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69화
26장 은혜는 갚아야지(13)
“어? 저 세탁물은 우리 건데.”
김일도 병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지금 뭡니까?”
김일도 병장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한 상병이 김일도 병장을 봤다. 계급이 병장이라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파견 나온 장병이라는 것을 알고 입을 열었다.
“아저씨 이 세탁기 저희 거라는 거 알죠?”
“모르지는 않죠. 저희도 허락받고 사용하는 겁니다.”
“허락? 누구에게요?”
“행보관님에게 사용 허가받았습니다.”
“아, 진짜 행보관님…….”
한 상병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김일도 병장을 보며 말했다.
“행보관님이 뭘 몰라서 허락하신 것 같은데. 지금 시간은 저희 내무실이 사용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떡 하니 다른 세탁물이 돌아가니까…….”
“아저씨, 그래도 세탁기가 돌아가는데 그걸 빼내는 건 아니죠. 안 그래요?”
김일도 병장도 한 상병이 하는 말이 이해는 되었다. 사실 세탁기는 한 대이고, 세탁을 할 내무실이 많다면 각자의 사용 시간을 정해놓을 수밖에 없었다. 세탁기 사용 시간을 통제해 원만하게 사용하는 게 트러블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행보관이 그 시간을 모르고 허락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건 아는데요. 우리도 이 시간이 아니면 세탁을 돌릴 수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합니까? 우린 행보관님께 허락은 받았고, 지금 세탁기는 돌아가고.”
한 상병이 살짝 인상을 쓰더니 말했다.
“알겠어요. 돌리세요.”
한 상병이 임 일병을 봤다.
“세탁물 들고 따라와.”
“네.”
김일도 병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한 상병은 그 길로 행보관을 찾아갔다. 중대 행정반 문을 두드렸다.
“충성, 상병 한상태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 한상태 무슨 일이야?”
강 소위가 고개를 돌려 한상태 상병을 봤다. 강 소위는 안동민 상사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한상태 상병이 나타나자 고개를 돌렸다.
“행보관님.”
“왜 그래?”
“세탁기 말입니다.”
“세탁기가 왜?”
“아니 저희 소대가 사용할 시간인데 지금 파견 근무자들이 돌리고 있지 뭡니까.”
“그래? 너희 시간이었어?”
“네. 행보관님께서 허락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내가 사용하라고 했지. 아니, 어제 새벽에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렸잖아. 그 녀석들 전투복도 다 젖었고. 그래서 세탁기 사용하라고 했지.”
“그건 알겠는데 말입니다. 저희도 세탁기 사용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 이번 한 번만 그냥 넘어가고, 너희들이 다음에 하면 안 되냐?”
“다음에 언제 말입니까? 저희도 세탁물이 쌓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전투복을 갈아입어야 하지 않습니까.”
“알았어, 인마! 내가 특별히 세탁기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줄게. 아니다. 저녁 늦게 돌릴 수 있게 해줄게. 됐지?”
“아니, 그러지 말고 저 녀석들 보고 저녁 늦게 돌리라고 해주십시오.”
“야, 한 상병.”
“상병 한상태.”
“꼭 그래야겠냐? 행보관이 이미 허락을 했고, 지금 돌리고 있다며. 그렇게 텃세를 부려야 해? 아무리 그래도 멀리서 온 손님 아니냐. 조금 양보를 할 줄도 알아야지.”
안동민 상사의 말에 한상태 상병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강 소위가 입을 뗐다.
“행보관님, 왜 우리가 그래야 하죠?”
“네?”
“아니, 그냥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강 소위의 말에 안동민 상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사람은 또 왜 이래? 내가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고 하니까.’
안동민 상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강 소위를 향해 조용히 물었다.
“소대장님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이죠?”
“잘 들어보십시오. 군대에는 엄연히 룰이 있습니다. 우리 소대가 세탁기 사용할 시간에 저들이 사용하면 우리는 애들은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그 룰 따라 우리 애들 먼저 돌리고 난 다음에 시간이 남으면 돌려야 맞는 거죠. 안 그렇습니까?”
강 소위가 약간 억지를 부리는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맞는 말이기도 했다.
“이미 세탁기는 돌리고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안동민 상사가 난처한 얼굴로 물었다. 강 소위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미 돌아가고 있는 세탁물을 빼내는 것도 웃긴 일이고……. 이렇게 하시죠. 저들이 정중히 사과를 했다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야, 너희들에게 사과를 했냐?”
“사과는 하지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는데 말입니다.”
“뭐?”
강 소위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안동민 상사가 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강 소위는 인상을 쓰더니 말했다.
“아니, 잘못 사용을 했으면 사과부터 하는 게 정상이지. 충성대대 안 되겠네. 세탁실이지? 가자, 내가 한번 가 볼게.”
강 소위가 움직이려고 하자, 안동민 상사가 급히 말렸다.
“아, 또 왜 그러십니까? 소대장님이 그러면 제 입장이 더 난처해지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행보관님에게 피해 안 가도록 제가 잘하겠습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죠. 제가 사용하라고 했는데…….”
그러나 강 소위는 안동민 상사의 말을 듣지 않고 행정반을 나섰다. 안동만 상사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놔, 미치겠네.”
그리고 곧바로 강 소위 뒤를 따라갔다.
20.
한편, 오상진도 김일도 병장에게 보고를 받았다.
“소대장님.”
“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오상진은 누워서 쉬고 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말해봐.”
“사실 조금 전에 세탁기 사용 건으로 강원 소초 애들과 약간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뭐? 말다툼? 아니, 왜?”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분명 중대 행보관님께 허락을 받고 사용하는데, 갑자기 그들이 세탁물을 들고 와서는 자기들 사용 시간이라면서 세탁물을 빼라고 하지 뭡니까. 이미 돌아가고 있는 세탁물을 말이죠.”
“확실히 행보관에게 허락받고 돌리는 거라고 했어?”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럽니다.”
“그래서 세탁물은 뺐어?”
“아뇨, 일단 그 녀석들 돌아가긴 했지만……. 그 녀석들의 행동으로 봐서는 아마도 저기 소대장에게 얘기를 할 기세였습니다.”
“알았어. 소대장이 처리할게.”
오상진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내무실을 나섰다. 때마침 세탁실로 향하다가 강 소위와 마주쳤다. 그의 뒤엔 난처한 얼굴의 안동민 상사도 서 있었다.
“아, 오 소위 잘 만났습니다.”
“네. 안 그래도 저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오상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세탁기 말입니다. 저희 소대 시간인데 그쪽 소대가 사용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에 대해서 사과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하아, 고작 세탁기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과를 하라니. 좀 억지 아닙니까? 게다가 저희는 행보관님께 허락을 받고 사용했습니다. 마음대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럼 왜 저에게는 허락을 구하지 않습니까?”
“네에? 아니 세탁기를 사용하는데 강 소위에게 허락을 구해야 합니까?”
“당연하죠!”
“무슨 말도 안 되는…….”
오상진은 강 소위의 억지에 화가 났다. 그러다가 안동민 상사가 급히 나섰다.
“잠깐, 잠깐만요. 두 분 싸우지 마시고.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충성대대 쪽에서 어제 새벽에 비를 맞아서 전투복을 빨아야 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세탁기를 사용하라고 허락을 한 상황이고 말이죠. 그런데 내가 우리 애들의 세탁기 사용 시간을 몰랐습니다. 모든 것은 저의 불찰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말씀들을 해주십시오.”
안동민 상사가 입을 열었다. 안동민 상사가 저런 식으로 나서자 강 소위도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중대 행보관이지 않는가. 오상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강 소위가 세탁기를 확인하며 입을 뗐다.
“벌써 돌아가고 있네요. 20분 정도 남았나? 어쩔 수 없죠. 최대한 빨리 끝내주십시오.”
“…….”
오상진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니, 이럴 거면서 조금 전까지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냥 좋게 넘어가도 될 문제를 말이다. 그런데 강 소위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뒤끝이 남은 듯 한마디 덧붙였다.
“세상에, 여태까지 파견 근무자들 많이 봤는데 이런 파견자들은 처음이네.”
그러자 옆에 있던 한상태 상병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저희 빨래는 어떻게 합니까?”
“상태야, 어떻게 하겠냐. 착한 우리가 이해해 줘야지. 뭘 모르고 그런 거니까. 있다가 저녁에 돌려. 행보관님이 특별히 사용하게 해주신다니까.
“네…….”
그때까지 오상진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뭔가 잔뜩 억울한 감이 있었지만 여기서 한마디를 더 하면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았다.
‘참자, 참아.’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 강 소위는 안동민 상사에게 말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우리 저녁 늦게 돌려도 되죠?”
“네, 그렇게 하십시오. 안 그래도 오늘 제가 당직사령이니까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상태도 그리 알고.”
강 소위가 오상진을 바라봤다.
“세탁 마저 하십시오.”
그렇게 강 소위가 다시 중대 행정반으로 갔다. 오상진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속에서는 열불이 끓어올랐다.
‘저 자식 뭐야? 자기 할 말만 다 하고 가네. 그것도 남의 성질은 잔뜩 긁어놓고 말이야.’
오상진은 처음부터 시비조로 말하는 강 소위를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러지? 내가 뭘 크게 잘못했나?”
오상진의 중얼거림에 안동민 상사가 나섰다.
“이해하십시오. 강 소위님 원래 저러지 않는데 오늘은 유독 신경이 날카로운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좀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아무튼 세탁 마저 하십시오.”
“네.”
안동민 상사가 중대 행정반으로 갔다.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오상진은 어두운 표정으로 내무실로 돌아왔다. 소대원들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박중근 하사가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잘 해결되었습니다.”
“사실 아까 강 소위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습니까?”
“막말로 강 소위, 너무 하지 않습니까. 처음 이곳에 도착할 때부터 그러더니…….”
오상진의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네? 무슨 일이 또 있었습니까?”
“아니, 지난번에 우리 애들 밥 먹는데 괜히 옆에 와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며 구박을 주지 뭡니까.”
“정말 그랬습니까?”
“네.”
“아, 진짜. 그 양반 생각할수록 이상하네. 진짜 왜 저런답니까?”
“모르겠습니다. 충성대대였다면 행보관에게 가서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이게 남의 소초에 와서 뒷조사를 할 수도 없고 말이죠.”
오상진 애써 웃음을 지었다.
“이제 우리 12일 남았습니다. 괜히 열 내면 우리만 손해입니다.”
“어쩔 수 없죠.”
박중근 하사도 자신의 자리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오상진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파견 근무를 나와서 다른 소대장의 눈치를 봐야 할 줄은 몰랐네. 그래도 우리가 객식구인데 그러려니 해야지.”
오상진은 애써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