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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263화 (263/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263화

26장 은혜는 갚아야지(7)

“그래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뭘 어떻게 해요. 난 임자 있는 여자다. 그러니까 치근덕거리지 마라. 그렇게 깔끔하게 처리했죠.

한소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오상진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랬어요? 참 잘했어요.”

-뭐야, 설마 질투하신 거예요?

“어험……. 지, 질투 안 했어요.”

-아닌데? 질투한 거 같은데?

“아니거든요.”

오상진이 시치미를 뚝 뗐다. 질투보다는 예쁜 여자친구 때문에 걱정이 든다는 게 더 맞겠지만 그렇다고 그걸 대놓고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소희은 이런 식의 대화를 은근 즐기는 편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어요? 원래 이 시간에 전화 잘 안 하잖아요.

“소희 씨가 오해하는 게 있는데 전화야 늘 하고 싶죠. 매번 훈련이 겹쳐서 못하는 것 뿐입니다.”

-칫. 정말요?

“물론이죠.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 이번 주말에 만나기로 했잖아요.”

-네. 그랬죠.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예요? 설마 못 만나는 거예요? 갑자기 훈련이라도 잡혔어요?

한소희가 따지듯 물었다. 훈련 때문에 데이트가 취소된 경우가 종종 있다보니 이번에도 그런 거라고 넘겨짚은 것이다.

그러자 오상진이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에요. 소희 씨. 이번 주말에는 만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걱정 말아요.”

-후우, 못 만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무슨 놈의 군대가 연애도 못하게 하는지.

한소희는 속으로 중얼거린다는 것이 입 밖으로 말해버렸다. 그러다 깜짝 놀라서는 다급히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런데 또 그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다 들렸다.

“크흠. 연애도 맘 편히 못하는 군인이라 미안해요 소희 씨.”

-앗! 미안해요. 상진 씨. 속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하하핫,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소희 씨답죠. 전 오히려 좋은데요.”

-칫! 얄미워……. 그보다 진짜 무슨 일이에요?

“아, 맞다. 주말에 우리 데이트잖아요. 그때 중간에 잠깐 한울빌딩 좀 보러 가면 안 돼요?”

-빌딩은 왜요?

“하아, 사실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파견 근무 가기 전에 임대도 준비해야 하고, 리모델링도 좀 해야 할 것 같고……. 이래저래 전체적으로 손 볼 곳이 많아서요.”

-아, 그렇구나. 아니, 그렇겠네요. 그럼 제가 좀 도와줄까요?

“소희 씨가요?”

-네! 5층짜리잖아요. 전부 다 공실이고, 사실 어떤 세입자가 들어오는지에 따라 빌딩 이미지가 확 달라지거든요. 이 부분은 신중하게 고민해 봐야죠.

“오, 우리 소희 씨 그런 생각도 하고 계셨어요?”

-왜 이래요. 저도 나름 경영학 전공하고 있거든요. 엄마하고 경자 이모 따라 보러 다닌 건물만 수백 채는 될 테고요.

“오오, 그랬어요?”

-아무튼 저도 어떻게 하면 빌딩이 잘 될까 생각해 봤거든요. 그러니까 같이 이야기 해 봐요.

과거를 살다 온 오상진의 눈에 한소희는 그저 어리고 예쁜 여자친구였지만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한소희는 남들보다 일찍 시장 경제에 눈을 뜬 상태였다.

“그래요. 알겠어요. 그럼 나머지 부분은 주말에 만나서 얘기해요.”

-네. 저도 따로 준비해 갈게요.

“알겠어요. 고마워요, 소희 씨.”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자, 그럼 나도 준비를 해볼까?”

오상진이 행정반으로 들어갔다.

9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나 토요일이 되었다.

“소희 씨! 여기에요!”

약속시간에 맞춰 오상진은 한소희와 만났다. 그래도 데이트다 보니 바로 한울빌딩으로 가지 않고 근처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여기 설렁탕 맛있다. 그런데 이런 맛집을 어떻게 알았어요?”

한소희가 의외라는 듯 눈을 반짝였다. 오상진이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저도 처음입니다. 소희 씨랑 만난다고 해서 맛집 검색을 좀 했어요.”

“뭐하러 그래요. 난 상진 씨하고 먹는 건 다 맛있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서요.”

“칫. 암튼 마음에 들어요. 내 남친.”

“네, 고마워요.”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은근히 입맛이 까다로운 한소희를 위해 나름 맛집 검색을 해서 찾아봤는데 이 근방에서 제일 무난하고 괜찮은 음식점이 바로 설렁탕집이었다.

“이것도 먹어봐요.”

오상진이 방금 나온 따뜻한 수육을 내밀었다. 한소희의 젓가락이 냉큼 움직였다.

“오오. 이것도 맛있는데요?”

“정말요?”

“상진 씨도 먹어봐요. 어서요.”

“하하. 알았어요.”

맛있어 하는 한소희를 보며 오상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맛집이라고 해서 왔는데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미 연애의 맛에 푹 빠져버린 한소희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맛집보다는 오상진과 함께 있는 것이 더 행복했다.

“우리 다음은 뭐 해요?”

식사를 마칠 때 쯤 한소희가 넌지시 물었다.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그럼 우리 영화 볼까요?”

“또 영화 봐요? 우리 매번 볼 때마다 영화 보는데…….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 지금 빌딩에 가요.”

“아니에요, 아직 시간 여유 있어요.”

오상진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냥 빌딩으로 가요. 지금 상진 씨, 영화보다는 그곳에 신경이 가 있는 거 다 알아요.”

“이런. 그렇게 보였어요?”

“네. 솔직히 밥 먹는 내내 빌딩 이야기만 했잖아요.”

오상진이 갑자기 미안한 얼굴이 되었다. 모처럼만의 데이트인데 빌딩 때문에 한소희가 뒷전으로 밀린 것 같았다.

“미안해요. 소희 씨.”

“뭘 또 그런걸로 미안해하고 그래요. 괜찮아요. 이미 얘기 다 한 건데.”

“그래도…….”

“괜찮다니까요.”

한소희 방긋 웃었다. 그 모습이 오상진은 너무 사랑스럽게 보였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변명 같지만 제가 요즘에 따로 시간을 못 내서요. 게다가 다다음 주에는 파견근무도 가야 하고, 그전에 리모델링이나 세입자 문제 등 이것저것 어느 정도 마무리 좀 지으려고요.”

“원래 그렇게 하기로 했잖아요.”

“어쨌든 제 입장에서는 미안하죠. 오랜만에 데이트인데…….”

“또 그런다. 저는요. 이렇게 상진 씨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그리고 함께 있는 것이 데이트지, 꼭 영화를 보고 커피를 마셔야 데이트인가?”

한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한소희를 보며 오상진이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머릿결을 만졌다. 한소희가 움찔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소희 씨는 어떻게 매번 예쁜 말만 하시는 거죠?”

“네? 제가요?”

“네.”

“으음, 아마도 상진 씨를 너무 사랑해서?”

“네?”

오상진이 눈을 끔뻑거렸다. 여행을 다녀 온 이후로 더 살가워지긴 했지만 한소희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애정 표현을 듣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자 한소희가 재빨리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어서 가기나 해요.”

한소희도 살짝 민망했던지 오상진의 팔짱을 꼈다. 그런 한소희의 모습에 오상진의 입가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네!”

10

으뜸 부동산 한 사장과는 미리 통화를 해서 빌딩에서 만나자고 했다.

“오실 때가 됐는데.”

한 사장은 빌딩에 도착한 후 입구에서 기다렸다. 그 때 오상진이 차에서 내려 한 사장에게 갔다.

“어? 일찍 오셨네요.”

오상진이 말했다.

“네네, 안녕하세요, 오 사장님.”

한 사장이 인사했다. 그리고 옆의 한소희를 봤다.

“어이구. 사모님도 오셨습니까? 아, 아직은 사모님이 아니죠? 죄송합니다.”

부동산 중계인으로 반평생을 살다 보니 사장님과 사모님이란 호칭이 입에 붙어 버렸다.

실제 부부들은 그 호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넘겼지만 딱 봐도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한소희가 사모님이라는 말을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한소희는 씩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편하게 부르세요.”

한소희는 내심 사모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기분 좋았다. 아직 법적으로 부부가 된 건 아니지만 남들 눈에는 부부같은 사이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 사장은 서둘러 오상진을 바라봤다.

“제가 먼저 와서 5층까지 쭉 훑어봤습니다. 각 층마다 공실 없이 전부 세입자를 받으실 거죠?”

“네. 그래야죠.”

“일단 1층은 당연히 어머님이 운영하실 식당이 들어갈 것이고…….”

“그렇죠.”

“그럼 1층은 일단 빼고 2층부터 시작해 볼게요. 한울빌딩이 5층이고, 기존에 있는 내벽들을 그대로 쓴다고 가정했을 때 총 12개의 매장이 나올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가게가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매장 수는 줄어들겠지만요.”

한 사장의 설명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서는 한소희가 어느새 다이어리를 꺼내 메모를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불쑥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한 사장이 말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오상진도 한소희를 바라봤다.

“한 층을 세 개로 나누면 매장 크기가 너무 작지 않나요? 업종마다 매장 사이즈는 차이가 있을 텐데요.”

한 사장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역시 사모님이 잘 알고 계시네요. 맞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개인병원이 들어간다고 하면 한 층을 통째로 쓰려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작은 영세업자를 받으실 거면 한 층을 다 쓸 수는 없을 텐데, 그럴 경우에는 지금의 매장 정도로 나눠 임대하셔야 할 거고요.”

“이 정도는 몇 평이에요?”

“이게 대략 15평정도 됩니다. 영세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이즈죠.”

“너무 좁지 않나요?”

“아닙니다. 사실 이 정도 사이즈가 요즘에 잘 나갑니다.”

한 사장이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한소희가 가만히 듣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매장 수만 늘리는 건 반대에요. 물론 그럴 경우 임대 수입이 조금 더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빌딩의 컨셉이 없어지잖아요. 뭔가 중구난방이고, 저는 ‘한울빌딩’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서 세입자를 받았으면 하거든요.”

살짝 이론에 입각한 말이었지만 오상진이 듣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럼 소희 씨는 어떤 세입자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으음, 일단 1층에는 어머님께서 식당을 운영하신다면서요.”

“네.”

“어머니가 1층 전체를 다 쓰시는 거예요?”

“저는 그래도 상관 없을 거 같았는데 기존의 매장 규모만 쓰셔도 충분하다고 해서요. 아마 15평 정도는 남을 거 같아요.”

복도와 엘리베이터, 계단을 비롯한 공용 공간을 제외하고 한울 빌딩의 순수 매장 면적은 60평 정도였다.

이걸 기존의 건물주는 층마다 1층에 2개, 2층부터 5층까지 3개로 나누어 세를 줘 왔다.

그래서 어머니가 쓸 45평 전후의 식당 면적 이외에도 15평 규모의 자투리 면적이 남아 있었다.

“그럼 1층에 편의점이나 커피숍을 넣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2층과 3층은 개인병원 쪽으로 했으면 하고요. 요새 치과나 소아과, 이런 종류도 괜찮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4층과 5층은 개인 사무실 정도로 운영하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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