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86화
28장 별빛이 내린다(3)
그런데 그들이 향하는 곳은 횟집이 즐비한 경포대해수욕장이 아니었다.
“어? 상진 씨, 저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한소희가 번화가 쪽과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아가는 오상진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희 씨. 절 믿고 따라와 봐요.”
“네에…….”
한소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회를 먹으러 가자더니 생각이 바뀐 건가 싶었다.
그런 한소희를 보는 오상진의 입가에선 장난기 어린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오상진이 차를 몰고 간 곳은 하나의 어촌 마을이었다.
오상진은 일단 배가 잔뜩 세워져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소희 씨. 여기서부터 걸어가야 해요.”
“여긴 어촌 마을인데요?”
“네, 맞아요.”
오상진이 대답하며 차에서 내렸다. 한소희는 여전히 잔뜩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렸다.
“상진 씨. 여기서 저녁을 먹는 거예요?”
“네. 이리 와요.”
오상진이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한소희가 재빨리 오상진 옆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팔짱을 끼었다.
“여기에 횟집이 있어요?”
“네, 있죠!”
“그냥 어촌인데요?”
“그냥 어촌이 아니에요. 저길 보세요.”
오상진이 가리킨 방향은 방파제가 있는 곳이었다. 한소희가 그곳을 바라보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어?”
방파제에는 4~5개의 포장마차가 길게 줄을 지어 있었다.
“이런 데 포장마차가 다 있어요?”
“네.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는 사람만 오는 곳이에요. 여기 어촌 마을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인데, 저 포장마차들은 저녁때만 잠깐 열어요.”
“아, 그래요?”
“네. 일단 따라와요.”
오상진이 한소희를 데리고 포장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중 그들이 들어간 곳은 3번째 집이었다.
“어서 오세요.”
후덕하게 생긴 아줌마가 반갑게 맞이해 줬다.
“안녕하세요, 이모! 여전히 계시네요.”
“어…… 총각? 보아하니. 군인인데…….”
“아하, 기억 못 하시는구나.”
“아, 아니, 기억하는데…….”
“저를요? 군인인데?”
오상진이 짓궂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
“아니에요, 예전에 군인 되기 전에 친구랑 왔었어요.”
“어? 그래요?”
“네. 으음, 일단 우럭 주시고요. 있다가 매운탕도 준비해 주세요.”
“알았어요.”
아주머니가 포장마차를 나갔다. 한소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여기 누구랑 와봤어요? 혹시 전 여자 친구?”
“에이, 저 여자 친구 없었어요. 여자 친구 사귀는 것은 소희 씨가 처음인데.”
순간 한소희의 얼굴이 밝아졌다가 이내 표정관리를 하며 말했다.
“일단 믿어줄게요.”
“믿어야 해요. 믿으세요.”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한 줄기 살짝 그늘이 스쳐 지나갔다.
‘하아, 회귀하기 전 아내랑 이곳에 왔었는데…….’
오상진은 갑자기 과거에 만났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잘살고 있으려나?’
옛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를 애잔함이 밀려들었다. 그것을 알아챈 한소희가 물었다.
“왜 그래요?”
“네?”
“왜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져요?”
“제가요? 아니에요. 잠깐 생각할 것이 좀 있었어요.”
“생각? 전 여자 친구 생각요?”
“소희 씨도 참. 전 소희 씨가 첫 여자 친구라고요. 전 공부하느라 친구도 못 사귀어 봤고, 솔직히 공부밖에 몰랐습니다.”
“흥. 칫.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까 믿는다고 해놓고선.”
오상진이 서운한 표정을 짓자 한소희가 씩 웃으며 오상진을 달랬다.
“아, 네에. 믿어요. 믿을게요.”
오상진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보다 여기 회는 엄청 맛있습니다. 일단 횟감부터 남다른데 전부 자연산이라는 겁니다. 낮에 밖에 나가서 낚시를 하고 저녁에 이렇게 파는 거죠. 전복이나 다른 해산물들도 전부 자연산이에요.”
“호텔 근처에서 파는 건 자연산이 아니에요?”
“자연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솔직히 100% 자연산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오호. 그렇구나.”
“네. 게다가 가격도 저기 밖에서 먹는 것보다 20% 정도 싸고요.”
“헐……. 자연산인데요?”
“여기서 모두 자급자족을 하니까요.”
“여기 오길 잘했네요.”
한소희가 포장마차 분위기를 한번 보려는 듯 쭉 훑어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런데 상진 씨!”
“네?”
“여자 친구는 제가 처음이라고 했으면서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어요?”
한소희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않았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이곳을 왜 꼭 여자랑 온다고 생각합니까? 혼자서 올 수도 있고, 남자들이랑 올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오상진의 뼈있는 말에 한소희가 움찔했다.
“아니, 딱 봐도 연인들이 데이트하기에 좋은 장소 같아서 그렇죠.”
“맞아요. 그래서 저도 나중에 정말 소중한 사람이 오면 여길 꼭 데리고 오고 싶었습니다.”
“상진 씨…….”
오상진의 달콤한 고백에 한소희는 자신도 모르게 넘어가 버렸다.
그때 아주머니가 회를 가지고 나왔다.
“많이 기다렸죠? 자,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 잡은 거라 아주 싱싱할 거예요.”
아주머니는 몇 번이고 신선함을 강조했다.
솔직히 전문 횟집처럼 화려한 데코레이션으로 장식한 접시는 아니었다. 그저 작은 접시에 회를 뜬 것이 다였다. 게다가 주변 반찬들도 없었다. 메인인 회에, 초장과 막장, 당근과 오이, 그리고 수저로 떠먹을 수 있는 시원한 조개 국물이 다였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자신한 것처럼 회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한번 먹어봐요.”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소희가 고개를 끄덕인 후 회 하나를 초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것을 오물오물 씹던 한소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와! 대박! 이거 진짜 맛있어요. 아니, 회가 어떻게 이렇게 달아요? 육질도 쫄깃쫄깃하고……. 이런 회 처음 먹어봐요.”
한소희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런 모습을 기대했던지 오상진의 입가에도 흐뭇한 웃음이 번졌다.
“저도 처음에 먹고 소희 씨랑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하나예요. 자연산이라는 것과, 여기서 직접 잡아서 해주신다는 거! 그거 하나밖에 없죠.”
“와, 아무튼 대박이에요.”
한소희는 연신 대박을 외치며 회를 먹었다. 그렇게 회 한 접시를 반쯤 해치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매운탕이 나왔다.
“어쩜, 매운탕까지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어요? 완전 대박이에요. 대박!”
한소희는 엄지손가락까지 올리며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오상진과 한소희는 회는 물론 매운탕까지 올 클리어를 했다.
“크으, 좋다!”
도중에 들어온 남자 손님들이 술잔을 기울이자 한소희가 소주를 한 잔 먹자고 권했다.
그래서 오상진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물론 오상진은 운전을 해야 해서, 한소희 혼자 마셨다.
포장마차를 나온 오상진과 한소희는 잠깐 방파제를 걸었다.
“우와, 배부르다.”
“맛있게 먹었어요?”
“완전요. 짱이었어요. 회의 새로운 맛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한소희가 두 개의 엄지손가락을 올리며 칭찬을 했다.
“그럼 다행이네요.”
오상진의 맛있게 먹어준 한소희가 고마웠다.
“사실 조금은 걱정했어요. 막상 나만 믿으라고 했는데 허름한 곳이라 소희 씨가 회는 먹어보지도 않고 실망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요.”
“무슨 소리예요. 저 그렇게 재고 따지는 여자 아니에요. 무엇보다 상진 씨의 소중한 곳에 저를 데려와 줘서 더 고마웠던 걸요.”
“소희 씨…….”
한소희가 배시시 웃었다. 그런 한소희를 보며 오상진은 뭔가 참을 수 없는 본능이 꿈틀거렸다.
밤하늘에는 어느덧 달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고, 방파제 끝에는 작은 등대가 밤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이렇듯 완벽한 분위기에서 키스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사, 상진 씨…….”
오상진이 그윽한 눈길로 한소희를 바라봤다. 한소희도 뭔가를 직감했는지 뺨이 붉게 변했다. 절대로 술을 먹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상진의 얼굴이 한소희에게 다가갔다. 한소희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막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지려고 하는 찰나 한소희 급히 오상진을 떼어냈다.
“소, 소희 씨?”
“미안해요, 상진 씨 지금은 안 되겠어요.”
“네?”
한소희는 자신의 입을 가로막으며 망설였다. 순간 당황한 오상진은 왜 그런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소희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저, 마늘 먹었단 말이에요.”
“뭐라고요?”
오상진은 순간 황당한 얼굴로 한소희를 바라봤다. 한소희는 민망했던지 오상진을 툭 치며 앞서 걸어갔다.
“미워요!”
“소희 씨? 소희 씨? 전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요! 무슨 남자가…….”
“진짜 괜찮은데…….”
오상진은 시무룩한 얼굴로 한소희 뒤를 쫓아갔다.
5.
호텔로 돌아온 오상진과 한소희는 로비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방은 제가 미리 잡아 뒀어요.”
“아, 네에…….”
오상진은 한소희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그건 한소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호텔 바에서 은은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상진 씨.”
“네?”
“지금 부대에 들어가야 해요?”
저녁까지 들어가기로 했으니 이쯤에서 한소희와 헤어지는 게 맞지만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한소희의 얼굴을 보니 오상진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 아뇨. 잠깐 시간 괜찮아요.”
“그럼 저기서 간단하게 맥주라도 한잔하실래요?”
“저야 좋죠. 차도 반납했고…….”
“그럼 가요.”
오상진은 한소희에게 이끌려 호텔 바로 들어갔다. 약간 어두운 분위기에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피아노까지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아, 호텔 바가 이렇게 생겼구나. 저 호텔 바는 처음 와봐요.”
솔직히 오상진은 호텔 바는 처음이었다. 한소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요?”
“네.”
“잘됐다.”
“네?”
“저랑 처음 하는 것도 있으니까요.”
“전, 소희 씨랑 하는 것은 다 처음입니다.”
“뭐예요.”
“뭐가 말입니까?”
“어느 쪽이 진짜냐고요.”
“네?”
“아니, 자꾸 선수와 숙맥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니까요.”
“제가요? 흠.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아마 숙맥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요?”
오상진이 진지하게 말했다. 과거까지 통틀어 어디 가서 연애를 잘한다거나 여자에 대해 잘 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한소희는 자신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오상진이 숙맥처럼 보이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선수 쪽에 더 가까운 거 같은데요?”
“그거 칭찬인 거죠?”
“흥. 글쎄요.”
두 사람은 이런저런 농담을 하며 칵테일을 주문했다. 맥주도 판매를 했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맥주는 좀 아닌 것 같았다.
형형색색 화려한 칵테일이 나오고 그것을 한 모금 마신 한소희는 말없이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뒀다.
“상진 씨, 저 사람 피아노 잘 치지 않아요?”
오상진의 시선도 피아노 치는 사람에게 향했다. 눈을 감은 채 부드럽게 건반을 터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게요. 그런데 혹시 소희 씨도 피아노 칠 줄 알아요?”
“왜요?”
“아뇨. 왠지 소희 씨는 피아노도 칠 수 있을 거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