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54화
25장 일이 점점 커지네?(9)
“역시 만둣국은 변하질 않네.”
김일도 병장이 말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왜? 별로야?”
“만둣국이 만둣국이지 말입니다.”
“소대장은 맛있기만 한데.”
“소대장님은 처음이시고, 저는 매년 같은 맛이라서 그랬습니다.”
“아, 그래?”
오상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떡만둣국을 먹는 것에 집중했다. 그때 이제 취사장 왕고가 된 호텔 조리학과의 구본승 병장이 나왔다.
“배식은 잘하고 있냐?”
“네. 그렇습니다.”
“그래 부족함 없이 잘 배식해.”
“네. 알겠습니다.”
구본승 병장은 배식 상황을 확인하고 다시 취사장으로 들어가려는데 구석에 앉아 맛나게 먹고 있는 오상진을 발견했다.
“어? 소대장님이 어쩐 일이시지?”
구본승 병장이 중얼거리며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1소대장님!”
“오오, 구 병장! 나왔어?”
“네. 그보다 떡만둣국은 입에 맞으십니까?”
“구 병장의 손맛이 들어갔는데 당연히 최고지! 역시 호텔 조리학과의 솜씨야.”
오상진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설마 제가 만든 떡만둣국을 먹으러 새벽 일찍 올라오신 겁니까?”
“당연하지. 우리 구 병장이 만든 것을 먹고 싶었지.”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떡만둣국을 먹다가 구본승 병장을 봤다.
“그런데 구 병장. 아직까지 고생하는 거야? 보통 병장은 음식 간만 맞추고 지휘만 하지 직접 하지 않잖아.”
순간 구본승 병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원래 그게 정상인데 말입니다. 제 바로 밑 후임 중에 임 상병이 있습니다. 이 녀석이 글쎄 장금이입니다.”
“장금이? 지금 TV에 나오는 대장금?”
“네.”
“오호, 그럼 요리를 엄청 잘하겠네.”
오상진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하지만 구본승 병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현재 그 녀석 미각을 잃었습니다.”
“미각을 잃어?”
“네. 그래서 죽겠습니다. 이 녀석이 간을 보면 중간이 없습니다. 짜던가, 아니면 엄청 싱겁던가.”
“그래서 아직 못 미더워서 네가 하는 거냐?”
“네.”
구본승 병장이 씁쓸하게 대답했다. 오상진 역시도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 대대원들은 복 받았지. 호텔 조리과 출신의 구 병장 요리를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에이, 우리 소대장님 날 너무 띄워 주신다.”
“이렇게라도 해야 신이 나서 맛나게 만들어주지 않겠냐?”
“그건 그렇습니다.”
이렇듯 두 사람이 추석날 아침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구본승 병장이 슬쩍 오상진 식판을 확인했다.
“어떻게 만두 좀 더 드립니까?”
오상진 주위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야, 안 그래도 조금 모자라던 참이었는데……. 조금만 더 줄래?”
“네, 물론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구본승 병장이 곧장 취사장 안으로 들어가 잘 익은 만두를 가져와 오상진 식판에 넣어 주었다. 오상진은 조금 민망했지만 ‘어험!’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아주 맛나게 먹었다. 주위에서 장병들이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상진은 간부의 특권을 이럴 때 조금 누렸다.
15.
오상진은 배부르게 아침을 먹고 행정반에 들어갔다. 잠시 후 한두 명이 나타났다.
“어? 1소대장님 일찍 오셨습니다.”
“박 하사 왔습니까?”
“네. 식사는 하셨습니까?”
“먹었습니다.”
그 외에도 2소대장, 3소대장, 4소대장도 나타났다. 그들 모두 전투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석날은 쉬는 날이었다. 다만, 아침에 차례를 지내야 하기에 올라온 것뿐이었다.
“차례는 몇 시에 지냅니까?”
“아마 9시쯤 하지 않겠습니까?”
“아, 대대장님께서도 그때 오십니까?”
“아마도 그럴 겁니다.”
소대장들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차례를 지낼 준비를 했다.
한편, 그 시각 1소대에서는 TV 시청을 하며 차례 지낼 준비를 했다. 최강철 이병은 부대에서 처음 맞이하는 추석에 잔뜩 기대를 했다. 잠시 후 방송이 나오고 모두 대대 식당으로 내려갔다.
모든 간부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추석에 다 같이 제사를 지내기 위함이었다. 한종태 대대장이 앞으로 나왔다. 술잔에 술을 따른 후 한마디 했다.
“자, 집에 계신 조상님과 부모님께 절하자!”
그렇게 모두 절을 한 후 다시 내무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대부분 편안한 차림으로 TV 시청에 몰두했다.
-치익, 상황실에서 알린다. 각 내무실에서 한 사람씩 상황실로 올라오기 바란다. 이상.
“어? 특별식 주려고 하는가 보다.”
“특별식 말입니까?”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말했다.
“추석 하면 뭐냐?”
“추석 하면…….”
최강철 이병이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송편?”
“그래! 송편을 주지.”
“아, 송편을 주는구나.”
최강철 이병은 살짝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물었다.
“왜?”
“아, 아닙니다.”
“아무튼 특별한 날만 특별식이 나오는 거니까. 많이 먹어둬.”
“네.”
잠시 후 구진모 일병이 상황실에서 가져온 송편을 깔았다. 접시 두 개에 가득 송편을 받아왔다.
“야, 송편 먹자!”
“이야. 먹자.”
소대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송편을 먹었다.
“야야, 천천히들 먹어라.”
“네.”
그런데 한쪽에 앉은 최강철 이병은 송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야, 뭐해? 송편 안 먹어?”
“드십시오. 저는 아침에 먹었던 떡만둣국 때문에 속이 좀 좋지 않습니다.”
“그래? 많이 안 좋아?”
“아닙니다. 약간 더부룩한 정도입니다. 제 몫까지 많이 드십시오.”
“그래.”
이해진 상병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실 최강철 이병은 송편을 싫어했다. 아니, 정확히 말을 하면 떡을 싫어한다고 봐야 했다. 어릴 적 떡을 먹다가 크게 체한 적이 있어서였다.
‘참 맛있게들 드시네.’
최강철 이병이 선임병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특별식이라고 해도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음식만은 못한 것 같았다.
‘아, 갑자기 집에서 먹던 한우 갈비가 생각나네.’
최강철 이병의 입안에 침이 고였다.
그러는 동안 송편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고, 가져온 지 3분 만에 없어졌다.
“야, 벌써 다 먹었냐?”
“네.”
김우진 상병은 입맛을 다시며 드러누웠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참 오늘 당직사령 누구냐?”
“제가 알기론 1중대 행보관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오, 그래? 그럼 이번에도 영화 준비해 주셨을까?”
구진모 일병이 슬쩍 말했다.
“안 그래도 아까 떡 가져갔을 때 비디오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 오호라.”
김우진 상병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방송이 나왔다.
-점심식사 후 13시부터 비디오 시청이 있겠다. 다들 그렇게 알고 추석 잘 보내고 있도록.
“역시 우리 행보관님이라니까.”
“영화 감상이면 어떤 것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추석 하면 성룡이지.”
“오오, 재키 첸!”
“뭐? 재키 뭐?”
“아, 성룡을 미국에서는 재키 첸이라고 부릅니다.”
“아, 고래?”
“좋았어, 재키 첸!”
다들 기대에 찬 눈빛으로 13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영화 감상 준비를 했다. 암막 커튼을 치고, 채널을 4번에 맞췄다.
“준비 끝났습니다.”
“현재 시각은?”
“현재 시각 12시 59분입니다.”
“좋았어. 그럼 기다린다.”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TV를 응시했다. 곧바로 방송이 또 나왔다.
-행보관이다. 추석 잘 보내고 있냐? 물론 알고 있겠지만 행보관이 영화 하나 준비했다. 다들 조용히 보고 있도록.
“네에!”
순간 대대가 떠나갈 듯 울려 퍼졌다. 김도진 중사는 피식 웃으며 통신병에게 말했다.
“틀어!”
“네. 알겠습니다.”
대대 통신병이 방송실로 뛰어가 영화를 틀었다. 그 순간 대대 전 내무실에 똑같은 화면이 나타났다.
“한다! 합니다.”
“지금 영화 합니다. 내무실로 다 들어오십시오.”
각 내무실에서는 밖에 나가 있는 선임병들을 불러들이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역시나 영화는 성룡이 나오는 영화였다.
최강철 이병도 성룡이 나오는 영화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밖에서는 이런 것을 찾지도 않았지만 군대에 들어오니 이런 영화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오오, 성룡!”
최강철 이병이 TV를 뚫어지라 응시했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강철아.”
“이병 최강철.”
“나, 이등병 때는 말이야. 너처럼 대범하게 말이야, 정면으로 TV를 본 적이 없어. 항상 힐끔힐끔 곁눈질로 봤는데 말이야.”
“아, 그런 겁니까?”
이해진 상병의 말에 최강철 이병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해진 상병이 웃었다.
“인마, 농담이야. 추석인데 그 정도는 괜찮아.”
“아, 농담이었습니까? 너무 하십니다.”
“그런데 진짜로 나 때는 그랬다고! 지금은 아니지만.”
“네에.”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일도 병장이 베개를 가져와 누우며 말했다.
“야, 다들 편안한 자세로 영화 봐. 누울 사람은 누워도 돼.”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은 이번만은 어느 정도 군기를 풀어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자리에 누우며 영화를 감상했다. 물론 이등병들은 눈치를 보며 그러지는 못했다.
“누워서 봐.”
“아닙니다.”
“에헤이, 누워서 보라니까.”
“아, 알겠습니다.”
선임병의 말에 억지로 자리에 누웠지만 뭔가 어정쩡하고 어색하게 누웠다. 하지만 이내 눈이 감겼다. 낮이지만 암막 커튼을 쳐서 그런지 내무실은 어두웠다. 불빛이라고 TV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점심도 배불리 먹은 데다가 누워서 TV를 보니 나른했다. 최강철 이병은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기며 잠이 들었다.
16.
오상진도 제사를 지낸 후 다시 관사로 다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김철환 1중대장이 다가왔다.
“점심은 중대장 집에서 먹자.”
“네.”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 집으로 향했다. 물론 관사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는 같이 어울리는 것이 좋았다. 김선아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셨어요.”
“네.”
“잘 왔어요. 제가 식혜 좀 담갔는데 드실래요?”
“저는 다 좋습니다. 형수님.”
“네. 앉아 계세요.”
김선아는 부엌으로 가서 이것저것 다과를 준비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물었다.
“참, 너 주말에 집에 가기로 했냐?”
“네.”
“참, 상진아.”
“네.”
“너 여자 친구 집에 선물은 했냐?”
“아…… 그거 해야 합니까?”
김철환 1중대장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인마, 당연히 해야지. 여자 친구 부모님께 잘 보여야 하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아직 인사도 못 드렸고 해서 말이죠.”
“그러니까, 이참에 정식으로 인사를 해야지. 점수 좀 미리 따놔. 나중을 위해서!”
“일단 알겠습니다.”
“일단? 인마, 일단이 아니라니까. 답답하네, 그래 가지고 너 장가나 갈 수 있겠냐?”
“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뭘 준비해 드립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김철환 1중대장이 씨익 웃었다.