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42화
32장 할 일을 하자(3)
“그래도 그놈, 군대 가더니 조금은 사람이 된 모양입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최익현 의원이 물었다.
“그런데 오 소위님은 어떻게 군인이 되셨습니까?”
“저는 집안 형편이 별로 안 좋아서 육군사관학교를 간 것입니다. 그리고 왠지 군인이 체질에 맞을 것 같았고요.”
“아, 그랬군요.”
최강희가 불쑥 말했다.
“육군사관학교 성적이 무척 좋으셨더라고요.”
최익현 의원이 최강희를 보았다.
“아, 그래?”
“네. 아버지.”
최익현 의원이 다시 오상진을 봤다.
“그럼 주변에 가깝게 지내시는 분들이 있소?”
최익현 의원의 말은 어느 쪽 라인인지 물어보는 의미였다. 오상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임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그래서 중대장님을 친 형님, 친가족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최익현 의원이 대답을 하면서 슬쩍 최강희를 바라봤다. 최강희가 나직이 말했다.
“김철환 대위라고 육사 56기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라인은 없는 듯합니다.”
“으음.”
최익현 의원이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저런 식으로 대놓고 뒷조사를 하는 것은 기분이 나쁠 일이었다. 그렇지만 오상진은 그러려니 했다. 솔직히 국회의원이 대화를 하려면 그래도 뭔가를 알고 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바쁜 와중에 이런 것까지 알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대신 똑똑한 딸이 옆에서 어드바이스를 해주는 것이었다. 이 정도는 오상진도 충분히 이해를 했다.
“아, 사람 불러 놓고 미안하게 됐소. 내가 사실 오 소위에 대해서 잘 모르오. 그래서 대신 내 딸아이가 알려주는 것이니, 양해 부탁하겠소.”
“괜찮습니다. 나랏일 때문에 바쁘신데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상진의 쿨한 답변에 최익현 의원이 맘에 들었다.
‘후후, 요새 젊은이답지 않군. 뭔 말만 하면 삐딱하게 말하고, 감정적으로 대처하는데 말이야.’
최익현 의원이 멋쩍게 웃었다.
“아무튼 이렇듯 직접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니 반가웠소. 혹시라도 내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시오.”
“예,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최강희가 물었다.
“그런데 이 일이 여기서 더 커지진 않겠죠?”
최익현 의원 얼굴도 살짝 어두워지며 나직이 신음을 내뱉었다.
“흐음…….”
그리고 오상진을 슬쩍 바라봤다. 오상진은 그 눈빛을 보고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사실 회귀를 안 했다면 ‘괜찮을 겁니다’ 이런 말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상진은 중대장도 해보고, 대대장까지 해봤다. 이런 사건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상진이 솔직히 답변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은 참고인으로만 참석해 조사가 진행됐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군대를 제대해도 문제 삼으려면 언제든지 삼을 수 있으니까요.”
“하긴 그렇죠.”
최강희가 답했다. 최익현 의원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의원님은 앞으로 계속 나랏일 활동을 하실 텐데. 의원님 일 하시는 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최익현 의원이 다시 신음 소리를 냈다.
“흐음…….”
오히려 최강희가 나서서 물어봤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제 생각에는 먼저 헌병대에 이 사실을 신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헌병대?”
최익현 의원이 조용히 있다가 눈을 크게 떴다.
“너무 긁어 부스럼이지 않나?”
“물론 헌병대에서 이 사건을 인지하면 사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역으로 이런 얘기들이 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강철 이병이 마약 검사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무엇보다 최초신고자라는 것을 알아 두시면 괜찮을 겁니다. 어쨌든 경찰에서도 이런 점 때문에 참고인 조사를 한 것이고 말입니다. 다만, 그쪽 사람들이 말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니까, 안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솔직하게 말했다. 최익현 의원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마도 현직 의원 아들이 마약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사건의 진실과 무관하게 말입니다. 이 일을 수습한다고 해서 100% 묻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증거를 확실히 마련해 놓는 것이 어떨까요?”
“그러니까, 오 소위 말은 그때를 대비해 미리미리 조사를 해놓자 이 말이오?”
“네. 문제가 안 된다면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고. 물론 문제가 안 되길 빌어야겠지만. 만약 된다고 한다면 확실하게 끝난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그걸로 문제 삼지 않게 말이죠.”
오상진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최익현 의원이 오상진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잠깐 생각을 하던 최익현 의원은 오상진의 방법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히 드러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네. 문제가 생겨서, 억울함을 밝혀내려고 해도 담당자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사건에 대해서 옹호해 줄지도 장담 못 합니다. 아예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더 어려워질지도 모르죠.”
오상진이 현실적으로 대답했다. 막말로 이강진 팀장도 특수수사본부가 생기고, 첫 번째 맡았던 수사다. 하지만 10년이 지나서 그 사건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하면 솔직히 쉽지 않을 것이다. 증인과 증거들까지 오래되어서 제대로 안 될지도 몰랐다. 오상진은 그런 점을 말하는 것이었다.
최익현 의원이 곰곰이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어.”
최강희가 다시 끼어들며 말했다.
“그러면 혹시 헌병대에 아는 분이 계십니까?”
“네, 한 분 계시는데 올곧은 분이십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드린 것은 제 판단입니다. 아무래도 의원님께서 한번 만나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직접 말이오?”
최익현 의원이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한마디로 ‘내가 이런 일까지 굳이 나서야 하나?’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상진 생각을 달랐다.
“아무래도 강철이가 저희 소대원으로서, 강철이를 믿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혹시라도 몇 년이 지나서 이 일을 거론했을 때 저는 당당히 말할 것입니다. 최강철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대답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제가 믿고 있고, 좋은 분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이 직접 만나 뵙고, 그 사람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솔직히 이 일은 제 선에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 소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소.”
최익현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상진이 의도하는 바는 이랬다.
지금 소개시켜 주려는 그 사람이 현재는 관심이 없더라도, 몇 년 후에 정치적인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그때가 되어서 최익현 의원을 도와줄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다시 정확히 말을 하면 임 소령이 지금은 좋은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몇 년이 지나고 나서도 지금 같을지는 장담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나서도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으려면 오상진보다는 최익현 의원과 친분을 다져 놓는 것이 좋겠다는 의도였다.
최익현 의원 역시도 오상진의 의도를 알아들었다.
“후후후, 젊은 소위가 생각하는 것이 깊소.”
“과찬이십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차차 얘기하도록 하고, 우리 후식도 먹어야 하지 않겠소?”
“네.”
“강희야.”
“네. 후식 들이라고 할게요.”
최강희가 바로 움직였다. 그렇게 오상진은 후식까지 먹은 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그 자리에는 최익현 의원과 최강희만 남았다. 최강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요?”
“임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소위라고 해서 약간 생각을 미뤘는데, 얘기를 하다 보니 젊은 친구답지 않아서 좋더구나. 저런 친구들이 군에서 성장해 줘야 하는데……. 아직까지 군에는 고인물들이 차고 넘치니…….”
최강희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버지가 도와주시면 되죠.”
“내가? 허허허……. 저 친구가 내가 도움을 준다고 해서 받을 친구로 보였어?”
“아버지가 사리사욕을 목적으로 도움을 준다면 거절을 하겠지만 그저 순수한 뜻으로, 젊은 친구가 자기의 뜻을 발휘할 수 있게 징검다리 역할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한다면 또 모르죠, 흔쾌히 받을지.”
“흠…….”
최익현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강철이 도와줬다는 친구 말이다.”
“아, 그 여자요?”
“그래. 그 친구는 어때?”
“그렇지 않아도 알아봤는데요. 소속사랑 문제가 있나 봐요. 이 문제로 계약해지를 하려는데 잘 안 되나 봐요.”
“그 소속사가 어디라고 했지?”
“왜요? 아버지가 직접 나서시게요?”
“이런 일로 국회의원인 내가 나설 수가 있나. 하지만 계약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최강희가 히죽 웃었다.
“그래요. 아버지가 거기까지만 해주시면 뒤의 문제는 제가 조용히 처리할게요.”
“그래, 부탁한다.”
“네, 알겠어요. 아버지.”
“자, 우리도 그만 집에 가자꾸나.”
“네.”
“그보다 너희 어머니는 왜 이렇게 바쁘다니? 얼굴 볼 수가 없어.”
최익현 의원의 투덜거림에 최강희가 웃어 보였다.
“제가 보기에는 아버지가 더 바쁘신 것 같은데요.”
“내가 바쁘긴 하지만 꼬박꼬박 집에는 들어가잖니. 그런데 네 엄마는 무슨 출장이…….”
“그게 다 아버지 잘되라고 엄마가 발로 뛰어다니시는 거잖아요.”
“그래?”
“그럼요. 나중에 엄마 다리라도 주물러 주세요.”
“으음, 그래야겠구나.”
최익현 의원이 세단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강희야.”
“네?”
“정말 관심이 없냐?”
“뭐가 말이에요?”
“오 소위 말이야. 보면 볼수록 괜찮단 말이지.”
“아버지! 여자 친구 있다고 하잖아요.”
최강희가 버럭 했다.
“인마,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네가 맘에 있다면 이 애비가 힘 좀 쓰고.”
“됐거든요. 전 연하는 관심 없어요. 게다가 군인은 더욱더요!”
“그래? 아쉽네…….”
최익현 의원은 정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최강희가 눈을 흘겼다.
“아까도 그러시더니!”
“아쉬워서 그러지, 인마. 그보다 같이 타고 갈래?”
“아뇨, 제 차 가져왔어요. 집에서 봬요.”
“알았다. 운전 조심하고!”
“네.”
최익현 의원이 차에 타고 출발을 했다. 최강희 의원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최강희 역시도 자신의 차로 갔다. 붉은색 중형 세단이었다. 게다가 국산차였다. 최강희 정도의 재력이라면 충분히 외제차를 끌고 다닐 만했지만 최강희는 그러지 않았다.
한편, 그 시각 오상진은 큰 도로변으로 나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
“택시! 택시…….”
하지만 택시는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투덜거렸다.
“이왕 태워줬으면 다시 부대까지 태워주지.”
오늘따라 유난히 택시가 잡히지 않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