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13화
30장 잘 좀 하라니까(5)
“중대장님, 저 정말 힘듭니다.”
“힘든 걸 왜 나에게 말해. 1중대장에게 말해.”
이대우 3중대장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재일 2소대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대장님.”
“왜?”
“저 전출 명령 떨어졌습니다.”
“벌써?”
“저 연대로 그것도 해안으로 빠지면 저 인생 끝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뭐 나보고 어쩌라고?”
“저 좀 도와주십시오. 3중대장님밖에 없습니다.”
장재일 2소대장이 간절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대우 3중대장 역시 할 말은 없었다.
“야, 장 소위. 내가 너 중대장도 아니고 말이야. 부탁을 하려면 1중대장에게 해야지. 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이대우 3중대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순간 장재일 2소대장의 눈에 불이 붙었다.
“그래서 못 도와주겠다는 겁니까?”
“못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도와줄 게 없다는 거잖아.”
“그것이 그것 아닙니까!”
“이 자식이 지금 누구에게 큰 소리야. 큰 소리는!”
이대우 3중대장이 버럭 했다. 그러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자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자넬 구하려다가 나까지 찍히면 누가 책임을 지나.”
장재일 2소대장의 주먹이 불끈 쥐며 부르르 떨었다. 여태껏 장재일 2소대장은 1중대 소대장들보다는 3중대 소대장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런데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고, 푸념할 상대가 필요한 지금 3중대 소대장들은 하나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나마 집을 아는 이대우 3중대장에게 왔지만 그 역시 매몰차게 대하고 있었다.
“중대장님,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장재일 2소대장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말했다. 순간 이대우 3중대장이 움찔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뭐? 내가 뭘 인마!”
“솔직히 제가 이렇게 된 것도 중대장님 탓도 있지 않습니까.”
“이 자식 봐라. 내가 소대 관리 개판으로 하라고 했어? 내가 뭘 했다고 내 탓을 하고 지랄이야.”
“지난번에 저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뭐? 내가 뭔 소리를 했는데?”
“시가전 전투 때 3중대 도우면 저 데리고 간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이대우 3중대장이 깜짝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뗐다.
“인마, 그 얘기가 왜 여기서 튀어나와. 그리고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
“그런 말씀 안 하셨단 말입니까? 전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장재일 2소대장은 이대우 3중대장이 오리발을 내밀자 술이 확 깼다. 점점 정신도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건 인마, 네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내가 도와달라고 했어? 네가 먼저 나에게 와서 도와달라고 했잖아. 그건 기억 못 해? 아니면 지금 술을 마셔서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저 지금 정신 말짱합니다. 아니, 오히려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장재일 2소대장이 쫙 가라앉은 얼굴로 말했다.
“야, 막말로 네가 돕고 싶어서 돕는다니까, 내가 나중에 뭔 일 생기면 3중대로 받아줄게. 이렇게 말한 거잖아. 아니야?”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3중대장님이 저 데리고 가신다고 약속을 하셔서 제가 그런 것이 아닙니까.”
“이 자식 봐라. 그래서 그걸로 날 협박하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거로?”
“협박이 아닙니다. 전 다만…….”
“아, 시발! 몰라, 갑자기 왜 그런 것 가지고 날 귀찮게 하는 거야. 중대장은 더 이상 할 말 없으니까, 어서 집에 가서 잠이나 쳐 자!”
“진짜 너무하십니다.”
장재일 2소대장이 울분을 참지 못해 내뱉었다.
“뭐가 너무해. 그렇게 따질 거면 너희 1중대장에게 가서 따져.”
장재일 2소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에이, 시발!”
“뭐? 시발? 이 자식이 지금 돌았나! 너 지금 군 생활 끝나?”
이대우 3중대장이 장재일 2소대장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놓으십시오.”
“이 자식이,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나.”
“네, 전 지금 뵈는 게 없습니다. 그리고 전 잃을 것도 없습니다. 좌천되는 마당에 뭐가 무섭겠습니까.”
“어쭈, 말하는 본새하고는. 너 이렇게 위아래도 모르고 막 구는 거냐? 싸가지 없이!”
이대우 3중대장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장재일 2소대장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대로 이대우 3중대장의 코를 향해 머리를 박아버렸다.
“에이, 시발!”
퍽!
“악! 너, 너 장재일 이 자식…….”
이대우 3중대장이 자신의 코를 부여잡으며 다른 한 손으로 장재일 2소대장을 가리켰다. 장재일 2소대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어디 두고 보십시오. 내가 이대로 그냥 넘어가나! 지난번 시가전 모의훈련 때 저에게 뒷공작 했던 거 다 말해버릴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절대로 나 혼자 안 죽습니다.”
장재일 2소대장이 씩씩거리며 그곳을 떠났다. 이대우 3중대장이 황당한 얼굴로 소리쳤다.
“저, 저 미친놈이…….”
그때 이대우 3중대장의 양쪽 코로 걸쭉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것을 손을 쓰윽 닦은 이대우 3중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어, 피, 피…….”
7.
그다음 날 아침, 장재일 2소대장이 이대우 3중대장과 한바탕 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그 소문의 진상을 듣고 온 4소대장이 행정반으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다들 어제 얘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얘기 말입니까?”
“어제 저녁에 2소대장이 3중대장을 찾아갔답니다.”
“거긴 왜?”
3소대장이 의문을 가졌다. 그러자 4소대장이 별생각 없이 말했다.
“뭐, 3중대장에게 따질 것이 있어서 갔나 보죠.”
“그런가?”
“아,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뭐가 중요합니까?”
“그게 말이죠. 2소대장이 3중대장과 실랑이가 있었는데, 2소대장이 3중대장을 머리로 들이받아 버렸답니다.”
“네?”
오상진도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진짜입니까?”
“네, 3중대장님 쌍코피가 터지고 난리 났다고 합니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그냥 실랑이 벌인 것이 와전된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지금 3중대장 고소한다고 난리입니다. 3중대 분위기 엄청 살벌합니다.”
“에효, 3중대장님한테까지 가서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상진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가 4소대장이 슬쩍 물었다.
“설마 그 일 가지고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죠?”
“뭐,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긴 한데…….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3소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참, 장 소위 전출 가면 2소대는 누가 맡습니까?”
“맞습니다. 다음 소대장이 올 때까지 누가 대신 합니까?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은 걸릴 텐데…….”
“솔직히 우리 중에 한가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상진의 말에 두 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행정반에 전화가 울렸고, 행정계원이 받았다.
“통신보안 충성대대 1중대 행정반입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행정계원이 전화를 끊고 오상진을 봤다.
“1소대장님.”
“왜?”
“중대장님이 찾으십니다.”
“알았다.”
오상진은 곧장 중대장실로 향했다. 중대장실 문을 두드린 후 잠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김철환 1중대장이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중대장님 부르셨습니까?”
“상진아, 너 얘기 들었냐?”
“3중대장 얘기 말입니까?”
“어, 장 소위가 그렇게 사이코인 줄은 몰랐다. 아무리 전출 명령을 받았다고 한들 3중대장을 폭행하고 가? 이건 군 역사상 처음 있는 일 아니냐?”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3중대장이 저렇게 길길이 날뛰니까, 지가 알아서 하겠지. 징계를 내리든 감방을 가든. 이제 우리랑 상관없잖아.”
“너무 매정하신 거 아닙니까?”
“매정 같은 소리 하네. 야, 내가 제일 웃긴게 뭔 줄 아냐?”
“……?”
오상진이 말없이 김철환 1중대장을 바라봤다.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장재일 이 자식. 억울했으면 날 찾아와야 하는 거 아니냐? 그 와중에 3중대장을 찾아간다는 것이 웃기지 않아?”
“아, 또 그런 겁니까? 아니면 서운하셨습니까?”
“서운하기보다는 허탈해. 솔직히 한 번쯤은 나를 찾아올까 봐 잠 안 자고 기다렸다. 왠지 그 녀석 성격으로 봐서는 나에게 따지러 올 것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네 형수 일찍 재워 놓고 기다렸는데 안 오더라. 왜 안 왔지? 생각하고 출근했는데 이런 사달이 났지 뭐냐. 내 살다 살다 이런 녀석은 처음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오상진도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내뱉었다.
“그런데 말이야. 장재일 그 자식 마음속으로는 자신을 1중대 소속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3중대 소속이라고 생각했을까? 갑자기 그것이 궁금하네.”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렇지. 이미 지나간 일이고, 장재일은 전출 갔고……. 이제 남은 건 2소대 녀석들이네.”
김철환 1중대장이 말을 하고는 오상진의 눈치를 살폈다. 오상진도 그것이 궁금해 물었다.
“새로운 2소대장은 언제 오는 것입니까?”
김철환 1중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새로운 2소대장이 빨리 오면 얼마나 좋겠냐. 인사장교와 얘기를 해봤는데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걸릴 것 같단다.”
“그렇게 오래 걸립니까?”
“제대로 된 소대장 발령 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급하게 부르면 어중이떠중이 오는데 그러길 바라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렇지. 장재일이 좋은 일로 전출 가는 것이 아니라 사고 치고 가는 건데, 아무나 받으면 2소대 분위기가 뭐가 되겠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2소대장은 널 보좌해 줄 수 있는 놈으로 받아야지.”
“또 그렇게 됩니까?”
“그래서 말인데 상진아, 당분간 2소대는 네가 맡아야겠다.”
오상진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제가 말입니까?”
“그게 말이다. 별일 없었다면 그냥 아무나 붙였을 텐데. 너도 알다시피 2소대 분위기가 좋지 않잖아. 사건이 터졌는데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진상 조사는 해야지. 그렇다고 내가 할 수도 없고. 3소대장이나 4소대장은 미덥지 못하고 말이지. 네가 좀 고생을 해야겠다.”
“…….”
오상진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못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부소대장, 김 하사가 있지 않습니까.”
“그 친구 장재일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어.”
“그래도 장 소위보다는 잘 챙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 놈이 왜 여태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겠어? 그 녀석도 똑같은 놈이야. 소대장이 또라이짓을 하면 부소대장이 말리든가, 아니면 날 찾아와서 이실직고를 하면 되는 거였잖아. 그런데 그 녀석은 방관했어.”
“중대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솔직히 부소대장이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상진이 김 하사를 두둔했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영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 녀석도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네가 해! 너 말고는 믿을 사람이 없다.”
오상진은 잠시 고민을 했다. 번거롭긴 하겠지만 1소대장인 자신이 2소대를 맡아도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