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04화
29장 진급만이 살길이다!(7)
연병장에는 새하얀 도복으로 갈아입은 각 중대원들이 나와 있었다. 잠시 후 단상으로 태권도 도복을 입은 한 병사가 올라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2중대 3소대 이형택 일병입니다. 현재 태권도 4단으로 군대 오기 전 국가대표 상비군에 속해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3일간 태권도를 가르칠 생각입니다. 비록 계급은 낮지만 절 사범으로 불러주시고 저의 지시에 잘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이형택 일병의 말이 끝나고 곧바로 태권도를 위해 대형이 펼쳐졌다.
“첫 번째로 몸풀기부터 하겠습니다.”
이형택 일병의 말에 구령을 붙이며 몸을 풀었다. 최강철 이병은 잔뜩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저기 이해진 상병님.”
“왜?”
“3일 만에 단증이 따집니까?”
“응, 돼!”
“진짜입니까? 아니 어떻게 말입니까?”
“그냥 간단해. 발차기와 품새 하나만 잘 외우면 끝이야.”
“와, 대박! 그럼 거저 주는 거 아닙니까.”
“거저 주기는……. 1단을 따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과 아픔이 따르는 법이다.”
이해진 상병은 의미 모를 말을 남겼다.
“엄청난 고통과 아픔이 멉니까?”
“후후후, 2시간 안에 알게 돼. 아무튼 몸 잘 풀어놓아라. 나중을 위해서!”
이해진 상병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했다. 최강철 이병은 어쨌든 열심히 몸을 풀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2인 1조로 조가 형성되었다. 최강철 이병은 당연히 이해진 상병과 한 조가 되었다. 이해진 상병은 실실 웃었다.
“엄청난 고통과 아픔이다.”
“네?”
그리고 이형택 일병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부터 다리 찢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네에?”
“아아아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미 한 번 겪은 사람들은 절망의 눈빛을 보냈다.
“자자, 빨리합니다. 1단 단증 따기 싫습니까?”
“네네, 합니다.”
그 뒤로 말 그대로 고통의 다리 찢기가 시작되었다.
“야, 똑바로 잡아라!”
“네. 알겠습니다.”
“아, X발! 아파, 아프다고! 그만 좀 눌러!”
“으아아아아악! 내 허벅지! 찢어져! 찢어진다고!”
여기저기서 고통에 가득 찬 아우성이 들려왔다. 병사들의 곡소리를 듣던 최강철 이병은 단증 1단과 다리 찢기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야, 너부터 준비해.”
“네?”
“다리 찢기 말이야.”
“이해진 상병님. 도대체 다리 찢기를 왜 하는 겁니까?”
“왜 하긴 단증 따려고 그러는 거지.”
“네?”
“야야, 시간 없다. 잔말 말고 빨리 시작하자.”
이해진 상병은 다짜고짜 최강철 이병의 다리를 찢었다.
“아아아…… 이 상병님. 아픕니다. 진짜 아픕니다.”
“인마, 이제 시작이야.”
“허, 허벅지가 찢어지려고 합니다.”
“주먹으로 허벅지 두드려!”
이해진 상병은 말을 하면서 최강철 이병의 어깨를 좀 더 힘을 주어 눌렀다. 그런데도 최강철 이병의 다리는 전혀 찢어지지 않았다.
“야, 넌 왜 이렇게 뻣뻣하냐!”
“그, 그게 제 맘대로 됩니…… 으아아아악! 살살, 살살.”
“살살? 그럼 반말이잖아. 이 자식이!”
이해진 상병은 누르는 손에 더욱 힘을 줬다. 그럴수록 최강철 이병의 괴성은 더욱 올라갔다. 그렇게 몇 번 하던 이해진 상병이 노현래 이병을 불렀다.
“야. 현래야.”
“이병 노현래.”
“이리 와서 강철이 등 좀 잡아라.”
“넵!”
이해진 상병은 최강철 이병을 앉혀놓고 다리 찢기를 했다.
“으아아아악! 아, 아픕니다. 천천히, 천천히 부탁드립니다.”
“야, 단시간에 찢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그래서 내가 아까 그랬잖아. 엄청난 아픔과 고통이 뒤따른다고.”
“그, 그런 뜻인 줄 몰랐습…… 으으으윽…….”
최강철 이병은 허벅지에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 이건 아니야. 도대체 1단 단증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러는지.’
그렇게 약 2시간이 흐른 후 최강철 이병의 다리가 어느새 많이 찢어져 있었다.
“자, 그만!”
이형택 일병의 음성이 들렸다.
“오늘 태권도 연습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아직까지 다리를 찢지 못한 병사는 내일까지 찢어 옵니다. 이상!”
악몽 같았던 태권도 연습이 끝이 났다. 최강철 이병의 눈가에는 그동안 겪었던 엄청난 고통이 불러온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말도 안 돼! 도대체 이거랑 단증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최강철 이병은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몰랐다. 억울한 듯 잔뜩 울상이 되어버린 최강철 이병은 어기적어기적 내무실로 복귀했다.
김일도 병장이 내무실로 들어오는 최강철 이병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강철이 다리 봐라. 붙질 않아!”
그랬다. 2시간 내내 다리 찢기만 하다 보니 다리가 잘 오므려지지 않았다. 엉거주춤, 아니, 마치 그 옛날 고래를 잡고 걸어갔던 그 자세였다.
“2시간 내내 다리만 찢었습니다. 특히 강철이는 어찌나 몸치던지.”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강철이 몸치야?”
“네. 완전 몸치입니다.”
“아이고, 고생 좀 하겠네.”
“네. 그럴 것 같습니다.”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강철 이병은 아직도 허벅지가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김일도 병장이 일어나 최강철 이병에게 갔다.
“강철아.”
“이병 최강철.”
“다리를 꼭 찢어야 한다. 그래야 1단 단증을 따! 그렇지 않으면 내년에 또 한다. 풋!”
김일도 병장은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내년에도 똑같은 짓을 해야 할 수도 있다니, 최강철 이병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번에 꼭 따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의 눈빛에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그래, 그래. 꼭 따기 바란다. 내년에 또 이러지 않으려면 말이야.”
김일도 병장이 킥킥 웃으며 내무실을 나갔다. 그때 오상진이 내무실로 들어왔다.
“오늘 태권도 연습했다며.”
“네. 그렇습니다.”
“잘했냐?”
오상진이 말을 하면서 슬쩍 최강철 이병을 봤다.
“그런데 강철이는 왜 이러냐?”
“다리 찢기의 부작용입니다.”
“아, 다리 찢기.”
오상진도 익히 알고 있었다. 군대에서 태권도 단증을 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리 찢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너 다리 찢기 안 돼?”
오상진의 물음에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전투복으로 환복하던 김우진 상병이 오상진에게 대신 대답했다.
“소대장님, 강철이 저 녀석 완전 몸치입니다. 몸치!”
“몸치? 강철아. 너 밖에서 운동 하나도 안 했어?”
“네. 운동이랑은 담을 쌓은 지 오래입니다.”
“자식, 그럼 밤 운동은?”
오상진이 농담 식으로 물었다. 순간 최강철 이병의 눈빛이 반짝였다.
“제가 또 밤 운동 하나는 자신 있지 말입니다.”
“오오, 자식 눈빛 봐라. 살아 있네.”
오상진의 농담을 최강철 이병도 바로 받았다. 이렇듯 두 사람이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사이가 어렵지가 않다는 뜻이었다.
“하긴…….”
오상진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왜냐하면 최강철 이병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은 그렇지.”
최강철 이병은 지금 군대에 와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여주곤 있지만, 사회에 있을 땐 나름 금수저를 물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딜 가도 주변에 사람이 넘쳤고, 그중 최강철 이병이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도 꽤 많았다.
“저 사람 아버지가 국회의원이래.”
“엄마가 엄청난 재력가인가 봐.”
“진짜? 그럼 내가 한번 꼬셔 봐?”
“아서라, 넌 안 돼!”
“왜, 안 돼.”
이런 식으로 나왔다. 그러니 최강철 이병이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이해진 상병이 봤을 때는 그저 허풍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 경험은 있는 거지?”
“이 상병님 왜 그러십니까? 저 밖에서는 나름 잘 나갔습니다.”
“그래? 그런데 왜 지금까지 편지 한 통 없냐? 면회야 백일 휴가 전이라 힘들지만.”
“그게, 군대 들어오면서 헤어졌습니다.”
최강철 이병은 진지한 만남이 아니라 그냥 서로 즐기는 사이일 뿐이었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하긴 자식…….”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최강철 이병을 위로하는 듯 말했다.
“원래 일말상초라고 했다. 그것 말고도 처음 군대 올 때 많이 헤어지더라. 차라리 그게 나아, 나중에 일말상초 때 헤어지면 많이 힘들다.”
“아, 네에.”
최강철 이병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때 오상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희 훈련 다 했냐?”
“아뇨. 공부해야죠.”
“그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이해진 상병에게 이끌려 나오는 최강철 이병이 있었다.
“아직은 힘듭니다.”
“잔말 말고 나와! 너 내년에 또 할 거야? 한 번에 단증 따자. 알았지.”
“그럼 조금만, 조금만 쉬다가 하면 안 됩니까?”
“많이 쉬었잖아.”
“저 지금 다리가 오므려지지도 않습니다.”
“어허, 잔말 말고 따라오라니까.”
“이 상병님.”
그 후 밖에서는 최강철 이병의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한가득 울려 퍼졌다.
8.
그날 저녁을 먹은 소대원들이 단독군장 차림을 했다. 오늘 야간 사격이 잡혀 있는 날이었다.
“이야, 오랜만에 야간 사격이 잡혔네.”
“네. 그렇지 말입니다.”
“그런데 야간 사격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쉬지도 못하고 말이죠.”
“그건 동감! 하지만 어쩌겠냐. 진급시험이라는데.”
김우진 상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른 소대원들도 싫기는 마찬가지였다. 김일도 병장이 그런 소대원들을 보며 버럭 했다.
“야! 다들 표정들이 왜 그래?”
“아닙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다들 나갈 준비나 해.”
“네, 알겠습니다.”
“총기 거치대 풀었어?”
“네.”
오상진도 단독군장 차림으로 내무실에 왔다.
“오늘 야간 사격인데 다들 문제없지?”
“네. 없습니다.”
오상진이 소대원들을 둘러본 후 입을 열었다.
“참, 강철아.”
“네.”
“너 백일 다 되었더라. 백일 휴가 갈 준비해야지.”
순간 최강철 이병의 얼굴이 환해졌다. 주위에 있던 고참들이 축하를 해 줬다.
“오오, 벌써 백일 되었어?”
“이야, 우리 막내 백일 되었구나.”
“백일 휴가 가겠네.”
“좋겠다.”
고참들의 축하에 최강철 이병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다가 이해진 상병에게 슬쩍 물었다.
“이 상병님, 백일 휴가는 몇 박 며칠입니까?”
“4박 5일.”
“아, 4박 5일…….”
최강철 이병은 며칠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휴가라는 것에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최강철 이병을 봤다.
“우리 강철이 백일동안 군 생활 한다고 고생 많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잘 참아주었다.”
“아닙니다. 제가 1소대 소대원이라서 너무 좋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오상진이 슬쩍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정말이야? 사실이야?”
“네, 사실입니다.”
“아니던데, 너 처음에는 본부중대 가고 싶었다면서.”
“네? 그걸 어떻게…….”
최강철 이병이 순간 당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