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28화
31장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10)
“그냥 둬. 소대장이 할 테니까.”
“괜찮습니다. 소대장님은 어서 씻고 식사하러 가시죠.”
“미안하게…….”
“아닙니다. 어서 움직이십시오.”
“어어, 그래. 고맙다.”
오상진은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후 대충 얼굴만 씻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사를 마친 후 곧바로 행정실에 들어갔다. 오상진의 등장에 박중근 하사가 바로 말했다.
“잘 주무셨습니까?”
“네. 오전 훈련은 어땠습니까?”
“괜찮게 잘했습니다.”
“역시 박 하사 듬직합니다.”
“하하, 항상 하던 일인데요, 뭐.”
“그럼 오후에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걱정 마십시오.”
박중근 하사가 웃으며 말했다. 오상진은 듬직한 박중근 하사에게 소대를 맡기고, 박대기 상병에 관한 정리를 시작했다.
“어디 보자.”
오상진은 지난 면담 때 정리했던 다이어리를 꺼냈다. 제일 먼저 면담했던 오진한 일병의 기록을 봤다. 박대기 상병이 이은호 이병을 못살게 굴었던 이유가 그의 누나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병 다수가 먹는 것으로 괴롭혔다는 것을 진술했다. 박대기 상병이 억지로 이은호 이병에게 먹였다고 말이다.
그 외에도 많지만 여기까지 확인을 한 후 노트북을 열어 정리했다. 정리한 것을 프린트한 후 다시 검토했다. 딱, 초반 여기까지만 해도 징계감이었다.
“후우…….”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보고서를 김철환 1중대장에게 전달해야 했다.
오상진은 곧장 중대장실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오상진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들었다.
“왔냐.”
“네.”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 앞으로 갔다.
“어제 당직 선다고 고생했다.”
“아닙니다.”
“그래. 무슨 일 있어?”
“네. 2소대 면담에 대해서 보고할 것이 있습니다.”
“2소대?”
“네.”
오상진이 면담했던 내용을 간추린 것을 김철환 1중대장에게 건넸다. 내용을 쭉 확인한 김철환 1중대장이 인상을 썼다.
“하아, 미치겠네. 이거 해결하면 다른 것이 터지고. 도대체 왜 이러냐.”
“죄송합니다.”
오상진은 괜히 미안했다.
“그보다 뭔 이런 놈들만 들어오는 거야!”
“새, 새로 온 신병은 아니고……. 들어온 지는 꽤 되었습니다.”
“알아, 알아 인마. 그냥 한 소리야. 그보다 네가 원하는 것은 뭐야?”
“당연히 박대기 상병을 처벌하는 것입니다.”
김철환 1중대장은 한숨부터 나왔다.
“처벌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김철환 1중대장이 머리를 싸맸다. 요즘 계속해서 일이 터지고 있었다. 일을 수습하면 터지고, 수습하면 또 터졌다. 그래서 머리가 아팠다.
“상진아, 여기서 사건 더 키우면 나 힘들다.”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자신도 최강철 이병의 사건을 덮지 않았나. 이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면 곤란해지는 것 마찬가지였다.
오상진이 이런 결정을 내려놓고 김철환 1중대장에게 ‘중대장님, 이런 식이면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박대기 상병을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그건 나도 동감이야. 박대기는 영창을 보내는 거로 해결하자.”
김철환 1중대장의 말에 오상진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영창만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왜? 무슨 문제가 있어?”
오상진은 2소대에 꼬인 문제를 얘기했다.
“지금 박대기 상병이랑 강인한 상병이 한 달 차이입니다. 그런데 박대기 상병이 소대에 남아 있을 경우 그 눈치를 보느라 2소대는 개판이 될 겁니다. 누가 와도 수습이 안 될 겁니다. 그래서 박대기 상병을 영창 보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
“일단 박대기 상병은 분대장에서 내려오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는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김철환 1중대장이 잠시 생각을 해봤다. 박대기 상병을 분대장에서 내려오게 하면 확실히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은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출 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은호 이병은 다른 부대로 전출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박대기 상병을 두고 이은호 이병까지 그곳에 둘 수는 없지.”
김철환 1중대장도 공감을 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상진아. 이은호 이병 전출 보내는 것도 일이다. 막말로 누가 이은호 이병을 받으려고 하겠어. 소문 다 났을 텐데. 게다가 전출을 가도 그곳에서 제대로 적응하기도 힘들 테고 말이야.”
“그럼 1소대로 보내주십시오.”
“1소대? 그럼 네가 맡을래?”
“저희 어차피 한 명 부족하지 않습니까. 저희 쪽으로 올 신병을 2소대로 보내면 될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 소대 애들이 워낙에 착하지 않습니까.”
“알았다. 그렇게 된다면 훨씬 좋지. 제발 나 좀 도와다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은호 이병은 처리됐고. 박대기 상병은 영창을 보내는데 얼마를 보낼까?”
“만창으로 보내시죠.”
“15일?”
“네.”
“알았어. 박대기 상병도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그럼 나가봐. 난 머리가 너무 아프다.”
김철환 1중대장이 관자놀이를 눌렀다.
“네. 나가보겠습니다.”
오상진이 경례를 하자 김철환 1중대장이 손을 휙휙 저었다. 중대장실을 나온 오상진은 중대 행정실로 박대기 상병을 불렀다.
“충성, 상병 박대기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박대기 이리와.”
“상병 박대기. 네!”
박대기 상병이 오상진 옆으로 뛰어갔다. 오상진이 자리를 가져와 말했다.
“앉아!”
“네.”
“대기야, 내가 왜 널 불렀는 줄 알아?”
“…….”
박대기 상병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네가 뭘 잘못했는지는 아니?”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기는 해?”
“…….”
“너에게 선택권이 두 개 있다. 앞으로 남은 군 생활 조용히, 제대할 때까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는 것 하나. 아니면 네가 지은 죄 다 까발리고 전출 가는 것.”
박대기 상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 박대기 상병도 전출은 가기 싫었다. 차라리 이병이나 일병이면 몰랐다. 상병 말호봉에 그것도 다음 달이면 병장을 다는데 다른 부대 전출은 끔찍했다.
하물며 분명히 자신의 소문이 날 것이다. 가혹 행위로 왔다고 하면 사람 취급도 안 해줄 것이 뻔했다. 게다가 고참으로의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여기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나았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때까지만 여기에서 버텨보자.’
박대기 상병이 속으로 생각한 뒤 말했다.
“여기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겠습니다.”
“그래? 그럼 너 영창 다녀와야 해.”
“네, 다녀오겠습니다.”
“만창이다.”
“마, 만창…… 입니까?”
“그럼 고작 일주일로 될 거라고 생각했냐?”
오상진이 인상을 썼다. 박대기 상병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박대기 상병의 표정이 굳어졌다.
‘만창이면 15일인데……. 젠장, 제대 날짜가 15일 뒤로 미뤄지겠네.’
“왜 싫어?”
“아닙니다. 다녀오겠습니다.”
박대기 상병은 여기서 끝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오상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두 개 더!”
박대기 상병의 눈이 커졌다.
“너희 소대 전체에게 사과해. 네가 여태까지 잘못했던 걸 말이야.”
박대기 상병은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고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박대기 상병을 찬찬히 봤다. 중간에 한 번쯤은 발끈할 줄 알았다. 그런데 참는 것을 보니 이놈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박대기 상병이 진심으로 반성을 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느낌상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너 분대장 견장은 뗀다. 그리고 병장 진급도 한 달 유보한다.”
“네? 그럼 분대장은 누가…….”
“강인한 상병이 할 거야.”
“소대장님 그건…….”
“왜. 싫어?”
“그건 아무리 그러셔도…….”
“네가 정 싫다면 소대장은 널 딴 부대로 보내는 수밖에 없어.”
오상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박대기 상병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소대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박대기 상병은 풀이 잔뜩 죽어 있었다.
“이제부터 2소대는 강인한 상병이 분대장이야. 앞으로 인한이에게 분대 통솔 맡길 테니까. 네가 고참이라는 이유로 수작 부리면 소대장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 바로 부대 전출 보낼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알겠습니다.”
박대기 상병은 거의 체념하듯이 대답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좋아, 그만 나가봐.”
“네.”
박대기 상병이 경례를 하고 행정반을 나갔다. 그리고 오상진도 행정반을 나섰다. 오상진이 향한 곳은 2소대 내무실이었다.
“자, 주목!”
“주목!”
“2소대에 전달 상황이 있다.”
오상진이 대답을 하고 슬쩍 박대기 상병 자리를 확인했다. 내무실로 가지 않고 담배를 피우러 간 것 같았다.
‘어차피 잘 되었네.’
오상진이 지금 얘기하는 것은 박대기 상병에게 별로 좋지 않은 말이었다.
“자체조사 결과 박대기 상병의 가혹 행위가 밝혀져서 내일 박대기 상병은 영창을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2소대의 분대장은 강인한 상병이 달게 될 것이다.”
강인한 상병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오상진이 잠깐 강인한 상병을 봤다가 다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15일짜리 영창이니까, 다들 그리 알고 있고.”
2소대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 와중에서도 밑의 후임병들의 표정은 각자 달랐다.
‘고작 만창이야?’
‘전출 가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전출을 안 보낼 수가 있지?’
‘만창? 그럼 계속 이 소대에 남아 있는 거잖아.’
‘그나마 분대장을 안 하니 다행이네.’
‘와, 만창! 완전 꼬시다.’
‘그래도 분대장에서 내려온 것이 어디야.’
‘강인한 상병님이 분대장…….’
일병들과 상병들의 표정이 각자 달랐다. 특히 상병들의 표정이 복잡했다. 그중에서 강인한 상병이 더욱 그랬다.
“인한아.”
“상병 강인한.”
강인한 상병이 움찔하며 관등성명을 댔다.
“일어나!”
“아까도 말했지만 분대장 임명식은 다음 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분대장 역할은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다.”
오상진의 설명에 소대원들의 눈이 커졌다.
“네?”
“물론 최고참이 분대장을 맡는 것이 맞지만 지금 박대기 상병은 징계받는 상황이고, 잘못한 것이 많아서 분대장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그리 알고 있도록! 그렇다고 해서 박대기 상병 선임자 대우 안 해주면 안 된다. 알았지, 너희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강인한 상병을 따로 불러냈다. 내무실 밖으로 나와 복도에서 잠깐 얘기를 나눴다.
“인한아, 분대장 잘할 수 있지?”
“솔직히 박대기 상병 때문에 분대장 견장은 못 찰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소대장이 생각하기에 인한이는 소대를 잘 이끌 거라 생각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