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43화
32장 할 일을 하자(4)
5.
다음 날.
훈련을 마친 1소대 소대원들은 다들 내무실로 복귀를 했다.
“야, 진모야.”
“일병 구진모.”
“빨리 총기 거치대 열쇠 좀 가져와라.”
“네, 알겠습니다.”
구진모 일병이 재빨리 상황실로 뛰어갔다. 그사이 김일도 병장은 장구류를 내려놓고는 그대로 침상에 드러누웠다.
“와, 오늘따라 무진장 피곤하네.”
“그렇지 말입니다. 저도 영 피곤해서…….”
옆에 있던 김우진 상병이 고개를 갸웃하며 힘들어했다. 그 모습을 보던 김일도 병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야, 우진아.”
“상병 김우진.”
“네가 피곤해?”
“네. 진짜 피곤합니다.”
김우진 상병이 잔뜩 인상까지 쓰며 말했다. 김일도 병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마, 너 몸 안 좋다고 오후 내내 쉬지 않았냐?”
“맞습니다. 그래서 더 피곤합니다.”
“이 자식이 지금 장난하냐. 일루와!”
“헤헤, 김 병장님. 또 왜 그러십니까?”
“이리 와라, 좋은 말 할 때.”
“김 병장님도 힘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정하십시오.”
“진정? 이게 장난하나. 이리 와!”
“거기 가면 때릴 거 아닙니까.”
“잘 아네. 그러니까, 이리 와.”
“못 갑니다.”
“이리 안 와!”
김일도 병장이 달려들었고, 김우진 상병이 요리조리 피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소대원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김일도 병장이 김우진 상병을 잡고 헤드락을 걸었다.
“요게 말이야. 상병 말호봉이 되더니 뺀질뺀질 하고 말이지. 고참은 땡볕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김 병장님. 애들이 보고 있습니다.”
“보고 있는데 뭐? 어쩌라고?”
“아야…… 잘못했습니다. 봐주십시오.”
“잘못했지!”
“네, 잘못했습니다.”
김우진 상병이 두 팔을 들며 항복 의사를 표했다. 김일도 병장의 손에 힘이 조금 풀리다가 갑자기 다시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 나쁘네.”
“아악, 악! 아픕니다. 아파!”
“아파? 말이 짧다!”
“으아아악! 잘못했습니다.”
김우진 상병이 소리쳤다. 그제야 김일도 병장이 손을 놔주었다.
“제대로 하자.”
“네.”
김일도 병장이 다시 침상에 누웠다.
“자식이 말이야. 힘들어 죽겠는데 힘쓰게 만들고 있어.”
김우진 상병이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밑의 애들이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어쭈, 웃어? 이것들이 고참이 아파하고 당하고 있는데 웃음이 나와!”
김우진 상병이 소리쳤다. 그러자 소대원들이 재빨리 정색하며 각자 일을 했다. 그리고 김우진 상병이 막 다음 말을 하려는데 구진모 일병이 뛰어들어왔다.
“김 병장님, 김 병장님!”
누워 있던 김일도 병장이 몸을 일으켰다.
“왜?”
“소식 들으셨습니까?”
“뭔 소식?”
“내일모레 우리 소대장님 중위로 진급하신답니다. 원래 내년 3월에 진급해야 하는데 조기 진급이랍니다.”
“진짜?”
“네, 안 그래도 조기 진급 얘기가 나왔었지 않습니까.”
“뭐, 이미 확정이었지.”
“아, 그렇습니까? 그럼 축하라도 해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축하? 뭐 해드려야 하지?”
가만히 듣던 김일도 병장이 소대원들을 모았다.
“너희들 다 모여봐라.”
“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으로 해보자. 일단 다들 돈 좀 꺼내봐.”
“네.”
소대원 12명이 꺼낸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생각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이해진 상병이 말했다. 김일도 병장이 살짝 인상을 쓰며 입을 뗐다.
“정말 이게 다야? 좀 더 꺼내봐! 이걸로 뭘 해주겠냐!”
김우진 상병이 한마디 툭 던졌다.
“김 병장님도 얼마 안 꺼내지 않았습니까.”
“야, 인마. 내가 돈이 어디 있냐. 지난번에 너희한테 다 털렸잖아. 그걸 잊었어?”
김일도 병장은 진짜 할 말이 있었다. 2소대에서 회식한다고 쪼아대는 바람에 김일도 병장도 울며 겨자먹기로 회식을 쏴서 현재 가진 돈이 많이 없었다.
“야, 김우진. 너 진짜 자꾸 이럴래? 돈 내놔라.”
김일도 병장은 괜히 김우진 상병에게 화를 냈다. 김우진 상병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저 돈 없습니다. 안 됩니다.”
“야, 너 돈 모아서 뭐하려고?”
“그게…….”
“진짜 내일모레 병장 다는 놈이 이럴 거야?”
“저…… 대학 등록금에 보태려고 그럽니다.”
“뭐? 등록금?”
“……네.”
등록금이라는 말에 김일도 병장은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차마 내뱉진 못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군인 월급을 모아서 대학 등록금에 보탠다고 하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하겠는가. 어쩐지 짠돌이처럼 굴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고참들의 눈치를 보던 최강철 이병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이병 최강철.”
“강철이 왜?”
“제가 용돈을 좀 받았는데 말입니다.”
김우진 상병이 눈을 반짝였다.
“용돈? 그래서 네가 좀 더 낸다고?”
“네! 그렇게 하게 해주십시오!”
최강철 이병이 지갑을 꺼내려고 했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해진 상병도 최강철 이병의 손을 잡았다.
가로막힌 최강철 이병은 어리둥절해 그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이해진 상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일도 병장이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야, 최강철, 됐어! 지갑 도로 집어넣어! 그리고 야, 김우진! 넌 양심도 없냐. 어떻게 이등병한테 돈을 내라고 하지?”
“그럼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탈탈 털어도 돈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딱 봐도 5만 원이 다인데. 이걸로 뭘 합니까.”
“일단 이걸로 최대한 괜찮은 걸 해보자. 어쨌든 서프라이즈로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렇죠. 서프라이즈.”
“좋아, 그럼 의견을 한번 모아봐. 어떤 걸 해줬으면 좋겠냐?”
“뭐가 좋겠습니까?”
“내가 지금 묻잖아.”
김일도 병장이 모든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이병이든 일병이든 생각나는 대로 말해봐.”
“일병 구진모.”
“그래, 진모.”
“전투모 같은 것은 어떻습니까?”
“야야,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김우진 상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현래 이병이 손을 들었다.
“이병 노현래.”
“오오, 그래, 노현래.”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액자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 안에 사진을 넣고, 뭐 그런 것 있던데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조영일 일병이 입을 열었다.
“PX에 있던 그 액자 말하는 거야?”
“네.”
“야, 인마! 그건 전역할 때 주는 선물이잖아. 소대장님이 전역하냐! 그리고 그건 5만 원 가지고 택도 없어.”
“아, 그렇습니까?”
노현래 이병이 머리를 긁적였다. 김일도 병장이 소대원들을 보며 물었다.
“야, 이렇게 아이디어가 없냐?”
그때 이해진 상병이 손을 들었다.
“상병 이해진!”
“오오, 해진이.”
김일도 병장이 눈을 반짝였다. 다른 소대원들의 시선도 이해진 상병에게 향했다. 다들 이해진 상병이라면 뭔가 좋은 아이디어를 줄 것만 같았다.
“돈도 적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말입니다. 저희가…….”
“응!”
“어서 말해봐.”
이해진 상병이 하나하나 설명을 쭉 했다. 한마디로 서프라이즈 기획부터 연출까지 싹 한꺼번에 말이다.
“……한정적인 공간에서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가만히 듣던 김일도 병장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역시 우리 해진이! 너의 머리에서 뭔가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안 그러냐?”
“네, 맞습니다. 이야, 역시 해진이야.”
“좋았어. 그럼 내일 저녁이 디데이다. 잊지 말고, 해진이는 PX를 뒤지든 보수대를 가서 사정을 하든 구해 와. 알았지? 정 안 되면 보급관에게 물어봐야지.”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손을 내밀었다.
“자, 모두 이번 작전의 성공을 위해!”
“성공을 위해!”
소대원들의 손이 착착 김일도 병장 손 위에 올려졌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외쳤다.
“화이팅!”
1소대원들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6.
그날 저녁이 되었다.
김일도 병장이 심각한 얼굴로 중대 행정반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열고 김일도 병장이 들어갔다.
“충성, 병장 김일도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오상진은 퇴근을 하려다가 김일도 병장을 보고 의아해했다.
“김 병장, 무슨 일이야.”
김일도 병장이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소대장님.”
“왜?”
“1소대원들 모두 집합시켰습니다.”
“뭐? 집합? 갑자기 왜?”
“…….”
김일도 병장은 말없이 심각한 얼굴로 서 있었다. 오상진은 순간 걱정이 되었다.
“뭔 일 있어?”
“일단 1소대로 가 보시지 말입니다.”
“야, 인마. 내가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집합을 시키면 어떻게 해. 무슨 큰일 났어?”
“……그냥 가 보시면 압니다.”
“이상하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중대 행정반을 나가 1소대로 향했다.
오상진이 내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내무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뭔 일인데 문까지 닫고 있어.”
오상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야, 무슨 일이야. 뭔 일 있어?”
그런데 앞은 깜깜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불 좀 켜봐. 어서!”
뒤에 따라오던 김일도 병장이 불을 켰다. 그와 동시에 조용하던 1소대 내무실이 떠나갈 듯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와와와와!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소대장님!”
“중위 다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상진은 순간 깜짝 놀라면서도 황당했다.
“야, 뭐, 뭐야?”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소대장님께서 내일 중위 진급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1소대가 가장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네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이, 이 자식들…….”
오상진은 순간 감동을 받았다.
가슴 속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지난 과거에서는 평생 이랬던 적이 없었다. 아니, 소대원들에게 무엇이든 축하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녀석들이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중위 진급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비록 술이 없는 조촐한 회식이지만 저희 소대원들이 조금씩 모아 만든 자리입니다. 소대장님.”
오상진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뗐다.
“고맙다.”
오상진은 벅차오르는 감정에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오상진에게 김일도 병장이 말했다.
“저희가 준비한 선물도 있습니다.”
“선물?”
“네.”
김일도 병장이 이해진 상병을 봤다. 이해진 상병이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김일도 병장에게 건넸다.
그것을 펼치자 그곳에는 두 개의 다이아가 있는 중위 계급 배지가 있었다.
“이거 참 어렵게 구했습니다. 그래도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서 저희가 직접 중위 배지를 달아 드리고 싶었습니다.”
“야, 이 자식들아…… 계급장은 어떻게 구했어?”
“그래서 고생 좀 했습니다. 그것만 알아주십시오.”
김일도 병장이 말하며 양어깨와 모자에 중위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두 개의 다이아가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김일도 병장이 오상진 앞에 차렷 자세를 섰다.
“소대 차렷!”
척척척척!
소대원들이 일제히 차렷 자세를 취했다.
“소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소대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눈시울이 붉어진 오상진 역시 씩씩하게 경례를 받아줬다.
“충성!”
“바로!”
그리고 오상진이 김일도 병장에게 다가가 살포시 안아주었다.
“고맙다. 너희들 전부 다!”
오늘 이 순간 오상진은 진심으로 회귀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