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09화
30. 잘 좀 하라니까(1)
1.
“잘 들어. 교리상 여기까지 9초 이내에 끝을 내야 해.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이 격렬한 활동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숨을 멈추었을 때 평균적으로 9초 정도는 호흡 없이 버틸 수 있기 때문이어서 그렇다.”
“아…….”
소대원들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상진은 그런 소대원들을 쑥 둘러본 후 말을 이었다.
“자, 여기까지 이해 못 한 친구 손들어!”
“…….”
다행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좋아, 그럼 방독면 착용을 해보도록 하자. 모두 기상!”
오상진의 말에 소대원들이 기상했다.
“지금부터 방독면 착용에 대해서 실시한다. 소대장이 초시계까지 챙겨왔으니까.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네!”
“좋아. 1시 방향 살포!”
그 순간 소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방독면을 착용했다. 그 과정에서 몇몇 소대원들이 허둥거렸는데 총구에 올려놔야 할 방탄헬멧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다시!”
오상진은 그럴 때면 ‘다시’를 외쳐 반복 숙달을 시켰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이 흐른 후 소대원들 전부 9초 이내로 방독면을 착용할 수 있었다.
2.
저녁 식사 시간.
식판에 밥과 국물, 반찬을 받아온 구진모 일병이 인상을 썼다.
“와, 이게 오징어 국이란다.”
구진모 일병이 가져온 오징어 국에는 오징어 다리라고 할 수조차 없는 정체불명의 조각 2개와 잘게 4각으로 썬 무 3조각만이 둥둥 떠 있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태수 일병이 자신의 국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오징어 국이라고 오징어 맛은 나잖아. 그럼 됐지!”
“해도 너무합니다. 이건 진짜 개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차라리 맛이라도 있으면 몰라.”
구진모 일병이 평소답지 않게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김우진 상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야, 우리 진모 많이 컸네. 반찬 투정도 다 하고.”
“헤헤. 저도 다음 달이면 상병 달지 말입니다.”
구진모 일병이 실실 웃었다. 김우진 상병이 앞에 있는 노현래 이병을 바라봤다. 노현래 이병은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밥을 먹었다.
“야, 노현래.”
“이병 노현래.”
관등성명을 대는 노현래 이병의 목소리가 쫙 가라앉아 있었다.
“왜 그래? 아직도 삐졌냐?”
“아닙니다.”
“아니긴, 얼굴에 나 삐졌습니다, 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노현래 이병이 딱딱 끊으며 말했다. 아마도 오전에 있었던 시험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
“인마, 그때는 네가 틀려서 그랬잖아. 나 봤지? 2소대에게 개쪽 터는 거. 그래서 그랬어, 인마. 화 풀어.”
“화 안 났습니다.”
“그럼 왜 그래? 왜 표정이 심각해.”
“김 상병님은 만날 저 놀리지 않습니까. 저도 다음 달이면 이제 일병인데……. 게다가 밑에 후임도 있는데.”
“어이쿠, 그러셨습니까? 우리 노현래 이병님께서 다음 달에 일병 다십니까? 축하드립니다.”
“또 그러십니다?”
“뭐 인마? 그냥 좋은 말 할 때 인상 풀어라. 자식이 말이야. 고작 그 일로 이렇게 삐져 있으면 어떻게 해.”
“고작이라고 하셨습니까? 김 상병님은 만날 저만 놀리지 않습니까.”
노현래 이병이 억울하다는 듯 따지자 김우진 상병이 멋쩍게 웃고는 당근을 내밀었다.
“알았어. 밥 다 먹고 나랑 PX 가자. 맛난 거 사 줄게.”
순간 노현래 이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정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금세 풀어진 노현래 이병을 보고 김우진 상병이 피식 웃었다. 이제 곧 이병을 단다 하더라도 노현래 이병은 김우진 상병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최강철 이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이 상병님, 김 상병님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너무하긴, 다 저게 김 상병님의 애정이야. 애정!”
“애정 말입니까?”
“그래. 원래 김 상병님 후임이 강대철이잖아.”
“그렇죠.”
“그런데 지금은 강대철이 없잖아. 그래서 현래를 챙겨주려고 그러는 거야.”
“아, 그런 겁니까? 그런데 좀…….”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데 현래도 다 이해할 거야. 걱정 마. 너무 심하게 하면 내가 중간에서 커트할 테니까. 저 봐봐. 다시 웃잖아.”
PX에 간다는 말에 얼굴이 환해진 노현래 이병의 모습을 보고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 상병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해진 상병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참, 강철아.”
“이병 최강철.”
“너 다음 주 수요일 날 백일 휴가 간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백일 휴가라는 말에 최강철 이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제 5일밖에 안 남았네. 어때 기분이?”
“그냥 좋습니다.”
“하긴 좋기도 하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럼 백일 휴가 나가면 뭐할 생각이냐?”
“그냥 뭐…….”
“그냥 여자들 만나려고?”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최강철 이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었다.
“휴가 나가서 부모님 만나는데 너처럼 말 더듬지 않아. 여자 친구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지.”
“완전 티 났습니까?”
“부럽네, 누구냐? 너 지난번에 헤어졌다며.”
“어, 그게 말입니다.”
최강철 이병이 주춤거렸다.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여자 만난 거야?”
이해진 상병이 넘겨짚자 최강철 이병이 멋쩍게 웃었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자식…… 너 잘 되면 나도 여자 친구 한 명 소개시켜 줘.”
최강철 이병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아니야. 농담이야, 인마!”
3.
다음 날에도 훈련은 계속됐다.
오전은 총검술 및 그 외 훈련을 실시했다. 총검술을 통과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았지만 터미네이터 박중근 하사가 FM으로 교육을 시킨 덕분에 소대원 전원이 무사히 시험을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그동안 다리를 찢는 고통을 참아가며 연습한 태권도 심사가 있었다.
1소대원들은 태권도 도복을 입고 연병장으로 나갔다.
“야, 빨리빨리 움직여라!”
오상진이 단상에 올라서서 소리쳤다. 각 건물 입구에서 도복을 입은 중대원들이 하나둘 뛰어나왔다. 모두 나와 줄을 섰다.
“자, 오늘 태권도 심사 날이다. 모두 1단을 딸 수 있도록 한다.”
오상진은 짧게 말을 한 후 단상을 내려왔다. 곧이어 이형택 일병이 올라왔다.
“자, 태권대형으로 벌려!”
순식간에 태권대형으로 벌렸다. 곧이어 간단하게 몸을 푼 후 발차기 시범부터 보였다. 오상진을 비롯해 각 중대 소대장 중 3명이 나와 심사를 봤다.
“얍! 얍! 하아아압!”
중대원들은 힘찬 구령에 맞춰 열심히 발차기를 했다. 그들이 품새까지 하는 모습을 보며 오상진은 꼼꼼히 체크를 했다.
그때 오상진의 눈에 2소대 신병인 이은호 이병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 녀석 어디 아픈가?”
오상진은 땀을 뻘뻘 흘리며 괴로워하며, 동작을 취할 때도 반 박자씩 느렸다. 오상진이 다가갔다.
“너 괜찮니?”
“네, 괜찮습니다.”
이은호 이병이 당황했다.
“어어, 그래. 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혹시 어디 아프면 말하고.”
“네, 소대장님.”
오상진은 이상하게 이은호 이병이 신경이 쓰였다. 다른 곳으로 갔어도 한 번씩 이은호 이병을 확인했다. 그런데 괜찮다던 이은호 이병은 오상진과 잠깐 대화를 마친 이후에 더 괴로워했다. 동작 역시도 더욱 느려졌다. 그 모습을 본 장재일 2소대장이 인상을 썼다.
‘1소대장 진짜 마음에 안 드네. 도대체 저 녀석에게 뭐라고 말했기에 저래?’
오상진이 이은호 이병에게 잔소리를 해서 이은호 이병이 제대로 품새를 펼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이은호 이병은 발차기를 하는데 다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아니, 발차기를 한다는 자체를 엄청 힘들어하고 있었다.
“야, 똑바로 안 해? 너 이름 뭐야?”
“이병 이, 은호…….”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다른 소대장이 와서 이은호 이병을 압박했다. 그럴수록 이은호 이병의 부담은 커져만 갔고 결국 무리하게 돌려차기를 하다가 넘어져 버렸다.
“으윽!”
이은호 이병은 배를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그 신음 소리가 범상치 않다고 느낀 오상진이 곧바로 이은호 이병에게 달려갔다.
“야, 괜찮아? 어디 아파?”
“저, 저기…… 배가…….”
이은호 이병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그때 장재일 2소대장이 달려왔다.
“야, 이은호.”
“이, 이병 이, 은호…….”
이은호 이병은 관등성명을 대는데도 제대로 말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장재일 2소대장은 꾀병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새끼야, 안 일어나! 또 꾀병이야!”
“아, 아닙니다…….”
“아니긴, 빨리 일어나!”
장재일 2소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상진이 장재일 2소대장에게 말했다.
“2소대장, 뭐 합니까. 애가 아프다고 하지 않습니까.”
장재일 2소대장이 오상진이 한 말을 무시했다.
“왜 이러십니까? 우리 소대 애입니다. 야, 빨리 일어나! 이은호, 빨리 일어나라고 새끼야!”
장재일 2소대장이 고함을 질렀다. 이은호 이병이 힘겹게 몸을 웅크리며 일어나려고 하지만 다시 고통에 몸이 풀어져 버렸다.
“으윽…….”
“어쭈, 이 자식 봐라. 소대장이 말하는데…….”
장재일 2소대장이 강제로 일으켰다. 이은호 이병이 몸을 웅크리며 간신히 일어났다. 그런데 몸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두 손은 자신의 배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오상진이 보기에 딱 봐도 아픈 사람 같았다.
“아무래도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지금 의무대로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오상진이 바로 움직이려고 하자 장재일 2소대장이 화를 냈다.
“왜 그러십니까? 왜 남의 소대 애를 관리하십니까. 제 소대원입니다. 괜찮습니다, 얘 꾀병입니다.”
오상진은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다.
“지금 이 모습이 꾀병으로 보이십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거 안 보이십니까?”
다른 소대장들도 다가와서 이은호 이병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 진짜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입니다.”
“어서 의무대로 보내십시오.”
다른 소대장들의 간섭에 장재일 2소대장이 폭발했다.
“이 보십시오. 다른 소대장들은 좀 빠져 주시죠. 내 소대원에게 왜 그럽니까?”
장재일 2소대장은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의 이름이 입방아에 오를까 그게 싫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아무리 봐도 병원에 보내야 할 것 같았다.
“2소대장 진짜 상태가 안 좋아 보입니다. 의무대에 데려가야 합니다. 아니면 2소대장이 의무대로 데려가면 되지 않습니까.”
“진짜 이러십니까? 왜 자꾸 절 걸고넘어지십니까. 1소대장은 절 엿 먹이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 무슨 이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지금 애 상태를 보십시오. 상태가 엄청 안 좋지 않습니까. 제발 눈이 있다면 보십시오.”
오상진도 슬슬 짜증이 났다. 딱 봐도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 괜찮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2소대장이 있는데 자신이 함부로 관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