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74화
27장 이 밤의 끝을 잡고(5)
-그럼요. 만약에 내가 상진 씨 있는 곳으로 가면 볼 수 있어요?
오상진은 한소희가 보낸 문자의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장이네.”
오상진은 한소희의 말이 장난인지 진심인지 헷갈렸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답 문자를 보냈다.
-물론 소희 씨가 오면 저는 완전 좋죠! 그런데 진짜 오시게요? 집이 엄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거야…… 방법은 제가 찾아볼게요.
-진짜 오시려고요?
오상진은 문자를 보내면서도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진짜죠. 제가 거짓말하겠어요?
오상진은 그 자리에서 ‘허허’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잠깐 생각을 한 후 바로 문자를 보냈다.
-진짜죠? 진짜 오시는 거죠? 저 기다립니다?
-걱정 마요. 진짜 갈 테니까.
-오신다고 해놓고 안 오시면 안 됩니다. 저 진짜 잔뜩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알았다니까요. 제가 갔는데 상진 씨나 못 나온다고 하지 마요.
-에이, 소희 씨가 먼 곳까지 오시는데 당연히 시간 내야죠!
-만약에 못 만난다고 하면…… 전 진짜 실망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정말 약속한 거예요.
-네, 알겠어요. 어서 자요.
-안 그래도 졸려요. 자야겠어요.
-그래요. 잘 자요.
오상진은 한소희와 문자를 끝냈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진짜 오려고 그러나?”
그러고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뭐, 오면 좋고. 안 오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보다 토요일도 근무일 텐데……. 괜히 오라고 했나?”
오상진이 혼잣말을 하며 걸터앉았던 바위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다시 본부 소초로 들어가려는데, 산 아래에 차량 불빛으로 보이는 뭔가가 나타났다.
“불빛?”
오상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산 아래에서 근무를 서던 소대원들 역시 잔뜩 경계를 한 상태로 나타난 차량에게 다가갔다.
오상진 역시도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갔다.
“이곳엔 차량이 못 올 텐데…….”
오상진이 내려가서 운전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던 김우진 상병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아, 이분이 할아버지 산소를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오셨다고 합니다.”
“그럼 다시 왔던 길을 알려드려.”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저쪽에 할아버지 산소가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
오상진이 들고 있던 손전등으로 차 안을 비췄다. 그러자 운전석에 있던 사람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아, 불빛 좀…….”
“충성! 저는 이곳을 책임지는 오상진 소위라고 합니다. 죄송하지만 신분증 좀 제시해 주시겠습니까?”
“네? 시, 신분증요?”
“네.”
오상진의 물음에 사내는 뭔가 초조한 눈빛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내 초조한 표정을 지우곤 실실 웃으며 입을 뗐다.
“아, 제가 급히 나오느라 지갑을 안 가져왔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사내를 찬찬히 살폈다. 오상진의 의심 어린 시선이 계속될수록 사내는 왠지 오상진과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오셨다고 했습니까?”
“네. 아마 저쪽 어디인 것 같은데…….”
사내가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산속이라 수풀이 많이 우거진 곳이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런 늦은 시각에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여기에 어릴 적에 와보고 오랜만에 온 것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긴가민가하다가 이 길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사실 이곳은 군사 보호 구역이라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있습니다. 올라오시면서 푯말 확인 못 했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밤길이라…….”
“그럼 할아버지 산소에 가실 때 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까?”
“그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오후에 왔는데 길 찾다가 이렇듯 시간이 다 가버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루 주무시고 내일 오시지 그랬습니까.”
“내일이면 늦어서…….”
“그렇습니까?”
오상진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한밤중에 할아버지 산소라……. 물론 길을 헤맸다고 하지만 내일 다시 오면 될 것을…….’
사내는 무슨 이유인지 내일은 곤란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딱히 신원을 확인할 신분증도 없고……. 혹시 차량 등록증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이 차가 렌트카라서요…….”
“그렇습니까?”
오상진은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사내가 애원하듯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지만 확인하고 내려가겠습니다.”
“그래도 이곳은 군사 보호 구역이라 민간인은 좀…….”
오상진은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사내는 굽히지 않고 말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저 오늘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그럽니다. 그러니 부탁 좀 드립니다. 정말 잠깐입니다.”
사내의 애원에 오상진은 고민에 휩싸였다. 그렇다고 할아버지 산소를 찾으러 왔다는데 매몰차게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정확하게 어디입니까?”
“아마 저쪽 근처인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사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 번뿐입니다. 이곳은 군사 보호 구역이라 다음번에는 절대 출입하시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내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나와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곳에서 목장갑을 끼곤 검은 봉지를 손에 들었다.
“갑자기 장갑은 왜 끼십니까?”
“아, 수풀이 꽤 우거져 있을 것 같아서요.”
“그건 뭡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사내가 말했다.
“할아버지 산소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소주랑 과자를 좀 샀습니다.”
“아, 네에.”
오상진은 이것을 보고 그가 정말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아온 것이라고 믿었다.
“같이 찾아드립니까?”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무슨……. 나라 지키시는 군인분들에게 수고를 끼칠 수는 없죠. 안 그래도 지금 충분히 수고를 끼치는데…….”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진짜로 조금만 가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극구 사양하는 사내의 모습에 오상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김우진 상병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자리로 돌아가서 마저 경계를 서. 여긴 소대장이 있을 테니까.”
“네.”
김우진 상병과 노현래 이병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상진은 사내가 산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두컴컴해 사내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손전등을 가지고 갔기 때문에 불빛을 지켜봤다.
“괜찮나?”
오상진은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사내는 북쪽으로 약 100미터를 올라갔다. 그리고 불빛이 멈춘 후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무래도 할아버지 산소를 찾은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약 30분이 흐른 후 불빛이 흔들리더니 사내가 내려왔다.
불빛의 움직임이 살짝 이상하긴 했지만 어쨌거나 사내가 다시 내려왔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할아버지 산소는 찾으셨습니까?”
“네, 찾았습니다.”
“다행입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낮에 오셔야 합니다. 밤에는 이곳에 출입할 수 없습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네네. 꼭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사내는 아까 들고 갔던 과자 봉지와 술을 건넸다.
“출출하실 때 이거라도 좀 드십시오. 죄송합니다. 제가 가지고 온 것이 이것뿐이라서…….”
“아닙니다. 그냥 가져 가십이오.”
“아니요. 제가 너무 미안해서 그럽니다. 받아주십시오.”
오상진은 살짝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술은 안 되고, 과자만 받겠습니다.”
“아, 네에. 감사합니다.”
사내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아무튼 밤길 조심해서 내려가십시오.”
“네네.”
사내는 거듭 감사의 인사를 하며 차를 타고 내려갔다. 오상진은 차량이 떠나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소초로 복귀를 했다.
9.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수요일.
오상진과 1소대원들은 내무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몇 시간 후면 또다시 야간 경계 근무를 위해 나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야, TV 좀 틀어봐라.”
“지금 말입니까?”
“그래.”
내무실에 있는 TV를 틀었다. 때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간밤에 내연녀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지난 10일, 이별을 통보하는 내연녀를 자신의 원룸으로 불러내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체포된 용의자 임 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은 임 씨를 상대로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때 연인 관계였던 두 사람은…….
뉴스를 보던 최우석 상병이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다.
“쯧쯧쯧, 요즘 어떻게 되려고 저런 짓을 벌이는지 모르겠네.”
그 옆에 있던 한태수 일병이 말을 받았다.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가 있죠? 인간의 탈을 쓰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눈이 홱 뒤집힌 거지. 막상 저질러 놓고 보니 암담한 거고.”
“완전 인생 종친 거지 않습니까.”
“그런 거지. 그러니 너도 성질난다고 함부로 그러지 마.”
“제가 뭘 말입니까?”
한태수 일병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냥 그러지 말라고.”
“전, 정말 순수합니다.”
“순수? 크크, 그래 순수하다고 해.”
“진짜입니다.”
“알았다고.”
오상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피식 웃고 말았다. 병사들끼리 별것도 아닌 일로 서로 말장난을 하는 거야 문화나 다름없었다.
그러다가 다시 뉴스에 집중이 되었다. 경찰서에서 나오는 범인의 모습을 봤는데 TV 화면 속 붙잡힌 범인의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응? 내가 저 사람을 아나?”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범인은 마스크에 모자를 깊게 눌러썼지만 두 눈은 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에이, 내가 범인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오상진은 별일 아니라는 생각에 신경을 바로 꺼버렸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오상진은 잠시 중대 행정반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오 소위님.”
안동민 상사가 반갑게 맞이했다. 오상진은 곧바로 안동민 상사에게 갔다.
강 소위하고는 그저 눈인사만 주고받았다. 지난 축구 경기 대패 이후 강 소위는 오상진과 말을 섞지 않으려 했다.
살짝 무시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툭하면 시비를 거는 것보다 나아서 오상진도 그대로 강 소위를 무시해 버렸다.
“행보관님.”
“네, 오 소위님.”
안동민 상사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부식은 어떻게 됩니까?”
“아, 그거 이미 준비해 뒀습니다. 나중에 창고로 오셔서 찾아가시면 됩니다.”
“네, 애들 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렸는데 중대 행정반 게시판에 공문 하나가 있었다. 그것을 우연히 보게 된 오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읽어 내려갔다.
“으음……. 내연녀 살해범이라…….”
이 내용은 조금 전 TV 뉴스에서 봤던 그것이었다.
“이건 아까 TV 뉴스에 나왔던 건데……. 왜 여기에 공문이 떴지?”
오상진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었던지 안동민 상사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