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45화
32장 할 일을 하자(6)
오상진은 순간 통화버튼을 누르는 것이 망설여졌다.
‘설마 임 소령님이 알고 전화를 하는 건가?’
그렇다고 전화를 안 받을 수 없었다. 일단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충성, 오상진 중위입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 임규태 소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 중위! 진급 축하하네. 방금 나도 소식을 들었어. 오늘 사단장님께 직접 신고를 했다며.
“아, 네에.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오 중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있나. 다 알지.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순간 움찔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우리 사이에 그런 걸 꼭 따져야겠나?
“하하, 그렇죠.”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보다 요새 잘 지내고 있나?
“네, 저는 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부대 얘기는 들었네. 자네 중대 2소대장이 사고 친 것을 오 중위가 열심히 뒷수습하고 있다면서.
“어? 그것도 아십니까?”
-조금 전에 내가 말했지 않나. 내가 오 중위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오상진은 살짝 부담스러워졌다.
‘왜 내게 관심을 가지시지?’
솔직히 이런 의문도 들었다. 그렇다고 ‘왜 제게 관심을 가집니까, 그러지 마십시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임규태 소령하고는 친하게 지낼수록 좋았다.
오상진은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임규태 소령은 아직 최강철 이병에 관한 얘기는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 소령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나도 오 중위 덕분에 잘 지내고 있네. 사실 저번 일로 소령(진)이 되었잖아. 물론 오 중위 덕분에 진급을 하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하네.
“아, 진급하셨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부끄럽게…….
“에이, 저에게도 축하해 주셨으면서…….”
-그거야. 첫 진급이지 않나. 나도 중위 달았을 때 그 기쁨을 알고 있거든. 그리고 사실 내 나이 때 진급이 쉽지 않거든. 저번에 살인사건 시체 때문에 진급 점수를 좀 땄어. 고마워, 오 중위.
“아닙니다. 저야말로 고맙죠. 소령님께서 잘 수습해 주셔서 제가 얼마나 편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이래서 오 중위를 좋아한다니까. 아무튼 자네 때문에 조만간 중령 달고, 기무사 사령부로 발령 날지 몰라.
“어? 진짜입니까?”
-그래, 아직 발령 난 것은 아닌데 그리될지도 모르겠어.
“진짜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어쨌든 자네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은 잊지 않겠네.
“에이, 또 그러신다. 다 임 소령님께서 열심히 한 덕분이죠.”
-아무튼 그렇다고.
“네네.”
-그리고 조만간에 내가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해 보겠네. 오 중위 덕 본 것도 많고, 이대로 있기가 미안하네.
“아, 그러십니까?”
순간 오상진은 이번 기회에 슬쩍 최강철 이병에 관한 얘기도 꺼내 볼까 맘을 먹었다.
-언제가 괜찮을 것 같나?
“그럼 말 나온 김에 오는 월요일 저녁 괜찮으십니까?”
-월요일 저녁? 나야 괜찮지만…….
“네. 제가 부대 앞에 단골 백반집이 있습니다. 거기 김치찌개가 아주 예술입니다.”
-허허허, 거참 친구하고는 고작 김치찌개인가? 다른 것도 사 줄 수 있네.
“아닙니다. 저는 김치찌개 하나면 충분합니다.”
-아무튼 알았네. 그럼 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 보도록 하지.
“네. 그럼 고생하십시오.
-그래, 자네도 수고하게.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단 만날 약속은 잡긴 했는데…….”
오상진은 그날 최강철 이병에 관한 얘기를 꺼낼 참이었다.
“강철이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한다?”
오상진이 살짝 고민이 됐다. 그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뭐. 일단 부딪쳐보는 거지.”
오상진은 반짝거리는 중위 배지를 달고 당당하게 걸어갔다.
9.
주말 아침.
신순애 여사의 국밥집 앞에 커다란 화환이 여러 개 놓였다. 오늘은 오상진의 엄마인 신순애 여사의 가게 오픈 날이었다. 신순애는 환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아, 네에. 어서 오세요. 감사합니다.”
부동산 사장을 포함해 종업원들이 나타났다. 곧이어 옆 가게 떡볶이집 부부와 그들의 아이까지 나타났다.
“축하드려요. 사모님.”
“아이고, 오셨어요? 어머나 너희들도 왔구나. 그러니까, 네가 창희, 그리고 네가 창식이구나.”
“네!”
신순애는 떡볶이집 부부의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미 신순애는 아이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어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축하드려요. 예쁜 할머니.”
신순애는 벌써 할머니로 불리고 있었다. 그것도 예쁜 할머니로 말이다.
물론 신순애가 이렇게 젊은 나이에 할머니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만도 한데 전혀 그런 내색이 없었다.
“미안해요. 사모님. 할머니 아니라고 해도…….”
“괜찮아요. 저도 이제 할머니 소리 들을 나인데요.”
“무슨 소리세요. 아직도 젊으신데요.”
“말이라도 고마워요.”
“네.”
“어서 자리에 앉아요. 곧바로 국밥 드릴게요. 그리고 너희들은 이 할머니가 아주 맛있는 돈가스를 준비했어요. 그거 먹어요.”
“우와, 돈가스다!”
“돈가스 좋아요.”
“사모님 그렇게 안 해주셔도 됩니다. 애들도 국밥 좋아합니다.”
“아니에요. 우리 메뉴에 어린이 메뉴가 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감사합니다.”
신순애는 두 아이를 보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렴, 금방 맛있게 해줄게.”
신순애가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도 크게 대답했다.
“네.”
신순애가 웃으며 창희, 창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 또 다른 손님들이 찾아왔다. 신순애가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떡볶이집 부부는 국밥을 먹으며 가게 안을 스윽 훑어보았다.
“와, 뭔가 진짜 옛날 풍이 나는 것 같네.”
“그렇지? 뭔가 주막집에 온 듯한 느낌?”
밖은 신식 건물인데 국밥집 내부는 옛날 주막집 분위기가 나는 인테리어였다. 이건 신순애가 직접 얘기해서 만든 것이었다. 커다란 가마솥이 보이고, 신순애와 이번에 새로 합류한 최말숙이 한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국밥 맛있겠지?”
“당연하지. 그래도 맛없어도 맛있다고 해줘야 해.”
“그럼요. 우리가 누구 덕분에 이렇듯 장사가 잘되는데요.”
“맞아. 차량으로 할 때보다 2배, 아니지, 3배 이상 팔고 있지.”
“네. 저는 지금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아무튼 요즘처럼만 장사가 잘되면 좋겠어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두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지난주에 얼마 벌었어요?”
“아마 3백 넘게 벌지 않았나?”
“계속 이렇게 벌었으면 진짜 좋겠다.”
아내가 웃자 양 사장이 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냥 일주일이야. 개업 발이고 언제 줄어들지 모르니까, 긴장하고, 아껴 써야 해.”
“내가 언제는 아끼지 않았나.”
“알지. 알고 있어.”
“말이 그렇다는 거야.”
“알아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사이 신순애가 국밥과 어린이용 돈가스를 가지고 왔다.
“자, 먹어봐요.”
국밥을 받자 아내는 곧바로 말했다.
“사모님, 엄청 맛있겠어요. 잘 먹겠습니다.”
“그래요. 모자란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고요.”
“네.”
신순애는 애들에게 ‘많이 먹어’란 말을 남기고 다음 손님을 맞이했다. 아내가 먼저 국밥 한 숟갈을 떠먹었다. 순간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여보. 맛있다.”
“아, 그래?”
양 사장도 국밥을 떠먹어 보았다. 역시나 엄청 맛있었다.
“진짜네. 정말 맛있다.”
“그렇죠. 여기 장사 잘되겠다.”
“그러네. 입소문 금방 타겠다.”
양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여기 장사 잘되어서 손님이 바글바글했으면 좋겠다.”
“왜? 여기 나가는 손님들이 우리 떡볶이 사 가게?”
“그럼, 그렇게 서로 잘되는 거잖아.”
“하긴, 여보 말이 맞네! 우리도 오는 손님에게 옆의 국밥집 맛있다고 얘기해 줘야겠다.”
“그러자.”
두 부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들의 옆 테이블엔 인테리어 사장이 앉아 있었다. 인테리어 사장은 같이 공사했던 인부들과 함께 와 있었다.
“아이고, 이렇게 다들 와주셔서 고마워요.”
신순애가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우리 여사님. 개업하시는데 당연히 축하드려야죠.”
“맞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다들. 오늘 제가 대접해 드릴 테니까. 맛있게 먹고 가요.”
신순애가 말했다.
그러자 인테리어 사장이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그건 아니죠. 사모님. 개업 축하해 드리러, 팔아드리려고 온 거예요. 얻어먹으러 온 거 아닙니다.”
“그래도 내가 고마워서 그렇죠. 아니다, 수육! 내가 수육은 서비스로 드릴게.”
“안 그러셔도 되는데…….”
“먹고 가요. 내가 고마워서 그래요.”
신순애는 곧장 주방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보며 자기들끼리 말했다.
“역시 우리 사모님은 통이 크시다니까.”
부동산 사장이 자리했다. 인테리어 사장이 그를 보며 한마디 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아, 방금 전화 하나 받고 온다고.”
“그런데 여기 자리 다 찼어?”
“문의는 엄청 많이 오는데 사장님께서 워낙에 깐깐하셔서 지금 고르고 고르는 중이야.”
“왜? 사장님이 제대로 임대료를 내줄 사람을 찾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런 것이 아니야. 차라리 그랬으면 내가 더 편했지. 여기 떡볶이집 사장 보면 몰라. 여기 사장님은 상생이 컨셉이라네. 서로 잘 사는 거 말이야. 그러다 보니까, 돈보다는 사회에 기여할 만한 그런 임차인을 찾는 모양이더라고.”
“아, 그래?”
인테리어 사장의 반응이 약간 시큰둥했다. 부동산 사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얼마 전에도 치과 하는 사람이 찾아왔었는데.”
“치과? 치과라면 돈 잘 벌잖아.”
“그런데 그 양반이 저쪽 동네에서 사고를 좀 친 모양이더라고. 여기 와서 문제가 생기면 빌딩 이미지에도 타격이 오고, 다른 사람들 장사하는데에도 피해를 입힌다고 안 된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
“어이구, 우리 사장님. 젊은 사람답지 않게 똑 부러지시네.”
“그러니까, 젊은 나이에 이런 빌딩을 사셨겠지.”
“하긴…….”
“그보다 최 사장은 좀 어때?”
부동산 사장이 물었다. 인테리어 사장이 피식 웃었다.
“우리야 좋지! 빨리빨리 가게가 나가야 우리 일거리가 늘어날 텐데 말이지.”
“아, 그럼 최 사장 일거리는 내 손에 달린 건가?”
“그래, 자네 손에 우리가 먹고사는 게 달렸어! 그러니 잘 부탁해.”
“알았네. 알았어. 걱정 말게.”
두 사람이 크게 웃었다. 그때 신순애가 국밥과 수육을 가지고 나왔다.
“맛있게들 먹어요.”
그러면서 수육 한 접시를 내려놨다. 그것을 본 인테리어 사장이 눈을 크게 떴다.
“아이고, 무슨 수육을 이렇게 많이 줍니까. 사모님 아예 대 자를 주셨네.”
그러자 최말숙이 지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그거 대(大) 자 같은 특대입니다. 원래 그런 사이즈 없는데 정말 수북하게 담았어요.”
“이렇게 다 주시면 파실 거 없는 거 아니에요?”
“대신에 앞으로 자주자주 와서 팔아주세요. 소문도 내주시고.”
“당연하죠.”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그래요. 어여들 먹어요.”
부동산 사장, 인테리어 사장, 그 외 인부들이 일제히 수저를 들고 국밥을 한술 떴다. 그리고 다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