가지며 지켜봤다. 잠시 후 오상진이 무대에 오르고 둘이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뭐야, 나에게 불러줬을 때보다 훨씬 잘 부르잖아. 따로 연습을 많이 했나?”
한소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노래가 끝나고 사회자 임지용이 오상진에게 인터뷰를 시작했다.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오상진이 답하는 식이었다.
“오 중위님, 혹시 여자 친구 있으십니까?”
“네. 있습니다.”
“어? 지금 아마도 TV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마디 하시죠.”
오상진은 살짝 머뭇거리더니 눈을 딱 감으며 외쳤다.
“한소희 사랑한다!”
“와아아아아.”
순간 대대 강당이 떠나갈 듯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소희도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러다가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뭐야, 상진 씨도 참……. 부끄럽게.”
한소희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바로 오상진에게 문자를 남겼다.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사랑 고백하기 있기에요?
예전 같으면 한소희는 바로 답장을 기다렸겠지만 오상진이 지금 바쁘다는 것을 알고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이 문자를 보면 바로 답을 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한소희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녹화라도 해두는 건데……. 국방TV도 재방송을 하나? 아니면 이 장면만 따로 받을 수 없나?”
한소희는 방금 오상진이 고백한 저 장면을 두고두고 소장하고 싶었다.
2.
그 시각, 박은지도 국방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몇몇 기자들이 있었다. 그중 후배 기자 한 명이 입을 뗐다.
“이야, 저 사람 부럽네요. 가연이랑 노래도 같이 부르고.”
그러자 박은지가 바로 말했다.
“원래 저 사람이 좀 잘나가.”
“어? 선배! 저 사람 알아요?”
“그럼! 시체 찾은 사람이잖아.”
“아! 그 양반입니까? 이야 이거 기사 되겠는데요.”
박은지가 고개를 홱 돌려 후배 기자를 봤다.
“이동철, 네가 저 사람 기사 한번 써 볼래?”
“제가 한번 써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소스 줄 테니까, 한번 해볼래?”
“저야 좋죠!”
이동철은 기사 쓸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TV에서 오상진이 한소희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나왔다.
-한소희 사랑한다!
박은지가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여자 친구 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는 거야?”
이동철이 박은지를 바라봤다.
“혹시 선배 저 군인이랑 뭐 있는 거 아닙니까?”
“까불지 마! 있긴 뭐가 있어.”
“아닙니까?”
“아냐! 그리고 기사 잘 써라! 내가 검사한다.”
“그럴 거면 선배가 직접 기사 쓰세요.”
“확! 잔말 말고 쓰라면 써!”
“네.”
이동철은 잔뜩 기가 죽은 채 자신의 자리로 갔다. 박은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TV로 시선을 돌렸다.
“후우…….”
그러곤 팔짱을 끼며 다리를 꼬았다.
그다음 날 아침 한국일보의 어느 지면을 차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가연과 듀엣곡을 부른 군인 알고 보니…….
대놓고 어그로를 끄는 기사 제목에 조회 수가 엄청 많이 올라와 있었다. 기사의 내용은 이랬다.
-오상진 중위는 충성대대에서도 유명한 인사였다. 제일 처음은 멧돼지 퇴치였고, 최근에는 미제 사건으로 남을 뻔한 연쇄 살인 사건의 피해자 시신을 찾으면서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줬다. 현재 오상진 중위는 1년도 채 안 돼 조기 진급을 한 상태다. 이런 성과를 얻어 이번 위문열차 때 가연과 환상의 콜라보 콤비로 멋진 노래를 선보였다. 그 외에도 오상진 중위는 타의 모범이 되는 많은 사례를…….
월요일 아침, 한종태 대대장은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놓인 신문들부터 확인했다. 제일 먼저 한국일보에 올라온 오상진 중위의 기사를 확인했다.
“흐흠, 뭐야. 왜 기사에 내 이름이 한 줄도 안 나와.”
곽부용 작전과장이 바로 말했다.
“대대장님 국방일보가 아니라, 한국일보입니다.”
“한국일보? 국방일보가 아니었네.”
“네.”
“그런데 한국일보에서 우리 기사를 써 줬네. 국방일보도 아닌데.”
“뭐, 우연히 봤겠죠. 오 중위가 또 유명인사이긴 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오 중위는 운도 좋단 말이야. 어떻게 뭐만 하면 기사가 이렇게 터져주냐.”
“그러게 말입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동조를 하다가 뭔가가 떠올랐다.
“참 대대장님, 사단에서 연락 왔습니다.”
“사단에서? 뭐라고?”
“사단장님께서 오 중위 포상휴가 주라고 합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야이, 무슨 노래 한 곡 부르고 포상휴가야!”
“에이, 아시지 않습니까. 노래보다는 앞의 멘트가 좋았나 봅니다.”
“멘트? 무슨 멘트?”
“오 중위가 그랬지 않습니까. ‘내가 부를 노래는 사단장님께서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라고’ 말입니다.”
“아놔, 그 양반 참! 이런 거로 감동하고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러면 휴가 주지 맙니까?”
한종태 대대장이 눈을 번쩍 떴다.
“미쳤어? 무려 사단장님께서 주라고 했다며. 그런데 안 줘? 자네 같으면 안 주겠어?”
“아, 아닙니다.”
한종태 대대장의 호통에 곽부용 작전과장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래서 며칠 주라고 했는데?”
“2박 3일입니다.”
“2박 3일? 가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대신 최대한 빨리 다녀오라고 해. 어차피 겨울이라 큰 훈련도 없잖아.”
“최대한 빨리 말입니까?”
“그래, 괜히 이걸로 늑장 부리면…… 사단장님 지켜보실 수도 있잖아. 그러니 이번 주 중으로 갔다 오라고 해.”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렇게 오상진은 졸지에 2박 3일 포상휴가가 떨어졌다.
3.
김철환 1중대장은 월요일 회의를 마치고 행정반에 들렀다.
“1소대장.”
“네.”
“너 휴가 가란다. 그것도 이번 주 안으로!”
“네?”
오상진은 갑작스러운 휴가에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소대장들은 부러운 눈빛이 되었다.
“우와, 휴가 말입니까?”
“부럽습니다.”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을 바라봤다.
“휴가라니, 갑자기 왜…….”
“몰라 사단장님이 너 휴가 보내라 하셨댄다. 그래서 대대장님께서 너 이번 주 안으로 휴가 갔다 오래!”
“됐습니다. 무슨 휴가입니까.”
“야, 사단장님 명령이야.”
“그냥 갔다 왔다고 하면 안 됩니까?”
오상진은 2박 3일이라면 어차피 금요일부터 휴가를 쓸 수 있다는 것쯤을 알고 있었다. 그럼 어차피 휴일인 토요일과 일요일이 낀 휴가였다.
“야, 사단장님께서 지켜보고 계실 텐데 그게 말이 되냐! 이번 기회에 좀 쉬어. 위문열차 준비한다고 고생했잖아.”
“그래도 너무 염치가 없어서 말입니다.”
“염치가 없긴 뭐가 없어. 솔직히 말해서 너처럼 열심히 하는 애가 어디 있다고. 중대장도 맘 같아서 휴가를 주고 싶었다. 게다가 2소대 건으로 고생했잖아. 그러니 휴가 갔다 와라.”
“네, 알겠습니다.”
“그래, 오늘도 고생해라. 그리고 휴가 날짜 결재 올리고!”
“네, 충성!”
김철환 1중대장이 손을 흔들며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오상진이 자리에 앉아 행정반에 있는 소대장들이 부럽다는 듯 한마디씩 했다.
“와. 1소대장님 진짜 좋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위문열차에서 노래 한 곡 불렀다고 바로 휴가를 줍니다.”
오상진이 살짝 민망해했다. 그러자 3소대장이 입을 뗐다.
“4소대장 노래 한 곡 불러서 그랬겠냐. 그전에 사단장님에 대한 멘트가 좋아서 그렇지.”
“와우! 맞다. 그 멘트가 신의 한 수였습니다.”
4소대장이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말했다. 오상진이 민망해했다.
“놀리지 마십시오. 저도 얼떨떨합니다.”
“아무튼 부럽습니다.”
“그래도 휴가가 어디 휴가입니까. 평일에는 눈치 보여서 못 쓰고, 토, 일요일 껴서 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한마디 하자 바로 4소대장이 맞장구를 쳐줬다.
“맞습니다. 이건 휴가가 아니지 말입니다. 우리도 평일에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
“그럼 평일에 휴가 쓰십시오.”
3소대장이 불쑥 한마디 하자, 4소대장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저도 눈치는 있습니다. 하하, 하하하…….”
그런 모습을 보며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4소대장이 오상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우리 1소대장님 부럽습니다. 뭐든지 될 사람은 되는가 봅니다.”
오상진은 계속해서 민망해했다. 그리고 이를 듣고 있는 이미선 2소대장이 오상진을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빛을 4소대장이 봤다.
“어? 2소대장 1소대장님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습니다.”
순간 이미선 2소대장이 화들짝 놀랐다.
“네? 제 눈빛이 왜요?”
“뭔가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무, 무슨 소리입니까. 그냥 똑같습니다.”
“아닌데……. 2소대장 1소대장님을 마음에 둔 것이 아닙니까?”
4소대장이 설마 하는 마음에 대놓고 물었다. 이미선 2소대장이 화들짝 놀랐다.
“어멋! 무슨 소리세요. 1소대장님은 여자 친구분도 계시다는데……. 저는 임자 있는 사람에게 관심 없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이 바로 말했다. 그러자 4소대장이 씨익 웃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에 치맥 어떻습니까?”
이미선 2소대장 환하게 웃었다.
“4소대장님께서 쏘시는 거죠?”
“당연하죠!”
“그럼 콜!”
4소대장은 이런 이미선 2소대장의 말투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3소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