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73화
27장 이 밤의 끝을 잡고(4)
“설마 이거 피?”
“일단 그렇게 보입니다.”
“지금 당장 임 형사는 국과수에게 연락해서 감정 의뢰하고.”
임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
“나머지는 주변 탐문하고, 증인 있는지 확인해 봐.”
“네. 알겠습니다.”
형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강진의 표정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이 자식이 조금만 빨리 연락을 줬다면 잡을 수 있었는데…….”
이강진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야 이 자식아 너 때문에 놓쳤잖아.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할 거냐고!”
이강진은 정보원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듯이 쏘아붙였다.
7.
같은 시각.
오상진과 소대원들은 언제나 그랬듯 야간 경계 근무에 투입되었다.
“자, 오늘도 무사히 임무 수행할 수 있도록. 1조부터 경계 투입한다.”
“네, 알겠습니다.”
복장을 갖춘 소대원들이 하나둘 자신들이 맡은 소초로 이동했다. 소초까지의 거리는 본부 소초에서 양쪽으로 3분 내지는 7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이해진 상병과 최강철 이병도 1조에 속해 있었다. 초소로 와서 곧바로 TA-312를 설치한 후 본부초소와 통신을 개통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경계 임무를 섰다.
“밤바다는 언제는 고요합니다.”
“새삼스럽게…….”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 상병님, 저희 여기에 온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야, 그걸 몰라서 지금 묻는 거냐?”
“네.”
“이 자식 봐라. 인마, 지금 상황이 바뀌었잖아. 원래 그런 건 고참이 물어봐야 하지 않냐?”
“아, 그런 겁니까?”
최강철 이병이 당황했다. 이해진 상병이 그런 최강철 이병을 보며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라? 진짜야?”
“죄, 죄송합니다.”
“내가 미쳐! 강철아.”
“이병 최강철.”
“이곳에 와서 아무 훈련도 없이 야간 경계만 섰다가 가고 하니까 시간 개념이 없는 거냐?”
“아닙니다.”
“아니긴…… 나도 마찬가지인데.”
“…….”
최강철 이병이 입을 다물었다. 이해진 상병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밤바다 처음에는 보기 좋더니……. 계속 이러고 있으니 솔직히 지겹다. 그렇지?”
이해진 상병의 물음에 최강철 이병이 즉각 반응했다.
“네. 솔직히 그렇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방금 계산을 해보니 이곳에 파견 온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런 경계 임무도 어느 정도 몸에 익었고, 낮에 휴식을 취하고, 밥 먹고, 또 경계 나갈 준비를 하고……. 이 일상이 완벽하게 적응된 것 같습니다.”
최강철 이병의 말에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었다.
“그래도 아직 적응 못 하는 녀석이 있잖아.”
“아, 노현래 이병 말입니까?”
“그래. 그 녀석은 예민해서 그러나? 아니면 몸이 약해서 그러나?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되었는데 말이야.”
“아마도 착해서 그럴 겁니다.”
“착해? 그거랑 뭔 상관이 있다고?”
“당연히 착하니까, 이것저것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신경을 쓸 테고, 그러다 보면 더 예민해지지 않겠습니까?”
이해진 상병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최강철 이병을 봤다.
“뭔 소리야? 알아듣게 얘기해.”
“그냥 많이 예민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자식이, 그렇게 얘기하면 될 것은……. 아무튼 이제 일주일이 지났고, 아직 8일이나 더 남았다는 겁니다.”
“하아…… 8일.”
이해진 상병이 깊은 한숨과 함께 남은 날짜를 읊조렸다.
“저도 죽겠습니다.”
“그려. 솔직히 지겹기는 하다.”
“그렇지 말입니다. 이 상병님도 저랑 똑같지 말입니다.”
“그래, 똑같아. 그런데 너 처음에는 꿀 빨아서 좋다고 하지 않았냐?”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너무 지루합니다.”
“자식, 밤공기도 좋고, 밤바다의 잔잔한 물결도 좋고, 그 위에 떠 있는 달 역시도 좋다고 했으면서. 특히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경계 근무를 설 수 있어서 운치 있다고 좋아하지 않았냐?”
“제가 그랬습니까?”
“그래, 인마!”
“어…… 제가 그랬다면 취소입니다, 취소! 지금은 정말 우리 충성 대대로 하루빨리 복귀하고 싶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다.”
이해진 상병도 마찬가지였다.
8.
본부 소초에 있는 오상진은 작은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봤다. 밖은 너무 고요했다.
“도민아.”
“일, 일병 심도민.”
심도민 일병이 무전기 앞에 앉아 졸다가 오상진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서 깼다.
“잤냐?”
“아, 아닙니다.”
“졸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그보다 중대 상황실에서는 연락이 없고?”
“네.”
“알았다.”
오상진은 괜히 심도민 일병에게 말을 붙였다. 솔직히 오상진 역시도 심심하고 따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많이 심심하기는 하네.’
그때 본부 초소 문이 열리며 박중근 하사가 들어왔다. 그는 잔뜩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아, 진짜…… 그냥 밥만 먹자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돌렸다.
“박 하사 무슨 일입니까?”
“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말해 보십시오.”
“그게 말입니다. 방금 아내랑 통화를 하고 왔습니다.”
“아, 맞다. 아내분하고 통화한다고 나가셨죠. 그런데 왜 표정이……. 설마? 박 하사 애한테 무슨 일 생긴 겁니까?”
오상진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좋지 않은 박중근 하사의 아들은 오상진과 충성 대대의 모금운동을 통해 수술을 받았었다. 당시 수술은 무사히 마쳤지만 주기적으로 병원에 통원하며 자질구레한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오상진은 박중근 하사가 집에 통화를 한다고 하면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부터 하게 되었다.
박중근 하사는 그런 오상진의 마음을 다 알기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애는 소대장님께서 걱정해 주신 덕분에 건강합니다. 이번엔 아이 일이 아니고……. 다름이 아니라 장인어른께서 환갑이시라 그것 때문에 통화를 좀 했습니다.”
“아, 장인어른이 환갑이십니까?”
“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표정은 좋지 않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사실 말입니다. 제 아내가 자꾸만 일을 크게 벌이려고 합니다. 그냥 가족끼리 조촐하게 식사만 하려고 했는데 장인어른께서 마을 잔치를 벌이려고 하십니다. 아무래도 시골에 사시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골 분이시라면 그럴지도 모르죠.”
오상진이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해는 하지만……. 아무튼 제가 아내에게 말해서 아버님을 설득해 보라고 보냈더니, 오히려 설득을 당하고 왔지 뭡니까.”
“아, 그런 거였습니까?”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네, 이거 아무래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습니다. 하아…….”
박중근 하사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오상진이 딱히 해줄 말은 없었다. 남의 가족사에 왈가불가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 박 하사가 현명하게 대처할 거라 봅니다.”
“네. 뭐, 다시 아내랑 잘 말해봐야죠. 그보다 소대장님은 어떻습니까?”
“네? 뭐가 말이죠?”
“에이, 여자 친구분 말입니다. 어떻게 잘 지내십니까?”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긴 그때가 가장 좋을 때입니다. 되도록이면 지금 시간을 아주 길게 가져가십시오.”
“네?”
“최대한 결혼은 늦게 하시란 말입니다.”
“어? 그거 여자 친구가 들으면 많이 서운할 말입니다.”
“아, 그렇다고 제 말을 전하시면 안 됩니다.”
“당연하죠.”
오상진이 웃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2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소희 씨 아직 안 자고 있으려나?”
잠시 생각을 하던 오상진이 손전등을 들고 일어났다.
“저 잠깐 볼일 좀 돌고 오겠습니다.”
“네. 다녀오십시오.”
오상진은 본부 소초를 나섰다. 인근 풀숲으로 가서 볼일을 본 후 슬쩍 휴대폰을 꺼냈다.
“소희 씨에게 문자를 보내볼까.”
오상진의 표정이 밝아지며 근처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한소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소희 씨 뭐 해요?
오상진이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 답장이 오지 않았다.
“벌써 자나?”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는데 그때 ‘지잉’ 하고 울렸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문자를 확인했다.
-칫!
단 한 글자가 다였다. 오상진은 그 한 글자를 보고 살짝 삐져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렇다고 바로 아는 척을 하진 않았다.
-어? 소희 씨 아직 안 잤어요?
-당연히 안 잤죠! 누구 연락 기다린다고요.
-혹시 그 사람이 저예요?
-아니거든요!
오상진은 문자를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아무튼 소희 씨는 귀엽다니까.”
오상진은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라서 좀 서운하네요. 그보다 오늘 뭐 했어요?
-월요일이잖아요. 학교 다녀왔죠.
-소희 씨는 참 열심히 학교 다니시는 것 같아요.
-학생이 당연히 학교를 열심히 다녀야죠. 그리고 저 학점 제대로 안 나오면 저희 아버지가 난리 나요. 아마 집 밖으로 못 다니게 할 걸요.
-아버님이 정말 엄하신 분이시군요.
-그렇다고 해서 꽉 막히신 분은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아빠는 서로 약속만 잘 지키면 괜찮아요. 비록 조금 고지식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요. 그것 빼고는 아주 좋으신 분이에요. 그러니 걱정 말아요.
-아, 네에. 그래도 전 무지 떨립니다.
-호호호. 당연히 그래야죠. 미래의 장인……. 아니에요.
오상진은 그 문자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대번에 알았다.
“장인? 장인어른……? 소희 씨도 나랑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오상진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 또 하나의 문자가 날아왔다.
-저기 상진 씨! 있잖아요. 묻고 싶은 말이 있어요.
-네. 물어보세요.
-혹시 오빠랑 김 중위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어요?
-아뇨, 잘 모르겠는데요. 왜요?
-아니, 요즘 들어서 오빠가 자꾸 실실 웃고 다니잖아요.
-그래요?
-상진 씨 저희 오빠랑 요즘 통화 안 해요?
-요즘에는 제가 파견 와서 거의 못했어요. 뭐, 형님 제대하시고 자주 얼굴 보거나, 연락은 하지 않아요.
-좋은 소식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그 관계 유지해요.
-네, 소희 씨.
-그보다 통화 가능해요? 목소리 듣고 싶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기 근무 서러 나온 상태라 좀 힘듭니다.
-이힝, 그런데 언제 와요?
-한 8일 정도 남았습니다.
-8일? 그럼 이번 주말에도 못 보는 거예요?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미안해요.
-너무해요. 아무리 그래도 2주에 한 번씩은 보기로 했잖아요.
-그게…….
-뭐예요? 상진 씨 거짓말쟁이였어요?
-소희 씨, 어쩔 수 없어요. 이번만 좀 이해해 주세요.
오상진이 문자를 보내고 휴대폰을 바라봤다. 바로 답 문자가 오다가 이번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뭐지? 소희 씨 많이 화가 났나?”
오상진이 미안한 마음에 다시 문자를 보내려는데 답 문자가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