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31화
31장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13)
“잠깐 스톱! 말하지 마. 뭐야? 내가 들어서는 안 될 얘기야?”
“그게 말입니다.”
“아니야, 됐어! 말하지 마. 나 안 들을래.”
김철환 1중대장이 허둥지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술을 단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냥 나 집에 가련다.”
“중대장님.”
오상진은 조금 진지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김철환 1중대장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하아…… 상진아. 이번에는 또 뭔데. 무슨 사고가 터졌는데…….”
김철환 1중대장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 오상진이 일을 잘 해결한다 해도 뒷수습과 마무리는 김철환 1중대장의 몫이었다.
“사고가 터질 뻔했습니다.”
“뭐?”
“일단 술 한잔 받으십시오.”
오상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술병을 내밀었다. 김철환 1중대장은 술잔을 내밀었다.
“그래, 알았어. 뭔데? 말해봐!”
“수습은 다 되었습니다. 그저 중대장님께서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 수습이 되었어?”
“네.”
“오케이, 알았어. 말해봐. 중대장은 맘의 준비가 되었어.”
김철환 1중대장은 진지한 얼굴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상진은 차분하게 최강철 이병에 대해서 얘기했다.
얘기가 끝났을 때 김철환 1중대장은 빈 술잔을 들어 올렸다.
“따라!”
“네.”
오상진이 가득 따라 주었다. 그것을 단번에 들이킨 김철환 1중대장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한 잔 더!”
김철환 1중대장은 연거푸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리고 술잔을 내려놓은 후 푸념을 했다.
“와, 진짜 올해 마가 끼었나. 정말 굿판을 벌여야 하는 거야? 뭐 하나 떠나면 또 하나가 오고. 나 이러다가 진짜 옷 벗는 거 아니야?”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래서 별문제는 없는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의 물음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참고인 조사는 마쳤고. 경찰에서도 딱히 헌병대에 알릴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강철이가 마약을 한 것도 아니고, 신고자라며. 그럼 다 한 거지. 그런데 걔네 집에서는 뭐라고 안 해?”
“강철이 집 말입니까?”
“그래, 강철이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잖아.”
“그렇지 않아도 그쪽 집안에서 나섰던 것 같습니다.”
“나섰어? 그럼 외압 소리 듣고 그러는 거 아니야?”
“에이, 그쪽에서 그리 생각 없이 나서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아시지 않습니까. 이강진 팀장님이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에 강철이가 마약을 했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해진이 후임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철저히 조사한 거야?”
“예!”
“그럼 아무 문제 없었던 거야?”
“네.”
“그럼 다행이다. 다행이야. 이 일이 잘 마무리되어야 할 텐데. 별문제 없이 말이야.”
“별문제 없도록 해야죠. 그래서 만에 하나를 위해서 중대장님께 보고를 드리는 겁니다.”
“그래, 잘했다. 그런데 이거…… 대대장님께 말씀을 드려야 하나?”
김철환 1중대장이 잠깐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일단은 나까지만 알고 있자.”
“네.”
오상진도 내심 김철환 1중대장만 알고 있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삼겹살 탄다.”
“아, 네에.”
“에이. 탄 거 먹으면 암 걸리는데.”
“그거 저 주십시오.”
“됐어, 인마.”
그렇게 오랜만에 두 사람의 술자리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18.
관사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하던 오상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강철이는 뭐 하고 있으려나.”
오상진은 휴가를 나간 최강철 이병이 그날 이후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최강철 이병의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최강철 이병이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강철아.”
-충성. 네, 소대장님.
“주말인데 뭐하냐?”
-저 지금 집에 있습니다.
“집에 있어? 휴가인데 나가 놀지 않고.
-저 지금 집에서 근신 중입니다.
“왜? 아버지에게 혼났어?”
-예.
“그래? 그래도 좀 놀아야지.”
-그게, 다 뺏겼습니다.
“뭘 뺏겨?”
-카드고, 차 키고, 전부 다 뺏겼습니다.
“돈이 없어서 놀지 못하는 거야?”
-네.
“자식아, 어쩌다가 그랬니.”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소대장에게 죄송할 것이 뭐가 있냐. 일이 그렇게 된 건데. 그건 그러고 정 놀 사람이 없으면 소대장이 놀아줄까?”
-아닙니다. 소대장님도 데이트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네, 전 집에서 그동안 못 봤던 영화나 볼 생각입니다.
“알았다. 푹 쉬어라.
-충성, 데이트 잘하십시오.
“오냐.”
오상진이 휴대폰을 끊었다. 준비를 다 마친 오상진이 관사를 나왔다.
“슬슬 집에 가 볼까?”
오상진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한소희의 학교로 갔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자 한소희가 저 멀리서 뛰어왔다. 곧바로 조수석에 올라타며 말했다.
“오래 기다렸어요?”
“아뇨. 오래 안 기다렸어요. 한 30분쯤?”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30분이면 오래 기다렸네. 전화하지 그랬어요.”
“소희 씨는 제시간에 나왔어요. 제가 좀 일찍 왔는데요.”
한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만 봐도 조금 기다렸던 것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상진 씨, 오늘 저 어때요?”
한소희가 자세를 바로 하고 자신의 옷차림을 물었다. 오상진이 위아래로 훑었다.
“와우, 정말 예쁜데요.”
“어른들이 좋아하실까요?”
“으음, 네. 워낙에 소희 씨가 예쁘니까요.”
오상진의 말에 한소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면 안 되는데……. 어머님이 좋아하셔야 하는데.”
한소희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오상진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저희 어머니가 충분히 좋아하실 겁니다.”
“칫! 그건 모르죠. 그래도 어머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셔야 할 텐데…….”
오상진은 한소희가 잔뜩 긴장한 채 숨을 크게 내쉬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어쨌든 한소희는 정식으로 오상진 어머니를 만나는 날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다.
“괜찮아요. 분명 우리 어머니께서 소희 씨 맘에 들어 하실 겁니다.”
“네…….”
신순애 여사의 가게 오픈 일이 가까워지면서 한소희와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
며칠 전에도 전화통화를 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상진 씨, 언제 어머니 소개시켜 줄 거예요?
“우리 어머니 보고 싶으세요?”
-당연하죠. 5층에 제 작업방 생기는데 갈 때마다 어쩌면 어머니랑 얼굴 마주칠지 모르는데 모른 체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벌써부터 우리 엄마랑 인사를 하고 그러면 불편하지 않으세요?”
-뭐가 불편해요.
“그게 말이죠. TV에서 그러던데 고부갈등 얘기도 나오고…….”
오상진이 우물쭈물 말을 하자 수화기 너머 한소희가 ‘풉’ 하고 웃었다.
-벌써 고부 사이가 된 거예요? 저하고, 어머니가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상진 씨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겠는데요. 그렇다고 상진 씨 어머니인 줄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은 예의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우리 정면 돌파해요.
“그럴까요? 그럼 이번 주에 만날까요?”
-이렇게 빨리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면 다음에 보고요.”
-아니에요. 봐요!
“그래요. 그럼 이번 주에 봐요.”
이렇게 해서 얘기가 되었던 것이었다.
오상진은 운전을 하면서 힐끔 조수석에 앉은 한소희를 봤다.
한소희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연신 숨을 길게 내리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워 보였다.
‘오늘은 진짜 참하고 예쁘게 꾸미고 왔네.’
오상진은 오늘따라 입가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19.
신순애는 가게 오픈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물자 들어온 것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신순애는 예전에 같이 일했던 최말숙와 함께 부엌을 정리하고 있었다.
“언니 가게 진짜 좋다.”
그 모습을 보던 신순애가 말했다.
“그만 닦고 이리 와서 좀 쉬어. 말숙아.”
“괜찮아. 언니 가게 생겼다고 하니까 신기하고 좋다.”
“그래?”
신순애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사실 최말숙은 일전의 ‘그’ 가게에서 토사구팽을 당했다. 신순애를 설득하는 것에 실패한 사장이 가차 없이 최말숙을 잘라 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숨긴 채 전전긍긍하던 최말숙은 신순애가 새로 가게를 차린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도움을 요청했고 신순애는 그런 최말숙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종업원으로 받아 주었다.
“와, 언니 진짜 대단하다. 난 그때 나가면서 식당 차린다고 했을 때 장난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진짜 가게를 차렸어. 언니, 정말 대단해.”
“우리 아들이 힘 좀 써 줬어.”
신순애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최말숙을 부러운 눈이 되었다.
“좋겠다, 언니! 그런데 언니 아들이 돈 많이 버나 보네.”
“그렇지.”
“대체 뭘 해서 돈을 번 거래?”
“그냥 뭐. 이것저것.”
“그럼 나중에 돈 더 벌면 이 빌딩도 사라고 해. 그럼 편하게 장사할 수 있고 좋잖아.”
“호호. 그럴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최말숙에게 신순애는 차마 이 건물이 아들 거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거기 식당은 잘 돼?”
“잘 되겠어? 언니 나가고 난 후에 음식 맛 개판이라고 손님들 다 떨어져 나가고 난리도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언니에게 전화하니 마니 하고 있던데. 그리고 틈만 나면 언니 때문이라고 막 그러더라.”
신순애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지.”
“언니는 속도 좋아. 솔직히 말해서 사장이 잘못한 거지. 언니가 뭘 잘못했어. 막말로 아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대우를 받았다면 나 같아도 화가 났겠다.”
“다 지나간 얘기야.”
“그건 그렇고, 언니는 아들 하나는 정말 잘 뒀다.”
“뭘, 우리 아들이 워낙에 성실하고 효자라서 그렇지. 어미가 되어서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데…….”
신순애는 괜히 걸레로 테이블을 닦았다.
“그런데 너 여기서 일한다고 사장님이 뭐라고 안 하시겠지?”
“퇴직금도 못 받고 잘렸는데 뭘. 설마 여기서 일하는 거로 뭐라고 할까?”
“하긴. 그것도 좀 웃기겠다.”
신순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왜 일어나?”
“아, 부엌에 잠깐 확인할 것이 있었어.”
“그래. 그럼 난 테이블마저 정리할게.”
“그래.”
신순애가 부엌으로 가고, 최말숙은 걸레로 테이블을 다시 닦았다.
그때 가게 자동문이 열렸다. 최말숙은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저희 아직 장사 안 하…… 는데.”
최말숙이 가만히 오상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표정이 환해지며 말했다. 언제가 오상진의 얼굴을 본 기억이 있었다.
“혹시…… 언니 아드님, 맞죠?”
“아, 네에. 안녕하세요. 어머니 안 계시나요?”
“언니는 지금 부엌에…….”
최말숙이 부엌을 가리키는데 그곳에서 신순애가 손의 물기를 닦으며 나왔다. 그러다가 오상진을 발견하고 표정이 환해졌다.
“어머, 우리 아들 왔니?”
신순애 옆으로 최말숙이 다가왔다.
“언니, 아들 맞지?”
“응, 맞아. 우리 큰아들.”
“야,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까, 너무 잘생겼다.”
최말숙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누구…….”
오상진이 말을 하면서 신순애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