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80화
27장 이 밤의 끝을 잡고(11)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강진은 서둘러 오상진이 사라진 곳으로 향했다. 오상진이 사라진 방향으로 가 보니 정말 길 하나가 나 있었다. 우거진 수풀 때문에 유의해서 찾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여기에 길이 있었다니…….”
이강진이 수풀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무덤 하나가 있었고, 그 옆엔 오상진이 우뚝 서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소위님, 혹시 뭐 찾으셨…….”
이강진이 오상진의 시선을 따라가 보다 움찔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 흙 속에 파묻힌 무언가가 언뜻 보였기 때문이다.
이강진이 그것을 확인해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니, 그 주변에 한번 땅을 팠다가 덮어놓은 흔적이 분명히 보였다.
“잠시만 비켜주시겠습니까?”
“아, 네에…….”
오상진이 뒤로 물러나고 이강진이 손으로 그 주변의 흙을 파 보았다. 얼마쯤 팠을까? 이강진의 손이 멈췄다. 오상진 역시 그의 어깨너머로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을 했다. 순간 오상진의 눈이 커졌다.
“어? 저, 저건 피?”
그랬다. 땅속에 파묻힌 마대자루에는 흙이 묻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는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오 소위님, 죄송한데 밑에 형사들에게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네, 아, 네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형사들이 보이는 곳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찾았습니다. 여기 찾았어요!”
오상진이 외치는 소리에 밥을 먹던 과장과 형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찾아? 방금 오 소위가 뭐라고 했냐?”
“찾았다고 하는데요.”
“뭐 하고 있어! 어서 올라가!”
“네.”
형사들이 밥을 먹다 말고 우르르 올라갔다. 최 형사는 반도 먹지 않은 도시락을 내려놓으며 속삭였다.
“칫, 반도 안 먹었는데…….”
18.
오상진의 안내를 받은 과장과 형사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강진. 뭐야?”
“반장님, 찾았습니까?”
“네! 아무래도 찾은 것 같습니다!”
과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형사들 역시 표정이 풀어졌다.
“잘했어! 잘했어!”
과장이 이강진을 칭찬했다. 그러자 이강진이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제가 아니라…… 오 소위님이 찾았습니다.”
“그건 나중에 따지고, 뭐 해? 어서 삽 가져와서 파!”
“네.”
형사들이 삽을 챙겨와 드러난 마대자루 주위의 땅을 팠다.
“이거 핍니다. 피!”
“피?”
“그런데 마대자루 크기로 봐서는 사람 하나 들어가기 힘들 것 같은데요.”
“일단 마대자루 꺼내봐!”
“네.”
마대자루를 꺼냈다. 그리고 입구를 열어서 그 안을 봤다. 순간 공 형사는 인상을 팍 쓰며 고개를 돌렸다. 이강진은 직접 나서 마대자루를 확인했다.
“과장님 찾은 것 같습니다.”
과장이 심각한 얼굴로 마대자루 안을 봤다. 그 안에는 토막 난 시체가 들어 있었다. 곧바로 손으로 코를 막으며 물러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중부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네. 서장님! 찾았습니다. 네네. 지원 병력 보내주십시오. 네네, 알겠습니다. 다른 곳에서 냄새 못 맡게 확실하게 지키겠습니다. 네, 네. 서장님.”
그걸 듣고 있던 오상진이 이강진에게 가서 물었다.
“이제 끝났습니까?”
“네. 시체 찾았으니까. 국과수에서 신원 확인하고 하면 조만간 정리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고 오 소위님은 연락 안 하십니까?”
“네? 어딜 말입니까?”
“부대에 말입니다. 부대에 보고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 보고 해야죠.”
“얼른 하십시오. 사실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여기 강원 소초 중대장이 2시간마다 전화가 옵니다.”
“2시간…… 마다요?”
“네. 시체 찾았는지 물어보려고 말입니다. 만약 시체 찾았다고 하면 속된말로 바로 빨대 꽂으려고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아랫사람이 세운 공도 윗사람의 공이라는 군대의 스타일상 강원 소초 중대장의 태도를 비난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의 공을 챙기기 위해 지원도 마다하고 고생을 해왔던 이강진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습니까가 아닙니다! 오 소위님이 찾았는데 그 사람이 빨대 꽂으면 안 되죠! 빨리 전화하십시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한쪽으로 가서 휴대폰을 꺼냈다.
“괜한 전화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오상진은 일단 김철환 1중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어, 상진아. 무슨 일이야.
“충성, 별일 없으시죠?”
-여긴 괜찮아. 거긴 어때?
“사실 보고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무슨 보고? 애들이 사고 쳤어?
순간 김철환 1중대장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파견지에서 사고가 터졌다면 수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다급히 김철환 1중대장을 진정시켰다.
“사고 터진 거 아니니까 안심하십시오. 그거 말고 다른 내용입니다.”
-사고 아냐? 후우. 식겁했네. 그럼 무슨 일인데?
“이번에 살인범 잡힌 거 아십니까?”
-알지. 뉴스에도 나왔는데. 그거 살인범 강원도에서 잡혔다며! 그런데 왜?
“제가 그…… 살인범이 숨긴 시체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휴대폰 너머 김철환 1중대장의 엄청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김철환 1중대장은 오상진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대대장실로 향했다.
똑똑똑.
대대장실 문을 두드렸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자리에 안 계시나?”
잠시 방 안의 응답을 기다리던 김철환 1중대장이 C.P병에게 갔다.
“대대장님 뵈러 왔는데, 지금 자리에 안 계셔?”
“아, 네에. 조금 전에 나가셨습니다.”
“나갔어? 설마 퇴근하신 거야?”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C.P병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4시 반을 조금 넘긴 상태였다.
“일단 전화라도 해봐야겠다.”
김철환 1중대장은 휴대폰을 꺼내 한종태 대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급한데…….”
몇 번을 더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김철환 1중대장은 초초한 얼굴로 있다가 작전과를 바라보았다.
“그럼 과장님께 보고를 해야겠다.”
김철환 1중대장은 곧장 작전과로 향했다.
한편, 작전과에서는 작전계원들이 열심히 컴퓨터 워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고, 몇몇은 작전장교와 함께 지시를 받고 있었다. 그 외 곽부용 소령과 사격장 관리장인 이철용 중사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까 보니까, 대대장님 일찍 나가시던데. 사단에 가시는 길입니까?”
“에이, 무슨 사단이야. 오늘 사단 조용해.”
“그럼?”
“뻔하지. 요즘 큰 훈련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까 일찍 퇴근하신 거지.”
“하긴 요즘에 좀 한가합니다.”
“가을 끝 무렵이잖아. 그래도 조만간 큰 훈련이 있으니까.”
“아, 맞다. 혹한기 훈련이 있었구나. 올해는 작년보다 더 춥다고 하던데…….”
“방비를 잘해야지.”
“그런데 이번 혹한기 훈련은 어디로 간다고 합니까?”
“글쎄! 작년과 같은 곳에서 하지 않을까?”
“뭐, 그럴지도 모르죠.”
“그보다 혹한기 훈련 전에 사격훈련 잡혀 있지 않아?”
“네. 안 그래도 시스템 점검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사단 특별기동대에서 다음 주에 사격한다는 공문이 왔습니다.”
“아, 사단 특별기동대? 그 녀석들 사격 잘하지?”
“에이. 괜히 사단장님 경호대가 아닙니까. 걔들 19발만 맞춰도 기합입니다.”
“그래? 그럼 대부분 만발이겠네.”
“네. 거의 그렇다고 봐야죠. 그리고 절대 걷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뛰어다니는지…….”
“그 녀석들이야 체력이 뒷바탕이 되어야 하니까. 그보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훈련을 할까?”
“에이, 그러다가 우리 애들 죽습니다.”
“그런가?”
두 사람이 얘기를 주고받을 때 김철환 1중대장이 들어왔다.
“어? 1중대장님이 오셨네. 어쩐 일이지?”
이철용 중사가 발견하고 말했다. 곽부용 소령도 김철환 1중대장을 발견했다.
“어? 1중대장. 어쩐 일이야.”
김철환 1중대장이 곽부용 소령에게 갔다.
“과장님.”
“어, 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급한 거야?”
“네.”
“말해.”
“여기서는 좀…….”
이철용 중사가 급히 자리를 피해 주었다.
“전 사격장에 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작전과에 있던 모든 간부의 시선이 김철환 1중대장에게 향해 있었다. 김철환 1중대장은 그런 와중에 ‘오상진이 시체를 발견했습니다’라고 바로 말할 수가 없었다.
“어, 그래? 알았어.”
곽부용 소령이 머뭇거리는 김철환 1중대장을 눈치채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실로 가자.”
“네.”
곽부용 소령이 옆의 상황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상황실에는 회의용 탁자만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긴히 할 말이 뭐야?”
“그게 말입니다.”
김철환 1중대장은 조금 전 오상진과 통화했던 내용을 다급히 작전과장에게 보고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곽부용 소령의 눈이 커졌다.
“정말이야? 오 소위가 시체를?”
“네. 그렇습니다.”
“대대장님께 보고는 올렸어?”
“조금 전 대대장실에 갔는데…….”
“맞다. 나가셨지?”
“네.”
“하아, 진짜……. 하필 이럴 때……. 전화는?”
“안 받으십니다.”
“알았어. 기다려 봐.”
곽부용 소령이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한종태 대대장의 개인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 전화는 받지 않았다. 두 번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아. 대대장님. 진짜 이런 상황에서 전화를 안 받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곽부용 소령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
그런데도 한종태 대대장은 받지 않았다. 아예 안 받을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곽부용 소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진짜 대대장님 이럴 때마다 속이 문드러진다.”
그러면서 전화가 아닌 문자를 보냈다.
-대대장님 작전과장입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통화를 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5분 있다가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한종태 대대장이 전화를 받았다.
-그래, 나다. 무슨 급한 일이기에 찾고 난리야.
“어디십니까?”
-왜? 내가 어디 있는지 뭐가 중요해. 그냥 말해.
“지금 급히 대대로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전화로 못할 말이야? 아니면 사단장님이라도 오신다고 했어?
“사단장님은 안 오셨는데 아무래도 사단에 올라가셔야 할 일입니다.”
-……뭔데? 무슨 일이야? 빨리 말해봐.
“실은 말입니다.”
곽부용 소령은 김철환 1중대장에게 들은 것들을 간단히 설명해 줬다. 이야기가 끝난 후 한종태 대대장은 놀란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그게 사실이야?
“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일단 사단에 가서 보고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거 사단에 보고 해야 하는 건가?
“뉴스에 나올 일입니다. 그것도 우리 대대 소대장이 발견한 것입니다. 당연히 사단장님께서도 미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곽부용 소령의 설명에 한종태 대대장이 바로 이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