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59화
34장 적응이 필요해(1)
1.
오상진은 주혁과 신순애, 신지애와 함께 백화점에 나섰다. 다른 아이들은 공부를 하거나 기획사로 간다고 따라오지 않았다.
“저기로 가자. 저번에도 갔었는데 괜찮더라.”
오상진은 주희의 가구를 샀던 곳으로 갔다. 종업원이 오상진을 발견하고 표정이 환해졌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저 기억하세요?”
“그럼요. 지난번에 가구 구입하신 고객님이시잖아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번에도 가구 보러 왔습니다. 보여주실 수 있으시죠?”
“네, 물론이죠. 이번에는 어떤 것을 보시겠습니까?”
종업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전에도 가구를 사기 위해 몇백을 아무렇지 않게 썼던 고객이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밝은 얼굴로 맞이했다.
“이번에 이것이 최근에 나온 가구입니다. 한번 보시겠어요?”
종업원은 적극적으로 안내를 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했다.
“괜찮네요. 그럼 이걸로 할까?”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주혁을 바라봤다. 주혁은 곤란한 얼굴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형, 저는 괜찮아요. 그냥 이불 깔고 바닥에 자면 돼요. 아니면 형이 쓰던 침대 써도 돼요.”
“주혁아.”
“네, 형.”
오상진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어른이 주면 ‘네, 고맙습니다’ 하고 받는 거야. 대신 나중에 네가 돈 벌면 그때 이것보다 더 좋은 거 사 줘야 한다.”
“그래도…….”
주혁은 선뜻 받기가 그랬다. 하지만 오상진이 ‘쓰읍’ 하고 으름장을 놓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신 장롱이랑 책상만 사 주세요. 침대는 형이 쓰던 것 쓸게요. 멀쩡한 침대를 바꾸는 것도 좀 그래요.”
“알았다.”
오상진도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마음같아선 다 바꿔 주고 싶지만 어린 주혁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워주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중에 입 싸악 닦으면 안 된다.”
“넵, 물론이죠.”
주혁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2.
오상진과 신순애, 신지애는 그 외에도 주혁이 필요한 스탠드나, 부가적인 것을 구입하러 움직였다. 그러다가 오상진이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오상진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신순애에게 다가갔다.
“엄마.”
“응, 왜 아들?”
오상진이 20만 원을 건네며 말했다.
“엄마 저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 해요. 이걸로 이모하고 애들 맛있는 거 사 주세요.”
“됐어. 엄마도 돈 있어.”
“그래도 이걸로 쓰세요.”
오상진이 억지로 신순애의 주머니에 돈을 넣었다. 신순애는 마지못해 받았다.
“이것 참 요즘 엄마가 돈복이 올랐나 보다. 아들이 용돈도 주고, 가게도 잘되고, 이렇듯 부수입까지.”
신순애가 미소를 지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이제부터라도 돈 걱정 마시고 사고 싶은 거 사세요.”
“네네, 알겠어요. 아들! 그보다 누구 만나러 가니?”
“아, 네에…….”
오상진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만 봐도 누굴 만나러 가는지 짐작이 되었다.
“여자 친구 만나러 가는구나?”
“네.”
“그래, 재미나게 놀다 와.”
“다녀올게요.”
오상진이 백화점을 나섰다. 그리고 곧바로 한소희를 만나러 움직였다. 두 사람이 만나는 장소는 항상 똑같았다. 바로 한울빌딩이었다.
“소희 씨!”
오상진이 한소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한소희도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상진 씨.”
오상진이 한소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한소희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혀, 형님…….”
한대만이 같이 온 것이었다. 그 뒤에 김소희도 다소곳이 서 있었다.
“저, 저도 왔어요. 오 소위…….”
“소희 씨, 오 소위가 뭐예요. 당신 제대까지 했으면서……. 그리고 이제 소위가 아니라 중위야. 중위!”
“미안해요, 습관이 되어서…….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냥 이름 불러. 이름!”
“그, 그럴까요?”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십시오. 전 상관없습니다.”
“네, 상진 씨…….”
“하하하…….”
한때는 선배였던 김소희가 ‘상진 씨’라고 부르니까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상진 역시도 좀 그랬다.
‘아무래도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어.’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슬쩍 김소희를 바라봤다. 머리도 기르고, 화장에 예쁜 옷을 입고 있는 것이 군에 있을 때보다는 많이 여성스러워진 것 같았다.
“오오, 선배님 나중에 밖에서 뵈면 못 알아볼 것 같습니다.”
오상진 역시 제대한 김소희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일단은 선배로 불렀다. 나중에 결혼하고, 자신도 한소희와 결혼을 하면 정식 호칭인 아주머니로 부르기로 했다.
“정말요? 괜찮나요?”
“그럼요. 부대에 있을 때도 최고의 미인이었는데 밖에서는 더욱더 빛이 나는데요.”
오상진의 칭찬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고, 한소희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한대만이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그것보다 배는 좀 나와 보이냐?”
김소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 이러지 좀 마요.”
“뭐, 어때요? 임산부가 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요.”
오상진은 그렇다고 김소희의 배를 볼 수가 없었다. 그저 한 번 힐끔 보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이, 아직 한참 멀었죠. 형님. 임신 5개월 정도 되어야. 배가 조금 나온다고 하던데요.”
“어? 그래?”
“네.”
“그래? 그런데 넌 어떻게 그걸 알아?”
“네?”
오상진이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다. 한대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요즘 인터넷이 얼마나 발전되었는 줄 아십니까?”
“인터넷? 자네가 뭐가 궁금해서 인터넷에서 그걸 봤어?”
“그냥 우연히 봤습니다.”
“우연히?”
그러면서 한대만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오상진이 시선을 외면했다.
하지만 오상진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때문이 아니라 회귀 전 다 겪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대만의 시선이 다시 김소희의 배로 향했다.
“그래도 나는 좀 나온 것 같은데…….”
김소희가 민망해하며 말했다.
“미안해요. 이이가 좀 그래요.”
“괜찮습니다. 얼마나 좋으시며 그러겠습니까.”
“좋지! 암 무진장 좋지.”
한대만이 강하게 말했다. 그러다가 한소희의 뼈 있는 말을 내뱉었다.
“좋겠지! 그럼, 얼마나 좋겠어.”
한대만이 한소희를 바라봤다.
“말 속에 뼈가 있다?”
“뼈? 뭔 뼈?”
한소희가 고개를 홱 돌렸다. 오상진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두 분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맞다. 그게…….”
그러자 한소희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니, 오늘 상진 씨 만나러 간다고 하니까. 이렇듯 따라온 거예요. 같이 가게 좀 보자고 말이에요.”
“아…….”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대만이 입을 뗐다.
“계약서 써야지. 이미 한의원은 계약했다며.”
“네.”
“그럼 우리도 계약해야지. 소희가 낚아채면 어떻게 해.”
“에이, 형님도……. 우리 소희 씨 그럴 사람 아닌 거 알면서 그러십니다.”
“와, 이봐. 매제! 네가 쟤 성격을 몰라서 그러는데, 와…….”
한대만이 말을 하면서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소희가 도끼눈을 뜨고 나직이 말했다.
“오빠, 자꾸 이렇게 나올 거지.”
그 소리에 움찔한 한대만이 바로 말을 바꿨다.
“아이고 우리 소희가 얼마나 착한데. 그치?”
“하하하, 일단 부동산으로 가요. 거기서 계약서를 쓰면 됩니다.”
“좋았어. 가자고, 가!”
한대만이 호탕하게 웃으며 부동산으로 걸어갔다. 부동산 사장은 미리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계약서를 준비해서 내밀었다.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금액이 맞습니까?”
솔직히 부동산 사장은 너무 터무니없는 계약금과 임대료에 약간 의아해하는 중이었다. 오상진이 계약서를 확인하고 말했다.
“네, 맞습니다. 형님 확인하시죠.”
계약서를 한대만에게 건네자 한대만이 헛기침을 한 번 한 후 부동산 사장에게 말했다.
“사실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의 매제요.”
혹시나 한대만이 오해를 할까 봐, 오상진과의 관계를 얘기했다. 한소희는 창피해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 보증금 천만 원에 임대료 삼백만 원 확인해 보십시오.”
한대만이 확인을 하더니 슬쩍 말했다.
“후후후,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웃겨, 흥!”
한소희는 여전히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소희가 처음으로 한소희에게 앓는 소리를 꺼냈다.
“좀 봐줘요. 아가씨.”
그 말을 듣는 한소희는 좀 기분이 좋았다.
“사실 오빠가 저렇게 뻔뻔하게 나오니까 다 받고 싶은데. 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조금만 받을게요.”
한대만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야, 너 웃긴다. 네 물이냐? 왜 네 대로 하냐? 그렇지 않냐, 매제!”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오상진에게 향했다. 오상진은 뭔가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었다. 오상진은 망설임 없이 얼른 말했다.
“어이구, 제 것이 우리 소희 씨 것이죠. 무슨 말씀을 하세요.”
그러자 한소희가 씨익 웃었다. 김소희는 부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한대만은 배신감에 눈을 부라렸다.
“와, 오상진!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한대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오른손으론 몰래 엄지손가락을 올려 보여주었다. 그것을 발견한 오상진이 씨익 웃었다.
“아, 그리고 형님. 인테리어는 제가 아는 업체가 있습니다. 그곳이랑 하시죠. 싸고 예쁘게 꾸며 주실 것입니다.”
한소희도 말을 거들었다.
“맞아, 오빠. 거기 정말 잘해. 오빠도 알지? 내가 은근히 보는 눈이 높은 거.”
“뭐, 소희가 인정하는 곳이라면야. 괜찮죠?”
한대만이 김소희를 바라봤다.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렴하게 해주신다면야 저도 좋아요.”
한대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2층 커피숍 계약이 끝이 났다. 그 길로 한대만은 인테리어 사장까지 만나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마무리한 네 사람은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김소희가 입덧이 심해 자극적인 음식은 피했다. 누룽지 백숙 집에 들어온 네 사람은 백숙 두 마리를 시킨 후 대화를 나눴다.
“우리 밥 먹고 오랜만에 영화 어때?”
한대만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었다.
“네, 형님. 좋습니다.”
“좋았어!”
그때 김소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화장실 좀요.”
잠시 후, 화장실을 다녀온 후로도 김소희의 표정은 계속 굳어 있었다.
“왜 그래요?”
한대만도 걱정이 되어 물었다.
“아무래도 체한 것 같아요.”
“체해요?”
“네. 아무래도 영화는 같이 못 볼 것 같아요.”
김소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이 바로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다음에 같이 보면 되죠.”
“그래요.”
한대만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소희를 부축했다.
“미안해. 그럼 담에 봐.”
한대만이 정말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형님.”
“그래. 연락할게.”
한대만이 김소희를 부축하며 나갔다. 그때 김소희가 오상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 오상진이 움찔했지만 이내 웃고 말았다.
“후후후…….”
한소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있다가 오상진이 웃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