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47화
32장 할 일을 하자(8)
오상진이 군복 차림으로 부대를 나섰다. 그 길로 단골 김치찌갯집으로 향했다. 임규태 소령에게도 미리 이곳의 주소와 위치를 알려준 상태였다. 오상진이 김치찌갯집에 도착하고 약 10분 후에 임규태 소령도 도착했다.
“임 소령님, 여기입니다.”
“어이, 오 중위.”
임규태 소령이 환한 얼굴로 오상진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야, 다이아 하나였다가 두 개를 다니 역시 사람이 달라 보이네.”
“감사합니다.”
임규태 소령이 자리에 앉으며 식당 안으로 확인했다.
“여기가 자네가 말한 맛집인가?”
“맛집은 아닌데 여기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 한번 먹어볼까?”
“네. 이모 여기 김치찌개 두 개요.”
오상진이 주문을 하고 얼마 후 자글자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가 나왔다. 임규태는 김치찌개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디 한번 먹어볼까?”
임규태 소령이 한 수저를 떠서 먹어보았다. 눈을 번쩍이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오, 칼칼한 것이 맛집이네.”
“아, 입에 맞으십니까?”
“맞다 뿐인가. 맛있어.”
“다행입니다. 소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이리 맛좋은 김치찌개를 두고 소주 한잔이 없다면 실례지.”
“네.”
오상진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왔다. 물론 소주잔 두 개를 가져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받으십시오.”
“고맙네. 그런데 자네 표정을 보아하니 연애 사업은 잘 되나 보군.”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딱 보면 알지. 아, 이건 내가 뒷조사를 한 것은 아니니까, 오해 말고! 그냥 딱 보니 느낌이 그렇더라고.”
“티 납니까?”
“그래, 연애하는 사람들은 티가 나더라고.”
“좋을 때네. 여자 친구는 잘해주고?”
“네. 잘해줍니다. 좋은 여자입니다.”
“그냥 자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나 해주겠네.”
“네, 말씀하십시오.”
“군인일수록 가정을 빨리 가지는 것이 좋아. 나도 내 와이프를 언제 만났더라…….”
임규태 소령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열심히 꼬셔서 졸업하자마자 결혼했거든.”
“아, 그렇습니까?”
“그렇지. 와이프는 지금도 얘기해. 남자를 많이 만나보고 결혼했어야 했다고. 하지만 난 우리 와이프 만나서 참 좋아. 여태껏 한눈도 팔지 않았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야. 집에 들어가면 왠지 모르게 든든해. 자네도 가능하면 일찍 결혼해.”
“네.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부대에는 별일 없고?”
“부대에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임규태 소령이 먼저 소주잔을 비웠다. 곧이어 오상진도 비웠다. 서로 소주잔에 잔을 채워주었다.
“그런데 뭔가 아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싶어서 안다기보다는 헌병대 이 자리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들어와. 그중에서 수정해야 하고, 다른 일부는 그냥 넘어가고 그래. 아무래도 자네가 있는 부대다 보니까, 내가 좀 더 신경을 쓰곤 하지.”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곧 진급이라서 아마 진급하면 자리를 옮겨야 할지도 몰라.”
“자리를 옮깁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나도 헌병대가 좋긴 한데 아무래도 기무대 사령부 쪽으로 갈지도 몰라.”
“그럼 축하드릴 일 아닙니까.”
“글쎄다. 기무대로 가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얘기 들어보니 그쪽 일도 엄청 힘들다고 하던데. 일도 일이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헌병대고 기무대고 사람 미움 사는 일 아니겠나. 거기서 열심히 해도 솔직히 진급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임규태 소령이 소주잔을 매만졌다.
“난 큰 꿈은 없어. 그런데 최근에 생긴 꿈이 있어. 솔직히 별 하나 정도는 달고 전역하고 싶네. 그런데 요즘 진급이 너무 빨라서 겁이 나. 이게 나보고 빨리 나가라는 소리인가, 싶기도 하고.”
“에이, 왜 그러십니까. 임 소령님처럼 열심히 하시는 분도 또 어디 있다고.”
“역시 나의 맘을 알아주는 사람은 자네밖에 없네. 자, 마시자고.”
임규태 소령이 소주잔을 내밀었다. 오상진이 웃으며 소주잔을 들었다. 두 사람이 건배를 한 후 단숨에 들이켰다. 김치찌개 한 술 떠먹은 후 다시 술을 따랐다.
오상진이 슬쩍 눈치를 살피며 임규태 소령을 불렀다.
“소령님.”
“응?”
“긴히 들이 말씀이 있습니다.”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임규태 소령은 오상진이 갑자기 진지하게 나오자 지레 겁을 먹었다.
“혹시 나에게 할 말이 있었던 거야?”
“다른 것이 아니라. 임 소령님께 말씀 못 드린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사건 무슨 사건?”
오상진은 최강철 이병에 관한 얘기를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다. 임규태 소령은 얘기를 들으면서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흐음, 그러니까, 자네 말은 소대원 중 하나가 휴가를 나갔다. 클럽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겼는데 다행히 직접적으로 연루된 건 아니고, 잘 처리가 되었단 말이지.”
“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잘 처리되었다면서.”
“그런데 그 친구 아버님이 정치를 하십니다.”
“정치? 국회의원이야?”
“예!”
“누군데?”
“최익현 의원이라고…….”
“아, 그 양반. 알지, 알아.”
“아, 혹시 최익현 의원을 아십니까?”
오상진은 살짝 불안했다. 혹시 안 좋은 쪽으로 알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그런데 반응은 괜찮았다.
“그 양반 괜찮지. 나도 좋아해.”
“그러십니까?”
“요즘 젊은 국회의원 중에서 그만한 사람 없지. 그 양반 만날 하는 말이 자주 국방이거든. 자주국방 얘기 자주 하고, 국방비 증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지. 군인으로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
“아, 그런 분이었군요.”
오상진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넨 몰랐던 건가?”
“저야 워낙에 정치쪽으로 관심이 없어서 말입니다.”
오상진이 민망한 듯 웃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최 의원 말이야. 자주국방의 주목적은 미군 철수가 아니라는 거지. 단지, 우리나라 국력을 더 올리는 것에 주점을 뒀다는 거야. 그래서 나도 최 의원의 생각에 무척이나 공감을 하는 거지. 그리고 군인들의 처우 개선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그러니 어떤 군인이 안 좋아하겠나.”
“아, 네에…….”
오상진은 일단 임태규 소령이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지금 상태에서는 임태규 소령은 최익현 의원을 맘에 들어하고 있었다.
“최 의원이 또 입담이 좋아. 맘 같아서는 국방위원회 소속이었으면 얼마나 좋아. 워낙에 인기가 많아서 다른 곳에 갔더라고.”
“아쉬웠겠습니다.”
“당연하지.”
순간 임규태 소령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그런데 오 중위가 나에게 얘기를 꺼낸 것을 보니 나중 일이 걱정돼서 그러는 건가?”
“네, 맞습니다.”
“혹시 최익현 의원하고 만났나?”
“네, 만났습니다.”
오상진은 속이지 않았다. 솔직하게 다 오픈을 했다. 임규태 의원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소주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오상진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혹시 최익현 의원이 자네에게 부탁하던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것은 아닙니다. 저는 사실 최익현 의원이 정치를 안 할 분이고, 이번까지만 정치하고 마실 분이라면 저는 이런 말 안 합니다. 그런데 임 소령님도 알다시피 최 의원님이 인기가 많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하실 분입니다. 그 와중에 언제가 이 문제가 최 의원님의 발목을 잡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임규태 소령이 오상진의 얘기를 듣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으음, 나도 같은 생각이긴 해. 사실 이 문제가 우리끼리 덮고 해결 될 문제는 아니지.”
“그래서 저는 임 소령님이 이 문제를 확실히 조사해서 넘어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그러다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닙니다.”
“만약에 내가 조사해서 문제가 불거지면 어떻게 할 거야?”
“그 문제에 대해서 마약과 형사분들이 충분히 조사를 했습니다. 협의점은 전혀 없었으니, 걱정 마십시오.”
“하긴, 자네가 확실히 조사해서 문제없으니까 나에게 말을 했겠지. 그런데 그게 확실히 조작된 것이 아닌지 어떻게 보장하지?”
“임 소령님, 저도 떳떳한 군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최익현 의원이 아니라, 최강철 이병입니다. 부모님을 국회의원으로 뒀다는 이유로 아무 죄도 없는데 두고두고 이 문제로 인생이 꼬이는 꼴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전 그저 소대장으로서 돕고 싶어서 이러는 겁니다.”
임규태 소령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뭔가 감동받은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다면 빈말처럼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오상진이 말을 하니 진심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자네가 내게 원하는 것이 뭔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임 소령님께서 직접 조사해 주시는 것이고.”
“그건 어렵지 않네. 마지막으로 기무사 가기 전에 처리하면 될 것 같네. 아니지, 기무사에 가서도 조사해도 상관없네. 오히려 그게 나을 수도 있고.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두 번째는 최익현 의원을 한 번만 만나 주십시오.”
“최 의원을? 내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까? 그분이 날 보고 싶어 할까?”
“최 의원님도 확실한 것을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사실 제가 뭔가 일일이 설명을 다 드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 소대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최 의원님은 아버지로서의 해야 할 일이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부분을 임 소령님께서 어느 정도는 해소해 주실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으음, 오늘 이 김치찌개는 아무래도 자네가 사야 할 것 같은데.”
임규태 소령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오상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제가 사야죠.”
“됐네, 이 친구야. 아무리 그래도 오 중위에게 밥 얻어 먹을까. 알았네, 언제 한번 날짜 잡아 보자고.”
“감사합니다, 소령님!”
“대신에 큰 기대는 하지 말게. 자네 말대로 조사 차원에서 한번 보는 거야.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고 말이지. 또 내가 조사를 해야 하는데 최익현 의원에게는 얘기를 해야 할 거 아냐. 국회의원인데.”
“네, 이해합니다.”
“그래도 만나는 과정에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겠네.”
“그러실 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만나보면 알겠지. 그럼 이제 얘기는 끝난 건가?”
임규태 소령이 물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끝났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기분 좋게 술 마시자고.”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좋지!”
임규태는 기분 좋은 얼굴로 오상진이 따라주는 소주를 받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오상진이 일어났다.
“으으윽…….”
잔뜩 인상을 구기며 배를 어루만졌다. 어제 임규태 소령과 술을 거나하게 마셔서 그런지 속이 너무 아팠다.
“와, 임 소령님 술이 엄청 세네. 나도 나름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오상진은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소형 냉장고로 가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그럼에도 속이 확 풀리지는 않았다.
“아, 해장하고 싶다.”
갑자기 속도 허해지는 것 같았다.
“라면이나 끓여 먹을까?”
오상진이 힐끔 한쪽에 있는 라면을 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