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78화
27장 이 밤의 끝을 잡고(9)
“정말입니까?”
“확실합니까?”
“네네.”
“어떤 움직임이었습니까?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손전등 불빛이 산으로 향할 때는 한 방향으로 쭉 올라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멈추더니 주변을 훑는 듯 불빛이 흔들렸습니다. 그럼 당연히 그리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오상진의 설명에 이강진을 비롯한 세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진 역시 무릎을 딱 치더니 말했다.
“오케이! 이거다! 확실해!”
이강진은 뭔가 감을 잡았는지 확신을 가졌다. 다른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죠? 딱 감이 왔습니다.”
김 형사도 뭔가가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임춘재가 모방한 살인 사건 중에 묘 근처에 시체를 파묻은 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사건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군. 할아버지 묘 근처에 파묻으려고 했네.”
“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공 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말이죠. 꼭 굳이 그렇게 했을까요? 그냥 아무 데나 인적이 드문 곳에 파묻으면…….”
그러자 김 형사가 바로 말했다.
“야, 멍청아! 묫자리 근처에 파묻어야 의심을 안 하지. 만약에 아무 데나 파묻어서 나중에 들키기라도 하면 빼도 박도 못하니까 일부러 묫자리 근처에 파묻는 거지.”
“아, 또 그런 겁니까?”
“어후, 강력계 형사라는 녀석이…….”
이강진이 혀를 찼다. 공 형사는 살짝 민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강진이 물었다.
“혹시 대강이라도 어디쯤인지 위치는 알고 계십니까? 자세히 몰라도 됩니다. 대충 위치만이라도…….”
“육안으로 확인은 했는데……. 밤이라서…….”
김 형사가 살짝 인상을 썼다.
“이러면 살짝 애매해지는데요. 아니면 그 근처를 다 뒤져야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우리는 인력에 한계가 있지 않아요.”
그런데 이강진이 눈을 번쩍하고 떴다.
“혹시 말입니다.”
“예!”
“제가 그 사람처럼 움직이면 확인 가능하겠습니까?”
“아, 형사님이 손전등을 들고요?”
“네.”
“으음. 그러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오상진은 어둠 속에서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확인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럼 밤이 되어야 하는데요.”
“밤이 문제입니까? 전혀 상관없습니다. 오늘 밤 당장 확인하도록 하죠.”
그러자 여태까지 조용히 지켜보던 신입인 최 형사가 나섰다.
“반장님 그러지 마시고 인원보충 하시죠.”
“최 형사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여기서 인원보충을 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것은 다 어떻게 되겠냐?”
“그래도 너무 생고생을 하시는 것 같아서…….”
“야, 형사가 생고생도 하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뛰어다니며 사건을 해결해야지. 누가 대충 하려고 해! 아주 그냥 뺀질뺀질 해가지고.”
“왜 저한테만 그러십니까?”
그때 김 형사가 나섰다.
“반장님, 최 형사가 우리 부에 배치된 지 이제 한 달 좀 지났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냥 저희끼리 하겠습니다.”
“그래, 김 형사만 믿는다.”
“네.”
이강진이 중대장을 바라봤다. 중대장은 살짝 얼이 빠져 있었다.
“중대장님.”
“네? 아, 네에!”
“당분간 여기서 말한 내용은 외부에 알리지 말아 주십시오.”
“네, 뭐,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강진은 이번에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 소위님.”
“네.”
“이번 사건은 우리 중부 경찰서 강력계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이강진이 깍듯하게 부탁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오상진은 엉겁결에 수사팀에 자문 격으로 합류를 하게 되었다.
15.
그날 저녁.
이강진은 산을 오르고 그 아래 공터에 오상진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강진과 오상진은 서로 전화를 하며 위치를 파악했다.
-여깁니까?
“아니요, 좀 더 올라가셔야 합니다.”
오상진은 휴대폰을 통해 이강진에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 모습을 그 뒤에서 강원 소초 중대장과 강 소위가 지켜보고 있었다.
“강 소위, 오늘 중으로 찾을 것 같아?”
“에이, 오늘 중으로 못 찾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딱 봐도 오 소위 헛다리 짚는 것 같습니다.”
중대장이 고개를 홱 돌려 강 소위를 노려봤다.
“헛다리는 자네가 짚지 않았나. 뭐? 범죄자 몽타주?”
강 소위가 움찔했다.
“그, 그건…….”
“됐네. 아무튼 자네를 믿은 내가 잘못이지.”
“주, 중대장님. 그, 그래도 범죄자나, 범죄자를 봤거나. 같은 거 아닙니까?”
“같아? 너 바보냐? 범죄자의 몽타주면 범인이라는 소리고, 지금 오 소위는 범인을 봤다고 저러고 있는데.”
“아무튼 말입니다. 저는 왠지 오 소위가 헛다리 짚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강 소위 끝까지…….”
“진짜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강 소위는 끝까지 오상진이 괜한 일을 벌인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중대장이 슬쩍 물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했지?”
“솔직히 이렇게 야밤에, 소초에서 누가 얼마나 봅니까. 딱 봐도 지금 별로 생각도 안 나는데 대충대충 둘러대고 있는 걸 겁니다. 그래도 큰소리는 쳤는데, 생색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 소위가 제멋대로이긴 했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민간인 통제 구역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한 달에도 열댓 명씩 차를 몰고 들어오는데 그들의 얼굴을 전부 기억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흠……. 그런가?”
“서울 뺀질이 놈들, 어디 한두 번입니까. 자그마한 일도 크게 만들지 않습니까.”
“하긴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그렇긴 하지.”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그래! 우리는 들어가자.”
“네. 들어가시죠.”
소초 중대장과 강 소위는 그곳을 떠나 소초로 복귀를 했다. 두 사람이 떠나고도 오상진과 이강진은 휴대폰으로 위치를 확인했다.
그로부터 2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오상진은 손전등이 비추는 곳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스톱! 네, 거기입니다.”
-여깁니까?
“네. 그쪽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어디로 갔습니까?
“그쪽에서 제 기준으로 왼쪽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왼쪽요?
이강진이 왼쪽을 확인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비탈길이 나왔다.
-어? 여긴 비탈길인데요.
“아, 그렇습니까?”
-여기에는 딱히 뭐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가요?”
-일단 제가 좀 더 찾아보겠습니다.
이강진은 전화를 끊고 다시 손전등을 비추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가 이강진의 손전등이 반대로 움직였다.
“어? 저쪽은 아닌데…….”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오상진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오 소위님, 오 소위님.
“네?”
-저희 과장님 좀 불러주십시오. 제가 뭔가를 찾은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휴대폰을 끊고 근처에 있는 과장에게 갔다.
“과장님.”
“네?”
“이강진 반장님께서 뭔가를 찾은 것 같다고 하는데요.”
“진짜입니까?”
“정말요?”
“지금 올라가겠습니다.”
과장보다 근처에 있던 형사들이 먼저 반응을 했다. 그리고 각자 손전등을 들고 이강진이 있는 곳으로 우르르 올라갔다. 오상진 역시도 궁금했다. 그래서 그들을 따라 올라갔다.
“반장님.”
“반장님!”
“어, 여기야!”
이강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상진의 시선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들고 있는 이강진이 있었다. 이강진은 뭔가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빨리 좀 오십시오.”
이강진이 과장님을 향해 소리쳤다. 그에 과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힘든 기색을 내비쳤다.
“야이 씨, 요새 내가 무릎이 좋지 않아.”
“아무튼 빨리 와보십시오.”
이강진의 재촉에 과장이 숨을 헐떡이며 도착을 했다.
“어디?”
“여기 보십시오.”
이강진이 가리킨 곳을 과장이 봤다.
“이거 보이십니까? 뭡니까, 이거?”
“딱 보면 몰라? 이건 팠다가 묻은 흔적이잖아.”
“확실하죠?”
“그래, 인마.”
이강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과장은 그 자리에 앉아 흙을 한 움큼 들었다가 뿌렸다.
“확실해, 흙이 파헤쳐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근처 어디야!”
마치 수사물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것 같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누구 하나 그 모습을 보며 웃지 않았다.
그러던 중 뒤따라온 오상진을 발견한 이강진이 바로 인사를 했다.
“오 소위님 감사합니다. 오 소위님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 해결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잘하면 시체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범인은 그쪽이 아니라 반대편에서 어슬렁거렸는데요.”
“아, 저기요?”
이강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 제가 확인을 해봤는데요. 시체를 묻을 만한 장소가 없는데요.”
“그래요?”
“아마 저쪽으로 페이크를 주고 이쪽에 파묻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확실히 여기에 파묻은 흔적이 있긴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날 밝으면 이쪽 근처를 수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쪽 근처인 것을 확실히 맞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오 소위님.”
“아닙니다.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오 소위님.”
“네?”
이강진이 빠르게 다가와 조심히 말했다.
“부대에는 당분간 비밀로 해주십시오. 저희가 이놈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이 일이 언론에 알려져서 여기 강원도 경찰 측에서 냄새를 맡고 달려들면 저희도 난감합니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그 외 도와줄 것은 없습니까?”
“도와줄 것요? 아닙니다, 없습니다. 지금처럼 민간인들 절대 못 들어오게 통제나 잘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다음 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중부 경찰서 형사들이 이곳에 대거 투입되었다.
기존에 있던 4명에서, 새벽에 추가로 4명이 더 투입되어 총 8명의 형사가 어제 이강진이 있던 곳 주변을 수색했다.
이강진이 형사들을 바라봤다.
“다 왔어?”
“네.”
“좋아, 그럼 이쪽 어디에 있을 거야. 잘 찾아봐!”
“네, 알겠습니다.”
“김 형사!”
“네.”
“자네는 이 근방 한번 훑어봐.”
“알겠습니다.”
“최 형사.”
“네.”
“자넨 저쪽으로 가 봐!”
“네. 반장님.”
이강진이 진두지휘를 하며 인원을 배치했다.
“아, 자네는 저쪽으로 가서 무덤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네. 반장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덤을 확인하러 갔던 형사가 이강진을 불렀다.
“반장님! 반장님!”
“왜?”
“여기 무덤이 있습니다.”
“무덤이 있어?”
“네.”
이강진이 재빨리 그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란 봉분이 하나 있었다.
“으음…….”
이강진이 살짝 인상을 썼다. 그때 다른 쪽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도 무덤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몇 군데에서도 무덤이 발견됐다. 그 탓에 이강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야? 왜 이렇게 무덤이 많아?”
이강진은 일단 김 형사에게 파보라고 한 곳으로 가 상황을 살폈다.
“여긴 어때? 찾았어?”
“아뇨. 아무래도 여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야?”
“예!”
“분명 여기까지 판 것 같은데……. 더 이상 깊게 파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뭐지?”
“일단 여길 파기는 한 것 같은데 여기에 묻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아, 임춘재 이 자식……. 사람 귀찮게! 하긴 한 번에 찾는 것도 웃기지.”
“그럼 우리 헛다리 짚은 것은 아닙니까?”
김 형사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이강진이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