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95화
28장 별빛이 내린다(12)
“우리 상진 씨가 이래저래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다니까.”
“와, 우리 소희 남자 잘 만났네. 누가 소개시켜 준 거야?”
한대만은 은근히 자신의 어깨를 으쓱했다.
“누구겠어요. 우리 오라버니지요.”
“하하핫!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오늘 저녁은 내가 쏜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오빠! 갑자기 왜 만나자고 한 거야? 엄청 급해 보이던데.”
한소희의 물음에 한대만이 짐짓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여기서 얘기할 것은 아니고, 우리 자리 좀 옮기자.”
오상진과 한소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조용한 한정식집으로 갔다. 방으로 안내를 받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한대만이 나오는 음식을 보며 살짝 인상을 썼다.
“나오는 음식이 좀 그렇다. 10만 원짜리 코스메뉴인데.”
한대만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곧바로 한소희가 반격했다.
“오빠, 그냥 먹어! 오빠 때문에 여기 온 거잖아. 우린 다른 것 먹고 싶었는데!”
“아, 맞다. 그렇지.”
“아무튼, 할 얘기가 뭐야?”
한소희가 음식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오상진의 앞접시에 놓았다. 그러는 사이 한대만은 진지한 얼굴로 매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소희 너…….”
“응!”
“고모되게 생겼다.”
“고모? 내가 고모? 그게 무슨 소리야?”
한소희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아! 혹시 김 중위님 임신하셨습니까?”
순간 한소희의 눈이 커졌다.
“뭐!?”
한 대만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매제는 눈치가 빨라.”
하지만 한소희는 말도 안 된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이 오빠, 미쳤어! 미쳤어! 아니, 어떻게 그런 사고를 쳐!”
“인마, 사고라니. 하늘의 축복인데! 그리고 요즘 아기가 혼수로 대세란 것도 몰라?”
“무슨,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한소희가 기가 막혀 하고 있을 때 한대만은 오상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었네.”
“축하드립니다.”
“상진 씨. 이게 축하할 일이에요?”
“당연히 축하할 일이죠. 안 그래요?”
“그, 그런가요?”
오상진이 웃으며 말하자 한소희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힐끔 한 대만을 노려봤다.
“어떻게 된 일이야. 엄마는 알아?”
“엄마한테는 대충 말했어.”
“엄마가 뭐래? 가만 안 둔다고 하지?”
“아니, 소희 씨 한번 집에 데려오라고 하던데.”
“아하, 그래서 집에 뻔질나게 들어왔구먼. 엄마 비위 맞춰주려고!”
“이 녀석은…….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 하하핫!”
한대만은 민망한 듯 크게 웃었다. 한소희는 곧장 오상진에게 일러바쳤다.
“상진 씨, 우리 오빠 있잖아요. 요즘 만날 집에 오는데요. 그것도 엄마 좋아하는 것만 사와서 비위 맞춰주고 그래요. 진짜 웃기죠!”
“…….”
오상진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얼마나 그랬으면 어제 아빠가 나에게 물어봤겠어. 너희 오빠 왜 저러냐면서! 그런데 알고 보니 이랬던 거였어. 완전 배신감 느낀다!”
“배신감은……. 아무튼 이제 알았으니까 됐잖아.”
“언제 그리되었는데…….”
오상진의 머릿속으로 번뜩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설마, 형님……. 남해 놀러 갔을 때?”
그러자 한 대만이 헛기침과 함께 입을 뗐다.
“허험! 그때 내가 열과 성을 다해서 엄청 열심히 노력했지.”
“미쳐! 아주 그냥 하루 종일 방에서 그 짓거리를 하더니……. 아무튼 내가 사고 칠 줄 알았다니까.”
한대만이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한대만이 그러길 바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님 축하드립니다.”
“상진 씨는 아까부터 자꾸 축하한다고 하네. 이게 축하받을 일이에요?”
“그럼요. 새로운 새 생명이 생겼는데요. 축하해야죠.”
“칫!”
한소희가 한 차례 콧방귀를 끼고는 한대만을 쳐다봤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건데?”
“그게……. 나도 걱정이다.”
“뭐야? 결혼 안 할 거야? 배 불러오기 전에 빨리해야지.”
한대만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버지에게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한소희가 말했다.
“말을 뭐라고 꺼내긴! 맞아 죽을 각오로 꺼내야지. 그냥 아빠랑 술 한잔하면서 얘기해. 아무튼 아빠 손자 아니야. 기뻐하실지도 몰라.”
“그럴까? 술 먹고 질러 버릴까?”
“그게 제일 편하지 뭐. 아빠, 술 마시면 기분 좋아지시잖아.”
오상진은 남매의 대화를 들으며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다고 그들 사이에 낄 수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대만의 시선이 오상진에게 향했다.
“매제!”
“네, 형님.”
“매제는 좋은 아이디어 없나?”
“글쎄요.”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한소희가 끼어들었다.
“그걸 왜 상진 씨에게 물어! 그러지 말고, 술 먹고 확 질러 버리라니까.”
한대만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오상진은 또 웃었다. 이런 상황이 참 재미있었다. 그렇게 음식이 계속해서 나왔다. 밥을 어느 정도 먹고 한대만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저 건물은 어떻게 된 거야?”
오상진이 대충 설명을 했다.
“원래 어머니 가게를 차려드리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동산에서 연락이 와서 갔는데 주인이 권리금을 세게 부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거긴 못하고 이래저래 하는 사이 우연히 저 건물이 경매로 나왔지 뭡니까. 낙찰을 통해서 사게 되었습니다.”
“아, 낙찰?”
“네.”
“그럼 혹시 경자 이모?”
“응, 맞아.”
“이야, 경자 이모 너무하네. 나에게는 그런 얘기 한마디도 안 해주고!”
“뭐? 오빠가 이모랑 통화할 시간도 있었겠어? 그보다 이모 전화번호 바뀐 것은 알아?”
“어쩐지 전화가 안 오더라.”
“오빠가 먼저 전화를 했어야지. 으구!”
한소희의 핀잔에 한대만은 껄껄 웃기만 했다. 그리고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이제 거의 끝난 거야?”
“네. 거의요. 1층은 어머니께서 하실 국밥집 리모델링 끝났고요. 그 옆에 떡볶이집 계약했어요.”
“떡볶이집? 왜 떡볶이야? 딴 것을 하지 그랬어. 요즘 프랜차이즈 엄청 많은데.”
그러자 한소희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엄청 맛있거든! 오빠가 그 떡볶이집 것을 먹어봤어?”
“맛있어? 정말? 이야, 우리 소희가 맛있다고 하면 기대가 되는데.”
그 말에 한소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김 중위 가져다주게?”
“어? 그걸 어떻게 알았대.”
“어후, 저 팔불출!
“됐어, 인마! 그건 그렇고 건물 몇 층이야?”
“5층입니다.”
“5층? 그럼 5층에 나 방 하나 주면 안 돼?”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 어쩌면 나 아버지에게 쫓겨날 수도 있으니까.”
그러자 한소희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아이고, 오라버니. 안 쫓겨날 생각을 해야지. 벌써 쫓겨날 생각부터 하냐!”
“야! 아버지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지. 내가 힘이 있냐! 그렇다고 내가 처자식을 버릴 수 있냐?”
“벌써 처자식이 되어버린 거야?”
“그럼! 결혼은 안했지만 내 새끼를 가졌는데. 당연히 처고 자식이지!”
그러면서 시선을 오상진에게 향하며 바로 비굴모드로 바뀌었다.
“매제, 아니, 건물주님! 좀 싸게 해주실 수는 없습니까?”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만약에 그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바로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한소희가 오상진을 툭 쳤다.
“어이구, 상진 씨 그러지 마요. 잘못했다가 우리 아빠에게 밉보이면 어떻게 해요.”
“어? 또 그런 건가요? 형님, 죄송한데 정말 그러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매, 매제…….”
오상진이 장난식으로 말했다. 그러나 한대만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곧바로 오상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에이, 매제! 왜 그래. 내가 잘할게. 아니지, 제가 잘하겠습니다. 건물주님!”
“혀, 형님……. 이러지 않으셔도.”
오히려 당황한 쪽은 오상진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웃고 떠들며 시간이 지나갔다.
저녁을 다 먹고 식당을 나온 오상진과 한대만은 잠시 문 입구에 섰다. 그러다가 한대만이 슬쩍 말했다.
“매제, 우리 담배 한 대 피울까?”
그때 계산을 하고 나온 한소희가 바로 말했다.
“오빠! 담배 피우려면 오빠만 피우지, 왜 우리 상진 씨를 데리고 가!”
“소희 씨, 형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는 모양입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상진 씨, 담배 조금만 피우세요.”
“네네, 그냥 저 안 피울게요.”
한소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걸 알기에 오상진이 안 피우겠다고 말했다.
“어휴, 저 녀석 남자 친구 있다고 엄청 챙기는 것 봐.”
오상진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 그렇게 흡연구역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 한 대만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형님, 저도 하나 주십시오.”
“됐어. 피지 마.”
“예? 괜찮습니다.”
“에이, 소희가 하지 말라면 하지 마. 나도 사실 김 중위가 담배 피우지 말라면 안 피울 거야.”
“그렇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왜?”
“오늘은 김 중위 만날 일이 없거든. 그리고 나도 숨 좀 쉬어야지. 솔직히 요 며칠간…….”
한대만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혹시 소희에게 얘기 들었나? 지난번에 싸웠다는 거?”
“아, 예에.”
“야, 그날! 우리 김 중위 비위 맞춰주느라 죽는 줄 알았다.”
“아, 그랬습니까?”
“그런데 김 중위 태우고 내려오는데 소희 표정이 너무 좋다는 거야. 또 그걸 가지고 싸웠잖아.”
“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나도 몰라! 왜 한소희 표정이 좋은 걸 가지고 김소희가 난리를 피우는지 몰라!”
그러다가 슬쩍 음흉한 눈빛을 지으며 물었다.
“둘이 무슨 일 있던 거야?”
“네? 무, 무슨 일은요.”
“솔직히 말해봐. 좋았어?”
한대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물었다. 오상진이 순간 당황했다.
“네. 뭐…….”
“좋았으면 됐다! 그건 그렇고 우리 매제 생각보다 능력도 좋아. 저 건물이 우리 매제 거라니.”
한대만은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을 보며 부러워했다. 오상진이 살짝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다고 매제 나이에 저런 건물을 소유할 수는 없지. 그래도 매제는 좋겠다.”
“네?”
“저런 건물이라도 있으니 우리 아버지가 심각하게 반대는 안 하시겠지.”
“왜요? 아버님이 반대하실 것 같아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 반대하실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반대는 안 하실 겁니다. 김 중위님 보기보다 싹싹하실 것 같은데.”
“하긴 그렇지? 밀고 가야겠지?”
“예!”
“그나저나 저기 5층에…….”
오상진이 바로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만약에 진짜로 그런 일이 생기면 방 하나 빼놓겠습니다.”
“그건 농담이고, 5층에 소희 방 하나만 만들어 놔.”
“네?”
“내 동생 소희 말이야. 우리 소희, 집 말고는 학교밖에 없었거든. 그래서 가끔 일탈을 해. 자네도 알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