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30화
31장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12)
사실 강인한 상병은 중대장에게 분대장 신고식을 한 후 오상진과 함께 행정반에 들렀다.
“이야, 어깨 견장 멋지다.”
“솔직히 좀 무겁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 푸른 견장의 무게는 예전 병사였을 때와는 달라. 이제 넌 한 분대를 책임지는 분대장이야.”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봉투 하나를 꺼냈다.
“이거 받아.”
“이게 뭡니까?”
“얼마 아니지만 그냥 넣어둬.”
순간 강인한 상병이 당황했다.
“어어…… 안 주셔도 됩니다.”
“야, 분대장 되었으면 애들이랑 분위기상 회식도 하고 그래야지. 너 모아둔 돈 없잖아.”
“그래도 이 돈을 받는 건 좀…….”
강인한 상병이 살짝 난색을 표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억지로 봉투를 쥐여주었다.
“괜찮아. 인마. 네가 나 때문에 고생한 것도 있고. 나도 너에게 큰 짐을 짊어지게 한 것 같아 미안한 것도 있어. 그러니 받아둬.”
“그, 그래도 됩니까?”
강인한 상병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 괜찮아. 아직은 내가 네 소대장이야. 다음 소대장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내가 소대장이야. 그러니 내 말 들어!”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자식! 진짜 열심히 하라고 주는 거야. 널 믿으니까.”
“네!”
강인한 상병이 씨익 웃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강인한 상병은 아까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우측 건빵주머니로 손이 갔다. 그곳을 툭툭 건드리며 봉투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잠시 고민하던 강인한 상병은 몸을 돌려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아니다. 굳이 저녁밥 먹을 필요 있냐? 그냥 바로 가자!”
강인한 상병은 십만 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들고 있었다. 어차피 할 회식이었다. 이럴 때 생색을 확실히 낼 생각이었다.
“우오오오오, 진심입니까?”
“그래! 오늘 저녁은 PX다!”
“와, 강인한 상병님 대범한 것 좀 봐!”
“확실히 누구랑은 달라!”
“물론이지 말입니다. 감히 어떻게 비교가 됩니까.”
2소대에서 뜻하지 않은 환호성이 들렸다. 그때 바로 옆 소대인 1소대의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야?”
“2소대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무래도 오늘 박대기 상병이 영창을 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다.”
“뭐? 이 자식들이 뭐가 그리 좋은 일이라고…….”
김일도 병장이 발끈했지만 김우진 상병이 바로 막았다.
“에이, 우리도 한때는 그런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 때 말입니다.”
김우진 상병의 말에 김일도 병장이 움찔했다.
“그, 그래도 말이야. 고참이 영창을 갔는데 저렇게 좋아하면 안 되지.”
“어쩝니까, 2소대는 이제 파라다이스일 텐데 말입니다.”
“파라다이스는 개뿔!”
“그래도 무슨 좋은 일이 있긴 한가 봅니다. 애들 시켜서 한번 알아봅니까?”
“그래.”
김우진 상병이 구진모 일병을 봤다.
“진모야. 2소대에 좀 갔다 와라. 뭐가 저리 좋아서 소리치는지.”
“일병 구진모. 네, 알겠습니다.”
구진모 일병이 2소대로 갔다. 잠시 후 구진모 일병이 돌아오며 살짝 인상을 썼다.
“왜? 무슨 일인데.”
“강인한 상병이 분대장 달았다고 오늘 PX 털러 간답니다.”
“어, 그래?”
“이야, 좋겠다. 2소대는.”
“원래 분대장 되고 막 그러면 회식을 하고 그러는구나.”
김일도 병장이 민망했던지 입을 열었다.
“야야,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나도 종종 사 주고 그러잖아.”
“네, 그랬죠. 우리가 김 병장님께 얻어먹었던 적이 언제였지?”
“글쎄 말입니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괜히 발끈했다.
“와, 이 자식들. 너무하네!”
그러거나 말거나 소대원들은 투덜거렸다. 김일도 병장이 안 되겠는지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참, 해진아.”
“상병 이해진.”
“강철이는 언제 복귀냐?”
“아직 복귀하려면 멀었습니다.”
“아, 갑자기 강철이가 보고 싶네.”
김일도 병장의 중얼거림을 듣고, 이해진 상병이 말했다.
“김 병장님.”
“응?”
“왜 말을 돌리십니까?”
“돌리긴 뭘 돌려.”
“아니, 분대장님도 한번 쏘셔야 하지 않습니까. 분대장 단 지 한참 되지 않으셨습니까?”
“와, 해진이 너까지 이러냐.”
“에이,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좀 쏘시죠.”
“알았다. 알았어. 징한 녀석들. 음료수 쏘면 되지?”
“고작 음료수 말입니까?”
“야, 나 돈 없어!”
“그동안 월급 탄 거 어디 뒀습니까?”
“이 자식들이 해도 해도 너무하네.”
김일도 병장이 곧바로 인상을 썼다. 그러자 눈치가 빠른 김우진 상병이 바로 말했다.
“하긴 분대장 단 지도 오래되었는데 음료수도 괜찮지. 안 그러냐?”
“네. 그렇습니다.”
“음료수도 충분하지 말입니다.”
소대원들이 바로 말을 바꾸자, 할 말이 없어진 김일도 병장이었다.
17.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과 박중근 하사, 2소대 김 하사도 함께 오랜만에 삼겹살집에 들렀다.
“자, 받아.”
김철환 1중대장이 술병을 들고 부소대장들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다들 힘들었지? 고생했다. 그래도 이렇게 수습이 된 것이 어디냐. 앞으로 잘해보자.”
김철환 1중대장의 한마디에 김 하사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제가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됐어! 장재일 그 자식은 내 말도 잘 안 들었는데 너라고 답이 있었겠냐. 그래도 김 하사도 계속 이런 식이면 좋지 않아. 중대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네, 압니다.”
“그게 평판이 다 쌓이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상사까지는 달아야지. 안 그래?”
김 하사가 움찔하며 다시 한번 말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이번에는 박중근 하사에게 시선이 갔다.
“박 하사는 어때?”
“소대장님 없어서 죽을 맛입니다.”
“그래? 힘들어서?”
“아뇨, 외로워서요.”
옆에서 삼겹살을 먹고 있던 오상진이 ‘풉’ 하며 입에 있는 걸 뿜어버렸다.
“야, 인마! 더럽게!”
“죄송합니다.”
오상진이 당황하며 주변을 정리했다. 그러다가 박중근 하사를 바라봤다.
“외로웠습니까?”
“네, 많이요.”
그 모습을 보던 김철환 1중대장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쭈! 둘이 아주 잘 놀아. 갑자기 서운해지려고 하네.”
그러자 오상진이 나섰다.
“에이, 중대장님 또 왜 그러십니까. 술 한잔 받으십시오.”
오상진이 곧바로 술을 따라 주었다. 술을 받으며 김철환 1중대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상진아, 너도 고생이 많았다. 너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
“왜 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야, 아니야.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사실 오늘 대대장님께 보고 드리러 갔는데. 대대장님께서 또 그런 소리를 하더라. ‘오상진 아니었으면……’ 이런 소리를 하시더라.”
“에이, 중대장님 농담도 잘하십니다.”
“농담이 아니야. 인마! 진짜로 그러셨어. 솔직히 나도 예전에 그런 소리를 들었다면 서운했겠지만, 요새는 진짜 네 덕을 많이 본다. 내가 무슨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왜 이렇게 네가 고마운지 모르겠다.”
김철환 1중대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오상진도 멋쩍게 웃어 보였다.
‘중대장님께서는 예전 저의 인생을 구해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이제 갚는 겁니다.’
오상진이 속으로 말했다. 오상진의 심정은 그저 김철환 1중대장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것이 다였다. 그 생각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이렇듯 칭찬까지 듣게 되는 날이 와버렸다. 오상진은 스스로를 뿌듯하게 생각했다.
“자, 아무튼 건배하자!”
“네. 건배!”
오상진이 술잔을 들었다. 두 하사도 술잔을 들어 부딪쳤다. 모두 한입에 털어 넣은 후 김철환 1중대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튼 부소대장들! 잘합시다. 이 중대장 좀 도와줘.”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1차로 술을 먹고 난 후 부소대장들은 먼저 귀가를 했다. 술집에는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만 남았다. 어쨌든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을 책임지고 집에 모셔다드려야 했다.
“요새 어떠십니까?”
오상진이 물었다. 김철환 1중대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떠냐고? 좋지. 우리 처제가 합숙소에 들어가서 네 형수랑 새로운 신혼 재미에 빠졌잖아. 요새 분위기가 너무 좋아.”
“그렇게 좋습니까?”
“좋지!”
“어쩐지 요새 얼굴이…….”
김철환 1중대장이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물었다.
“많이 좋아 보이냐?”
“아뇨, 많이 수척해지셨습니다.”
“자식이…… 그런 너는? 여자 친구랑 잘 만나고 있냐?”
“잘 만나고 있습니다.”
“만날 시간은 있고? 만날 군대에 있더만.”
“그러긴 합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제가 군인이지 않습니까.”
“여자 친구가 뭐라고 안 그래?”
“이해해 주려고 노력 중이라고 합니다.”
“좋은 여자네. 그보다 한번 오라고 해. 중대장도 얼굴 좀 보게.”
“예,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2소대장은 언제 옵니까?”
“아이고, 상진아. 아직 밥도 안 지었다. 안 지었어. 쌀도 안 안쳤는데 벌써부터 밥 타령이야.”
“죄송합니다.”
“왜? 그렇게 2소대가 싫어?”
“2소대가 싫은 것보다도 2소대 애들 보면 우리 1소대 애들 얼굴이 생각납니다. 어쩌다 보니까 제가 2소대를 맡긴 했지만 제 새끼들도 챙겨야 하지 않습니까.”
“박 하사가 열심히 하잖아.”
“박 하사가 열심히 해도 제가 소대장으로서 해야 할 몫이 있지 않습니까.”
“하긴 네 말도 맞다. 이게 다 부족한 중대장의 잘못이다.”
“왜 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술 한잔 받으십시오.”
오상진이 술병을 들어 김철환 1중대장의 잔에 술을 채웠다. 곧바로 술잔을 비우고, 오상진이 또 잔을 채웠다.
“상진아.”
“네?”
“서운하냐?”
“뭐가 말입니까?”
“박대기 상병 말이야. 전출 못 보낸 거.”
“이해합니다.”
“그래, 이해해 주라. 군대라는 것이 X같잖아. 나라고 안 보내고 싶겠니, 그런 애들! 그런데 그 녀석을 받는 부대는 무슨 잘못이야. 박대기 상병을 평생 영창에 박아놓을 수도 없고 말이지. 결국 영창 다녀와서 보내면 그 쓰레기 같은 놈을 받은 다른 부대가 고생하는 거 아냐. 만날 문제 생기면 전출 보내고 그런 식으로 돌리고, 돌리면 이놈의 군대가 시한폭탄 같잖아.”
“네, 맞는 말씀입니다.”
“분대장도 내려놓게 했으니, 영창 다녀오면 잘하겠지. 제대로 정신이 박혀 있다면 말이야.”
“네.”
“그래도 만약에 박대기 상병이 또 사고를 치면 그때는 책임지고…….”
“전출 보내실 겁니까?”
오상진이 바로 말을 자르며 물었다.
“아니, 만창 보낼게.”
“이번에도 만창이지 말입니다.”
“아, 그랬나? 야, 나 좀 봐주라. 부대 사고 터져서 대대장실에 찾아가는 것도 죽을 맛이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술을 기울였다. 그때 김철환 1중대장이 불쑥 물었다.
“그보다 1소대는 문제없지?”
순간 오상진이 움찔했다. 이번 건과 달리 최강철 이병의 관한 문제가 있었다. 사실 이 문제를 보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었다. 물론 결론은 보고를 하는 것이 맞았다.
“실은…….”
오상진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김철환 1중대장이 손을 들어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