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48화
32장 할 일을 하자(9)
“아, 귀찮아. 몰라!”
오상진은 그 길로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과 양치질을 했다. 그리고 군복으로 갈아입은 후 출근을 서둘렀다.
그런데 중대 행정반에 와서도 오상진의 속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하아, 속 쓰려 죽겠네!”
그런 오상진을 4소대장이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1소대장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네, 어제 제가 좀 과음을 했더니…….”
“아, 그래요? 월요일부터 말입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상진이 민망하게 웃었다.
“어제 누구랑 마셨습니까?”
“아는 사람이 부대 앞에 찾아왔었습니다.”
“아, 네에…….”
오상진이 살짝 말을 얼버무렸다. 4소대장도 그러려니 했다.
“그럼 견디셔 하나 사 드시지 말입니다. 요즘 그거 하나 먹으면 속이 좀 풀리긴 하던데.”
“아, 제가 생각을 못 했습니다. 점심때까지 참아보죠, 뭐.”
“그래도 지금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입니다.”
4소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도 참을 만합니다.”
그때 중대 행정반이 열리며 김철환 1중대장이 나타났다.
“다들 출근했냐?”
오상진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성.”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을 봤다.
“오 중위.”
“네.”
“잠깐 나 좀 보지.”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을 따라 행정반을 나갔다. 행정반을 나온 오상진을 보며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인상을 보니 어제 거하게 한잔했구먼.”
“네. 지금 속이 말이 아닙니다.”
“그래 잘 만나긴 했어?”
“예, 잘 만났습니다.”
“뭐라고 해?”
김철환 1중대장은 오상진이 어제 임규태 소령을 만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상진이 미리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의 말에 바로 답했다.
“좋게, 좋게 해결되었습니다. 최익현 의원하고는 따로 만나본다고 얘기도 하고 말입니다. 아마 본인이 만나서 직접 결정할 것 같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임 소령은 그럴 위인이지. 그보다 우리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중을 생각하면 이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오상진의 말에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네 말이 맞다. 나도 처음에 임 소령을 만난다고 했을 때 네가 미쳤나 싶었다. 그런데 집에서 곰곰이 생각을 보니 그건 또 아니다 싶더라고. 만약에 내가 10년 후에 어디에 있을까? 내 생각엔 말이다. 네 덕분에 진급을 쭉쭉 할 것 같거든.”
김철환 1중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상진이 웃었다.
“제 덕분입니까?”
“인마, 그것도 내 복이지. 아무튼 네 덕분에 열심히 하다 보면 10년 안에 중령은 달겠지. 안 그래?”
“10년 안에 중령이면 초고속 승진인데 말입니다.”
“초고속 승진인가? 아무튼 말이야. 중령 달고 대대장으로 있는데 갑자기 이 일이 터져 버렸어. 게다가 대령 심사를 코앞에 두고 있는 와중이야. 와, 중대장 있잖아. 그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더라.”
“후후후, 그랬습니까? 거기까지 갔으면 별까지는 달아야지 말입니다. 별도 못 달아보고 옷 벗으면 억울하죠.”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격하게 반응했다.
“그렇지! 내 말이!”
그러다가 김철환 1중대장이 좀 오버를 한 것을 아는지 멋쩍게 웃었다.
“아무튼 그 생각을 하다가 부엌에 있는 네 형수를 봤는데 말이다. 바로 울컥하더라. 내가 너희 형수랑 결혼할 때 고생 안 시키려고 데리고 왔거든. 물론 지금까지 그 맹세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제 조금 풀리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일로 내가 옷을 벗어버리면 얼마나 억울하겠냐. 밤에 자고 있다가도 벌떡 일어날 것 같더라.”
오상진이 웃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서 중대장이 결정을 했지. 우리 오 중위가 생각하는 말이 맞다. 너의 말이라면 있는 힘껏 도와주는 걸로 말이다.”
“정말입니까? 나중에 또 딴소리하기 없기입니다.”
“인마, 내가 언제 딴소리하디? 아무튼 잘해보자!”
“네. 중대장님. 또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일을 너무 벌인 것은 아닌지 고민이 좀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대장님께서 이렇듯 응원을 해주시니 한결 맘이 편합니다.”
“자식……. 아무튼 가자!”
“네? 어딜 가자는 말씀입니까?”
오상진이 눈을 끔벅거렸다.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인마, 어디긴! 해장해야지. 술 많이 먹었다며.”
“해장 말입니까? 이 시간에 해장할 데가 어디 있다고 말입니까. 전 괜찮습니다.”
오상진이 생각했을 때 지금 이 시간에 해장할 곳은 PX가 유력했다. 왠지 오늘은 PX에 가기 싫었던 오상진은 쓰린 속을 붙잡고 거절했다. 그런데 김철환 1중대장이 억지로 오상진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나도 너랑 밥 먹으려고 대충 아침 때우고 나왔어. 중대장 지금 배고프다. 어서 가자!”
“그런데 이 시간에 어디서 해장합니까? PX 갑니까?”
“자식이, 중대장을 뭐로 보고…….”
“그럼 어디입니까?”
오상진이 눈을 크게 떴다. 김철환 1중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따라와 보면 알아! 중대장이 우리 오 중위를 위해서 특별히 힘 좀 썼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을 이끌고 간 곳은 대대 식당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오상진이 눈을 크게 떴다.
“중대장님……. 여긴 대대식당 아닙니까.”
“그렇지 대대식당!”
“설마 여기서 해장합니까?”
“당연하지. 내가 미리 준비하라고 했다. 그래서 뇌물도 좀 먹이고. 라면이랑 이것저것 해장할 만한 것을 사 왔거든.”
그러면서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에게 작게 말했다.
“그냥 부탁할 수 없어서, 라면 한 박스도 사줬다.”
“뇌물이라는 것이 라면 한 박스였습니까?”
“그럼, 인마! 그건 엄청난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이 소리쳤다. 오상진은 순간 살짝 감동을 받았다.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중대장이 우리 오 중위를 위해서 이 정도도 못 해줄까? 너무 감동은 받지 마라.”
김철환 1중대장이 실실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식당 안으로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구 병장!”
“네, 중대장님 지금 나갑니다.”
구본승 병장이 쟁반에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각자 앞에 큰 대접을 놨다.
“자, 해장국입니다.”
“어? 난 해장라면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오상진이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구본승 병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가 또 전주 출신 아닙니까. 전주 해장국하면 콩나물 국밥 아니겠습니까.”
오상진이 눈을 찡긋했다.
“고맙다. 역시 호텔조리학과는 스케일부터가 다르네.”
“당연하지 말입니다. 제 명예가 걸린 일인데 뭐든지 허투루 할 수는 없지 말입니다.”
구본승 병장이 말을 하면서 씨익 웃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너, 구 병장이랑 잘 알아?”
“아, 제가 종종 용돈 챙겨주고 있습니다.”
“잘했다. 원래 고생하는 처지인데 그런 식으로 챙겨주면 좋지. 그러고 보면 네 덕분에 나도 이렇듯 먹네.”
“에이, 중대장님께서 준비해 놓으셨으면서.”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라면 한 박스 안 사다 줘도 됐잖아. 괜히 헛돈만 날렸네.”
“헛돈이 아닙니다. 나중에 중대장님에게 분명히 좋은 일로 돌아올 겁니다.”
“그럴까?”
“물론입니다.”
“그래, 기대하지. 어서 먹자!”
“네.”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이 해장국을 한술 떴다. 구본승 병장이 살짝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어…… 떻습니까?”
“이야, 맛있다!”
“크, 이거 팔아도 되겠다.”
그제야 구본승 병장이 긴장했던 눈빛을 거두었다.
“아,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괜히 호텔조리학과 출신이 아니야.”
“맞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은 입을 모아 특급 칭찬을 해줬다. 구본승 병장은 괜히 쑥스러워했다. 얼마나 맛이 좋았던지 김철환 1중대장은 해장국에 밥까지 말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오상진이 입을 뗐다.
“중대장인 식사하고 오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맛의 차이야. 솔직히 네 형수보다 훨씬 나은 거 같은데?”
“어, 형수님에게 말씀드립니다.”
“야, 너어……, 인마! 그러는 거 아니야.”
“농담입니다.”
둘은 웃으면서 해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그릇을 들고 국물도 남김없이 싹싹 비웠다.
“이여, 이제야 속이 좀 든든하네.”
“저도 그렇습니다.”
오상진이 구본승 병장을 불렀다.
“구 병장.”
“병장 구본승.”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최고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상진이 지갑을 꺼내 용돈을 줬다. 구본승 병장이 거부했다.
“괜찮습니다.”
“에헤이, 그냥 넣어둬.”
“감사합니다.”
구본승 병장이 웃으며 용돈을 받았다. 그러다가 오상진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너 언제 제대하니?”
“얼마 안 남았습니다.”
“제대하기 전에 꼭 한 번 나에게 와라. 술 한번 사 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래. 고생해라.”
“아, 소대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구본승 상병이 오상진을 붙잡았다. 그리고 구본승 상병이 식당 안에 있는 내무실을 향해 소리쳤다.
“고 상병!”
“상병 고중태.”
약간 통통한 녀석이 뛰어 나왔다. 구본승 병장이 고중태 상병을 향해 말했다.
“여기 계신 오 중위님께 인사드려.”
“충성. 상병 고중태.”
“어어, 그래.”
오상진이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구본승 병장을 봤다. 구본승 병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가 나가면 이제 이 녀석이 소대장님을 책임질 겁니다.”
“아, 이제 네가 취사장 실세야?”
“네. 어제부터 이 녀석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서툴지만 나름 눈치도 빠릿빠릿하고 잘합니다. 혹시 시키실 일이 있으면 이 녀석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래?”
오상진이 고중태 상병을 바라봤다. 구본승 병장이 짐짓 험한 얼굴로 입을 뗐다.
“고 상병! 너 잘해. 지금까지 너네가 먹은 수많은 부식을 책임져 주신 분이다.”
“그럼 앞으로도…….”
“그건 네가 하기에 따라 다르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상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한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상진이 고중태 상병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구본승 병장을 바라봤다.
“잘 알겠다. 고생해라.”
“네, 충성.”
오상진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 길로 식당을 나서서 중대 행정반으로 향했다.
“해장도 든든히 했고, 다시 활기찬 하루를 시작해 봐야지.”
오상진이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잠시 밖을 나갔던 4소대장이 뛰어 들어왔다.
“드디어 온답니다.”
“네? 누가 말입니까?”
“새로운 2소대장 말입니다. 드디어 온답니다.”
그 누구보다도 기다렸던 4소대장이었다.
“진짜 여자 장교하고 함께 근무를 하게 될 줄이야.”
무엇을 상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4소대장의 얼굴이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