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70화
27장 이 밤의 끝을 잡고(1)
1.
소대원들도 이제 밤 경계 근무를 서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다. 다만 밥 먹는 것에 적응하지 못한 몇몇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선임병들은 괜찮았는데, 이등병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현래야, 밥 좀 팍팍 먹어라.”
김우진 일병이 말했다.
“네, 먹고 있습니다.”
“아니, 5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되냐?”
“모르겠습니다.”
“아, 자식! 몸이 민감한 거야, 아니면 그냥 약한 거야? 왜 강제 다이어트를 하고 지랄이야. 뺄 살도 없는 녀석이. 억지로라도 먹어!”
“네, 알겠습니다.”
노현래 이병이 힘겹게 밥을 먹었다. 충성대대에 있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먹는 것은 솔직히 곤욕스러울 정도였다.
‘하아, 미치겠네.’
노현래 이병이 억지로 밥을 욱여넣었다. 그러다가 사레가 걸렸는지 기침을 했다.
쿨럭쿨럭!
“야, 인마. 밥알 다 튀잖아.”
“죄, 죄송합니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입을 뗐다.
“우진아 그만 좀 해라. 네가 닦달을 하니까 현래가 밥을 더 못 먹잖아. 억지로 먹여서 탈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냥 너무 안 먹으니까,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강제로 하는 건 아니지.”
“네, 알겠습니다. 그보다 말입니다. 요새 짬을 많이 버린다고 뭐라고 합니다.”
“야, 짬을 좀 남길 수도 있지 그것 가지고 그런다냐. 우리가 먼 길까지 와서 고생을 하는데 말이야.”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됐어, 신경 쓰지 마.”
“네.”
그런 와중에 노현래 이병은 또 밥을 반도 못 먹고 버리고 말았다.
2.
밥을 다 먹고 난 후 취사반장이 나타났다.
“오늘은 좀 어때?”
“오늘은 어제보다 많이 안 쌓였습니다.”
“그래?”
취사반장이 짬통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역시 짬이 많이 쌓여 있었다.
“야, 많이 안 쌓이기는! 이 자식들이 진짜……. 서울에서는 뭘 어떻게 맛있게 처먹어서 그래?”
취사반장은 적응이 안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그저 밥이 맛없어서 버린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때 뒷정리를 하던 취사병 하나가 재고 정리를 하고 있던 원 하사를 불렀다.
“원 하사님.”
“왜?”
“전에 빼놓으라고 했던 닭이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닭? 무슨 닭?”
“그때 따로 쓸 일이 있으시다고…….”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네. 그런데 그 닭이 아직 남아 있었어?”
“이거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우리끼리 튀겨 먹자!”
그런데 취사병의 표정이 약간 좋지 않았다.
“왜?”
“그게 말입니다. 오랫동안 냉장고에 있었고, 냄새를 맡아보니 약간 상한 것 같은 느낌이…….”
“뭐? 상해?”
“네, 좀 구린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 어디 줘봐.”
원 하사가 냄새를 맡았다. 취사병이 말한 대로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았다.
“상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합니까?”
“아까운데…….”
원 하사는 닭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던 중 식당으로 박중근 하사가 들어왔다.
“저기 계십니까?”
사람을 찾는 목소리에 취사장에 있던 원 하사가 밖으로 나왔다.
“네, 무슨 일입니까?”
“아, 네에. 저기 우리 애들이 밥을 좀 못 먹는 것 같아서요. 혹시 요기할 거라도 있는지 말입니다.”
박중근 하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야간 경계 근무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 밥도 잘 먹지 못하는 소대원들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른 것이었다. 얻어갈 수 있는 요깃거리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뭐야? 여기가 무슨 분식집이야?’
원 하사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시간에, 그것도 파견 나온 부대가 요기할 것을 찾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때 원 하사의 머릿속에 조금 전 봤던 닭이 떠올렸다.
“아, 사실 닭 몇 마리가 있는데 그거라도 튀겨 드립니까?”
순간 박중근 하사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도 잔반 처리를…… 아니, 그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한 30분 있다가 가지러 오십시오.”
“네.”
박중근 하사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가고 원 하사가 취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야, 그거 튀겨.”
“어? 이거 괜찮습니까?”
“괜찮아. 그리고 내가 준다고 했어? 쟤네들이 달라고 하잖아. 빨리 튀겨!”
“알겠습니다.”
“밑간 잘해서 잡내 안 나게 하고!”
“알겠습니다.”
3.
30분 후 박중근 하사는 뿌듯한 얼굴로 내무실에 나타났다.
“얘들아, 간식 먹자.”
“간식? 무슨 간식 말입니까?”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닭튀김을 꺼냈다.
“와! 이게 뭡니까? 닭튀김입니까?”
“그래. 내가 너희들이 하도 밥을 못 먹는 것 같아서 간식이라도 좀 달라고 했다.”
“대박! 박 하사님 진짜 멋지십니다.”
“이럴 때만?”
“아닙니다. 원래 예전부터 멋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자식들…… 누가 가서 4소대 애들도 불러와라.”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4소대까지 합류하고서야 다들 본격적으로 닭튀김을 먹기 시작했다. 갓 튀긴 것이라 그런지 따끈따끈하고 아주 맛있었다.
“대박이네. 이곳에서 닭튀김을 먹을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이게 다 우리 박 하사님 덕분이야.”
“박중근 하사님?”
“그래.”
“뭐, 아무튼 요새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이렇듯 보양식을 먹으니 좋네.”
“저도 그렇습니다.”
박중근 하사는 뿌듯한 얼굴로 닭튀김을 먹는 소대원들을 보았다. 오상진이 박중근 하사에게 갔다.
“저도 생각 못 한 일인데…… 감사합니다.”
“에이,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말입니다.”
“아무튼 애들 이걸로 기력보충 충분히 할 것 같습니다.”
박중근 하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최강철 이병이 닭튀김을 먹던 중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러자 옆에 있던 이해진 상병이 물었다.
“왜?”
“이 상병님, 닭에서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냄새? 무슨 냄새?”
“좀 상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상해?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냄새 한번 맡아 보십시오.”
“냄새?”
이해진 상병이 코로 냄새를 맡았다. 느끼한 기름 냄새와 특유의 닭 냄새만 날 뿐이었다.
“아무것도 안 나는데.”
“그렇습니까? 이상한데…….”
“네가 너무 민감해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닙니다. 게다가 맛도 좀 이상하고…….”
“자식이 왜 이래? 그리고 원래 군대 닭들은 다 이래. 얼마나 많은 닭이 부식으로 들어오겠냐. 게다가 생닭으로 오는 게 아니라 다 얼려서 올 텐데 그 과정에서 약간 냄새가 날 수도 있겠지. 그리고 솔직히 누구 군부대에 A급 닭을 주겠냐. 안 그래?”
이해진 상병의 말에 최강철 이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닭을 내려놓았다.
“왜 안 먹어?”
“네, 저는 됐습니다.”
“자식, 은근히 민감하네. 뭐, 안 먹으면 너만 손해다.”
“네. 많이 드십시오.”
그런데 바로 옆 노현래 이병은 허겁지겁 닭튀김을 먹고 있었다.
“현래야, 많이 먹어라.”
“지금 그러고 있습니다.”
노현래 이병은 신나서 먹어댔다.
“이 상병님, 닭튀김이 진짜 맛있습니다.”
“그러게, 밀가루도 적당하게 입히고 말이야. 제법 잘했네.”
“네, 밥도 그다지 맛없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적응이 힘들어서 밥이 입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그런 거였지 말입니다.”
“그래, 그래.”
그렇게 닭튀김은 금세 동이 났다. 다들 불러온 배를 퉁퉁 두드리며 만족한 듯 웃어 보였다.
그런데 그날, 야간 경계 근무를 나가기 전 몇몇 소대원들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왜 그러냐?”
“속이 좀 안 좋습니다.”
“뭐 잘못 먹은 거 있냐?”
“없는데 말입니다.”
김일도 병장도 속이 좋지 않은지 배를 어루만지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갑자기 배가 아프지.”
그때 김우진 상병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다가왔다.
“하아…….”
깊은 한숨까지 흘리면서 말이다.
“야, 우진아. 왜 그래?”
“저 방금 설사했습니다.”
“너도 그러냐? 사실 나도 살살 배가 아픈 거 같다.”
“김 병장님도 배가 아프십니까? 저도 방금 화장실에서 폭풍 설사를 하고 오던 길입니다.”
“아, 새끼. 더럽게.”
김일도 병장이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손도 깨끗이 씻고, 뒤처리도 깔끔하게 했습니다.”
“아무튼 설사 얘기를 하고 있어.”
“배가 아픈데 어떻게 합니까.”
김우진 상병이 인상을 썼다. 김일도 병장이 그런 김우진 상병의 얼굴을 봤다. 볼이 핼쑥해져 있었다.
“그래도 힘들었나 보네.”
“지금도 속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아까 먹은 닭이 문제였나?”
“닭? 야, 기름에 바짝 튀겼는데 문제가 있을까?”
“그렇겠지 말입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김일도 병장이 누군가를 찾았다.
“야, 현래는?”
“현래도 급하다고 똥 싸러 갔습니다.”
“그래? 이상하네. 다들 왜 그러지?”
두 사람 외에도 1소대 대원 대부분이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증상이 심한 사람은 몇 없었고, 한 번 화장실에 다녀오고 나서 괜찮아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아무튼 오늘 밥이랑 조금 전에 먹었던 닭튀김이 전부지?”
“네. 김 병장님.”
김일도 병장이 인상을 썼다. 그런 와중에도 배를 바늘로 콕콕 쑤시는 통증이 느껴졌다.
“아, 젠장. 나도 슬슬 아픈 거 같은데……. 미리 화장실을 다녀올까?”
김일도 병장이 배를 부여잡고 심각한 얼굴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왔다. 약간은 개운해진 얼굴로 말이다.
“괜찮습니까?”
“조금은……. 그런데 말이야. 현래는 왔어?”
김일도 병장이 노현래 이병을 찾았지만 아직 복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진아.”
“상병 김우진.”
“그런데 아까부터 현래가 안 보이네.”
“아, 이 자식 똥을 만들어서 싸고 오나. 제가 한번 가 보겠습니다.”
“그래.”
김우진 상병이 화장실로 갔다.
“야, 노현래. 현래야.”
김우진 상병이 노현래 이병의 이름을 조심히 불렀다. 그때 화장실 맨 끝 사로에서 노현래 이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병 노현래…….”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야, 안 나오냐?”
“그, 그게 말입니다. 서, 설사가 멈추지 않습니다. 윽!”
이 와중에도 노현래 이병은 부룩부룩 설사를 싸대고 있었다.
“주, 죽겠습니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인마, 내가 널 어떻게 살려주냐. 그보다 안 멈춰지냐?”
“네,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놔, 더러운 녀석! 빨리 끊고 와. 다들 기다리잖아.”
“아, 알겠습니다. 지금 나갑니다.”
노현래 이병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처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엉거주춤 바지를 올리려다가 다시 확 내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기, 김 상병님…….”
“왜?”
“저, 또……. 윽, 으으으으…….”
김우진 상병이 ‘우엑’ 하며 토악질을 몇 번 하고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