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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285화 (285/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285화

28장 별빛이 내린다(2)

“저기 아가씨…….”

“남자 친구랑 같이 왔어요.”

하지만 한소희는 아예 말도 들어주지 않고 지나갔다.

귀찮음이 가득 묻어나는 거절에 남자들도 감히 두 번은 질척거리지 못했다.

한소희가 해변가를 거닐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한 커플이 있었다. 그런데 커플 중 남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소희에게 꽂혔다. 그 바람에 여자 친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냐면…….”

“응.”

“음?”

“…….”

여자 친구는 그런 남자 친구의 모습에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 한소희가 있다는 걸 발견하곤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자기. 지금 내 말 듣고 있어?”

“그, 그럼. 듣고 있지.”

“그럼 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데?”

“그, 글쎄. 배고프다고 했던가?”

“좋은 말로 할 때 보지 마라.”

“……응?”

“저 여자 보지 말라고!”

“내, 내가 뭘 봤다고 그래.”

“…….”

여자 친구는 일단 화를 참았다. 모처럼 여행을 와서 잠깐 한눈을 판 남자 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남자 친구는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시 한소희에게 고개가 돌아갔다.

“내가 보지 말라고 했잖아!”

“안 봤어. 안 봤다고!”

“됐어!”

여자 친구는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남자 친구는 순간 당황했다.

“앞만 보고 걸어갔다니까.”

“됐다고!”

그리고 앞으로 거칠게 걸어갔다. 한소희는 그런 줄도 모르고 주변을 구경하며 지나갔다. 그런데 앞서 걸어오던 그 여자의 어깨가 한소희의 가슴 쪽과 부딪쳤다.

“아얏!”

한소희가 가슴 쪽에 손이 가며 아파했다. 그러자 어깨로 부딪친 여자는 오히려 짜증을 냈다.

“지금 눈을 얻다 두고 다녀요!”

“네?”

한소희는 가슴이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너무 황당했다. 딱 봐도 자신이 다가와서 부딪쳐놓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말이다.

“아니, 그쪽이 다가와서 부딪쳤잖아요.”

“내가요? 아니, 내가 왜요?”

“그건 나도 모르죠!”

“아니, 왜 생사람을 잡아요? 사과하세요.”

여자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며 한소희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여자를 따라온 남자 친구만 홀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미정아. 왜 그래? 그냥 가자.”

“아니, 왜 그냥 가? 자기는 저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하는데 가만히 있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 내가 보기에도…….”

“보기에 뭐? 내가 어쨌는데!”

여자 친구의 눈빛이 사납게 변하며 남자 친구를 압박했다. 남자 친구는 움찔하며 말을 더듬었다.

“내, 내가 보기에는…….”

“보기에는?”

“저 여자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그렇지?”

그제야 여자 친구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한소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너무 어이가 없었다.

“됐어요. 그냥 지나가세요.”

“이봐요. 사람을 모함했으면 사과부터 해야죠.”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무슨 사과를 해요?”

“이 여자가 진짜…….”

여자 친구가 눈을 부라리며 한소희에게 다가갔다.

그때 그 앞으로 오상진이 재빨리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죠?”

오상진은 호텔에서 여기까지 뛰어왔는지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여자 친구는 군복 입은 남자가 나타나자 의아해했다.

“뭐죠?”

“제가 여기 뒤에 있는 여성분의 남자 친구 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죠?”

한소희가 오상진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미정도 앞에 나타난 남자가 군인인 것을 확인하고 움찔했다.

“저 여자가 부딪혀 놓고 사과를 안 하잖아요.”

여자의 말에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한소희를 바라봤다.

“소희 씨가 부딪혔어요?”

“아뇨! 저 여자가 일부러 어깨를 부딪쳐 왔어요!”

한소희는 한껏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소희 씨가 그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과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전 제 여자 친구가 하는 말을 믿습니다. 그럼 제가 당신을 믿어야 하는 겁니까?”

“그, 그건…….”

미정은 할 말이 없었다. 한소희는 오상진의 멘트에 심쿵했다.

“어쨌든 피차 서로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 그만하시죠.”

그러자 남자 친구도 말했다.

“그래, 미정아. 우리도 그만하자!”

여자 친구가 남자 친구를 한 번 힐끔 보고는 ‘흥’ 하며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 뒤를 남자친구가 쫓아갔다. 그러면서 여자 친구에게 바짝 붙어 애교를 부렸다.

“미정아, 화 풀어라.”

“됐어!”

오상진은 두 사람을 보다가 몸을 홱 돌렸다.

“소희 씨, 괜찮아요?”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빨리 찾아왔네요. 어떻게 절 찾았어요?”

한소희의 물음에 오상진이 환하게 웃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제 눈에는 소희 씨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칫, 뭐예요.”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한소희가 오상진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3.

한편, 1소대원들은 내무실에서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주말이라 TV를 온종일 시청할 수 있었지만 이것 역시 지루했다.

“하아, 지금 이 시간이면 경계 근무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왜 그러십니까?”

“그냥 오늘 갑자기 지루하다는 생각이 드네.”

김일도 병장의 누워서 중얼거렸다. 김우진 상병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저희는 좋지 말입니다. 얼마 만에 주말에 이렇게 쉬어 봅니까. 그동안 주말도 없이 야간 경계 임무 선다고 정말 빡셌지 말입니다.”

“언제는 파견 나와서 좋다고 그러더니.”

“아니, 파견이 이렇게 빡셀 줄은 몰랐죠.”

“됐어, 인마. 쉴 때 푹 쉬어 둬. 내일 또 야간 경계 근무 나가야 하니까.”

김우진 상병이 뒤로 벌러덩 누웠다.

“하아, 우리 언제 복귀합니까? 벌써부터 우리 내무실이 그립습니다.”

“그러게 나도 그립다.”

김일도 병장도 뒤로 누웠다. 부대 내무실에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지만 파견 나와서는 조금 예외를 뒀다. 그때 내무실로 구진모 일병이 뛰어 들어왔다.

“김 병장님! 김 병장님!”

“왜, 인마!”

김일도 병장이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구진모 일병은 내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와,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뭐가?”

“아니, 이건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 자식이 미쳤나! 인마, 뭐가 아니야?”

김우진 상병도 몸을 일으켰다.

“야, 인마! 뭐가 아니야? 똑바로 말해! 4소대에 놀러 간다더니……. 왜, 4소대 새끼들이 구박하디?”

“그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쇼킹한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쇼킹? 무슨 쇼킹!”

구진모 일병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 소대장님 있지 않습니까. 전투복 쫙 빼입고 외출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볼일 보러 나간다고 했잖아.”

“그렇지 말입니다. 그 볼일이 뭔 줄 아십니까?”

“뭔데?”

1소대원들 모두 시선이 구진모 일병에게 꽂혔다.

“바로……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갔다고 합니다. 와, 젠장!”

“뭐? 여자 친구?”

“네! 여자 친구가 경포대에 놀러 와서 보러 나갔다고 하지 뭡니까?”

김우진 상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이야? 그 말 사실이냐고!”

“네. 제가 4소대에 가서 직접 들었습니다. 4소대장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와, 시발! 진짜…….”

김우진 상병은 정말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내무실에서 지루하게 보내고 있는데 소대장님은 산뜻하게 여자 친구를 만나러 나가? 너희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러게 말입니다. 너무 하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우린 이곳에서 진정한 전우이지 않았습니까! 정말 너무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용히 있던 노현래 이병이 소리쳤다.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이 노현래 이병에게 향했다. 그러다가 다시 한마디씩 했다.

“이걸 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이건 엄연히 우리를 기만하는 행동 아니냐!”

“그렇지 말입니다. 소대장님께서 우리에게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김우진 상병은 급기야 침상에서 내려와 중앙을 왔다 갔다 했다.

“와, 생각할수록 열 받네.”

그때였다.

쾅!

김일도 병장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주먹으로 침상을 내려쳤다. 소대원들이 깜짝 놀라며 김일도 병장을 바라봤다. 김일도 병장이 인상을 찡그리며 한마디 했다.

“배신자!”

4.

소대원들이 분개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 오상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한소희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괜찮아요?”

오상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한소희는 그런 오상진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 땀이 흘러 있었고, 얼마나 빨리 뛰어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은은하게 풍기는 땀내음까지…….

‘이 남자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멋지지?’

한소희는 안 그래도 오상진의 남성미에 홀딱 반한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은 더욱 자신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래. 오늘 밤은.’

한소희가 뭔가 결심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상진을 나직이 불렀다.

“상진 씨.”

“네?”

“저 준비됐어요.”

한소희가 수줍게 말했다. 순간 그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오상진은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무, 무슨 말인지…….”

“무슨 남자가 그리 눈치가 없어요.”

한소희가 오상진에게 팔짱을 끼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러면서 더욱 강하게 오상진의 팔에 밀착했다. 순간 오상진은 몸이 뻣뻣해졌다.

“저, 저기…… 소희 씨. 그러니까, 파, 팔에…….”

오상진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한소희를 바라봤다. 팔을 타고 뭉클한 감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팔이 왜요?”

다 알면서 한소희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오상진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귀여워 오상진은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니 연인 사이에 팔짱을 끼다가 가슴 좀 닿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잠깐 해변가를 걷던 두 사람이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소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차장은 왜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호텔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네?”

그때 저 멀리서 렌트카 직원이 다가왔다.

“오상진 씨죠?”

“네.”

“조금 전 얘기했던 차량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 네.”

“그리고 여기에 사인 하시면…… 네. 바로 이용 가능합니다.”

“네. 여기요?”

“네.”

오상진이 사인을 한 후 키를 건네받았다. 한소희는 그런 오상진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 남자 센스 좀 봐.”

“제가 좀 한 센스 하죠.”

그렇게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주변을 돌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해안가를 달리다가 방향을 돌려 유명한 드라마 촬영지로 향했다.

“아, 여기가 가을동화 촬영지였구나.”

한소희는 신기한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오상진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렇게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아, 배고프다.”

한소희가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상진이 환한 미소로 말했다.

“배 많이 고파요?”

“조금요?”

“우리 소희 씨 뭐 먹고 싶어요?”

“칫. 저는 상진 씨랑 먹으면 다 맛있거든요?”

한소희는 남자가 좋아할 만한 멘트를 여과없이 했다.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소희 씨, 회 좋아하죠?”

“저야 아무거나 잘 먹어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살짝 입맛을 다시는 걸 보면 회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알았어요.”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차를 몰고 어딘가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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