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82화
27장 이 밤의 끝을 잡고(13)
“충성, 근무 중 이상 무!”
사단장이 탄 차량이 소초 안으로 들어가자 위병소 근무자는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자, 장 병장님.”
“으응…….”
“저희 소초에 사단장님께서 오신 적이 있었습니까?”
“내, 내가 알기론 없는데?”
“그럼 제가 방금 본 것이 사단장님 맞죠? 절대 귀신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와, 대박! 심장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나, 나도 마찬가지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보다 저희 실수한 것 없죠?”
“아, 아마도…….”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가 감히 사단장님 차량을 막지 않았습니까! 이걸로 큰일 나진 않겠죠?”
“이, 인마! 무슨 큰일! 우리는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잖아. 그리고 말은 바로 하자. 우리가 아니라, 네가 막은 거지!”
“네?”
박 일병은 잔뜩 억울한 얼굴이 되었다. 장 병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몰라. 우리는 절차대로 한 거야.”
“절차대로 한 것 맞죠?”
“마, 맞을걸?”
“모르십니까?”
“몰라, 인마!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려 죽겠는데.”
“아무튼 아무 일 없겠죠?”
“괜찮을 거야.”
“그래도 사단장님 차를 막았는데…….”
박 일병은 불안한 눈빛이 되었다. 장 병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괘, 괜찮을 거야. 아마도……. 그보다 사단장님께서 무슨 일이시지?”
“아마 살인 사건 때문 아니겠습니까? 시체를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와, 그런 것 같은데…….”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또 한 대의 차량이 도착했다. 당연히 위병 근무자가 막았다.
“차량 정지! 차량 정지!”
위병 근무자가 다가서며 차량을 확인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장 병장님!”
“왜?”
“또 투 스타입니다!”
“뭐라고!?”
18.
강원 소초 1소대장 김 소위는 미리 소식을 접하고 대기 중이었다. 설마하니 중대장과 함께 22사단 사단장이 직접 이곳을 방문할 줄은 몰랐다.
사단장이 차에서 내리자 김 소위가 곧바로 경례를 했다.
“충성.”
“오오, 김 소위. 잘 지냈나?”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단장님께서 직접 오신 것입니까?”
“당연하지. 우리 사단 관할에서 시체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사단장이 되어서 안 올 수가 있나! 안 그런가?”
“그, 그렇습니다.”
김 소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잘 지냈지?”
“네, 그렇습니다.”
“사고 친 것은 없고?”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말이야. 고생했어, 임무 중에 시체도 발견하고 말이지.”
“어, 그게…….”
그때 강원 소초 중대장이 뒤에서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사단장에게 진실을 얘기하지 말라는 듯한 신호 같았다.
김 소위도 눈치껏 둘러댔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 아무튼 그곳이 우리 작전지역이었다는 거지?”
“네.”
“잘했네. 우리 사단을 위해 고생했어.”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하. 좋아. 좋아. 우리 김 소위. 아주 마음에 들어.”
아직 전후 상황을 전부 파악한 건 아니지만 22사단 최 소장(2스타)은 한참 동안 김 소위를 칭찬했다.
그렇게 해야 나중에 자신이 공을 차지하더라도 김 소위가 반발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또 다른 차량 불빛이 나타났다.
“뭐야?”
그러자 강원 소초 중대장이 말했다.
“어? 차, 차량에 별이 두 개입니다.”
“뭐?”
22사단장이 눈이 크게 떴다. 그 차량이 서고 뒷좌석에서 누군가 내렸다. 바로 56사단 사단장, 백 소장이었다.
“아니, 백 소장 아냐?”
“어? 선배님도 여기에 오셨습니까?”
“나야, 당연히……. 아니, 자네는 여긴 어쩐 일이야?”
“얘기 못 들으셨습니까?”
“무슨 얘기?”
“저희 사단 충성 대대 중 2개 소대가 이곳에 파견 나와 있습니다.”
“뭐야? 그래서 파견 보냈다고 생색내러 온 건가?”
“하하핫. 선배님도 참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정말로 생색내러 온 것은 아닐 테고, 용건이 뭐야?”
22사단장 최 소장이 귀찮은 날파리가 낀 것처럼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백 소장이 미심쩍은 눈으로 되물었다.
“그러는 선배님께서는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저는 방금 대답 드렸습니다만.”
“뭐? 관할 부대 때문에 왔다고 우기시겠다 이거야?”
“우기는 게 아니라 사실입니다.”
“말장난은.”
최 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줄을 잘 서서 잘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자신과 농담 따먹기를 하려는 후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백 소장이 저리 빤하게 바라보는데 대답을 안 해 주기도 뭐했다.
“우리 관할에서 시체가 발견되어서 왔다. 됐냐?”
“아, 그것 때문에 오신 겁니까?”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나?”
“아, 보고를 제대로 받으신 건가 싶어서 말이죠.”
백 소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을 보던 최 소장이 뭔가를 눈치 채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뭐야?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
“그게…….”
순간 강원 소초 중대장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사단장에게 혈안이 된 대대장 때문에 오상진의 공을 마치 김 소위의 공처럼 둘러댔는데 이미 다 알고 온 것 같은 백 소장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충성 대대에서 파견 나온 오 소위가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얘기를 들은 최 소장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야? 우리 소초에서 발견한 게 아니었어?”
“그게 파견 부대도 저희 소초 소속이라…….”
“장난해? 그 중요한 얘기를 왜 이제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죠?”
최 소장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이제 와서 뭘 어떻게 해? 그렇다고 뺏겨? 그럴 순 없잖아. 여긴 우리 관할이야.”
최 소장은 강원 중대장과 얘기를 주고받다가 백 소장에게 다가갔다.
“방금 얘기는 들었네. 그런데 그게 뭐? 충성 대대는 우리 부대에 파견 온 거 아니야? 안 그래?”
백 소장이 살짝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선배님, 그건 억지입니다. 솔직히 아닌 것 같지 않습니까?”
“억지라니. 그리고 말이야, 자네! 오랜만에 선배를 봤는데 그 태도는 뭐야?”
최 소장은 백 소장보다 두 기수 선배였다. 순간 백 소장이 속으로 생각했다.
‘오호라, 기수로 찍어 누르시겠다. 여기서 물러날 수 없지.’
“제 태도가 맘에 들지 않습니까?”
백 소장 역시도 기세에 눌리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최 소장은 선배를 내세워 백 소장을 압박했다.
“뭐 이제 같이 늙어가고, 계급이 같다고 해서 선배로도 안 보이는 거야?”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백 소장 비서실장인 이관수 중령이 나섰다.
“그런 의도로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넌 뭐야?”
“중령 이관수, 백 소장님 비서실장입니다.”
“야, 이 중령.”
“네.”
“넌 지금 어디에 끼어드는 거야? 장군들끼리 얘기하는 거 안 보여?”
“…….”
최 소장은 계속해서 계급으로 찍어 눌렀다. 그때 강원 소초로 또 차량 한 대가 도착했다. 최 소장이 그 차량을 보고 인상을 썼다.
“저건 또 뭐야?”
차량 운전석에서 소령 한 명이 내렸다. 바로 그 옆으로 강원 소초 중대장이 다가왔다.
“소령인 것 같습니다.”
최 소장이 백 소장을 바라봤다.
“백 소장 뭐야? 사단 지휘부 다 데리고 왔어?”
“아닙니다.”
“아니긴……. 그럼 저 녀석은 뭐야?”
“저도 처음 봅니다.”
“처음 봐?”
최 소장이 다가오는 소령을 봤다.
“넌 누구냐?”
“충성, 기무대 부대장 이강호 중령입니다.”
“뭐? 기무대 부대장?”
기무대는 사회로 따지면 검찰에 속하는 단체였다.
최 소장은 갑작스러운 기무대의 등장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사이 헌병과장인 임규태 소령도 차에서 내렸다.
이강호 중령은 최 소장에게 경례를 한 후 백 소장을 향해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 사건에 관해 급히 연락을 받고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충성 대대 1중대 1소대장인 오상진 소위가 시체를 발견했다고 들었습니다.”
이강호 부대장은 자신이 들은 바를 또박또박 말하며 충성 대대 소속 오상진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자 강원 소초 중대장이 끼어들었다.
“아니, 시체를 발견한 것 맞지만 여긴 저희 관할입니다.”
“이보게, 지금 관할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이 사건 참모총장님께도 보고가 올라간 거야.”
“…….”
“…….”
강원 소초 중대장을 비롯해 최 소장마저도 입을 다물었다. 참모총장의 귀에까지 들어갔으면 자신도 어찌하지 못했다.
“참모총장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고?”
“네. 그래서 이 사건 무조건 저희가 가져와야 합니다. 그러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이 한마디에 최 소장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반면, 계급으로 찍어 눌려 살짝 기를 펴지 못했던 백 소장은 의기양양하게 전투모를 고쳐 썼다.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백 소장이 일단 차량에 탑승했다. 백 소장이 뒷좌석에 앉아 말했다.
“일단 기선 제압은 한 것 같지?”
“네. 기무부대장을 부른 것이 신의 한 수 같습니다.”
“나도 그리 생각한다.”
백 소장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편, 이강호 부대장은 강원 소초 중대장을 보며 말했다.
“형사분들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 주게.”
강원 소초 중대장은 사단장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에. 절 따라오십시오.”
이강호 부대장이 떠나고 그 뒤를 임규태 소령이 따랐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곳 대대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최 소장에게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엿 된 거지. 그런데 왜 하필 기무대에서까지 나오고 지랄이야!”
“그럼 저희 아무것도 못 하는 겁니까?”
“에이 씨, 이 기회에 진급 좀 해보려고 했더니……. 튼 것 같다. 가자.”
최 소장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차에 올라탔다.
19.
이강호 부대장은 바로 형사들을 만났다.
“안녕하십니까. 기무대 부대장 이강호 중령입니다.”
이강호 중령은 형사과장과 이강진 반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기무대에서 나왔다는 사람을 보며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에.”
뒤따라 들어온 임규태 소령도 인사를 나눈 후 이강호 중령에게 말했다.
“잠시 오 소위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이강호 중령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임규태 소령이 중대 행정반을 빠져나와 오상진이 있는 내무실로 갔다.
“어? 임 소령님!”
“오 소위. 잘 있었어?”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임 소령님께서 직접 오셨습니까?”
“기무부대장님께서 직접 움직였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그보다 오 소위 참 대단해.”
오상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어떻게 시체를 찾을 수가 있지?”
“제가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서 오셨습니까?”
“아니야, 윗분들 총출동했어. 얘기 못 들었어? 너희 사단장님도 오셨어.”
“솔직히 저도 듣고 긴가민가했습니다. 그런데 사단장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