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302화
29장 진급만이 살길이다!(5)
“뭘 어떻게 합니까? 고작 한 달인데.”
김일도 병장이 제대할 때 쯤이면 박대기 상병도 제대를 한 달 앞둔 상태가 된다.
때를 맞춰 말년 휴가를 다녀오면 제대 날은 더 줄어들 테니 김일도 병장이 없는 틈을 타 박대기 상병이 1소대에 해코지를 할 시간조차 없을 터였다.
“그래도 다행이네. 한 달이면 딱히 부딪칠 일은 없겠네. 대기도 말년이고 말이야.”
“저도 그걸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때 멀찍이서 사격 소리가 들렸다.
“어, 사격 시작하는가 보다.”
“분대장님. 2소대 잘 쏠 것 같습니까?”
“내가 알게 뭐야? 그래도 솔직히 만발 안 나왔으면 좋겠다.”
“저도 그렇지 말입니다.”
김일도 병장과 김우진 상병이 마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 말은 현실이 되었다.
-전 사로 사격 끝! 노리쇠 후퇴 고정 후 총기 거치대에 놓고 뒤로 물러나 대기.
“노리쇠 후퇴 고정.”
2소대원들이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마이크를 통해 김철환 1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사로 17발, 2사로 19발, 3사로 18발, 4사로 18발.
12사로까지 만발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19발 한 명만 나왔다. 물론 모두 14발 이상 맞혔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1소대보다 총을 못 쐈다.
PRI 교장에서 마이크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장재일 2소대장은 들려오는 결과에 무척이나 실망했다.
“뭐야? 만발이 없어?”
“큰일 났습니다. 만발이 없습니다.”
옆에 있던 부소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2소대장은 자존심이 확 상했다. 앞서 쏜 1소대에서는 만발이 세 명이나 나왔다. 그런데 2소대에서 만발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아, 이 자식들. 일부러 시간까지 널널하게 줬더니. 안 되겠네.”
장재일 2소대장은 자신의 소대인 2소대원들에게 화가 났다. 일부러 푹 쉬게 해주고 사격을 간 2소대원들이 PRI를 빡세게 굴린 1소대원들보다 결과가 좋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2소대원들이 일부러 자신을 엿 먹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장재일 2소대장은 괜히 옆에 있는 부소대장에게 말했다.
“김 하사.”
“네.”
“자네는 도대체 하는 일이 뭔가?”
“네?”
“애들 관리를 이따위로 하면 어떻게 하나!”
장재일 2소대장의 핀잔에 부소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게 제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누구 잘못인데? 내 잘못이야?”
“…….”
“대답 안 하네? 내 잘못이라 이거지? 그래, 좋아. 내 잘못으로 하자! 그럼 됐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리고 너, 요즘 봐줬더니 상당히 기어오른다. 와, 진짜 성질 같아서는…….”
한참 동안 부소대장을 잡아대던 장재일 2소대장이 제 화를 참지 못하고 공터 쪽으로 몸을 돌려 버렸다.
“어디 가십니까?”
“담배 피우러 간다. 왜!”
부 소대장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자기가 진급 누락됐다고 괜히 나에게 성질이야. 진짜 더러워서 못 해먹겠네.”
이 모든게 진급 누락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는 부소대장이 한껏 인상을 썼다.
4.
총기 손질을 마치고 1소대원들은 총기를 거치대에 놓았다. 열쇠로 잠금장치를 건 후 열쇠는 상황실에 가져놨다. 김일도 병장이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시간 참 잘 간다. 벌써 밥 먹을 시간이네.”
“벌써 말입니까?”
“자, 다들 밥 먹으러 가자.”
“네.”
소대원들은 관물대에서 수저를 챙겨 식당으로 내려갔다. 이해진 상병과 최강철 이병도 식당으로 내려가 줄을 섰다. 그 모습을 본 김우진 상병이 한마디 했다.
“강철아.”
“이병 최강철.”
“넌 해진이한테서 떨어질 생각은 없는 거냐?”
“네?”
“아니, 아기새가 어미새에게 밥 달라고 하는 것처럼 졸졸졸 따라 다니고 말이야.”
김우진 상병의 핀잔에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나섰다.
“제가 사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럽니다.”
“인마, 아무리 사수라고 해도 각자 할 일이 있잖아. 그런데 너희는 거의 24시간을 붙어 있어. 해진이 네가 어딜 가든 강철이는 항상 쫓아다니고 말이야.”
“제가 좋아서 그러지 않습니까. 김 상병님 질투 나십니까?”
“질투? 허, 지금 장난 해!”
김우진 상병이 투덜거리며 걸어갔다. 부사수였던 강대철 이병이 영창으로 끌려간 이후 다시 혼자가 된 자신과 달리 이해진 상병은 최강철 이병이 있으니 부러운 게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김우진 상병의 모습에 최강철 이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해진 상병님. 제가 정말 그럽니까?”
“네가 좀 그런 면이 없잖아 있긴 하지.”
“와, 정말 그런 줄 몰랐습니다. 저는 그냥 이 상병님과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알려줄 것만 같고 그래서…….”
“알지, 알아! 신경 쓰지 마.”
“김 상병님이 저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씁니까?”
“뭐 어때. 질투 나서 저러는 거야. 우리 둘이 너무 잘 맞으니까.”
“그런 겁니까?”
“그런 거야!”
이해진 상병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최강철 이병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우진 상병이 한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좀 조심해야겠다.’
최강철 이병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해진 상병을 따르는 건 좋지만 필요 이상으로 의지하는 건 이제부터라도 줄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줄을 서는데 최강철 이병의 눈에 잔뜩 주눅이 든 2소대 신병이 들어왔다.
‘어? 저 녀석은…….’
최강철 이병이 다시 이해진 상병을 불렀다.
“이 상병님.”
“왜?”
“저기 저 녀석은 2소대 신병 아닙니까?”
“그러네.”
“저 신병 어디 아파 보이지 않습니까?”
최강철 이병의 말에 이해진 상병이 유심히 살폈다.
“그러게, 어디가 좀 불편해 보이네.”
“그렇지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괜히 신경이 쓰이지? 내가 가서 의무대 보내주라고 얘기할까?”
“그러면 안 되겠지 말입니다.”
“당연히 안 되지! 같은 중대라고 해도 우리가 함부로 간섭을 할 수가 없어! 그리고 2소대장 성격 알잖아.”
“네.”
“그래도 넌 우리 1소대인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라. 그래도 우리 소대가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소대장님 오시고 나서 확 달라졌다. 그러니까, 너도 우리 소대장님과 함께 군 생활 한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
“예!”
5.
1소대원들은 점심을 먹고 내무실로 와서 휴식을 취했다. 오상진도 점심을 먹고 곧바로 내무실로 갔다.
“점심은 맛나게 먹었냐?”
“네. 그렇습니다.”
“오후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안보교육입니다.”
“그렇구나. 내무실 TV로 시청하기로 했냐?”
“네. 그렇습니다.”
“그럼 오후에는 TV 시청하고 안보교육에 관한 공부 좀 해. 어차피 이번 금요일 날 시험 본다고 하니까.”
오상진의 말에 소대원들이 절망했다.
“으아아아, 시험입니까?”
“내가 미쳐,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군대에서마저. 하아.”
“점수는 어떻게 됩니까?”
“아마 60점 이상만 맞으면 될걸. 그리고 그리 어려운 문제 아니야. 비디오 시청만 잘 하고, 안보교재만 잘 훑어보면 쉬워.”
“네. 알겠습니다.”
“그래. 중대장님과 소대장님은 오후에 또 사격이 잡혀 있어서 하루 종일 붙어 있어야 하니까. 일도야.”
“병장 김일도.”
“네가 잘 다독여서 오후에는 공부 위주로 해.”
“네. 알겠습니다.”
“그래. 푹 쉬고. 교육 잘 받아라.”
오상진이 말을 마치고 내무실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소대원들이 저마다 탄식을 내뱉었다.
“미치겠네. 무슨 시험입니까.”
“시험 보기 싫어서 군대 들어온 건데 군대에서도 시험이라니, 너무합니다.”
“앓는 소리 적당히 하자. 안보관련에서 나온다고 하니까. 공부하면 되겠지.”
“그래. 무슨 대단한 시험 본다고 엄살들이야?”
그때 김일도 병장이 시계를 확인했다.
“어차피 13시 되려면 20분 남았네. 좀 쉬다가 교육받자.”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은 이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해진 상병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해진 상병님.”
“왜?”
“군대에서도 시험을 봅니까?”
“별 거 없어. 그냥 안보교육과 관련된 시험을 봐.”
“그런데 시험이 어렵습니까?”
“어렵지. 너 우습게 생각하지 마라. 그리고 정답 이상하게 쓰면 불려가서 겁나 혼난다.”
“아, 그렇습니까?”
최강철 이병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진 상병은 그런 최강철 이병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잠깐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13시가 되었다. 안보교육 비디오 시청은 15시까지 이루어졌다. 그런데 내무실에서 편안한 자세로 시청을 하다 보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와, 미치겠네. 완전 수면제가 따로 없습니다.”
“시끄럽고, 화장실 가서 세수하고 와.”
“네, 알겠습니다.”
구진모 일병이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고 들어왔다. 그렇지만 졸음은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소대원들에게서 떨어지질 않았다.
처음에 잔소리를 해대던 김일도 병장은 아예 베개를 머리에 대고 잠이 들었다. 김일도 병장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고참들은 잠들어버렸다. 그나마 이등병과 일병만이 내려가는 눈꺼풀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동영상 시청이 끝나고 15시부터는 안보교육과 관련된 책을 펼쳐놓고 공부를 했다. 조영일 일병이 공부를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뭔데?”
김우진 상병이 바로 답했다.
“아까 우리나라의 주적에 대해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 주적이 북한군입니까? 아니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해야 합니까?”
조영일 일병의 물음에 김우진 상병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다가 노현래 이병에게 질문을 했다.
“야, 노현래.”
“이병 노현래!”
“우리의 주적이 누구야!”
“북한입니다.”
“북한 말고! 다른 명칭!”
“그건…… 북한이라고 하면 안 됩니까?”
노현래 이병이 해맑은 눈빛으로 말했다. 김우진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그래. 맞아. 북한이지. 하지만 안보 교육 좀 받았다는 사람은 유식하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하겠지. 북한은 우리식 표현이잖아.”
“아!”
노현래 이병이 금방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좀 유식하게 고급진 말로 적자!”
“네!”
그래서 우리의 주적은 북한군이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쓰기로 했다. 열심히 공부했다는 티를 내려는 속셈으로 말이다.
“오오, 완전 있어 보이지 말입니다.”
“자식, 그렇지?”
“넵!”
“좋아, 그럼 다음 문제!”
만발을 쏜 노현래 이병으로부터 존경 가득한 눈빛을 받은 김우진 상병은 어깨를 으쓱하며 신나게 공부를 시작했다.
6.
그날 저녁 오상진은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중대 행정반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오상진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소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요즘 계속 늦게까지 일하지 말입니다.”
4소대장이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그러자 3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