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67화
34장 적응이 필요해(9)
“그럼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노래를 바꿀까요?”
오상진도 가연이 싫어하는 노래를 같이 부르고 싶지 않았다.
“이제 와서 다시 연습하시게요?”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죠.”
“노래 잘하세요?”
“그건 아닙니다.”
“하아……. 그럼 안되잖아요.”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요. 그냥 불러야죠. 대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가연은 뻔뻔하게 나갔다. 오상진은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고른 노래이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해 보십시오. 어떤 부탁입니까?”
오상진의 입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자 찌푸렸던 가연의 얼굴이 슬그머니 펴졌다.
“실은 말이에요. 이 부대에 아는 사람이 입대했거든요.”
“가족입니까?”
“가족은 아닌데 가족 같은 사이에요.”
“정확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게 남…….”
“남?”
“남자 매니저요. 전 매니저!”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연이 안도하며 말을 이었다.
“김민종이라고 저하고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매니저 오빠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말도 없이 군대에 가 버리고서는 어느 부대에 있는지조차 안 알려주는 거 있죠?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 부대에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그 사람 좀 여기로 데려와 주실 수 있어요?”
“아, 그건…….”
오상진이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부탁은 좀 무리였다.
가연이 오상진의 표정을 확인하더니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안 돼요? 아까 대대장님께서는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오 중위님에게 말하면 된다고 하던데요.”
“대대장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오상진이 당황하며 로드 매니저 한수를 바라봤다. 한수도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대장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긴 했지만…….”
오상진이 그 얘기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마도 그건 그냥 예의상 한 말이었겠지.’
오상진의 결론은 그것이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예의상 하는 말입니다’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잠시만요.”
오상진이 밖으로 나가 휴대폰을 들었다. 박중근 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하사 접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병사 한 명을 찾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네,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수소문해서 찾아내겠습니다.
정말 언제나 든든한 박중근 하사였다.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김민종이라고 합니다.”
-계급이랑 어느 중대인지는 모르고 말입니까?
“네. 부탁 좀 합니다.”
-김민종이라……. 왠지 노래 잘 부를 것 같은 이름입니다.
“이름만으로 그런 게 느껴집니까?”
-아무튼 걱정 마십시오. 수소문해서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다니…….”
오상진은 살짝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분도 안돼서 박중근 하사에게 전화가 왔다.
“네.”
-찾았습니다. 3중대 2소대라고 합니다.
“3중대 말입니까?”
-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아하, 그 친구를 지금 가연 씨가 보고 싶어 합니다. 아는 지인이라고 하는데…….”
-혹시 남자 친구 아닙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찌 되었든 그 친구를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해결해 주지 않으면 대대장님을 찾아갈 기세라서 말이죠.”
-아, 골치 아픈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그러면 빨리 해결하는 게 맞습니다. 위문열차 할 때 이상한 소리를 할 바에는 말이죠. 3중대장님에게는 어떻게 말하죠?
“그건 제가 가 보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3중대장을 찾아갔다. 이미 다른 중대들도 강당에 다 도착을 한 모양이었다. 그 중에서 3중대장이 눈에 보였다. 오상진이 바로 3중대장에게 갔다.
“충성.”
“어? 오 중위. 자네가 웬 일이야.”
“3중대장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나에게?”
오상진은 3중대장을 데리고 구석으로 갔다.
“뭔데? 이런 구석진 곳으로 끌고 와?”
“다름이 아니라, 3중대 2소대에 김민종이라는 병사가 있습니까?”
“김민종?”
3중대장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있지. 두 달 전에 온 신병인데. 김민종 이병은 왜? 왜 그 녀석 휴가 때 사고 쳤나?”
최근에 백일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예전 휴가 때 사고쳤던 기억도 있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찾아?”
“실은 말입니다. 김민종 이병이 가수 가연 씨 지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잠깐 만났으면 한다고 저에게 부탁을 합니다.”
3중대장은 오상진의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야, 오 중위. 너 웃긴다. 그러니까, 민간인 부탁 때문에 군 병력을 네 맘대로 오라 가라 하는 거야?”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솔직히 어디 가는 것도 아니었다. 대대 강당 근처에서 잠깐 얼굴 좀 보자는 것이었다.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것이 아니면 크게 상관도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3중대장은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있었다.
“너 인마! 대대장님이 예뻐하시고, 사단장님께서 예뻐한다고 앞뒤 구분도 없이 이런 식으로 할래!”
한마디로 3중대장이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오상진이 굽혀 들어갔다.
“3중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좀 짧았습니다.”
“그래, 오 중위! 이번에는 생각이 좀 짧았어!”
3중대장의 입가에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오상진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얼굴을 하자 3중대장의 얼굴로 풀어졌다.
‘그래 이 정도 했으면 됐지.’
3중대장은 이참에 넓은 아량도 보여줄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오상진이 윗사람과 친하다 보니 별것 아닌 거로 시비를 걸어 좋을 게 없었다. 물론 오상진이 그럴 사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번만이다.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해.”
“알겠습니다.”
“데리고 가! 그리고 책임지고 데려다 놓아야 한다.”
“네. 충성.”
오상진이 경례를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강당에 모여 있는 3중대 2소대로 갔다.
“여기 김민종 이병 누구냐?”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이병 김민종!”
오상진이 확인을 한 후 말했다.
“너 나 따라와.”
“네.”
김민종 이병이 오상진을 따라 움직였다. 김민종 이병은 아무말 없이 대기실쪽으로 갔고, 가연이 있는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가연이 폴짝 뛰며 소리쳤다.
“오빠!”
김민종 이병의 눈이 커졌다.
“너, 넌…….”
“오빠 보고 싶었어.”
가연이 후다닥 뛰어가 김민종 이병을 끌어안았다. 김민종 이병은 주위를 살피며 당황했다.
“야야, 떨어져, 떨어지라고.”
“뭐야!”
김민종 이병은 가연을 자신의 품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밀었고, 오히려 가연은 더욱 팔에 힘을 주며 안았다.
“여기 군대야. 떨어져!”
“뭐, 어때! 나 안 보고 싶었어?”
“어어, 그게…….”
김민종 이병이 오상진의 눈치를 살폈다. 오상진 역시도 지금의 상황을 보고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라더니…….’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둘이 얘기 나누십시오. 저 잠깐 밖에 있겠습니다.”
오상진이 눈치껏 빠져주고 싶었다. 그런데 로드 매니저 한 수가 대번에 오상진을 붙잡았다.
“아, 그러시면 안 됩니다. 여기 계셔주십시오.”
“네?”
오상진이 의문을 가졌다. 가연도 당당하게 말했다.
“여기 있어도 괜찮아요. 뭐 어때!”
오상진은 나가려다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부터 가연은 김민종 이병을 보며 울먹이며 말했다.
“오빠,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말도 없이 군대를 가버리고, 군대를 갔으면 위치라도 알려줘야지. 정말 너무해!”
“야, 알았으니까. 진정해. 그런데 여기 네가 부른 거야?”
“응! 내가 오빠 보고 싶다고 해서 부른 거야.”
김민종 이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진짜 너 왜 그러냐.”
“왜?”
“너 나 군생활 꼬이게 만들고 싶어?”
“이런 걸로 군생활이 꼬여? 그게 무슨 말이야?”
“…….”
김민종 이병은 답답한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가연이 오상진을 노려봤다.
“군인 아저씨! 이걸로 우리 오빠 뭐라고 하는 거예요?”
오상진이 철없는 가연의 행동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닙니다. 대대장님께서 가연 씨 편의 봐드린다고 했으니까, 괜찮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김 이병도 걱정하지 마. 이미 중대장님과도 얘기 끝냈으니까.”
“정말 그래도 됩니까?”
“그래, 불이익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김민종 이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감사합니다.”
김민종 이병이 가연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보다 가연이 너! 안 본 사이에 많이 예뻐졌다. 살 좀 빠졌나 보네.”
“그게 오랜만에 봐서 할 소리야!”
가연이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오상진은 그런 두 사람의 행동을 그저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그 옆으로 로드 매니저 한수가 다가와 앉았다. 오상진이 그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많이 힘드시죠?”
“말해 뭐합니까.”
한수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대번에 눈치챘다. 그러는 사이 가연과 김민종 이병은 아예 노골적으로 애정을 드러냈다. 가연이 손을 꼭 잡았다. 처음에 약간 거부를 하던 김민종 이병도 대놓고 잡았다.
오상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확신을 가졌다.
‘그래, 확실하네. 둘이 보통 사이가 아니네. 무슨 매니저를 저렇게 대해.’
그러면서 힐끔 옆에 앉은 로드 매니저 한수를 봤다. 한수는 계속해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오상진이 그 맘을 안다는 듯 피식 웃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옛날 연예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유명한 트로트 가수가 전 매니저와 결혼을 했다는 보도였는데.’
오상진의 옛 기억 속에 자리한 연예뉴스였다.
‘그 뉴스가 저 친구였나?’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가연을 바라봤다. 그 옛날 오상진은 연예에 통 관심이 없었지만 우연히 그 기사를 본 것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뭐, 맞다면 지금은 내가 오작교 역할을 해준 것인가?’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힐끔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다시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가연 씨…….”
“네?”
“이제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상진이 말을 하면서 시계를 가리켰다. 가연의 시선이 시계로 향했다. 그런데 가연은 많은 아쉬움이 묻어난 눈빛이었다.
“조금만 더 안돼요?”
“네. 김 이병도 이제 중대로 복귀해야 합니다.”
“조금만 더요. 네? 부탁드릴게요.”
가연이 사정을 했다. 오상진도 어쩔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상황도 특별한 상황입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특별한 일입니다.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제 부대도 알았으니까, 나중에 면회 오시면 됩니다.”
김민종 이병도 눈치가 있는지 가연을 달랬다.
“그래, 가연아. 소대장님 곤란하게 만들면 안 돼. 다음에 면회 오면 날 만날 수 있어.”
“진짜지? 면회 갔는데 오빠 안 나오고 그러면 안 된다.”
“알았어!”
가연이 오상진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