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79화
27장 이 밤의 끝을 잡고(10)
“아니, 자네가 파던 것을 봐봐. 임춘재가 와서 여길 팠어. 그런데 묻을 만한 장소가 아니야. 그럼 시체를 들고 다른 지역으로 갈까?”
“그러지 않겠습니까?”
“멍청아! 그날 저녁에 우리에게 잡혔는데 그때 시체가 있었어?”
“아뇨, 없었습니다.”
“그럼 답이 나왔잖아.”
“네, 맞습니다.”
“그래, 그 녀석은 분명 이쪽 어딘가에 시체를 묻었어. 확실해! 단지 이 위치가 아닐 뿐이지. 여기가 매장 장소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 안 그렇습니까, 과장님?”
“맞아. 나도 이 반장이랑 같은 생각이야.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주변을 빨리 찾아봐!”
“네, 알겠습니다.”
16.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는 형사들이 수색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상진은 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분명 저쪽이 아니었는데…….”
오상진은 자꾸만 반대편 쪽에 신경이 쓰였다. 박중근 하사가 오상진의 중얼거림을 듣고 물었다.
“소대장님 뭘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아니라, 내가 봤을 때 분명 오른쪽으로 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데 형사님들은 자꾸 왼쪽을 수색하십니다.”
오상진의 말을 들은 박중근 하사는 오상진의 말에 반박했다. 박중근 하사도 이미 현장에 다녀왔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저도 가서 살펴봤는데 말입니다. 경사가 너무 가파르고 그곳에 뭔가를 묻기에는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요? 그럼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네, 그렇죠. 이런 일은 저보다야 형사분들이 베테랑이시니까요.”
“그렇겠죠. 어쩌면 범인이 여기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다른 곳에 묻었을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네, 일단 지켜보죠.”
“그럽시다.”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는 다시 현장을 바라봤다. 그때 산 아래에서 군인 한 명이 올라왔다.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확인했다.
“어? 강 소위? 소대장님 강 소위가 올라오는데 말입니다.”
오상진 역시 고개를 돌려 강 소위를 확인했다.
“어? 저 양반이 여기 웬일이지?”
강 소위가 오상진 곁으로 다가왔다.
“강 소위가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아니, 뭐……. 다른 일은 아니고. 시체 찾았습니까?”
강 소위가 둘러대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강 소위가 대답을 하면서 쓰윽 형사들의 상황을 확인했다. 오상진이 말했던 것처럼 아직 찾지 못한 듯했다.
“아직 수색 중이네. 그런데 오 소위.”
“네.”
“정말 범인의 얼굴을 보긴 했습니까? 못 봤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닙니까?”
강 소위의 삐딱한 말에 오상진은 기분이 잔뜩 나빠졌지만 꾹 참아내고 대답했다.
“그날 제가 확실히 봤습니다. 우리 소대원들도 본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뭐 봤다면 어쩔 수 없죠. 알겠어요, 계속 수고해요.”
강 소위는 그 말만 남기고 산을 내려갔다. 박중근 하사는 살짝 어이없는 얼굴로 멀어지는 강 소위의 등을 바라봤다.
“뭐야, 저 사람…….”
오상진은 강 소위가 올라와 시비를 건 의도를 바로 알아차렸다. 혹시나 오상진의 도움으로 형사들이 시체를 찾진 않았을까 경계하는 마음으로 감시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소대장님 저 양반 진짜 얄미워 죽겠습니다.”
박중근 하사의 말에 오상진도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여태까지 살면서 많은 소대장을 만나봤지만 저렇게 얄미운 소대장은 처음입니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바로 말했다.
“솔직히 말입니다. 우리 중대 2소대장보다 더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오상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 와서 느꼈습니다.”
“뭘 말입니까?”
“우리 2소대장이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17.
그다음 날에도 수사가 진행되었지만 좀처럼 진척되지는 않았다.
“그쪽은 어때? 찾았어?”
“아뇨, 없습니다.”
“이쪽은?”
“아, 여기가 좀 의심스럽지만…….”
“의심스러운데 뭐?”
“무덤을 들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야이 씨! 그게 말이 돼? 무덤을 들어내면 여기 무덤 주인에게 뭐라고 할 거야. 그리고 뒷감당을 할 수 있겠어?”
“그럼 어떻게 합니까?”
“생각을 해봐. 범인이 그 시간에 와 가지고 무덤을 들어내고 그 밑에 숨겼겠냐? 제발 좀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아, 또 그런 겁니까?”
“어후, 저 자식 누가 뽑았어!”
과장이 답답해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강진이 말했다.
“과장님이 받으셨거든요.”
“야, 진짜 내가 받았냐?”
“네.”
“야, 강진아. 너 왜 안 말렸냐? 날 말렸어야지!”
“과장님이 일 잘할 것 같아서 받으셨거든요.”
“내가 그랬어? 더 안 말리고 뭐 했어?”
“그때…….”
이강진이 슬쩍 눈치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렸지 않습니까.”
“열심히 좀 말리지. 넌 너무 대충대충 말려!”
“네네, 빨리 찾기나 하죠.”
이강진은 서둘러 다른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오전의 수색도 허탕을 쳤다.
이강진은 서서히 초조해졌다. 분명 이곳 어딘가에 묻은 것이 분명한 거 같은데 도통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아, 미치겠네.”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는 길, 이강진은 죽을 맛이었다. 지금 거의 이틀째 수색을 하고 있는데 전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오상진이 이강진을 찾아왔다.
“아직 진척이 없습니까?”
“네, 분명히 그쪽이 맞는 것 같은데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일단 내일까지 샅샅이 찾아보고요. 안 되면 대대적인 수색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수색이요?”
“네, 아무래도 거기까지 가면 군부대의 지원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오 소위님께서 수고 좀 해주셔야 할지도 모릅니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강진이 점심을 먹으러 내려갔다. 오상진 옆으로 박중근 하사가 다가왔다.
“형사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내일까지 안 되면 수사본부를 차리고 공개수사로 전환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 부대 복귀 못 하는 거 아닙니까? 파견 나왔는데 연장되면 어떻게 하죠?”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사실 여기 인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복귀 날짜 연기되고 우리가 거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박중근 하사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럼 미리 아내에게 전화를 해야 하나?”
박중근 하사의 말에 오상진은 문득 한소희가 생각났다. 박중근 하사는 한쪽으로 가서 휴대폰을 꺼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에 오상진 역시도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소희 씨.”
-네.
“이번 주말 말인데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네?”
-저 이번 주말에 강원도에 갈 건데. 오빠가 얘기했어요?
“오빠요? 형님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데요?”
오상진은 전혀 모르는 얘기를 꺼내는 한서희의 말에 당황했다.
-오빠랑 얘기 다 끝냈는데? 못 들었어요? 우리 그쪽으로 바람 쐬러 갈 건데?
“아, 그래요?”
-걱정 마요. 오빠네는 나 내려주고, 춘천으로 놀러 가기로 했대요.
“아, 그랬구나.”
-그런데 왜 전화했어요? 혹시 안 된다고 하는 건 아니죠? 저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아니에요. 혹시 소희 씨 못 오신다고 하면 어쩌나 해서요.”
-그렇죠? 그런 거죠?
“네.”
-그래요, 상진 씨 기대해요.
“네, 잔뜩 기대할게요.”
-보고 싶다!
“저도 보고 싶어요.”
-아무튼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어요.
“네.”
-앗, 교수님 들어오셨어요. 그럼 주말에 봐요.
“네, 소희 씨.”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소희가 와도 짬을 내서 만나야 하는 상황인데 시체 찾기로 정신이 없으니 이러다 한소희만 고생시키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진짜 못 찾으면 어떻게 하지?”
오상진의 시선을 현장 쪽으로 향했다. 만약 자신이 언급한 곳을 수색해서 아무것도 발견이 되지 않은 거라면 모르겠지만 반대 방향만 열심히 찾아다니는 게 신경이 쓰였다.
“나라도 올라가서 찾아볼까?”
잠시 고심하던 오상진은 점심을 먹으러 간 형사들을 대신해 현장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김 형사가 말했다.
“어? 과장님, 오 소위님 올라가는데요.”
“에이, 올라가지 마시라고 해. 괜히 현장 어지럽히지 말라고 말이야.”
그러자 이강진이 도시락을 까며 말했다.
“아니야, 내버려 둬! 소위님도 뭔가 께름칙한 것이 있으니까, 저런 것이겠지.”
이강진은 순간 형사의 감이 왔다. 그때 눈치 없는 최 형사가 도시락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요즘 계속 도시락만 먹으니 질립니다. 그냥 내려가서 해장국 하나 먹고 오면 안 됩니까?”
“참, 팔자 좋은 소리 한다. 잔말 말고 도시락이나 쳐드세요. 그리도 너희들 내일까지 시체 못 찾으면 난리 나는 거 알아 몰라?”
과장의 잔소리에 형사들은 군말 없이 도시락을 하나씩 들었다. 그리고 힐끔힐끔 산으로 올라가는 오상진을 바라보았다.
오상진은 산에 올라간 후 분기점에 도착했다. 분명 왼쪽으로 모든 수색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오상진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 분명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었는데…….”
오상진이 주변을 살펴보는데 확실히 비탈길이었다. 오상진은 포기하지 않고 좀 더 올라가 보았다. 그런데 그때 지름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긴…….”
길 입구의 나뭇가지가 꺾여 있는 것도 보였다. 그리고 주변에 뭔가 쓸린 흔적들이 보였다. 분기점에서 조금만 더 올라간 지점에서 말이다.
“뭐지, 이거?”
오상진은 수풀에 숨은 길을 찾아냈다. 그것을 걷어 내보니 마대자루에 쓸린 흔적이 드러났다. 그 흔적을 따라 오상진이 걸어갔다. 고개를 슬쩍 들어 확인을 해보니 앞쪽 산 비탈길 끝에 뭔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저 수풀 뒤쪽에 뭔가가 있을 것 같은데.”
오상진은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끝에 무덤 하나가 나타났다.
“어? 여기에 무덤이 있네?”
한편, 이강진이 밥을 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사라졌다!”
“네?”
“뭐가 사라져?”
“소위님이 사라졌다고요.”
그 소리에 밥을 먹던 과장과 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위쪽으로 향했다. 역시나 오상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 어디 갔지? 어디 갔어?”
과장이 오상진을 찾자 이강진이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반대쪽에 길이 있었나 봅니다.”
“반대쪽이라면 비탈길이었잖아.”
“네.”
순간 과장이 주위에 있던 형사들을 노려보았다.
“야, 이놈들아! 오 소위도 찾는 길을 왜 너희들은 못 찾아!”
“…….”
형사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때 김 형사가 나서며 말했다.
“저쪽은 볼 것 없다면서 아예 수색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그랬어도 찾았어야지.”
이강진은 김 형사의 말에 움찔했다. 분명 자신이 그쪽은 볼 것이 없다고 수색 지시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강진은 괜스레 더 큰 동작으로 도시락을 내려놓으며 오상진을 찾아 산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