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75화
27장 이 밤의 끝을 잡고(6)
“아, 이 공문 서울 중부 경찰서에서 내려온 협조 공문입니다.”
“협조 공문요?”
“네. 이틀 전이었나? 저 살인범이 강원도에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 경포 쪽에서 잡혔다고 하는데, 혹시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면 알려달라는 공문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경포 쪽이면 이곳 강원 소초 관할 아닙니까?”
“그렇죠. 세상 참 살벌하지 않습니까?”
오상진과 안동민 상사의 대화하며 함께 딸려 온 몽타주를 확인했다. 뉴스에서 본 마스크를 쓴 범인의 얼굴만큼이나 낯이 익으면서도 아닌 것 같았다. 안동민 상사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사람 본 적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한번 봤습니다. 그보다 행보관님 말처럼 세상 참 무섭습니다.”
“그렇죠?”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강 소위가 불쑥 끼어들었다.
“뭐, 그런 걸 가지고 무섭다고 합니까.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죠.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지 않습니까.”
강 소위가 약간 빈정거리며 말했다. 오상진이 그런 강 소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 강 소위님도 계셨구나.”
순간 강 소위가 울컥했다. 조금 전 눈인사까지 주고받았으면서 마치 존재조차 몰랐던 척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속으로 꾹 참으며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네, 뭐…….”
그리고 오상진은 방금 생각 난 것처럼 입을 뗐다.
“아 참, 이걸 말씀드린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잘 먹었습니다.”
“…….”
강 소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오상진은 여유로운 얼굴로 입을 뗐다.
“어떻게 이번 주말에 리벤지 경기 합니까?”
오상진의 말에 강 소위의 표정이 한껏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오상진의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험, 이거 참 일을 이렇게 처리하면 안 되는데…….”
강 소위가 전투모를 챙기며 일어났다. 그리고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 소위 아까 뭐라고 했죠? 제가 방금 보셨다시피 정신이 없어서…….”
“아니, 경기 리벤지…….”
“거참 일을 이렇게 처리하면 안 된다니까. 오 소위 미안합니다. 제가 급해서……. 담에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 말만 남기고 서둘러 중대 행정반을 나갔다.
오상진은 약간 벙찐 얼굴이 되었다가 ‘풉’ 하고 웃고 말았다. 옆에 있던 안동만 상사도 웃으며 말했다.
“오 소위님 아주 멋진 골이었습니다.”
“제가 축구는 못해도 이런 건 잘합니다.”
오상진이 씨익 웃어 보였다.
10.
중부 경찰서 취조실에는 형사 두 명이 들어가 살인 혐의로 체포된 임춘재를 취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춘재는 입을 꾹 다문 채 눈만 감고 있었다.
“당신 정말 이럴 거야? 대답 안 해?”
장장 10시간째 이런 대치 상태로 있었다. 김 형사와 공 형사는 고개를 흔들며 취조실을 나왔다. 그 앞에 이강진이 있었다.
“김 형사 어때?”
“와, 진짜 독종입니다. 전혀 입을 열지 않아요.”
“아무리 증거를 내밀어도?”
“네, 이러다가 시체 못 찾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럼 안 돼! 찾아야 해.”
“그런데 저놈이 입을 열지 않으니.”
“어떻게든 열게 해야지.”
“어떻게요?”
“몰라, 어떻게든……. 그보다 이 자식 도대체 왜 강원지역으로 간 거야? 이유 아는 사람?”
“그야 뻔한 거 아닙니까. 그곳 산속 어딘가에 시체를 숨겼을 겁니다.”
“아, 빌어먹을 녀석. 도대체 얻다가 시체를 파묻은 거야?”
이강진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김 형사가 물어봤다.
“반장님, 어떻게 합니까? 강원도 쪽에 지원 요청합니까?”
“김 형사, 그쪽에 지원 요청하면 우리가 여태까지 조사한 것이 모두 붕 떠 버려. 죽 쒀서 개 줄 일 있어?”
“하아, 그래도 산을 전부 뒤져야 할 거 같은데 저희들만으로는 힘듭니다.”
그때 공 형사가 다가와 말했다.
“저기 반장님.”
“어, 왜?”
“여기 근처에 경비 소초가 있다고 합니다. 혹시 그쪽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어떻겠습니까?”
“가능할까?”
이강진이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공 형사가 담담히 말했다.
“일단 협조 공문을 보내고 도와달라고 해봐야죠.”
“그래. 그럼 공 형사가 한번 알아봐.”
“네.”
“내가 과장님께 보고할 테니까.”
“아닙니다. 제가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럴래?”
이강진은 곧바로 과장에게 달려가서 공문을 포함해 자신이 직접 그 일대를 다녀오겠다는 뜻을 전했다. 과장은 살짝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정말 꼭 이래야만 해?”
“네. 아니면 우리 밥그릇 뺏길지도 모릅니다.”
“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제가 잘하겠습니다.”
과장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들었다.
“너, 잘해야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처리해.”
“네!”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대신, 시체는 우리가 꼭 찾아야 한다.”
“걱정 마십시오. 과장님.”
이강진은 과장의 허락을 받고 곧바로 강원도로 출발을 했다.
‘해진이가 지금 강원도에 파견 갔다고 했지. 그곳에 오 소위도 있을 것이고…….’
이강진은 속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미 이해진 상병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있던 이강진이었다.
강원도에 도착한 이강진은 잠시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다.
“부탁하는 입장에서 빈손으로 갈 수도 없고……. 1소대랑 4소대가 왔다고 했지? 한 30개 정도 사면되나?”
이강진이 햄버거 주문을 위해 계산대에 섰다. 메뉴판을 기웃거리고 있자 점원이 물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 것이 뭐죠?”
“불고기 버거가 잘 나가고요. 다른 것도 맛있어요.”
“그럼 불고기 버거 30개로 하면 얼마죠?”
“하나당 3,900원 하니까, 30개면 117,000원이네요.”
“네? 자, 잠깐만요. 불고기 버거 하나가 3,900원이나 합니까?”
“네?”
“좀 더 싼 거 없어요? 싼 거!”
“제일 저렴한 것이 2,500원짜리인데 이걸로 해드릴까요?”
2,500원짜리로 해도 75,000원이었다. 이강진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걸로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음료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음료는 됐습니다.”
“알겠습니다. 한 30분 정도 걸릴 거예요.”
“네.”
30분 후 햄버거가 나오고 근처 슈퍼에 들려 콜라 1.5리터짜리 두 개를 사서 나왔다. 양손에 든 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이구, 이렇게 해도 10만 원이네. 내 피 같은 10만 원…….”
이강진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 어느 지점으로 이동했다.
“이쯤 어디라고 했는데…….”
이강진은 차를 몰고 산속 깊숙이 이동했다.
11.
이해진 상병과 최강철 이병은 이번에는 본부초소 근처에서 경계 임무를 섰다. 그리고 임무에 투입되자마자 곧바로 차량이 오는 것을 확인했다.
“소대장님.”
이해진 상병이 곧바로 오상진에게 보고를 했다.
“왜?”
“밑 공터로 차량이 오는데 말입니다.”
“차량?”
오상진이 나와 보았다. 이해진 상병의 보고대로 차량이 올라왔다. 오상진이 곧바로 내려갔다.
“요즘 왜 이렇게 차량이 많이 와. 분명 민간인 통제라고 적혀 있을 텐데…….”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려갔다. 최강철 이병만 홀로 초소를 지키고, 이해진 상병이 오상진을 따라 내려갔다.
“정지! 정지!”
차량이 정지하고 차창이 내려갔다.
“어이쿠야, 충성. 고생 많습니다.”
차창이 내려지고 나타난 얼굴에 오상진과 이해진 상병이 깜짝 놀랐다.
“어, 해진이 형님분 아니십니까?”
“형!”
차창 너머로 이강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떻게 잘 찾아온 것 같습니다.”
“어? 저희를 찾아오신 겁니까?”
“네.”
이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조수석에 있던 햄버거와 음료수를 들고 내렸다.
“별거 아니지만 이것 좀 드십시오.”
이강진이 건네는 햄버거를 받아 들었다.
“그냥 오시지 그랬습니까?”
“그래도 어떻게 그냥 빈손으로 옵니까. 그냥 지난번 일도 있고, 해진이 파견 나왔다고 하길래, 겸사겸사 와봤습니다.”
“그런데 여긴 민간인 통제구역인데…….”
“알죠. 설마 제가 저기 위에까지 올라가겠습니까? 그냥 걸어오기 힘들어서 차 타고 왔습니다. 좀 이해해 주십시오.”
“그래도 이렇게 안 해주셔도 되는데…….”
이강진은 중얼거리며 뒤에 있는 이해진 상병에게 햄버거를 건넸다.
“이거 본보 소초에 가져다 놔.”
“네, 소대장님.”
이해진 상병이 힐끔 이강진을 봤다. 이강진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해진 상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본부초소로 올라갔다. 이제 둘만 남은 상황에서 오상진이 물었다.
“어떻게 여기에 오신 겁니까? 말씀을 들어보니, 절 보러 오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맞아요. 소대장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이강진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일단 장병들 불러서 햄버거부터 먹이시죠.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지금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이라서.”
“하하. 너무 빡빡하신 거 아닙니까.”
이강진이 머쓱해하니 오상진도 너무 FM으로 가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한 후 주위를 확인했다.
“일단 올라가시죠.”
이강진을 데리고 본보 소초에 들어갔다. 그 안에는 통신병을 포함해 김일도 병장과 노현래 이병이 있었다. 밖에는 이해진 상병과 최강철 이병이 보초를 섰다.
“그러니까, 해진이가 말한 형사 형님 되십니까?”
“오오, 김일도 병장. 해진이에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어? 저를 아십니까?”
“잘 알죠. 해진이가 종종 이야기했습니다.”
“혹시 저 험담했습니까?”
“네, 아주 많이요.”
그때 뒤에서 근무를 서고 있던 이해진 상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혀어엉!”
“후후, 자식 발끈하기는. 농담입니다. 해진이는 누구 뒷담화하는 성격 아닙니다.”
“해진이 군대에서도 정말 훌륭한 후임입니다. 정말 해진이 같은 후임만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의 칭찬에 이해진 상병이 살짝 부끄러워했다.
“내 동생이 또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하는가 봅니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노현래 이병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지난번도 그렇고, 원래 이곳에 차가 자주 들어옵니까?”
“…….”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이해진 상병이 재빨리 말했다.
“아니지. 여긴 민간인 통제구역인데.”
“그런데 왜……?”
“나중에, 설명해 줄게. 나중에!”
“아, 네에…….”
노현래 이병의 눈치 없는 질문에 잠깐 소강되었던 대화가 이어졌다. 이해진 상병이 이강진을 봤다.
“그런데 형! 어떻게 여기에 왔어?”
“여기? 가다 보니까, 이쪽으로 길이 있어서 혹시나 해서 와봤다. 아니면 돌아갈 생각으로 말이야. 그런데 정말 이 길이 맞더라.”
“그래? 그래서 지난번에도 왔나?”
“지난번?”
“아니, 이틀 전인가? 그때도 어떤 아저씨가 밤에 차를 몰고 왔더라고. 할아버지 산소를 찾는다나 뭐라나.”
“그래?”
그때 이강진의 머릿속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