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14화
30장 잘 좀 하라니까(6)
“네, 알겠습니다. 당분간 제가 맡겠습니다. 대신 빨리 구해주시는 겁니다.”
“그건 걱정 마라. 내가 인사 장교를 달달 볶고 있으니까.”
“네. 중대장님.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1소대는 박 하사 있잖아. 그 친구에게 좀 맡겨 놔. 박 하사 일 잘하지?”
“당연합니다. 박 하사는 아주 모범적입니다. 제가 없어도 아주 잘할 겁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웃었다.
“하긴, 나도 박 하사 참 마음에 들더라. 지난번에 애 아파서 모금하고 난 후 사람이 확 달라졌더라고. 그전에는 왜 사람이 저렇게 우울하고 저럴까 했는데 말이야. 그 일이 잘 풀리고 나니까 일도 더 잘하고, 싹싹하고 그러더라.”
“박 하사가 들으면 좋아하겠습니다.”
“네가 적당히 말해줘. 중대장이 맘에 들어 한다고. 그럼 더 열심히 할 거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오상진이 경례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갔다. 중대 행정반으로 들어가니 3소대장과 4소대장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중대장님께서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아, 그게…… 제가 당분간 2소대를 맡을 것 같습니다.”
4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우리 중에서 2소대 맡아줄 사람은 1소대장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지 않겠습니까?”
3소대장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힘들겠지만 중대장님께서 시키셨는데 해야죠.”
오상진이 대답을 한 후 고개를 돌려 박중근 하사를 불렀다.
“박 하사.”
“네.”
“당분간 저는 2소대를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제가 각별히 1소대 신경 쓰겠습니다.”
“박 하사만 믿습니다.”
“네.”
“그리고 김 하사.”
“네.”
“김 하사는 잠깐 저 좀 보시죠.”
오상진이 행정실을 나갔다. 그 뒤를 김 하사가 따랐다. 상담실로 가서 김 하사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김 하사.”
“예, 예에…….”
김 하사가 살짝 떨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장 소위 어땠습니까?”
“보셔서 아시겠지만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잘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일은 제게 다 떠넘기시고……. 물론 장 소위님 없어서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닙니다.”
“아, 저도 압니다.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까요. 김 하사 고생한 거 압니다. 저야 김 하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중대장님께서는 못마땅한 게 많으신 모양입니다. 그저 결과만 보시니까.”
“아, 저는 다 이해합니다. 저는 오히려 1소대장님께서 2소대 챙겨주신다고 하시니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맡겼다면 감당 못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습니다.”
오상진은 자신이 2소대를 맡는다는 말에 김 하사를 살짝 달래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애들이랑 면담을 하고 싶습니다. 한 명씩 불러 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김 하사가 대답을 한 후 오상진은 다이어리를 꺼내 2소대원 이름을 쭉 적었다. 그것을 본 김 하사가 하나하나 이름을 알려주었다.
“현재 2소대 분대장은 박대기 상병입니다.”
“박대기 상병은 아직 병장 안 달았습니까?”
“원래라면 다음 달에 달아야 하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상병이 몇 명입니까?”
“박대기 상병 밑으로 강인한 상병(6호봉), 이인수 상병(5호봉), 박중훈 상병(2호봉), 오진한 일병(6호봉), 하영운 일병(5호봉), 하영진 일병(5호봉), 아, 이 둘은 쌍둥이입니다. 그리고 최민호 일병(4호봉), 강수호 일병 (3호봉), 박유하 일병(1호봉), 이태식 이병(4호봉), 마지막으로 신병 이은호 이병입니다.”
“아, 네에.”
오상진이 다이어리에 열심히 받아적었다. 그러다가 김 하사가 궁금증이 생겨 물었다.
“그런데 이은호 이병은 상태가 어떻습니까?”
“상태가 썩 좋지 않습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병원에 가긴 했지만 스트레스가 좀 심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아직까지 상태가 좋지 않으니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 이 상태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아…….”
김 하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은호에게 미안해서 어쩝니까.”
“나중에 시간 날 때 병원에 한번 가 보십시오.”
“제가 가면 좋아하겠습니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우리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됩니다. 아무리 잘해줘도 간부와 병사들의 사이의 간격은 있습니다. 쉽게 좁혀지지 않을 간격 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시간 나면 한번 찾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이들 중에서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병사는 있습니까?”
“애들이 다들 순합니다. 가장 문제가 최강수 병장이었는데 저번 달에 제대를 했습니다.”
“아, 만날 의무대로 내려가는 그 병장 말이죠?”
“예예, 알고 계셨습니까?”
“아, 갈 때마다 있어서 의무병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별명이 의무병이었습니다. 아무튼 소대원 중에 가장 문제는 박대기 상병입니다. 박 상병이 장재일 소위하고 많이 친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서 장재일 소위가 시키는 일은 다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은호 이병은 장 소위 눈 밖에 났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김 하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꾀병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아프다고 해서 의무대에 갔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답니다. 그런데 매번 아프다고 하니까. 양치기 소년 아시죠?”
“네.”
“아마도 그런 식인 것 같습니다. 박 대기 상병이 저 녀석 꾀병이라면서 훈련하기 싫어서 저러는 거라고 몰래 얘기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장 소위 눈에 찍힌 것 같습니다.”
김 하사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얘기해 주었다.
“아, 어떤 얘기인지 알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뻔합니다. 소대장이 초반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첫 이미지가 확 달라집니다. 이은호 이병이 정말 아프지 않고, 꾀병이었다면 버릇을 잡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은호 이병은 진짜 아팠고, 그 아픈 상태를 박대기 상병은 숨겼습니다. 장 소위는 그런 박대기 상병의 말만 믿고, 안이하게 대처를 한 것이죠. 물론 결과가 나쁘게 나와서…… 좀 안타깝습니다.”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장 소위가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합니다.”
오상진은 갑자기 회귀 초반에 발견한 김희철의 백혈병이 떠올랐다. 회귀하기 전에는 자신도 장재일 2소대장과 똑같이 했었으니까 이제 와 장재일 2소대장을 나무랄 자격이 없었다. 비록 회귀를 했을 때는 그 사실을 똑바로 잡았다고 해도 말이다.
‘나도 뭐 할 말은 없지만…….’
오상진이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김희철이 떠올랐다.
‘그보다 이 녀석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오상진이 잠깐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김 하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바로 면담하시겠습니까?”
“아, 오늘은 시간이 애매해서 내일부터 차례차례 하겠습니다.”
“네,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8.
그날 저녁, 최강철 이병은 잔뜩 들떠 있었다. 내일이면 처음으로 부대를 떠나 백일 휴가를 나가기 때문이었다.
“강철아.”
한태수 일병이 불렀다.
“이병 최강철.”
“너, 내일 휴가 나가지.”
“네. 그렇습니다.”
순간 최강철 이병의 눈빛이 달라졌다. 입가를 실룩이며 좋아했다.
“자식, 너 A급 전투복 가져와.”
“A급 전투복 말입니까?”
“그래.”
최강철 이병이 관물대에서 한 번도 입지 않은 완전 새것의 전투복을 꺼내왔다.
“여기 있습니다.”
“다리미랑 자, 볼펜도 챙겨 오고.”
“아,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준비해서 가져갔다. 그다음 한태수 일병이 전투복 상의 등 쪽을 자로 체크를 하며 뭔가 준비를 했다.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다가왔다.
“원래 후임 첫 휴가 때 고참들이 챙겨주는 거야. 이건 전통이야.”
“아, 그런데 한 일병님이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네 A급 전투복 각 잡아 주는 거잖아.”
“각 말입니까?”
“그래! 저런 식으로 등 가로로 두 줄, 세로로 세 줄. 그런 식으로 각을 잡아서 다리미질을 하지.”
“아…….”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진 상병이 구두통을 꺼내더니 그곳에서 구두약과 하얀 천을 꺼냈다.
“너 A급 전투화도 꺼내.”
“전투화도 말입니까?”
“그래, 휴가 나가려면 새 전투화를 신어야지. 저렇게 헌 전투화를 신고 나갈 거야?”
“아, 아닙니다.”
“빨리 꺼내. 물광 제대로 내줄 테니까.”
“아, 네에.”
최강철 이병이 곧바로 움직였다. 군장에 넣어 뒀던 A급 전투화를 꺼냈다. 그것을 든 이해진 상병이 흰 천을 검지와 중지에 감았다. 그리고 구두약을 툭툭 건드린 후 전투화를 닦기 시작했다.
“전투화에 광을 내려면 말이야.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 넌 옆에서 잘 봐둬.”
“네.”
이해진 상병은 계속해서 전투화에 구두약을 바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지금 이 작업이 전투화에 기름을 입히는 작업이야. 이렇게 오랫동안 문질러야지 잘 스며들거든.”
이해진 상병의 말을 들으며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뭐 하냐?”
PX에 갔던 김우진 상병이 들어오며 전투복과 전투화 손질을 하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강철이 거냐?”
“네.”
“최강철.”
“이병 최강철.”
“내일 백일 휴가 가냐?”
“네. 그렇습니다.”
“좋아?”
“조, 아, 아닙니다.”
“자식, 아니기는! 확실해?”
김우진 상병이 실실 웃으며 물었다. 최강철 이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실 좋습니다.”
“자식, 좋기도 하겠다. 오늘 설레서 밤잠 설치겠는데…….”
“괜찮습니다. 잠은 충분히 잘 수 있습니다.”
“그래그래! 아무튼 내일 휴가 나가서 신나게 놀고, 잠 푹 자고! 알았지?”
“네.”
“그리고 말이야.”
김우진 상병이 옆으로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내가 너에게 뭐 잘못한 것은 없지?”
“네?”
“그러니까, 내가 너 잘해줬잖아. 그치?”
“그, 그렇습니다.”
최강철 이병은 갑작스럽게 친하게 구는 김우진 상병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그래! 그럼 무사히 복귀하는 거다. 뭐, 딴 길로 새고, 제시간에 부대 복귀 안 하면 너 탈영이야. 알았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꼭 복귀합니다.”
“알아, 아는데! 혹시나 싶어서 그러는 거야. 간혹 부대 복귀를 안 하는 신병들이 있어서 말이야. 고참 손으로 널 잡으러 가지 않게 해다오.”
“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알았어, 믿는다.”
김우진 상병이 어깨를 두 번 두드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그때 이해진 상병이 입을 열었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그런데 왜 복귀를 안 한다고 생각을 하죠?”
최강철 이병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탈영할 생각이 들었다면 그전에 국회의원인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부탁해 어떻게든 군대에서 빠지게 해달라고 청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해진 상병은 도리어 김우진 상병의 편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