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62화
26장 은혜는 갚아야지(6)
-아, 몰라요. 몰라! 또 이상한 말 하려고 그러죠? 와, 나 갑자기 촉이 왔어.
“네?”
-또 훈련 잡혔죠? 그것도 긴 거로…….
“이야. 우리 소희 씨 촉 대단하다. 네, 맞아요. 2주 후에 파견 근무가 잡혔습니다.”
-하아, 군대 정말 싫다. 그래도 이번 주는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이번 주는 꼭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럼요.”
-알았어요. 이번 주 약속만 잊지 마세요.
“네.”
-아, 저 친구들이 불러서 가 봐야겠어요. 이따가 다시 통화해요. 아니면 깨톡 날려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오상진이 한동안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하아, 소희 씨 화 안났으려나? 추석 때도 그렇고 한동안 주말마다 만나기로 했는데…….”
오상진은 미안했다. 그렇다고 군인이 상부의 지시를 어길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아, 맞다…….”
오상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큰일이네. 보름 동안 파견 간다는 소리를 안 했는데.”
그 말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던 오상진은 이내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나중에…… 나중에 말하자.”
일단 말할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틈을 봐서 다시 얘기를 하기로 했다.
“그보다 지금은 소대원들에게 먼저 얘기를 해놔야지.”
오상진이 1소대로 향했다. 1소대 내무실에서는 소대원들이 오후에 있을 훈련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총기 거치대 문 열었냐?”
“네, 열었습니다.”
“좋아, 다들 총 챙겨서 나가자.”
“네.”
김일도 병장의 말에 1소대원들이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 오후에 훈련할 내용은 간단한 시가전 모의 훈련을 통해 새롭게 부여된 임무 하달을 숙지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임무 숙지는 다들 전달받았지?”
“네, 그렇습니다.”
“정신 차리고 빠르게 임무 숙지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이 힘차게 대답을 한 후 훈련을 나가려는데 오상진이 나타났다.
“얘들아, 훈련 가냐?”
“네. 그렇습니다.”
“훈련 가기 전에 소대장이 전달사항이 있다. 모두 자리에 앉도록.”
“네. 알겠습니다.”
1소대원들이 모두 착석했다. 오상진이 소대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보름 후 우리 1소대는 4소대와 함께 파견 근무를 가게 되었다.”
“파견 근무? 갑자기 말입니까?”
“공문이 왔는데, 해당 날짜에 다른 중대는 다 훈련이 잡혀 있어. 그나마 큰 훈련이 잡혀 있지 않은 우리 1중대가 가게 되었다.”
“어디로 말입니까?”
“강원도 해안 부대라고 들었다.”
“그럼 해안경계초소 근무입니까?”
김일도 병장이 바로 말했다.
“아마도 그렇겠지?”
김일도 병장의 질문에 오상진이 답변을 했다. 그런데 1소대원들 대부분이 고개를 갸웃했다.
소대원들의 표정을 확인한 오상진이 물었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
“그게 말입니다. 파견 근무가 처음이라…….”
김우진 상병의 말에 오상진이 살짝 놀랐다.
“뭐야, 너희들. 파견 근무 처음이야?”
“네, 그렇습니다.”
오상진이 김일도 병장을 봤다.
“일도도?”
“네, 저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저 다른 중대 동기들이 파견 근무를 갔다 왔다는 소식만 들었었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김일도 병장을 비롯한 고참들은 파견 근무를 다녀온 경험이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소대원들은 자기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파견 근무 가면 뭐합니까?”
“인마, 나도 모르지. 나도 안 가 봤는데.”
“아, 김 병장님도 안 가 보신 거면 당연히 최 상병님도 안 가 보셨겠구나.”
“당연하지.”
“파견 근무 갈 때 뭘 준비해야 합니까?”
“글쎄다.”
내무실이 소란스러워지자 오상진이 박수를 치며 주목시켰다.
“자자, 주목!”
“주목!”
“아무튼 우리 1소대에서는 파견 근무 가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네.”
“네,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김일도 병장이 바로 말했다. 오상진이 살짝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이것 참, 가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뭐, 그럼 이참에 확실하게 겪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오상진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곤 곧바로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파견 근무라고 해봤자. 별로 어려운 것은 없다. 다들 완전군장을 하고 그곳에서 생활할 전투복 여벌 하나랑 활동복 챙겨서 가면 되고. 물론 세면도구도 챙겨야겠지? 아, 그리고 이번에도 소대 통신병은 해진이가 맡는 거야?”
“상병 이해진. 네, 그렇습니다.”
“그래. 해진은 대대통신과에 가서 보름 동안 사용할 배터리 충분히 요청하고!”
“네, 알겠습니다.”
“아직 2주 정도 시간이 있으니까, 그 안에 소대장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추가로 말해주겠다. 아무튼 2주 후에 파견 근무 간다는 것만 명심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내무실을 나갔다. 오상진이 나가자 소대원들끼리 수군거렸다.
“파견 근무라니……. 왠지 설레지 말입니다.”
“설레? 나도 그렇긴 하다.”
그때 최강철 이병이 이해진 상병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 상병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파견은 왜 가는 겁니까?”
“나도 모르지. 한 번도 파견 근무를 안 가 봤는데.”
최강철 이병은 뜻밖의 대답에 당황했다.
‘아니, 이해진 상병님도 모르는 게 있었다고?’
이해진 상병 역시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후임병의 질문에 단 한 번도 대답해 주지 못한 것은 없었는데, 파견 근무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게 없었다. 어쨌든 이런 당황스러움은 뒤로하고 김일도 병장에게 물었다.
“김 병장님. 파견 근무 어디로 간다고 했습니까?”
“아까, 강원도 해안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냐?”
“아……. 그런데 정말 파견 가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나도 안 해본 것을 어떻게 아냐? 뭐, 해안초소 쪽이면 아무래도 해안경계근무 아니겠냐?”
“그런 것 같습니다.”
이해진 상병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김일도 병장이 짜증을 냈다.
“아, 진짜. 말년에 무슨 파견 근무야. 그냥 편안하게 부대에 있지.”
김일도 병장의 입장에서는 병장인데 파견 근무를 나가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옆에 있던 김우진 상병이 입을 뗐다.
“에이, 김 병장님. 아무리 그래도 말은 바로 하셔야죠. 아직 말년 되시려면 멀지 않았습니까.”
“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무슨 파견이야. 괜히 가서 그곳 중대 녀석들에게 눈칫밥만 먹는 거 아냐?”
그렇게 말을 하면서 김일도 병장이 슬쩍 일어났다. 그러자 김우진 상병이 냉큼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옆 중대에 파견 근무 갔다 온 동기가 있으니까 물어봐야지, 그래도 분대장인데 그냥 갈 수는 없잖아! 기다려 봐.”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훈련은…….”
“우진이 네가 우선 통솔해서 움직여.”
“넵!”
김일도 병장은 나름 정보 취득을 위해서 다른 중대로 발길을 옮겼다.
8.
오상진은 파견 근무를 나가기 전 앞에 놓인 일들을 빠르게 정리할 생각이었다.
‘어디 보자, 한울빌딩의 인테리어도 해야 하고, 세입자들을 대신 구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오상진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으뜸 부동산 한 사장님이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오상진은 생각을 하고 바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음이 흐른 후 한 사장이 전화를 받았다.
-네, 으뜸 부동산입니다.
“한 사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오 사장님! 이렇듯 전화를 주시다니…… 오 사장님께서도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항상 똑같죠.”
-그런데 무슨 일로……?
“아, 다른 것이 아니라. 전에 한 사장님이 추천해 주셨던 빌딩 있죠?”
-빌딩?
“전에 가게 구하다가 매물로 나온 빌딩 말입니다.”
-아아아, 기억났습니다. 그때 매입 준비를 하신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아, 그 빌딩 제가 매입했습니다.”
-아! 그러셨구나. 어쩐지, 그 건물 누가 샀다고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샀는지 한참 궁금해하던 참이었는데……. 오 사장님이 사셨구나.
“네.”
-그러면 사장님…… 혹시 그 빌딩 공실이 많을 텐데, 세는 어떻게 놓으실지 생각해 두셨습니까?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고민 중이었습니다.”
오상진이 말하자마자 곧바로 한 사장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한테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조건에 부합한 세입자로 다 맞춰드리겠습니다. 아니, 하나의 공실도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휴대폰 너머 들려오는 한 사장의 목소리에 결연함이 묻어났다.
“그래서 제가 한 사장님께 전화를 한 겁니다. 어쨌든 한 사장님 하고는 하루 이틀 만날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전 오 사장님과 끝까지 갈 생각입니다.
“아, 굳이 그렇게까지는…….”
오상진은 갑자기 부담스러워졌다.
-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아니요. 아무튼 한 사장님께서 여태껏 좋게 일해주셨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제가 해드려야죠.”
-어이구, 감사합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언제 한번 만나 뵀으면 합니다. 구체적인 얘기는 전화로 말고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가 좋겠습니까?
“이번 주 토요일 날 제가 한 사장님 사무실로 찾아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찾아가야죠. 어떻게 사장님께서…….
“아, 아니요. 제가 한 사장님 사무실로 찾아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면……. 아니다, 그냥 아예 빌딩에서 만나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 그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럼 토요일 날 빌딩에서 뵙는 거로 알겠습니다.
“네. 그리고 예전 저희 아파트 리모델링 해주셨던 업체 사장님 알고 계시죠?”
-네네, 사장님.
“거기 혹시 식당도 리모델링 합니까?”
-어휴, 그 업체 모두 다 합니다. 특히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다 해줄 겁니다. 게다가 지난번에 아파트도 하셨었으니 이번엔 아마 좀 싸게 해주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전 싸게 해주는 것보다는 제대로, 하자 없이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하실 식당이라서 말이죠. 정말 문제없이 꼼꼼하게 잘 해주셔야 합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양반도 양심적으로 열심히 잘하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사장님네 가게라고 하시면 더 열심히 할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럼 그분께 연락 부탁한다고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희 씨.”
-네, 상진 씨.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한소희의 목소리의 톤이 약간 올라가 있었다.
“지금 수업 중 아니에요?”
-아뇨, 잠깐 학교 앞 벤치에 앉아 커피 마시고 있어요.
“오오, 멋져요. 그런데 그렇게 밖에서 커피를 마시면…….”
-마시면요?
“어떤 놈이 집적대지는 않아요?”
-당연히 있죠. 설마 이 정도 미모에 관심 가지는 사람이 없겠어요?
자랑하는 듯한 한소희의 말에 오상진의 표정이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