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68화
34장 적응이 필요해(10)
“그리고 군인 아저씨. 우리 오빠 좀 잘 챙겨 주세요.”
가연의 부탁에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매니저라고 하면서 상당히 각별해 보입니다.”
로드 매니저 한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가연이가 워낙에 정이 많아서 그런 겁니다.”
김민종 이병도 말했다.
“맞습니다. 중위님. 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거야?”
“네.”
그러자 가연이 눈을 부릅뜨며 발끈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랑 만나는 게 창피해? 나랑 사귄다고 왜 말을 못 해!”
“야, 야!”
김민종 이병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로드 매니저 한수는 땀을 삐질 흘리며 오상진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오 중위님.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연예인에게 있어서 스캔들은 감춰야 될 비밀이었다. 특히나 가연처럼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한 젊은 가수라면 더더욱 남자 문제를 숨겨야 했다.
그러나 이미 오상진은 다 들어버렸다. 게다가 워낙에 노골적으로 애정행각을 했으니 이걸 보고 못 알아차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알았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는 하지 않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일단 김민종 이병은 복귀를 하도록.”
“네.”
“강당으로 어떻게 가는지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만 가 봐.”
“네. 충성.”
김민종 이병이 경례를 하고 나갔다. 그러면서 애틋한 시선을 가연에게 보냈다. 가연 역시 김민종 이병을 보내는 것이 많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오빠 꼭 면회 올게! 알았지!”
가연은 살짝 울먹였다. 오상진이 그런 가연에게 다가갔다.
“자, 그럼 가연 씨는 저랑 같이 노래 하셔야죠?”
“알았어요.”
“그럼 김민종 이병 만나게 해줬으니까, 이제 이 노래 불러도 괜찮죠?”
오상진은 다시 한번 확인을 했다. 가연이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
“네, 상관없어요.”
그렇게 두 사람이 같이 대기실에서 합을 맞췄다. 확실히 오상진은 못하지만 가연은 가수답게 노래를 잘 불렀다. 게다가 오상진이 못하는 부분까지 커버하며 불렀다.
“잠깐 쉬다가 하죠.”
가연이 스톱을 했다. 물로 목을 축였다. 오상진도 물을 마셨다. 잠깐 30분 동안 호흡을 맞췄는데 이제 제법 잘 맞았다.
“괜찮아요?”
“네.”
“그냥 이대로만 하면 될 것 같아요.”
가연은 역시 프로였다. 조금 전 철없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점이 오상진을 살짝 놀라게 하고 있었다.
‘대단하네. 그래서 과거에 트로트 여제로 불렸구나.’
오상진이 살짝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 가연이 오상진 옆으로 다가왔다.
“일단 몇 가지만 수정하자고요. 여기 이 부분 고음 부분에서 흔들리니까. 이 부분을 억지로 부르려고 하지 말고, 한 톤을 낮추세요. 제가 고음으로 처리할게요.”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제가 가수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대신에 우리 오빠 좀 신경 써주세요.”
“으음, 그게 말이죠. 장담을 못 드립니다. 사실 저는 1중대고 김민종 이병은 3중대입니다. 중대가 달라서 만날 기회도 거의 없습니다.”
“중대가 다르면 안 되는 거예요?”
“사실 각 중대마다 관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도움은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솔직히 오빠 걱정되어 죽겠어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많이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오상진의 물음에 가연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뗐다.
“혹시 저 아이돌 출신인 것 아세요?”
“들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칫, 거짓말! 저 아이돌 출신인 것 아무도 몰라요. 사실 나오자마자 제가 사고 치는 바람에 바로 해체가 되었거든요. 그때 나 때문에 해체된 거라고 사람들이 엄청 욕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오빠가 나서서 막아 줬어요. 위로도 엄청 많이 해줬고요. 오빠가 그랬어요. 항상 노래를 놓지 않고 있으면 언제든 기회는 온다고. 그러니 꼭 노래하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트로트 가수가 되었고요. 지금은 그때 오빠의 고마움을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있고요.”
가연이 순수한 표정으로 두 손을 자신의 가슴에 모았다.
“그래서 오빠는 제게 은인이에요. 솔직히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오빠는 계속 저렇게 멀리하네요.”
가연은 살짝 풀이 죽었다. 오상진이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건 가연 씨가 아직 어려서 그래요. 그냥 그 마음 변치 않고 꾸준히 이어지다 보면 그 친구도 받아줄 겁니다.”
“저 연애 상담해 주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만…….”
“그보다 여자 친구는 있으세요?”
“물론 있죠!”
“정말 있어요?”
“네.”
“그럼 사진 있으면 보여줘 봐요. 예뻐요?”
“예쁘긴 한데…….”
“칫.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 예쁠까요?”
가연이 살짝 턱을 추켜들며 말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물론 가연도 예쁘긴 했다. 한때 아이돌을 준비했었다고 했으니까 기본적으로 비주얼이 훌륭한 편이었다.
하지만 오상진이 보기에 한소희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 이 친구입니다.”
오상진은 가장 예쁘게 나온 사진을 보여줬다. 가연의 눈이 커졌다.
“헐!”
가연이 고개를 홱 돌려 오상진을 바라봤다.
“여자 친구 맞아요?”
“예, 맞습니다.”
“나랑 맞먹을 정도인데.”
“네?”
순간 어이가 없어서 가연을 봤지만 가연은 고개를 돌려 매니저 한수를 불렀다.
“잠깐 이리 와서 이것 좀 봐봐.”
“뭔데?”
“이 분이 여기 군인 아저씨 여자친구라는데 어때?”
“오옷! 엄청 미인이신데?”
“그래도 내가 좀 예쁘지? 그렇지?”
“응?”
“나 지금 공복이라 예민하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
“그, 그럼. 우리 가연이가 아주 쬐끔 더 이쁘지.”
마지못해 가연을 추켜세우며 한수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오상진은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15.
위문열차 공연히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섹시한 옷을 입은 여자 댄스팀이 분위기를 띄웠다. 그리고 사회자가 나왔다.
“충성! 안녕하십니까. 이번 충성대대에 위문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저는 사회자 임지용입니다, 반갑습니다.”
“와아아아아아!”
대대 강당은 떠나갈 듯 함성이 쏟아졌다. 임지용이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띄웠다.
“여기는 어디?”
“충성대대!”
“목소리가 작습니다. 여기는 어디!”
“충. 성. 대. 대!”
“맞습니다. 여기는 충성대대입니다.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뜨거운 열기가 강당에 가득 피어올랐다.
“그럼 이 열기를 이어갈 첫 번째 초대가수 신입 아이돌 그룹 엔토핀입니다.”
“우오오오오오!”
장병들의 함성 소리가 울리며 첫 번째 무대가 이어졌다. 그사이 오상진은 무대 뒤편으로 나왔다. 오상진이 힐끔 대대원들을 바라봤다.
“어휴, 자식들 난리 났네.”
대대원들 얼굴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박수를 치고, 어떤 대대원들은 일어나 같이 춤까지 췄다. 신인 그룹이라 생판 모르지만 예쁜 여자 아이돌 그룹이라 그런지 호응이 장난 아니었다.
“아무튼 잘들 노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때 막내 PD가 다가왔다.
“오 중위님?”
“아, 네에.”
“어떻게 노래 준비는 잘되셨습니까?”
“네. 일단 맞춰는 봤는데 많이 떨립니다. 이러다가 실수하면 어떻게 하죠?”
오상진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막내 PD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처음에는 다 그렇습니다. 그냥 편하게 부르십시오. 별거 있겠습니까?”
말은 편하게 하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이런 말이 오상진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그렇게 오상진의 순서를 기다리며 몇 명의 초대가수가 올라와 노래를 불렀다. 그 외 장기자랑도 했고, 게임도 진행되었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트로트의 떠오르는 샛별! 가수 가연 씨입니다.”
가연은 예쁘장한 얼굴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무대에 섰다. 예쁘장한 얼굴로 윙크까지 하자 장병들은 그냥 쓰러졌다.
“오빵! 나 많이 예뻐해 줄 거죠? 아잉!”
“네! 가연! 가연! 가연!”
장병들은 떼창까지 부르며 가연을 연호했다. 그때 사회자 임지용이 말했다.
“역시 트로트의 떠오르는 샛별! 가연 씨입니다. 가연 씨!”
“네.”
“장병들의 열기가 느껴지십니까?”
“네. 너무너무 뜨거워서. 제 얼굴이 붉게 타올랐어요.”
그러면서 수줍은 제스처를 취했다. 그럴 때마다 장병들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오오오, 내가 미쳐!”
“나 오늘부터 가연의 팬이야!”
“아니야, 가연은 내 거야!”
장병들의 함성 소리가 너무도 컸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럼 가연 씨, 마지막으로 군인과 듀엣으로 노래 부를 수 있습니까?”
“네. 좋아요!”
“그럼 누구랑 해보시겠어요?”
가연이는 이미 준비했던 대로 움직였다.
“저는 저분이랑 할게요.”
가연이 오상진을 딱 가리켰다. 카메라가 오상진을 확 잡았다. 오상진이 당황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와주십시오.”
임지용의 말에 오상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무대에 올랐다.
“어디 소속입니까?”
“충성대대 1중대 1소대장 오상진 중위입니다.”
“아, 오 중위님! 군대에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계십니다. 혹시 연예인입니까?”
“하하핫, 아닙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 방송 타면 기획사 쪽에서 섭외가 들어올지 모르겠습니다.”
임지용 사회자가 멘트를 날렸다. 오상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지금도 군인이고 앞으로도 군인일 겁니다.”
그 멘트를 날리자 장병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오 중위! 오 중위! 오 중위!”
임지용 사회자가 놀랄 정도였다. 그도 오상진에 대해서 얘기를 들었다. 나름 군대에서 인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막상 실제로 확인을 하니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와, 역시 대단합니다. 혹시 부르고 싶은 노래 있습니까?”
“아, 저는 태진하 님의 ‘사랑은 장난이야!’를 부르겠습니다.”
“네. 태진하 씨의 사랑은 장난이야? 그 노래를 좋아하실 나이는 아니신데……. 솔직히 말씀해 보십시오. 누가 좋아하는 노래입니까?”
임지용이 짓궂게 물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씨익 웃었다.
“저희 사단장님께서 좋아하십니다.”
“역시 그렇죠!”
그때 카메라가 사단장을 비쳤다. 사단장도 어느새 찾아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단장이 껄껄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가연 씨 괜찮겠어요?”
임지용의 물음에 가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태진하 선배님의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해요. 자신 있어요.”
가연이 주먹을 쥐며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좋습니다. 그럼 가연 씨와 오상진 중위님의 듀엣으로 부르는 ‘사랑은 장난이야!’를 끝으로 위문열차는 다음 정차역을 향해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충성!”
임지용이 경례를 하고 곧바로 반주가 나왔다. 오상진과 가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연습 때보다도 호흡이 더 잘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상진과 가연의 하모니가 대대 강당을 가득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