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65화
26장 은혜는 갚아야지(9)
“자자, 서두르자. 군장 빠짐없이 실어라.”
“네.”
“그리고 군장 다 실은 사람은 버스에 올라타도록.”
“아, 4소대장.”
“네.”
“4소대장은 버스 인원 체크 해주시죠.”
오상진의 부탁에 4소대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덮개를 덮은 육공트럭 뒤에서 최종적으로 짐을 확인했다.
육공트럭을 타고 갈 사람은 박중근 하사였다.
“박 하사가 트럭 타고 오는 거죠?”
“네.”
“알겠습니다. 확인 끝났으니까. 차량에 탑승하시죠.”
“네.”
오상진이 제일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4소대장을 봤다.
“인원은 이상 없습니까?”
“네. 이상 없습니다.”
그때 김철환 1중대장이 버스에 올라탔다.
“주목!”
“주목!”
1소대와 4소대가 김철환 1중대장에게 시선이 갔다.
“중대장이 아까도 말했지만 다치지 말고 무사히 복귀하기 바란다. 그리고 사고도 치지 말고.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와라.”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을 봤다.
“애들 통솔 잘해. 무슨 일 생기면 즉각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충성, 잘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김철환 1중대장이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문이 닫히고 차량이 출발했다. 그렇게 이른 아침 충성대대 연병장을 버스 한 대와 육공트럭 한 대가 각각 출발했다.
차량은 위병소에서 잠깐 세워져 다시 한번 인원 체크를 마친 후 도심으로 빠져나갔다. 그때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진아.”
“상병 이해진!”
“우유 가져온 거 애들 나눠줘라.”
“네, 알겠습니다.”
이해진 상병이 앞으로 가서 박스 하나를 들었다. 박스를 열자 매일 아침마다 나오는 우유가 들어 있었다.
“자, 지금부터 우유를 나눠줄 것이다. 아침에 전투식량 받았지?”
“네. 그렇습니다.”
“흔들리는 차 안이지만 맛있게 아침 식사할 수 있도록.”
오상진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소대장님 여기 우유 있습니다.”
“어, 고맙다.”
그 뒤로 모두 우유를 나눠주고 방독면 안에 고이 모셔 두었던 전투식량을 꺼내 아침 식사를 했다. 비록 식당에서 먹는 아침은 아니었지만 설렘 가득한 아침밥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때 이해진 상병이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소대장님 여기 아침밥입니다.”
“어? 내 것도 챙겼어?”
“네.”
“고맙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힐끔 4소대장을 바라봤다.
“4소대장 것은?”
“4소대장님은…….”
이해진 상병이 당황하며 4소대를 봤다. 오상진도 고개를 들어 4소대를 바라봤다.
“너희들 소대장 것 안 챙겼냐?”
그러자 4소대원들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김이중 상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이것들아. 소대장님 식사 안 챙겼냐?”
“…….”
4소대원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김이중 상병이 이재민 일병을 봤다.
“야, 이재민.”
“일병 이재민.”
“내가 소대장님 식사 챙기라고 했지.”
“그게…….”
그러자 4소대장이 말했다.
“됐다. 난 우유 하나면 돼.”
4소대장이 약간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오상진이 조용히 말했다.
“저랑 나눠 먹죠.”
“아닙니다.”
“저 혼자 다 못 먹습니다.”
오상진이 이해진 상병을 바라봤다.
“박 하사는?”
“미리 챙겨 드렸습니다.”
“잘했다.”
오상진의 얼굴이 뿌듯함이 떠올랐다. 반면, 4소대장은 살짝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는 사이 차량은 고속도로에 올라갔다. 그리고 소대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 피곤했는지 다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저, 1소대장님.”
“네?”
4소대장이 조심스럽게 오상진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존경합니다.”
“네?”
“오늘 1소대장님 보니까, 완전히 베테랑처럼 행동하시던데 말입니다. 대단하십니다.”
“아, 아닙니다.”
“아니, 깜짝 놀랐습니다. 몇 번 파견을 나갔다 와본 것처럼 딱딱 지시를 내리는데 놀랐습니다. 저는 떨려서 제대로 못 했는데…….”
“아, 그리 보였습니까?”
“네!”
“그리 보였다면 성공했습니다.”
“네?”
“제가 연습 많이 했거든요.”
“아, 연습…….”
연습을 아무리 많이 했다고 한들 저토록 자연스럽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어색함 하나 없이 자연스레 딱딱 지시를 내리던 오상진의 모습에 4소대장은 감탄을 했었는데, 실제로 경험이 있는 사람의 행동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이 연습이라는데 뭔 말을 할 수 있겠나. 4소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상진은 그 모습에 그저 멋쩍은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새 4소대장도 입을 벌린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상진은 목적지인 강원도까지 총 5시간 정도 걸릴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육공트럭의 최고 속도는 80㎞였다. 그래서 버스도 그 속도에 맞춰서 가야 했다.
오상진은 잠을 자지 않고 전방을 응시했다. 그렇게 약 2시간가량 왔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저기 소대장님…….”
오상진이 고개를 돌렸다.
4소대 이재민 일병이었다.
“어, 그래 재민아.”
“혹시 휴게소 들릅니까?”
“휴게소? 왜?”
“지금 화장실이 급해서 말입니다.”
“아, 화장실…….”
오상진이 시계를 확인했다. 부대에서 출발한 지 2시간이 좀 지나 있었다. 운전병을 보며 물었다.
“운전병.”
“네.”
“얼마 정도 걸릴 것 같냐?”
“지금 속도면 2시간 30분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래? 30분 정도 여유가 있겠네. 알겠다. 휴게소에 들르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운전병과 대화를 하고 난 후 이재민 일병에게 말했다.
“다음 휴게소에 들어갈 거다. 자리로 돌아가 있어.”
“네. 소대장님.”
이재민 일병이 가고 잠시 후 휴게실 간판이 나타났다.
“5㎞만 가면 된다. 조금만 참아라.”
“네. 알겠습니다.”
어느새 다른 소대원들도 잠에서 깨어 있었다. 그렇게 약 10여 분을 더 달려서 휴게소에 들어갔다. 버스가 정차한 뒤 오상진이 일어나 말했다.
“화장실에 가기 전 소대장이 전달하겠다. 이곳은 부대가 아니다.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휴게소다. 절대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항상 조심하고, 화장실 갈 때도 올 때도 줄을 서서 이동할 수 있도록.”
오상진의 지시에 김이중 상병이 손을 들었다.
“소대장님 꼭 그래야 합니까?”
“그래, 불만 있으면 버스에 남고!”
“아닙니다.”
“일도야.”
“병장 김일도.”
“화장실 갈 사람 줄 세워서 이동시켜라.”
“알겠습니다.”
“그래, 이제 버스 문 열어라.”
운전병이 버스 문을 열었다. 오상진이 먼저 내렸다. 박중근 하사가 미리 와서 버스 문 앞에 대기해 있었다. 김일도 병장이 먼저 내려서 말했다.
“자, 내리는 순서대로 2열 종대로 선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사실 일반인이 많이 없었다면 최대한 빨리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말했을 텐데, 휴게소에는 꽤 많은 사람이 있었다. 오상진은 혹여라도 불상사가 일어날까 걱정되어 소대원들의 행동에 제약을 준 것이었다.
‘그래, 조금 민망해도 이러는 것이 좋아. 예전에 그런 일도 있었고…….’
오상진은 회귀 전, 파견 근무를 통솔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지금처럼 하지 않고 자유롭게 화장실을 보냈다가 사고가 났던 적이 있었다.
‘그때 징계 먹었던 것을 떠올리면…….
오상진은 고개가 절로 흔들어졌다. 아무튼 외부에서 군 기장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특히 휴게소에는 일반인이 많은 만큼 더 신중해야 했다.
“야, 빨리 나와라, 나 급하다.”
이재민 일병이 자기 소대 이병이 늦게 나오자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러자 이등병이 후다닥 줄을 섰다. 김일도 병장이 인원을 확인했다.
“더 갈 사람 없지?”
“…….”
대답이 없었다.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통솔 위치로 이동했다.
“자, 이동합니다.”
2열 종대로 길게 늘어선 군인들이 화장실로 이동하자 휴게소에 있던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어? 군인 아저씨다!”
“훈련 가나 보네.”
“이야, 나도 저런 적 있었는데…….”
“화장실 갈 때도 저렇게 줄을 서서 가는 거야?”
일반인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모두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봤다. 최강철 이병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이 밀려와 방탄 헬멧을 깊게 눌러썼다. 하지만 다른 선임병들은 신기한지 주위를 둘러보기 바빴다.
“다들 볼일 보고 바로 이 앞에 집합합니다.”
“알겠습니다.”
“해산!”
김일도 병장의 한마디에 곧바로 우르르 화장실로 뛰어들어 갔다.
“와, 저 방광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냥 옷에 지릴 뻔했지 말입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일반인들 보는 것 아닙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밖에 음식들도 맛나 보입니다.”
소대원들은 볼일을 보면서도 이런저런 말을 했다. 그리고 모두 볼일을 마친 소대원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가 줄을 섰다.
“아, 시원하다.”
밖으로 나와 줄을 선 소대원들의 표정이 한결 개운해졌다. 그러던 중 손주영 이병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거 핫바 아닙니까?”
“뭐? 핫바?”
“핫바가 있어? 어디, 어디?”
핫바란 말에 소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어린 꼬마가 한 손에 핫바를 입에 물고 오물거리고 있었다.
“이야, 맛나겠다.”
손주영 이병만이 아니었다. 화장실을 나온 모든 군인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
“참 맛나게도 먹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박중근 하사도 화장실에서 나오며 모여 있는 소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야, 이 녀석들아. 뭐해? 어서 버스로 복귀하지 않고.”
“아직 다 안 나왔습니다.”
“그래?”
“김일도.”
“병장 김일도.”
“인원 확인 잘해.”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은 출발할 때 인원을 확인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대원을 확인할 때 오상진이 나왔다.
“인원 체크 이상 없어?”
“네.”
“그럼 버스로 복귀하자.”
“알겠습니다.”
복귀 명령이 떨어졌는데 병사들의 시선은 딴 데를 향해 있었다.
오상진은 소대원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꼬마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핫바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일도야, 멈춰봐.”
“네?”
“얘들아, 핫바 먹고 싶냐?”
순간 소대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네. 먹고 싶습니다.”
“꼭 먹고 싶습니다.”
“죽도록 먹고 싶습니다.”
“휴게소의 꽃은 핫바라고 들었습니다.”
그 소리에 오상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그래?”
“……누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휴게소에 들른 이유가 핫바를 먹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소대원들은 핫바 하나에 간절함을 담아 한마디씩 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알았다. 다들 핫바 하나씩 해라. 그리고 버스에 남은 인원들도 체크해서 사고.”
“와아아아! 소대장님 최고!”
“우리 소대장님 멋지십니다.”
그때 구진모 일병이 손을 들었다.
“왜? 진모야?”
“핫바 말고 핫도그 먹으면 안 됩니까?”
“핫도그?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흔쾌히 허락을 했다. 소대원들이 일제히 핫바와 핫도그 가게 앞으로 가서 줄을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