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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287화 (287/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287화

28장 별빛이 내린다(4)

오상진의 기대에 찬 눈빛을 받은 한소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실은 예전에 잠깐 배웠어요.”

“역시!”

“잘하는 건 아니에요. 정말 어릴 때 아주 잠깐 배운 거라고요.”

이 시절에 좀 사는 집안 자식들 치고 피아노 한 번 배워보지 않은 이들은 드물었다.

한소희도 교양을 쌓아야 한다는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노 선생은 제법 소질이 있다고 한소희를 칭찬했지만 정작 한소희는 기계적으로 건반을 두드려야 하는 행위 자체에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예전부터 피아노 치는 여자를 동경해 왔던 오상진은 한소희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을 반짝였다.

“그래도 아직 감각은 남아 있지 않아요?”

“아뇨, 전혀요.”

“그래요? 아쉽네요.”

“왜요? 피아니스트가 이상형이였어요?”

“그건 아닌데 소희 씨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까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아서요.”

오상진의 뻔뻔스러운 말에 살짝 발끈했던 한소희가 얼굴을 붉혔다.

“상진 씨도 무슨 그런 상상을……. 솔직히 어릴 때 배우긴 했지만 저랑 피아노는 안 맞아요.”

“그냥 상상이에요. 피아노 치는 소희 씨의 모습을 말이에요.”

오상진의 말에 한소희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말없이 칵테일을 한 모금 마셨다.

사람마다 다 로망이라는 게 있는 거겠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취미 생활을 바란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 한소희의 표정을 읽은 것일까.

“소희 씨 화났어요? 미안해요. 내가 괜한 말을 했어요.”

오상진이 냉큼 한소희를 달랬다.

예전 같으면 뾰족하게 나갔을 한소희였다. 하지만 이미 앞에 있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제대로 성격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게다가 오상진이 정말로 미안해하니까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낸 것 같아 오히려 미안해졌다.

“알겠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피아노 치는 모습 한번 보여줄게요. 대신 못 친다고 구박하기만 해봐요.”

“전혀요!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오상진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었다.

“그런데 형님과 김 중위님은 소희 씨 내려주고 바로 가신 거예요?”

“말도 마세요.”

“왜요?”

“아니, 오는데 차 안에서 대판 싸웠어요. 아니지, 싸운 건 그 전인 거 같고 저 태우고 나서 강원도에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도 안 했어요. 분위기가 어찌나 살벌하던지…….”

“아, 그랬어요?”

“네에. 원래 같이 밥 먹기로 했었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냥 보냈어요.”

“그럼 형님 뭐 하나 연락이나 해볼까요?”

오상진은 자신 때문에 고생한 한대만이 고맙고 미안했다. 그래서 안부 전화라도 챙기고 싶었다.

그러자 한소희가 두 팔을 저었다.

“아휴, 그럼 눈치 없죠. 지금쯤 오빠가 김 중위님 열심히 화 풀어주고 있을 텐데.”

“아, 그런가요?”

“네. 그러니까 괜히 방해할 생각 말고 나한테만 집중해요.”

“알았어요.”

그렇게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칵테일을 마셨다. 그러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바에서 나온 두 사람은 다시 호텔 로비를 걸었다.

그렇게 오상진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한소희를 배웅했다.

“올라가요.”

“네에…….”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지만 한소희는 오상진을 떠나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오상진도 마음이 아팠다.

“미안해요. 여기까지 왔는데 같이 있어 주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잖아요.”

한소희는 아쉬움이 가득 담긴 말을 했다. 오상진의 마음이 찌릿 아파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오상진이 아쉬움 가득 담긴 마음으로 보내주려고 했다. 그런데…….

“응?”

몸을 돌린 오상진이 자신의 옷소매를 누군가 붙잡았다. 소매를 잡은 손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한소희가 서 있었다.

“가지 마요.”

“네?”

“가지 마요, 상진 씨…….”

순간 오상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6.

어쩌다 보니 오상진은 한소희의 팔에 이끌려 호텔 방 안까지 들어오고 말았다.

호텔 방 안은 어색함이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한소희는 잔뜩 부끄러운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 먼저 씻고 올게요.”

“네?”

“왜요? 씻지 말까요?”

“아, 아뇨. 씻어야죠.”

“잠깐만…… 기다려요.”

한소희가 도망치듯 욕실로 들어갔다.

“하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오상진이 이내 스스로를 자책했다.

“파견 근무 나와서 지금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이러려고 따라온 건 아닌데…….”

한소희와 첫 밤을 상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오늘보다 더 좋은 날, 더 근사한 데이트를 한 다음에 한소희를 안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때 샤워실에서 물줄기 소리가 ‘쏴아’ 하고 들려왔다. 순간 오상진은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와, 덥네. 더워!”

오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약 20분이 흐른 후 샤워실 문이 열리며 한소희가 나왔다. 오상진은 나온 한소희를 보고 심장이 멎을 뻔했다.

“헉!”

샤워를 마치고 나온 한소희는 가운을 걸치고 머리카락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피부는 또 얼마나 새하얀지 몰랐다.

“나 화장 지우니까 이상해요?”

오상진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 한소희가 고개를 부끄러운 듯 말했다.

“아뇨. 하나도 안 이상해요. 여전히 예뻐요.”

“칫. 거짓말.”

“정말이에요. 그런데 화장 지운 거 맞아요?”

“클렌징까지 꼼꼼하게 했거든요?”

한소희가 보라며 뽀얀 얼굴을 내밀었다. 순간 눈가로 귀엽게 튀어나온 뾰루지 하나가 보였다.

“우리 소희 씨는 화장 지우니까 애기같네요.”

“칫. 뭐래요. 상진 씨는 안 씻어요?”

“네? 네에……. 씨, 씻어야죠. 네. 그럼요.”

잠시 한소희의 민낯에 빠져 있던 오상진이 서둘러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런 오상진의 모습을 본 한소희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귀여워.”

남들이 보면 팔불출이라고 혀를 차겠지만 아직은 서로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두 사람이었다.

오상진이 샤워실에 들어와 문을 잠근 후 뿌연 수증기가 낀 거울을 손으로 닦았다.

“와,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그렇게 잠깐 있던 오상진은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구석구석 깨끗이 샤워를 한 후 다시 거울을 봤다. 그곳에 비친 우람한 자신의 가슴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자식, 나름 괜찮네. 그래도…….”

오상진은 자신의 가슴을 한번 만진 후 욕조를 붙잡았다. 그리고 바로 팔굽혀펴기를 20번 정도했다.

“후욱, 후욱. 근육이 좀 올라왔나?”

오상진은 다시 거울을 확인했다. 가슴이 조금 전보다 더 볼록하게 올라왔다. 양치질도 몇 번을 했는지 몰랐다. 그렇게 다 마무리 짓고 나왔다.

“소희씨……. 저 나왔어요.”

“…….”

그런데 한소희에게서 어떤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상진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힐끔 침대 쪽을 보았다. 그곳에 한소희가 옆으로 누워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오상진은 순간 힘이 쭉 빠졌다.

“하아, 지금 나 무슨 생각을 했던 거니.”

오상진은 살짝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침대쪽으로 갔다. 한소희는 등을 돌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네.”

오상진은 뭔가 많이 아쉬웠다. 그러면서 혼자 이상한 상상을 마구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나도 참…….”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몸을 돌리는데 자고 있을 줄 알았던 한소희가 벌떡 일어나며 오상진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왓!”

“소, 소희 씨…….”

오상진은 심장이 덜컹했다.

“놀랬죠!”

“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농담이 아니라 한소희의 기습 공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상진이 상기된 얼굴로 몸을 돌렸다. 한소희는 여전히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안 잤어요?”

“상진 씨가 안 나왔는데 어떻게 자요. 하지만 상진 씨가 조금만 늦게 나왔으면 저 잘 뻔했어요.”

“하하하……. 그랬군요. 제가 타이밍을 잘 못 맞춰요.”

“정말 그래요. 상진 씨는 타이밍이 정말…….”

한소희가 오상진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오상진 역시 한소희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한소희의 손이 자연스럽게 오상진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입술이 자연스럽게 포개지며 힘없이 침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방 안 불이 꺼지고 얼마 후 한소희의 야릇한 음성이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사, 상진 씨 천천히…….”

“아, 네에.”

“아파요, 부드럽게…….”

“제가 좀 거칠었나요?”

“상진 씨도 참…….”

“아, 미안해요.”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둘은 그토록 그리던 첫 밤을 보냈다.

7.

다음 날 아침.

오상진과 한소희는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어색함이 밀려왔지만 아직 첫 밤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였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잘 잤어요?”

“네. 상진 씨도 잘 잤어요?”

“물론이죠.”

두 사람은 침대에 누운 상태로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모닝 키스를 했다.

“이제 일어날까요?”

“네.”

한소희는 잔뜩 부끄러운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이 침대에서 나오려는데 순간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하핫, 하하하…….”

오상진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한소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상진 씨.”

“네?”

“저 쪽에서 가방 좀 주세요.”

“아, 네에…….”

오상진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서둘러 팬티를 입고 한소희의 캐리어를 가져다 준 뒤 등을 돌리고 자신의 옷을 마저 주워 입었다.

“돌아보면 안 돼요. 알았죠?”

간밤에 볼 걸 다 본 사이였지만 한소희는 몇 번이고 으름장을 놓았다.

“소희 씨 다 입었나요?”

“네.”

오상진이 군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돌렸다. 그곳에 치마가 나풀거리는 하얀색 원피스 차림의 한소희가 서 있었다.

“왜요? 이상해요?”

“아, 아뇨. 아침부터 천사를 보는 것 같아서…….”

“어멋! 뭐예요. 자꾸 어디서 그런 말을 배우는 거예요?”

“배우긴요.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입니다.”

“칫. 됐으니까 어서 밥이나 먹으러 가요.”

“네.”

두 사람은 아침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 커피를 마셨다.

“소희 씨, 이제 슬슬 들어가봐야 할 거 같아요.”

시계를 본 오상진이 헤어질 시간임을 알려 주었다.

4소대장이 있으니 별일 없을 테지만 그래도 소대장으로서 너무 오래 소대원들을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칫, 아쉽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제가 더 있고 싶습니다.”

그러자 한소희가 환하게 웃었다.

“어쩔 수 없죠! 제가 상진 씨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럼 소희 씨! 다음 휴가 때는 이곳 강원도로 와요.”

“아뇨, 다음 휴가 때는 국내 말고 해외로 나가요.”

“해외요?”

오상진이 움찔했다. 군인이 해외에 나가는 것은 절차가 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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