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92화
28장 별빛이 내린다(9)
“그냥 이참에 화단에 꽃을 심는 것은 어떻습니까?”
“꽃…… 말입니까?”
“네, 이제 가을도 되었고, 화사한 꽃이 있으면 부대 분위기도 좋을 것 같고 해서요.”
“뭐,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저랑 지금 화원에 들르죠.”
“네.”
그렇게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가 외부로 나가 화원에서 꽃을 사 왔다. 그리고 1소대와 4소대원들에게 부대 주변 화단에 꽃 심는 일을 시켰다.
소대원들은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는데 화단 가꾸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아 보였다. 한종태 대대장은 그것을 보더니 아주 기뻐했다.
“이야, 부대에 꽃이 예쁘게 있으니 보기 좋다. 역시 1소대장이야.”
그렇게 금요일까지 1소대와 4소대는 주변 화단을 가꾸는 것으로 개인정비를 마쳤다.
16.
금요일 오후.
오상진은 박은지의 전화를 받고, 면회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박은지 말고도 이강진 반장이 와 있었다.
“어? 이 반장님.”
“안녕하셨습니까?”
두 사람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박은지가 오상진을 힐끔 봤다.
“저는 안 보여요?”
“은지 씨,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네. 고생 많았죠?”
“고생은요.”
“그보다 이 반장님은 왜 불렀어요? 바쁘신 분인데.”
“솔직히 두 분이 이번 사건의 주역인데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렵게 모셨습니다.”
“그래요?”
오상진이 미안했다.
“그럼 제가 반장님 있는 곳으로 갈 걸 그랬습니다.”
“아닙니다. 이참에 저도 동생 면회도 하고 좋죠.”
이강진이 멋쩍게 웃었다. 빈말이 아니라 이해진이 군에 입대한 이후 지금껏 단 한 번도 면회를 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내려올 때 미리 얘기해 뒀습니다. 해진이도 금방 내려올 겁니다.”
“네.”
두 사람이 간단히 얘기를 나누는 동안 박은지가 카메라를 꺼냈다.
“자, 일단 두 사람 나란히 앉아 봐요.”
박은지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좀 더 가까이……. 네, 좋아요. 반장님 좀 더 환하게 웃어주세요. 네. 그렇게요. 그럼 찍습니다.”
박은지가 셔터를 눌렀다. 그러자 카메라가 연사가 되는 듯 여러 장 찍혔다. 박은지기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진 씨 그때 얘기를 다시 해주실 수 있어요?”
박은지가 노트북을 꺼내며 말했다. 오상진이 막 말을 하려는데 면회실로 이해진 상병이 나타났다.
“어? 해진이 왔네요. 전 그럼 해진이와 저쪽에서 얘기 좀 나누겠습니다.”
이강진 반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장님. 조금 있다 봬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이강진 반장이 가고 오상진은 조금 전 질문 받았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게 말이죠. 근무를 서고 있는데…….”
오상진은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일을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박은지는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타자를 쳤다.
“그럼 그 당시 기분은 어땠습니까?”
“기분은 그냥 멍했죠. 무섭기도 하고! 토막 난 시체를 봤을 때는…….”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오상진은 살짝 인상을 쓰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다음 질문 갈게요. 그 사람을 봤을 때 처음부터 수상했던 것이 있었어요?”
“네, 솔직히 처음 봤을 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어요. 시선도 피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오상진은 범인 임춘재를 봤던 첫 느낌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럼 다음 질문요. 그 사람이 살인 사건 용의자란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솔직히 엄청 놀랐죠. 그 당시에는…….”
오상진은 이어지는 박은지의 질문에도 성실히 답을 해주었다.
“어떻게 시체를 찾을 생각을 하셨어요?”
“으음…… 원래 제가 직접 찾을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알려드린 곳이 아닌 그 반대 방향을 수색하더라고요.”
“반대 방향요?”
“네, 범인을 봤던 날 밤, 그 사람이 올라갔던 위치를 확인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올라가 보니 깎아지른 절벽뿐이라 뭔가를 숨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주위를 수색했는데, 흙을 판 흔적만 보였지 시체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점점 힘들어질 때 혹시나 싶어서 제가 나서게 된 것입니다.”
“아, 그러다 시체를 발견하게 되었군요.”
“네.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네. 괜한 말 나오지 않게 잘 다듬을게요.”
그 외에도 박은지는 여러 개의 질문을 했다. 오상진은 아주 성실히 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약 1시간가량의 인터뷰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한국일보에 오상진과 이강진이 나란히 찍힌 사진과 함께 기사가 떴다.
17.
주말을 맞아 오상진는 한소희와 함께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하자 인테리어 사장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이고, 사장님 오셨습니까?”
“네. 사장님. 공사는 잘되고 있죠?”
“물론입니다. 매일 여사님께서 나오셔서 이것저것 확인을 다 하셨습니다.”
“어머니가요?”
“네.”
“그럼 문제없겠네요.“
오상진이 직접 눈으로 확인해도 인테리어가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홀은 입식과 좌식으로 나뉘었는데 왼쪽은 좌식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오른쪽에는 식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방은 오픈형 주방으로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보였다. 고객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어머니의 뜻이 반영된 주방이었다.
“아무튼 사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요.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그래도 까다로운 주문에도 이렇듯 만족스럽게 해주셨으니 감사할 일이죠.”
“그게 저희 일인 걸요. 참, 사장님.”
“네?”
인테리어 사장이 옆에 서 있는 한소희를 한 번 보고는 웃으며 물었다.
“여사님 계실 때 사모님은 한 번도 안 오셨습니다. 같이 와서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여사님은 오상진의 어머니를 뜻했고, 사모님은 한소희를 뜻하는 것이었다. 한소희가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소희 씨, 우리 어머니 못 만났어요?”
“실은 봤는데…….”
“봤어요?”
“제가 방해할까 봐 피했어요. 어머님 계시면 그냥 조용히 왔어요.”
“에이, 인사 좀 드리고 그러지.”
“아직은 좀……. 마음에 준비가 덜 되어서…….”
“아…….”
오상진은 곧바로 이해가 되었다. 사실 오상진은 결혼을 경험했다. 회귀하기 전에 말이다. 그래서 한소희가 느끼는 감정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다르게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니, 왜? 나랑 결혼하고 싶지 않은 건가? 우리 어머니를 만나기 싫나? 이런 하찮은 생각으로 혼자 머리를 싸맸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오해가 쌓이면 나중에 싸우게 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고부 사이의 일은 아무리 해도 쉽지가 않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생각이 좀 짧았네요. 천천히 해요. 나중에 나랑 같이 어머니 만나면 되니까.”
“네.”
한소희가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오상진은 인테리어 사장과 다시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아직 마무리 작업은 덜 되었죠?”
“네.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끝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 마십시오. 그보다 저기 오른쪽 공간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혹시 저쪽 공간에 들어올 가게는 정하셨습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오른쪽 공간을 확인했다.
“아뇨,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구상 중입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인테리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순간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인테리어 사장이 무슨 의도로 말을 꺼낸 건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사장님, 걱정 마세요. 저쪽에 사람 들어오면 제가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아후,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인테리어 사장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만약에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 그쪽에서 담당하는 업체가 와서 인테리어를 해버리기 때문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인테리어 사장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이 건물 전체에 대한 리모델링을 따내고 싶었다.
“아무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인테리어 사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사장님. 그럼 마지막까지 수고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인테리어 사장의 인사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
“소희 씨 배고프죠?”
“조금요?”
“그럼 밥 먹으면 얘기 좀 나눌까요?”
“좋죠.”
오상진과 한소희가 식사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오상진이 물었다.
“소희 씨는 식당 건너편 공간에 뭐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으음, 저는 솔직히 편의점을 생각했는데 막상 와서 공간을 확인해 보니 좀 힘들 것 같네요.”
“왜요?”
“편의점이 들어서기에는 조금 좁지 않아요?”
빈 공간은 약 15평 정도 되었다.
“좁나?”
“네. 창고도 넣고, 그 외 기계라도 들어가면 많이 좁을 것 같아요. 그럼 매출도 안 나올 것 같고…….”
한소희가 대략적인 상황을 검토한 후 내린 결론이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네. 다른 종목도 생각을 해봤거든요.”
“어떤 걸로요?”
“네일 샵이나……. 저 공간에 충분히 할 수 있는 다른 거로요.”
“네일 샵?”
“요즘에 네일 샵이 유행이에요. 여자들이 손톱 관리나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요? 그럼 미용실도 괜찮지 않아요?”
오상진의 물음에 한소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용실은 좀 안 맞을 것 같아요. 식당이랑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럼 커피숍은 어때요?”
한소희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커피숍도 아닌 것 같아요.”
“왜죠?”
“저 이 건물 커피숍 많이 애용할 거란 말이에요. 그럼 어머니도…….”
“아…….”
오상진은 또 바로 이해가 되었다.
‘하긴 어머니가 일하고 계시는데 한가로이 옆에서 커피를 마실 수는 없지.’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한소희는 살짝 부끄러운지 곧바로 다른 말을 했다.
“게다가 커피숍은 뷰도 좋아야 해요. 그러니 2층에 커피숍이 들어가면 좋겠어요.”
“그래도 커피숍은 1층에 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 고정관념을 버려요, 상진 씨! 여자들은 분위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에요. 잘 생각해요, 커피숍을 주로 이용할 손님 중 여자가 많을 거 같나요, 남자가 많을 거 같나요?”
“아, 그것도 그러네요. 알겠어요. 좀 더 고민해 볼게요.”
그런데 그때, 길을 걷는 오상진의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오상진은 그 맛있는 냄새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푸드 트럭 한 대가 보였다. 부부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떡볶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오상진이 한소희를 불렀다.
“소희 씨!”
“네?”
“떡볶이 먹을래요?”
“어? 저도 방금 그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았죠?”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럼 저기 가서 떡볶이 먹어볼까요?”
“네.”
오상진과 한소희가 푸드 트럭으로 갔다. 젊은 부부가 하고 있는 푸드 트럭에는 떡볶이 말고도, 순대, 튀김도 팔고 있었다. 오상진이 한 번 쭉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떡, 순, 튀죠!”
“네? 무슨 말이에요?”
한소희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자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떡볶이, 순대, 튀김을 말하는 겁니다.”
“뭐예요, 그게!”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미래에는 흔한 줄임말이지만 이 시절에서는 오상진이 처음 사용한 모양이었다.
오상진도 따라 웃으며 주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