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15화
30장 잘 좀 하라니까(7)
“후후후, 너도 좀 있으면 겪게 되지만, 나갈 때는 정말 신나고 좋아. 그런데 휴가 복귀 날이 되고, 위병소를 바라볼 때가 되면 아주 심하게 갈등이 생긴다. 이대로 복귀를 하면 또 지옥 같은 군 생활을 해야 하는데……. 아니지, 그냥 들어가지 말까? 안 돼, 들어가야 해. 이런 내적갈등이 생겨, 분명!”
“에이, 전 안 그럽니다.”
“안 그럴 것 같지? 후후후, 어디 두고 보자.”
이해진 상병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최강철 이병은 속으로 굳게 다짐을 했다.
‘저는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최강철 이병의 백일 휴가 날이 밝아왔다.
최강철 이병은 고참들이 손수 손질해 준 전투복과 전투화를 신고, 중대장실로 신고를 하러 갔다. 신고를 마친 최강철 이병이 중대 행정실로 갔다.
“충성 이병 최강철,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그 소리에 오상진이 눈을 번쩍 떴다. 아주 깔끔한 전투화 차림의 최강철 이병을 확인한 것이다.
“오, 최강철 뭐냐?”
“소대장님 저 오늘 휴가 가지 않습니까.”
“맞다. 너 오늘 백일 휴가 나가지. 미안하다. 소대장이 요즘 정신이 없어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무튼 조심해서 잘 다녀와라. 사고 치지 말고.”
“네, 소대장님.”
“아, 그리고 소대장 휴대폰 번호 알아?”
“아뇨, 모릅니다.”
“그래? 이리 와봐.”
오상진은 수첩에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서 최강철 이병에게 건넸다.
“자, 받아. 지난번에 해진이 사고도 있고 해서 말이야. 군인은 절대 민간인하고 충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기면 절대 대응하지 말고, 즉각 소대장에게 전화해. 너 혼자 해결한다고 움직이면 일이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어? 그럼 소대장님께서 달려오시는 겁니까?”
“내가 갈 수 있으면 가겠지만 만약 못 가더라도 적절한 조치를 취해줄 테니까 소대장 믿고 전화해.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라.”
“충성, 다녀오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경례를 하고 중대 행정반을 나갔다.
9.
오상진은 곧바로 상담실로 가서 2소대원들 면담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면담을 한 병사는 박대기 상병이었다.
똑똑!
“들어와!”
“충성, 상병 박대기 상담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들어 박대기 상병을 봤다.
“앞에 앉아.”
“네.”
박대기 상병이 앉고 오상진이 그를 봤다. 박대기 상병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이 찼다.
“이제부터 소대장이 질문을 하면 넌 답을 하면 된다. 알겠나!”
“네.”
“좋아, 그럼 질문을 시작한다.”
“너도 알다시피 이제부터 다음 소대장이 올 때까지 내가 임시로 너희 소대장이다. 그건 알고 있지?”
“네. 얘기 들었습니다.”
“그래서 불만은 없고?”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아, 네, 네. 전혀 없습니다.”
“정말?”
“네, 그렇습니다.”
박대기 상병은 오상진과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대답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했다.
“대기는 언제부터 분대장 달았어?”
“저, 저번 달부터입니다.”
“저번 달, 분대장 달고 막 힘이 생기니까. 네 뜻대로 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어?”
“네?”
박대기 상병이 화들짝 놀랐다. 그 표정만 봐도 굳이 답을 들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아니다, 다음 질문! 다음 달에 너 병장 진급심사 있더라.”
“네.”
“그런데 이번에는 너 병장 진급 못 할 거다. 이유는 네가 더 잘 알 거야.”
오상진의 말에 박대기 상병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말입니까?”
“그걸 몰라서 소대장에게 묻는 거야? 아니면 소대장이 다시 한번 얘기해 줘?”
“아, 아닙니다.”
박대기 상병이 고개를 푹 숙였다. 오상진이 펜을 놓고 나직이 말했다.
“박대기.”
“상병 박대기.”
“넌 말이야. 분대장이야. 그래도 소대장이나, 부소대장이 없을 때 한 소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그 어깨에 있는 녹색 견장은 폼으로 달아 놓은 줄 알아?”
“…….”
“그만큼의 책임감과 무게를 느끼고 있어야 하는 자리가 바로 분대장이야. 그런데 넌 이번에 어떻게 했지? 분대장으로서 책임감 있게 했어? 갓 들어온 신병을 제대로 살펴봤냐고!”
“……아닙니다.”
박대기 상병의 목소리가 거의 기어들어 갔다.
“후우, 소대장은 솔직히 말해서 좀 안쓰럽다. 너도 이등병을 거쳐서 병장이 되었을 텐데. 그들의 마음을 몰라주고 괴롭히고, 못되게 굴어야겠어? 계급이 높다고 그렇게 갑질을 해야겠어?”
“아, 아닙니다…….”
“잘하자, 대기야. 좀 더 무게감 있고, 멋진 분대장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래, 이제부터 소대장은 예전 박대기 상병의 모습은 모두 잊어버릴 거야. 지금의 박대기 상병의 모습만 볼 거야. 다시는 소대장을 실망시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네, 소대장님.”
“그래. 소대장은 믿는다. 그만 나가봐.”
“네. 충성.”
박대기 상병이 나가고 그 뒤로 상병들이 하나씩 면담을 했다.
오상진은 상병들과 형식적으로 상담을 했다. 상병 이상은 이미 복무한 날이 남은 날보다 많은 병사들이었다. 이대로 시간만 보내도 제대인데 임시로 소대를 맡은 타 소대장에게 모든 걸 다 밝힐 거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일병들은 달랐다. 그들을 잘만 구슬리면 오상진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점심시간이네. 잠깐 쉬었다가 해야겠다.”
점심시간이 지났다는 걸 확인한 오상진이 다이어리를 덮었다. 그리고 상담실을 나가서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10.
부대를 나선 최강철 이병은 위병소 앞에 섰다. 위병소 근무병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바짝 긴장이 되었다. 최강철 이병이 침을 꿀꺽 삼긴 후 위병소로 갔다.
“어떻게 왔습니까?”
“휴, 휴가 때문에 왔습니다.”
“휴가증 보여주시죠.”
최강철 이병은 윗주머니에 고이 넣어 둔 휴가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위병소 근무자는 매서운 눈길로 휴가증과 최강철 이병의 이름을 확인했다.
“백일 휴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위병소 근무자가 일지에 뭔가를 적더니 휴가증을 건넸다.
“딴 길로 새지 말고, 곧장 버스터미널로 가십시오.”
“네.”
“그리고 휴가 잘 보내고, 무사히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강철 이병이 휴가증을 다시 건네받은 후 윗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위병소를 걸어 나갔다. 그러다 위병 근무자와 눈이 마주쳤지만 바로 외면했다.
“후아!”
최강철 이병이 위병소를 나서자마자 막혔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와, 공기부터가 다르네. 달라!”
위병소를 사이에 두고 부대 안쪽과 바깥쪽 공기가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이럴 것이 아니라 일단 정류장부터…….”
최강철 이병이 두리번거리다가 저 멀리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그곳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중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다.
“가만, 일단 전화부터 할까?”
오상진은 생각을 정리한 후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백 원짜리 동전을 두 개 넣고,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르르, 찰칵.
-여보세요?
“으응, 나야 하나야.”
-누구?
“강철이 오빠.”
-어멋! 오빠! 벌써 휴가 나온 거야?
“어, 지금 휴가 나왔어. 넌 어디야?”
-나? 난 오빠 만나려고 준비하고 있지!
수화기 너머 잔뜩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이 산뜻했다.
“알았어. 준비하고 있어. 내가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다시 전화할게.”
-알았어, 오빠. 기다릴게.
“그래.”
최강철 이병이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공중전화 부스를 나와 도로변으로 갔다. 버스를 타지 않고, 바로 택시를 잡았다.
“택시!”
강하나는 휴대폰을 끊고, 입가로 미소를 지었다.
“어머, 이 오빠. 급했나 보네.”
강하나는 실실 웃으며 화장대 앞에 앉았다. 화장을 하려고 하는데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또, 왜 그러지?”
강하나가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얼굴을 굳혔다.
“이 오빠 타이밍 참…….”
강하나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여보세요.”
-강하나. 나 우석이 오빠.
“알고 있어, 왜?”
-오늘 몇 시에 볼까?
“뭐야. 오늘 약속했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봐야지.
“오늘은 안 돼! 나 약속 있어.”
-약속? 무슨 약속?
“그럴 일이 있어. 내가 오빠에게 일일이 보고 해야 해?”
-아이 씨, 그럼 내일은?
“글쎄다. 내일도 아마 못 만날걸?”
-야, 뭐야? 나 오늘 하고 싶다고!
그 소리에 강하나는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오빠!”
-왜?
“오빠 머릿속에는 그 생각밖에 없지?”
-무, 무슨 소리야.
“정 하고 싶으면 딴 년이랑 해. 나랑 하고 싶어서 만나나.”
-지는……. 언제는 나랑 할 때가 가장 좋다면서!
“아, 됐어. 맨날 그 생각만 할 거면 전화하지 마, 미친놈아!”
강하나가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콧김을 씩씩 뿜어대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 진짜!”
강하나는 어이없어했다. 다시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딱 보고 난 후 바로 엎어버렸다.
우석은 휴대폰을 바라보며 말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다.
“이 가스나, 전화 안 받네.”
“왜? 하나 전화 안 받아?”
“으응, 갑자기 전화를 끊더니 그 뒤로 안 받네.”
“왜 그런데?”
“몰라, 뜬금없이 튕기네.”
“튕겨? 혹시 남자 생긴 거 아냐?”
“아, 시발. 진짜 남자 생겼나?”
“한번 뒤를 밟아봐. 무슨 일 있나?”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지.”
친구의 말에 우석은 고민했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나 일이 있어서…….”
우석은 부랴부랴 밖으로 튀어나갔다.
11.
최강철 이병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몸에 걸친 전투복을 후딱 벗어버리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싶어서였다.
거대한 문 앞에 도착한 최강철 이병은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잠시 후 스피커를 통해 아줌마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멋, 이게 누구야.
삐익, 철컹.
큰 대문 옆 작은 문이 열렸다. 최강철 이병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정원을 지나 양옥집에 도착을 했다. 현관문을 열자 제일 먼저 반겨 준 사람은 도우미 아주머니였다.
“진짜네. 강철 학생 어떻게 왔어요?”
도우미 아주머니가 최강철 이병을 환하게 반겨주었다. 최강철 이병이 전투화의 끈을 풀며 말했다.
“저 오늘 휴가 나왔어요.”
“휴가? 아, 휴가 나왔구나. 그런데 왜 미리 말을 안 했어요?”
“집에 전화를 했더니 안 받던데요. 그리고 엄마랑, 아빠에게 전화도 했는데…….”
“아, 그렇죠. 아마 많이 바쁘실 겁니다.”
“네, 뭐. 그렇죠.”
최강철 이병이 전투화를 벗고 거대한 거실로 들어갔다. 잠깐 집안을 살펴보며 물었다.
“역시 엄마는 안 계시죠? 당연히 아빠도 안 계실 거고.”
“네, 그렇죠, 뭐. 그보다 점심때가 다 되었네. 배고프죠? 제가 얼른 점심 차려드릴게요.”
도우미 아주머니가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최강철 이병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 아줌마 집밥 진짜 맛있는데…….’
하지만 최강철 이병은 옷만 갈아입고 강하나를 만나러 나가야 했다. 그런데 집밥 역시 먹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