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06화
29장 진급만이 살길이다!(9)
공중전화 옆에는 콜렉트콜로 전화하는 방법이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릉!
그런데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 연속을 했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어? 왜 안 받지? 바쁘신가?”
최강철 이병은 잠깐 고민을 하다가 국회의원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릉.
-네, 여보세요. 최 의원님 핸드폰입니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면 좋았을 텐데 하필 비서관이 받았다.
그렇다고 전화를 끊을 수는 없어서 최강철 이병이 곧바로 말했다.
“강 비서님, 접니다. 최강철! 승낙 좀 부탁드립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떤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상대방의 승낙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상대방의 승낙을 기다…….
-네, 강철 씨!
“감사합니다. 네, 강철이에요.”
최강철 이병은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강철 씨, 무슨 일이죠?
“지금 아버지랑 통화 가능할까요?”
-의원님 지금 회의 들어가셨는데…….
“아, 그래요?”
최강철 이병은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백일 휴가를 나간다는 얘기를 비서에게 전해 들으면 왠지 아버지가 창피해할 것 같았기 때문에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말씀하세요.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혹시 군대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죠?
“네. 별일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알겠습니다. 의원님께는 강철 씨 전화 왔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고생하세요.”
최강철 이병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몸을 돌렸는데 뒤에 줄을 섰던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통화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누나인 최강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뚝!
-네, 최강희입니다.
“누나, 나 강철이. 전화 좀 받아줘.”
-야, 너는 왜…….
-뚝, 상대방의 승낙을 기다…….
-하아, 그래 강철아. 무슨 일이야?
여전히 일에 치여 사는지 최강희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나 나 다음주에 백일 휴가 나가.”
-백일 휴가? 그런 휴가도 있어?
“응, 백일 지나면 휴가 보내줘.”
-그래? 얼마나 보내주는데?
“4박 5일.”
-그렇구나. 그래서 그 얘기하려고 전화했어?
“그게…….”
최강철이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하니 최강희가 바로 말을 자르며 말했다.
-걱정 마. 네 방에 카드 놓고 갈 테니까. 그걸로 편하게 써.
“그게 아니라…….”
-알았어, 알았어. 핸드폰도 필요하지? 누나가 미리 풀어 놓을게.
“아, 아니…….”
-아, 그래 차 키도 두고 갈게. 그럼 됐지?
“……응.”
최강철은 최강희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을 하자, 그냥 대답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휴가 나오면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알았어.”
최강희가 바로 뚝 전화를 끊었다. 최강철 이병은 수화기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내가 언제 휴가 나가는지 물어보지도 않네.”
최강철 이병은 가족들이 자신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이대로 내무실로 돌아가자니 아쉬운 마음에 괜스레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혹여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뒤를 돌아보았는데 줄을 서고 있는 사람이 사라지고 없었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그때 불현듯 강하나가 떠올랐다.
“하나는 잘 있으려나?”
최강철 이병은 중얼거리면서 자연스럽게 번호를 눌렀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찰칵. 뚜뚜뚜뚜뚜.
전화가 끊어졌다.
‘아무래도 콜렉트 콜이라 전화를 안 받는 모양이네.’
최강철 이병이 다시 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누구야!
전화를 받는 목소리에 약간 짜증이 섞여 있었다.
“혹시 강하나 핸드폰 아닙니까?”
-맞는데요.
“하나야, 나야, 강철이 오빠. 전화 끊지 말고, 승낙해 줘.”
최강철 이병이 빠르게 말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어진 후 예의 여자 음성이 들려왔다.
-상대방의 승낙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강하나가 전화를 받았다.
-진짜 강철 오빠야?
“그래, 나야 최강철.”
-와, 오빠. 오랜만이다. 군대에 있지 않아?
“맞아. 군대야.”
-군대에서 전화가 가능해?
“고참 허락받으면 가능해.”
-아, 그렇구나. 난 또 누군가 했네. 그런데 어쩐 일이야?
“아, 이번에 나 휴가 나가는데.”
-휴가? 벌써?
“응.”
-그래서 왜? 나 보고 싶어?
“볼 수 있으면 보고 싶긴 한데. 왜 바빠?”
-바쁜 건 아닌데…… 그때는 나 면회도 오지 말라면서.
순간 최강철 이병이 움찔했다. 강하나와 정리하기 위해 휴가를 오지 말라고 했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만날 여자가 없어서 보고 싶다고 말을 할 수는 없는지라 그럴 듯한 핑계를 댔다.
“군대는 백일 휴가 전까지 면회 와도 못 봐.”
-아, 그런 거였어? 내가 괜한 오해를 했네. 아무튼 알았어, 오빠. 언제쯤 휴가 나와?
“다음 주 수요일쯤?”
-알았어. 휴가 나오면 연락해.
“알았다.”
-그래, 오빠. 그럼 나와서 보자. 끊는다.
“그래.”
최강철 이병은 강하나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공중전화박스에서 나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연락이 되었네.”
최강철 이병의 얼굴이 약간 뿌듯해졌다.
“그런데…… 헤어지려고 했는데 만나도 되는 건가? 이러는 거 너무 양아치인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휴가 나가서 강하나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사실에 최강철 이병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미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과 연락도 안 되고, 그나마 연락을 할 데라곤 옛 여자 친구밖에 없었다.
“그래, 하나랑 만나서 놀지 뭐. 긴 시간도 아닌데.”
최강철 이병은 희미하게 웃으며 내무실로 올라갔다.
11.
그다음 날에도 기본훈련은 계속했다.
1소대원들은 매일같이 태권도 교육은 받았다.
1차로 다리 찢기가 가능해진 대상을 상대로 발차기와 기본 품새를 알려주었다.
딱히 어려울 게 없는 교육이라 다들 잘 따라 했다. 물론 다리 찢기를 할 때는 여전히 고통에 찬 비명이 연병장 가득 울려 퍼졌지만.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소대원들은 다시 단독군장 차림을 했다.
“오후에는 뭐한다고 했지?”
“일병 구진모. 구급법 한다고 했습니다.”
“구급법? 그 마우스 앤 마우스?”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김우진 상병이 인상을 썼다.
“하아, 사내새끼들끼리 꼭 그 짓을 해야 합니까?”
김일도 병장이 피식 웃었다.
“누가 진짜로 하래? 가짜로 해야지.”
“아무튼 맘에 안 들어. 다른 부대는 더미로 한다고 한더데. 그것도 예쁜 여자로다가.”
그러자 노현래 이병이 눈을 번쩍 하고 떴다.
“네? 더미도 여자가 있습니까?”
“왜 없을 것 같냐?”
“진짜 있습니까?”
노현래 이병의 눈빛은 순수 그 자체였다. 김우진 상병이 그런 노현래 이병의 머리를 툭 쳤다.
“인마, 없어! 없다고. 그냥 농담한 거야.”
“아…….”
노현래 이병이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우진 상병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뭐야. 이 자식……. 변태야?”
“네? 벼, 변태라뇨.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아쉬워하고 그래?”
“제, 제가 언제 말입니까?”
“방금 네 표정은 진짜 아쉬워하는 거였는데.”
“아,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와, 현래……. 너 그런 과였어?”
“김 상병님, 진짜 아닙니다.”
김우진 상병은 여전히 노현래 이병을 놀렸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김일도 병장이 말했다.
“야, 우진아. 넌 왜 그렇게 현래는 놀려 먹냐.”
“저 녀석 반응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만하고, 어서 교육 받으러 나가자.”
“네.”
김우진 상병이 피식 웃으며 노현래 이병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현래야.”
“이병 노현래.”
“솔직히 말해. 괜찮아. 나 다 이해한다니까.”
“진짜 아닙니다. 저 여자 무지 좋아합니다.”
“알아. 나도 여자 좋아해. 그런데 너 아까…….”
“진짜 아닙니다.”
노현래 이병은 거의 울상이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강철 이병이 진지한 얼굴로 이해진 상병에게 갔다.
“이 상병님.”
“왜?”
“진짜 여자 더미가 있습니까?”
최강철 이병의 순수한 질문에 이해진 상병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냥 나가자.”
“……네.”
최강철 이병이 이해진 상병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연병장에 나가자 4소대장이 단독군장 차림으로 서 있었다.
“자, 구급법 교장에 온 것을 환영한다.”
4소대장은 구급법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을 했다.
“너희들에게 묻겠다. 구급법이란?”
그러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4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누군가를 지목했다.
“1소대 이해진 상병.”
“상병 이해진.”
“구급법이란?”
4소대장의 질문에 이해진 상병이 잠깐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구급법은 전시, 때로는 평시에도 발생할 수 있는 환자에 대한 응급조치를 말합니다.”
“그렇지. 모두 박수!”
짝짝짝짝짝!
“이해진 상병이 한 말이 맞다. 구급법 교육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심폐소생술, 지혈법이다. 심폐소생술이야 워낙에 많이 들어서 알겠지만, 마우스 앤 마우스 알지?”
“넵!”
“그리고 지혈법은 당연히 피를 멈추게 하는 방법이겠지?”
“네.”
4소대장은 우선 지혈법에 대해서 간단히 교육을 실시했다.
“지혈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나뭇가지, 옷 등을 사용하는 방법. 골절이 생겼을 때 나무와 천을 이용하는 방법.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오늘 소대장이 알려줄 것은 앞서 말한 두 가지 방법이다.”
4소대장이 직접 지혈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두 사람을 불러서 실습까지 했다. 그리고 심폐소생술을 교육할 때는 실제 더미를 가져와서 가르쳤다.
“자. 이게 뭔 줄 알지? 더미다!”
4소대장이 설명을 할 때 최강철 이병이 슬쩍 속삭였다.
“더미가 여자가 아닙니다.”
“누가 여자래.”
“아니, 아까 김 상병님이 그래서…….”
“장난이잖아. 현래 놀리려고.”
“아…….”
최강철 이병이 곧장 이해를 했다. 그때 4소대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야, 누가 떠들어. 이해진 상병, 최강철 이병 앞으로 나와!”
“상병 이해진.”
“이병 최강철.”
두 사람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4소대장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두 사람이 잡담을 하는 것을 보니 심폐소생술에 대해서 잘 아나 봐.”
“…….”
“교육시간에 잡담을 할 정도라면 심폐소생술을 잘 안다는 것인데 두 사람이 직접 시범을 보이겠다.”
4소대장이 뒤로 빠졌다. 이해진 상병과 최강철 이병이 두 개의 더미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먼저 두 손으로 파지 후 가슴 부위를 압박합니다.”
이해진 상병이 정확하게 심폐소생술에 대한 가슴압박을 실시했다. 최강철 이병이 곁눈질을 보며 따라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엉성했다. 그 모습을 4소대장이 넌지시 바라봤다.
그렇게 최강철 이병이 이해진 상병의 도움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야, 교육시간에는 잡담하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
이해진 상병과 최강철 이병이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4소대장의 구급법에 대한 교육은 계속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