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39화
31장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21)
‘원래 떡볶이집도 거의 반값이나 마찬가지인데……. 여기만 돈을 다 받는 것도 그렇고. 물론 계약 조건은 비밀이지만…….’
오상진은 고민을 했다. 막말로 떡볶이집이야 미래를 알기 때문에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 것이었다.
이내 생각을 마친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하시죠.”
“감사합니다, 사장님.”
조광철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부동산 사장도 밝아진 얼굴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럼 계약서를 작성하시죠.”
계약서를 본 조광철이 깜짝 놀라며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아, 죄송합니다. 명함이 있는데 제가 드리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조광철이 황급히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오상진이 명함을 받아 확인했다.
‘튼튼이 치과?’
오상진은 치과 상호를 확인하더니 눈을 커졌다.
‘가만 여기는…….’
이 순간 오상진의 머릿속에서 어떤 기사가 떠올랐다.
회귀하기 전, 대대적인 치과 사기 사건이 있었다.
튼튼이 치과라고 하는 곳에서 저렴한 가격의 교정으로 사람들을 모은 다음에 먼저 선불금을 당겨 받고, 수익이 안 나온다며 폐업을 하는 사기 사건이었다.
튼튼이 치과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기 행각을 벌였기에 전국적으로 피해자가 발생했고, 그 수만 해도 수백 명이었다.
결국 수사기관의 끈질긴 추적으로 다섯 번째 사기 행각이 이뤄질 때 덜미를 잡혔다. 그때 피해자 중 부하장교의 아내도 있어서 오상진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사건이었다.
‘가만 어쩌면 내 빌딩에서 사기를 시작할 수 있겠구나.’
오상진은 그다음 일을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사기를 치고 가게가 나간 후 한동안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고, 빌딩 이미지 역시 좋지 않게 될 것이다. ‘저기 사기 친 치과가 있던 자리라면서’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누가 그 공간에 들어오려고 할까? 언제 누가 해코지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어쨌든 세입자 하나 잘못 받으면 많이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물론 지금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회귀 전에는 그랬으니까.’
오상진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잠시만요.”
“네?”
부동산 사장이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장님은 잠시 저 좀 보시죠.”
부동산 사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상진이 나가고 그 뒤로 부동산 사장이 일어났다. 밖으로 나간 두 사람이 잠깐 얘기를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부동산 사장이 물었다.
“사장님께 긴히 물어볼 것이 있었어요.”
“네. 물어보십시오.”
“저 사람 어떻게 알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음, 제가 듣기로는 소개를 받고 왔다고 하던데요.”
“소개요? 누구 소개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상어떡볶이 임대가 저렴하다는 소식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아, 그래요? 제가 소문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그러자 부동산 사장이 손을 흔들었다.
“아, 저는 절대 말한 적 없습니다.”
“그럼 상어떡볶이 쪽에서 나온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바닥의 소문이 좀 빠른 편입니다. 어쩌면 어디서 새는 소문을 들어서 알고 왔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남양주 쪽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거기서 완전 반대편이 이곳까지 온 것이죠?”
“그게…… 본인 말로는 의료과실이 좀 있어서 트러블이 있었다고……. 아, 사실 이 말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부동산 사장이 난감해했다.
“트러블이요?”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네. 교정 치료하는 과정에서 뭔가 컴플레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 사장은 치료를 해준다고 해도, 계속해서 찾아와 장사를 방해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네.”
오상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오상진이 생각하는 그 사기 사건을 떼놓고 생각한다면 꽤 그럴듯한 이유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세입자로 들이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상진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저분은 저희 건물 세입자로는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임대료 때문입니까?”
“아뇨, 임대료 문제가 아니라 말씀해 주신 얘기도 그렇고. 솔직히 먼 지역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 신경이 쓰입니다. 아니, 솔직히 께름칙합니다.”
그렇다고 오상진이 솔직히 ‘저놈은 교정 사기를 치는 놈입니다, 그래서 못 받겠습니다’라고 솔직히 말할 수는 없었다.
뭐, 그런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동산 사장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건물주가 갑이었다.
“아, 그러십니까?”
부동산 사장은 약간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손쉽게 계약을 한 뒤 통장에 입금될 수수료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사장은 자기 앞으로 떨어졌을 수수료를 생각하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다른 부동산을 통해 계약을 진행할 오상진은 아니었다. 단지, 수수료를 늦게 받을 뿐이었다. 부동산 사장은 아쉬운 표정을 얼른 감추고 오상진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께서 그리 말씀을 하시면 제가 잘 말씀드려서 돌려보내겠습니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네, 걱정 마세요. 제가 하는 일이 이런 건데요.”
“어떤 식으로 말씀을 하실 겁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부동산 사장이 잠깐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럴 때는 그냥 3층을 통째로 임대하기를 원한다고 하십시오. 제가 봤을 때 임대료를 낮추려고 하는 거로 봐서는 그 정도는 여력이 안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본인이 포기할 것입니다.”
오상진이 살짝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면 너무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세를 어떻게 주든 건물주 마음인데요. 치사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하긴 그렇죠.”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눈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오상진이 조광철에게 말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계약서를 보니 조광철은 이미 사인을 마친 상태였다. 오상진의 사인만 남아 있었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3층을 통째로 임대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쪼개서 하기에는 제가 성에 안 찰 것 같습니다. 애당초 3층 자체를 병원에 주고 싶었습니다.”
조광철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 그러십니까?”
“만약에 저희가 3층을 다 쓴다고 하면 제가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임대료 부분에 대해서 낮춰드리겠습니다.”
“얼마나 가능하십니까?”
그러자 부동산 사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원래 기준대로 하면 육백만 원 정도인데, 여기서 할인을 하면 사백에서 오백 사이에서 조율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부동산 사장의 말을 들은 조광철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자신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싼 금액이었다.
현재 그만큼 낼 여력도 없을뿐더러 보증금 역시도 배로 뛰었다. 오상진은 조광철의 표정을 보고 느낌이 왔다.
“아, 그건 제가 생각해 보지를 않아서……. 만약 그런 조건이었다면 이렇게 찾아뵙지는 않았을 텐데요. 저도 처음에 구상한 것이 있어서요.”
“아, 그러시구나. 저희는 3층을 통째로 임대를 줄 생각이라서요. 아무래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조율이 안 된 것 같습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알겠습니다.”
조광철이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면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한소희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바로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오상진에게 뜻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다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과 한소희가 부동산 사장과 인사를 나눈 후 한울건물로 돌아왔다. 일단 신순애 가게엔 들르지 않고 바로 5층으로 올라갔다. 자신들의 방으로 온 한소희가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
“상진 씨, 아까 왜 계약을 안 했어요? 치과면 괜찮은 것 같았는데…….”
“사실 제가 걸리는 것이 하나 있어서 그랬어요.”
“걸리는 거? 그게 뭔데요?”
한소희가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너무 지역이 멀지 않아요? 남양주에 있다가 거의 반대편인 화곡동까지 온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아요. 치료받던 손님들을 생각한다면 그 근처로 이전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말이죠. 너무 멀리 왔어요. 이 부분이 조금 찜찜해요. 그래서 아까 부동산 사장을 제가 따로 불렀잖아요. 그때 의료과실이 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 그래요? 조금 전 봤을 땐 전혀 그렇게 생기지 않았던데요, 그분. 환자들을 위하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거야, 저희가 일일이 알 수가 없는데 부동산 사장님 말씀은 그렇고. 저는 왠지 그 일로 인해서 우리 건물에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계약을 안 한 거예요. 제가 너무 치사한가요?”
오상진이 한소희에게 물었다.
“그게 뭐가 치사해요. 당연히 세입자는 가려서 받아야죠.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는데, 그런 얘기까지 듣고 받았다가 잘못이 생기면 큰일이죠. 마음 같아서는 뒷조사까지 다 했으면 좋겠지만…… 만약에 소문이 안 좋게 났다면 안 받는 게 맞는 거예요. 우리도 세를 받는 입장인데 좋은 세입자가 들어와 장사가 잘되어야지 모두가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 세입자 때문에 다른 세입자까지 장사가 안되면 우리의 선택으로 인해 피해를 주는 것이 되는 거잖아요.”
“하긴. 소희 씨 말이 맞아요.”
“아무튼 상진 씨, 잘한 거예요. 그보다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지?”
한소희가 팔짱을 끼며 한소리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오상진이 냉장고로 가서 물을 꺼냈다.
“소희 씨, 물 줄까요?”
“아뇨. 괜찮아요.”
오상진은 물 한 잔을 마신 후 물었다.
“그럼 우리 뭐 할까요?”
한소희가 잠시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리모콘을 가지고 왔다.
“상진 씨, 상진 씨! 제가 준비한 것이 있거든요.”
“준비요? 뭔데요?”
한소희가 씨익 웃으며 리모컨을 눌렀다. 한쪽 벽에서 뭔가 ‘지잉’ 하면서 내려왔다.
“짜잔! 상진 씨 이거 봤어요? 이게 바로 빔프로젝터라는 건데요. 여기 소파에 앉아서 영화도 보고, TV도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알아봤는데요. 이걸로 영화를 보잖아요. 진짜 영화관에서 보는 것 같대요.”
“아, 그래요?”
오상진은 빔프로젝터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오상진도 다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는 소형으로도 나온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이 시절에는 보기 드문 물건이었다.
한소희가 자신만만한 눈빛으로 말했다.
“한번 볼래요?”
“그래요.”
한소희가 리모컨으로 막 설명을 해줬다. 그런 한소희를 보며 오상진은 짐짓 모르는 척 말했다.
“와, 우리 소희 씨 대단한데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어요?”
“그렇죠? 제가 이런 여자예요.”
오상진은 이런 한소희의 행동이 너무 귀여웠다. 한소희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우리 영화 봐요.”
“좋아요.”
오상진이 한소희 옆에 앉았다. 그렇게 둘이 오붓하게 영화를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