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55화
33장 신입 소대장 받아랏!(7)
“지금 말입니까?”
“네.”
그러다가 인사장교를 보며 말했다.
“용건 끝났으면 가도 됩니까?”
“어어, 가도 돼.”
인사장교가 황급히 말을 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오상진은 그런 인사장교를 한 번 보고는 서둘러 올라갔다.
중간쯤에서 이미선 2소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안 올라가고 기다립니까?”
“중대장님께서 왜 저를 찾으시는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사실 중대장님께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네?”
“아까 딱 보니, 2소대장이 괜히 싫은 자리에 불려가는 것 같아서 내가 자리 피할 수 있게 해준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혹시 기분 나쁘셨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2소대장이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이렇듯 절 챙겨주시니 감사합니다.”
“같은 중대 소대장이니 당연한 겁니다.”
오상진은 괜히 민망했는지 앞서 걸어갔다. 그 옆으로 이미선 2소대장이 나란히 섰다.
“전 기쁩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런데 오 중위님이 제 이상형입니다.”
순간 오상진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네?”
“아니, 오 중위님이 이상형에 가까운데 제가 먼저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여자 친구분이 계시니…… 좀 아깝습니다.”
이미선 2소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슬쩍 오상진의 눈치를 살폈다. 원래 보통의 남자라면 이 소리를 들었을 때 약간 넘어오든지 아니면 기분이 좋아야 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아, 그러십니까? 아쉽습니다. 아마 2소대장도 저보다 더 좋은 남자를 만나실 겁니다. 어서 올라가시죠.”
그러면서 다시 앞서서 걸어갔다. 이미선 2소대장이 오상진의 등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칫, 안 넘어오네. 하긴 쉽게 넘어오면 재미가 없지. 그건 그렇고 오늘 밤 한번 불태워 봐?’
이미선 2소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다가 저 멀리 먼저 걸어가는 오상진을 향해 소리쳤다.
“오 중위님! 같이 가요!”
* * *
그날 저녁, 한종태 대대장을 비롯해 작전과, 인사과, 군수과의 본부중대 간부와 그 외 중대장들을 불러 회식을 했다. 그 자리에 이미선 소위를 부른 것이었다.
“뭐야, 안 오는 거야?”
한종태 대대장이 인사장교를 보며 물었다. 인사장교는 살짝 당황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안 와?”
“옷을 갈아입고 온다고 했습니다.”
“옷? 군인이 군복 말고 갈아입을 옷이 있나?”
“그,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한종태 대대장은 옷을 갈아입고 온다는 말에 은근 기대가 되는 눈치였다. 그때 회식 장소에 날씬한 여자 한 명이 나타났다.
“충성. 죄송합니다, 이미선 소위입니다.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스키니진 청바지에 검은색 브래지어가 비치는 흰 면티를 입고 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약간 섹시하다고 해야 할까? 여기에 있는 모든 간부가 놀라고 있었다. 한종태 대대장의 눈이 번쩍하고 떠지며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저런 차림인데도 뭔가 모르게 섹시하네.’
인사장교와 빠르게 움직였다.
“신고식 때 대대장님 봤지? 이쪽으로 와서 앉아.”
“대대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늦게 온 벌로 술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한 잔 받으세요.”
이미선 2소대장의 잇몸이 드러난 환한 미소에 한종태 대대장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 *
강남의 유명한 한정식집 앞으로 차 한 대가 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임규태 소령이었다.
“오 중위가 알려준 곳이 여기인가?”
임규태 소령은 한정식 상호를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종업원이 곧바로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단아한 옷차림의 종업원은 왜 강남의 고급 한정식집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게 해주었다.
“임규태입니다.”
“아, 네에.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의 뒤를 따라 임규태 소령이 움직였다. 어느 룸의 여닫이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이곳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임규태 소령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최익현 의원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안은 임규태 소령이 물을 따라 마셨다. 은은한 옥수수차였다. 한 모금 마시고 잠시 대기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최익현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규태 소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의원님.”
“임 소령님, 반갑소. 최익현이오. 앉으시죠.”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최익현 의원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오시는 데 오래 걸리셨습니까?”
“아닙니다.”
“할 얘기는 있지만 우선 식사부터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최익현 의원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임규태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시죠.”
식사가 나오고 두 사람은 별 얘기 없이 조용히 식사만 했다. 나름 최익현 의원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입에 맞으십니까?”
“네, 이 집 맛있습니다.”
“허허, 그렇죠. 강남에서 나름 알아주는 곳입니다.”
“그렇군요. 음식도 정갈하고, 괜찮습니다.”
그렇게 약 20여 분간 식사하며 나눴던 대화는 이것이 전부였다. 최익현 의원이 나름 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은 했다. 하지만 임규태 소령이 단답형으로 말해 대화의 흐름이 자꾸 끊어졌다.
사담은 나누지 않고, 본론만 말하겠다는 임규태 소령의 의도가 읽히는 행동에 조금 불편한 자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최익현 의원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딱히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30여 분 만에 식사를 마쳤다.
종업원이 들어왔다.
“음식 치워드릴까요?”
“네. 치워주세요.”
“후식은 수정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걸로 주시죠.”
“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이 식기를 챙겨서 나갔다. 잠시 후 수정과가 들어왔다. 한 모금을 마신 최익현 의원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본론을 말하겠습니다.”
그러자 먼저 임규태 소령이 입을 열었다.
“오 중위에게 얘기는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의원님께서 왜 저를 보자고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최익현 의원이 웃었다.
“후후후, 솔직히 나도 임 소령님을 딱히 볼 생각은 없었소. 그러나 오 중위가 얘기를 하더이다. 뭐, 그날 있었던 얘기를 다 꺼낼 수는 없지만 딱 하나는 말해줄 수 있소. 아버지 노릇을 하라고 말이오.”
“아버지 노릇이요?”
“내가 국회의원이라고 우리 가족들이 겪는 힘든 일이 많소. 이번 일도 그렇소. 클럽에서 그런 몹쓸 짓을 하는 놈들이 문제이지. 클럽에 가서 그런 일에 휘말린 우리 아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소. 만약에 아들이 마약에 손을 댔다면 국회의원 배지 내놓을 각오까지 했소, 그날! 다행히 조사를 통해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소. 얘기를 들어봐도 아무 이상이 없었소. 우리 딸애가 변호사까지 대동해 가봤지만. 그 변호사가 하는 말이 자신은딱히 올 필요가 없었다고 하더이다. 할 일이 없었다고 말이오.”
“그렇습니까?”
“못 믿으시면 직접 조사하셔도 됩니다. 사실 나는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걱정하는 것은 추후에 일어날 문제 때문이오. 나중에 이 일을 가지고 누군가 트집을 잡을 수 있지 않겠소? 그렇다 하여도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했소. 그런데 오 중위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이다. 그때 되어서 문제가 생기면 나를 걱정하지 말고, 그 일로 인해서 휘말릴 우리 아들 강철이를 걱정하더이다.”
최익현 의원이 이 말에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기보다 아들을 걱정하라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가슴을 진동시켰다. 임규태 소령도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신음을 흘렸다.
“으음…….”
“생각을 해보니 본인은 아마도 그때까지 정치를 하고 있을 것이고, 높은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오. 어쩌면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오. 그로 인해서 주변에서 본인을 흔들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자신은 있소. 하지만 우리 가족은 다르오. 특히 우리 강철이는 아버지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어쩌면 온갖 비난과 멸시를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오. 그때 가서 아들을 정쟁(政爭)의 도구로 쓰고 싶지 않소.”
“그래서 저에게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해줄 수 있으면 그리해 주면 고맙겠소. 이미 중부 경찰서 이강진 팀장이 모든 조사를 마쳐서 혐의없음을 인정받았소. 그러나 군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오.”
“만약에 경찰에서 밝히지 못했던 것을 내가 알아내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그럼 당연히 아들의 책임은 곧 아버지인 나의 책임이오. 당연히 옷을 벗을 것이오.”
“그때 가서 자식과 함께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깔끔하지 않겠습니까?”
임규태 소령이 강하게 물었다. 최익현 의원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했다.
“섣부른 판단 아니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조사 중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다면 말하시오. 난 언제든 옷을 벗을 각오가 있으니 말이오. 무엇보다 난 우리 아들을 믿소. 지금에 와서야 말이지만…….”
최익현 의원은 마지막 말을 흐렸다. 그때 드러난 얼굴은 씁쓸함이었다.
“방금 하신 의원님의 말씀 지켜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오.”
최익현 의원의 확실한 답변을 듣고, 임규태 소령이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죄송하지만 의원님의 말씀을 100% 신뢰할 수가 없어서 녹음을 했습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규태 소령이 정중하게 말했다. 최익현 의원이 ‘허허’ 하고 웃었다.
“녹음하는 줄 알고 있었소.”
“네?”
“조금 전부터 계속 시선이 휴대폰으로 가 있기에, ‘아, 녹음을 하는구나’ 생각했소. 그래도 난 상관없소. 만에 하나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깔끔하게 옷을 벗을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 점에 대해서는 고맙소.”
임규태 소령이 속으로 놀랐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네. 차, 차기 대통령 후보라고까지 말이 나오더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야.’
임규태 소령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진짜 저에게 맡긴 것을 후회 안 하십니까?”
“원래 오 중위 말을 듣고는 후회가 없었는데, 이렇듯 철두철미한 분인 걸 보니 살짝 겁은 납니다. 그런데 후회는 없소.”
“아드님을 믿습니까?”
“원래는 믿지 않았소.”
“그런데 왜……?”
“오 중위가 그러더이다. 강철이는 정말 좋은 아이라고. 나보다 더 우리 아들을 믿어주더이다. 그래서 나도 우리 아들을 한번 믿어보려 하오.”
최익현 의원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공정한 수사를 해주시오. 만에 하나, 우리 아들이 정말로 잘못이 없으면 이것 때문에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게 깨끗이 처리를 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듣기론 진급을 하셨다고 들었소.”
“네. 맞습니다.”
“기무사 사령부로 가신다는 얘기가 있던데…….”
“네,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기무사에 가셔서도 군 생활 잘할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겠습니다.”
최익현 의원은 바로 도와주겠다는 것을 돌려서 말했다. 임규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