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55화
25장 일이 점점 커지네?(10)
“무조건 백화점이지. 비싼 것이 좋아.”
“네? 구체적으로…….”
“구체적이라. 명절엔 일단 고기지. 백화점 한우 코너로 가서 어느 게 잘 나가냐고 물어봐. 그래서 실한 거로다가 준비해서 드려!”
“아! 한우 세트! 어른들은 그런 거 좋아하시죠?”
“그렇지! 한우면 만사 오케이야!”
김철환 1중대장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오상진 역시도 한우 세트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사이 김선아가 잔뜩 음식을 차려냈다.
“여보, 여기 상 좀 가져가요.”
“그래요.”
김철환 1중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상진 역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한 상 차려진 음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와, 형수님.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무리는요. 아니에요.”
김선아가 환하게 웃었다.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은 큰 상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어느새 김세나도 나와 있었다.
“오빠 왔어요?”
“어? 안녕.”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예전 같으면 자신이 오면 바로 튀어나와 ‘오빠!’라고 외쳤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조용해서 어디 나간 줄 알았다.
“집에 있었구나.”
“네.”
김세나는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시무룩했다.
“세나야, 왜 그래? 어디 몸이 안 좋아?”
“아뇨.”
그때 김세나가 식혜를 가지고 나오며 말했다.
“아이돌 연습한다는 것을 못하게 해서 저래요.”
그러자 김세나가 눈을 흘기며 버럭 했다.
“아, 좀…….”
김세나가 입술을 삐죽삐죽거렸다. 김선아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너 추석날 자꾸 얼굴 그렇게 하고 있을래? 언니가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있다고 말했지!”
김선아의 말에 김세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안 그럴게.”
그리고 밥을 아주 맛나게 먹었다. 다 먹고는 설거지까지 말끔하게 했다. 그 모습을 보는 김철환 1중대장이 씨익 웃었다.
“상진아, 우리 처제 귀엽지 않냐?”
“네, 귀엽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처제가 아이돌 하면 잘할까? 넌 어떻게 생각하냐?”
김철환 1중대장의 물음에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제가 봤을 땐 우리나라 최고의 아이돌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어차피 오상진은 김세나가 최고의 아이돌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한 것이었다.
‘그래, 세나야. 오빠가 널 많이 응원할게.’
오상진이 속으로 말했다.
그리고 오상진은 저녁 늦도록 김철환 1중대장 집에서 윷놀이를 하며 즐겁게 보냈다.
17.
토요일 아침.
오상진은 깔끔한 사복 차림으로 관사에서 나왔다. 차량에 올라탄 후 오상진이 향한 곳은 바로 강남에 위치한 백화점이었다. 오상진은 백화점으로 올라가 선물세트를 확인했다. 추석날이 지났지만 아직 명절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선물세트는 많이 남아 있었다.
“아직도 많이 있네.”
오상진이 추석 선물세트를 확인하는데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가격이…….”
꽤 괜찮은 것 추석 선물세트는 가격대가 거의 100만 원대였다.
“아니, 가격이 전부 백만 원이 넘네. 장난 아니네.”
오상진은 절로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 맞다. 지금 이 시기에는 김영란법 적용 전이었구나.’
김영란법이 적용된 이후에는 명절 선물 세트 가격의 거품이 확 빠지면서 가격대가 낮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김영란법이 적용되기 전이라 온갖 프리미엄 선물 세트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때 직원이 다가왔다.
“혹시 명절 선물 알아보시려고요?”
“아, 네에.”
“집에 가져가시는 거세요?”
“집에 가져가려는 것도 있고, 선물할 것도 있고요.”
“선물이요? 혹시 여자 친구 집에 하시려고요?”
“네, 뭐…….”
“여자 친구분은 좋으시겠다.”
직원이 부럽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괜히 멋쩍어진 오상진이 말을 돌렸다.
“그보다 어떤 것이 좋나요?”
“요즘 고르시기에는 이 정도가 적당해요.”
직원이 추천한 것은 약 30만 원대에서 40만 원대 정도의 선물세트였다.
“평균적으로 35만 원대 한우 세트가 잘 나가요.”
오상진이 고민하는 것을 본 여직원이 바로 말했다.
“여자 친구분 집에 보내시려면 선물세트가 이 이하로 내려가면 좀…….”
“아뇨, 그런 것이 아니라 금액에 비해서 내용물이 좀 실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아, 그러신가요? 그럼 윗등급으로 보여드릴까요?”
“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여직원의 안내를 받고 반대편으로 갔다. 그곳에는 50만 원 이상으로 된 선물세트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럼 이 정도는 어떨까요?”
여직원이 하나의 세트를 내밀었다.
“이 정도면 중량도 좋고, 내용물도 알차고 그런데.”
50만 원짜리를 보니 확실히 30만 원짜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구성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 첫 선물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오상진이 결심을 하고 입을 열었다.
“좋네요. 이걸로 두 개 주세요.”
오상진은 한우 세트 두 개를 구입했다.
“네. 알겠습니다.”
여직원이 환한 얼굴로 한우 세트 두 개를 포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옆 직원이 다가와 말했다.
“한우 세트 사셨어요?”
“네.”
“혹시 굴비는 안 필요하세요?”
“굴비요?”
“요새 굴비도 많이들 찾으시던데. 어른들이 좋아하세요.”
“명절에는 한우 아닌가요?”
“에이. 추석엔 굴비죠.”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은 살짝 고민이 되었다. 어른들이 좋아한다고 하니 갈등이 되었다. 그렇다고 한우 세트를 산다고 해놓고 바로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한우를 샀는데요.”
“뭐, 어때요. 한우도 사고 굴비도 사고. 두 개를 한꺼번에 보내주면 더 좋아하시겠죠.”
“아, 그렇습니까?”
“네. 일단 한번 와서 보세요. 영광에서 직접 가져온 거라 굴비가 아주 실해요.”
여직원은 곧바로 오상진을 데리고 와 굴비 세트를 보여줬다. 영광굴비가 유명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고민이 시작됐다.
‘그래, 명절은 또 굴비이긴 한데…….’
오상진도 대대장 시절 굴비를 선물 받고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굴비 선물세트를 좋아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굴비를 좋아하시긴 하지.’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굴비를 확인했다. 25만 원과 45만 원짜리가 있었는데, 25만 원은 고기가 작고 실하지 않았다. 대신 45만 원짜리는 고기도 크고 빛깔도 좋은 것이 아주 맛나 보였다.
“이거는 어때요?”
오상진이 일부러 25만 원짜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여직원이 살짝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이 굴비도 괜찮긴 한데 구우면 좀 작아집니다. 그건 이해해 주세요.”
“그래요?”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오상진이 방금 전 50만 원짜리 한우 세트를 고른 걸 알고 있던 여직원은 냉큼 똑같은 가격대를 권해왔다.
“이 정도가 어떻습니까?”
45만 원짜리 굴비세트였다.
“으음……. 하긴 엄마가 굴비를 좋아하긴 하는데…….”
오상진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여보세요?”
-형, 어디야?
오정진이었다.
“지금 백화점인데.”
-백화점에서 뭐해?
“뭐 좀 사려고, 그런데 왜?”
-아니, 제주도 이모가 올라왔어.
“뭐? 제주도 이모가? 어떻게 오셨대?”
-어떻게 오시긴. 비행기 타고 오셨지.
“짜식이.”
-참, 주희하고 주혁이도 왔어.
“그래? 정진아, 그럼 이모에게 뭐 드시고 싶은지 물어봐.”
-알았어, 잠시만. 이모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
잠시 후 오정진이 답했다.
-형!
“왜?”
-이모가 추석에는 조기라고 하시는데.
“으응, 알았어.”
이모 딴에는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지 그래도 조금 싼 조기를 언급했지만 오상진은 바로 굴비를 구입했다.
“조기? 조기보다는 굴비가 좋지. 이거 주세요.”
오상진은 과감하게 45만 원짜리 굴비를 택했다.
“그럼 이것도 두 개요?”
“네. 두 개 주세요.”
추석 선물로 거의 200만 원을 지출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현재 오상진의 은행에는 약 300억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게다가 군대에 있어서 돈을 쓸 일도 거의 없었다.
‘뭐, 현재 들어오는 한 달 이자만 해도…….’
오상진은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을 하며 양손 두둑이 선물세트를 들고 마트를 나섰다.
선물세트를 트렁크에 싣고 차에 올라탄 오상진은 한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한소희의 집에도 친척들이 방문해 떠들썩했다.
“언니, 여기 만둣국 하나 더 줘요.”
“여기 반찬이 없네요.”
“언니!”
친척들은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 많았다. 한소희 어머니는 친척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직접 가져다 주었다. 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들이 있었지만 집에서 호강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한소희가 나서려 했지만
“됐으니까 방에 들어가 있어. 이건 엄마가 할 테니까.”
어머니는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한소희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며 그녀를 윗방으로 올려보냈다.
그래서 한소희는 사촌 언니랑 자신의 방에 있었다.
“소희야.”
“왜?”
“너 연애한다며?”
“누가 그래?”
“기집애야, 누가 말하는 것이 중요해? 소문이 났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러니까, 그 소문을 누가 냈어?”
“내가 아니? 그냥 나도 들었어.”
“누구에게 들었는데!”
“야, 언니가 그랬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아무튼 이번 남자는 괜찮아? 어떠니? 말 좀 해봐. 이것아.”
“안 알려줄 거야.”
“기집애, 맨날 안 만나는 척하더니 뒤로는 호박씨를 다 까고 있어.”
사촌 언니는 말을 하면서 한소희의 옷장을 뒤지고 있었다. 한소희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언니, 지금 뭐 해?”
“뭐 하긴. 너 옷 뭐 있나 구경하는 거지.”
“허락도 없이?”
“어머! 얘는……. 우리 사이에 허락을 받고 하니?”
사촌 언니는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것처럼 말했다. 한소희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차례 쭉 훑어보더니 옷장 문을 닫았다.
“뭐, 별거 없네.”
“제발 내 옷 좀 그만 가져가시지. 언니에게 맞는 옷도 없어!”
“야, 남들이 보면 내가 너 옷을 뺏어가는 줄 알겠다.”
“아니야? 언니 맨날 명절 때 오면 내 옷 예쁘다고 가져가 놓고 돌려주지도 않았잖아. 그게 한두 번이야?”
“쳇! 일일이 그걸 기억하냐?”
“기억 못 하면 호구지.”
“알았어, 안 가져가. 그렇지 않아도 내가 살이 붙었는지 네 옷이 맞지도 않는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때 한소희의 휴대폰이 울렸다.
“언니, 나 전화 좀 받게 나가!”
“왜?”
“잠깐 나가 있어. 나 통화해야 해.”
“통화해.”
“남자 친구랑 통화할 거야, 좀 나가!”
“칫, 뭐야? 남자 친구 있다고 유세야? 별걸 다 해. 알았어. 나간다, 나가!”
사촌 언니는 잔뜩 투덜거리며 방을 나갔다. 한소희는 곧바로 문을 잠근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네, 상진 씨. 무슨 일이에요? 추석도 지났는데 안부 인사하는 거예요?”
-아, 그건 아니고…… 소희 씨 지금 어디에요?
“집이죠.”
-혹시 집 주소 알려줄 수 있어요?
“그건 상관이 없는데…… 왜요?”
-뭐 좀 줄 것이 있었어요.
“줄 거요? 선물 샀어요?”
-네네.
“무슨 선물을 사고 그래요. 난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
-그냥 제 맘이 그래요. 명절을 그냥 보내기도 그렇고, 우리 집 선물 사는 김에 준비해 봤어요.
“알았어요. 제가 문자로 주소 보내줄게요.”
-그래요.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잠시 후 문자에 찍힌 주소를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